116화 갈등 (3)
탁유현은 손전등에 불을 켰다.
아래를 비추기만 했을 뿐, 바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놈들은 좀비가 아냐……. 이런 데는 없을 거야.’
유현은 어린 시절 플레이했던 게임, 그러니까 폴아웃이랑 현실은 다르다고 되뇌었다.
꽤 많이 봤던 좀비 영화 등과도 다르다고 되뇌었다.
거기에 나오는 것들은, 부르는 용어가 달라도 다 비슷한 놈들 아니었던가.
최소한의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런 곳에도 숨어 있을 수 있겠지만.
라드들은 달랐다.
이것들은 이성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으니.
위험해 보이는 곳이라면, 어쩌면 사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피할 수도 있었다.
“좀만 더 보고 내려가자.”
“응? 아, 그래.”
그러나 불안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않나?
아래 내려갔는데, 놈이 있으면 어쩐단 말인가.
대응이 가능할까?
어지간한 개체라면 총을 든 유현과 이순규 둘이서 어찌해 볼 여지가 있겠지만.
초거대 개체라면 둘이 아니라 전체가 다 내려가도 분쇄될 터였다.
“없는 거 같지 않아?”
“일단 냄새가 안 나. 없는 거 같아.”
“아, 냄새로도 알 수 있구나.”
“정확하지는 않아. 사방이 타 버려서.”
“음.”
유현은 이순규를 돌아보았다.
괴물처럼 변한 지 오래지만, 진중한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내가 보였다.
‘그래……. 저놈이 그냥 하는 말일 리는 없지.’
사실 대다수의 의사들이 그랬다.
환자를, 진짜 아픈 사람들을 다수 대해 본 이들은 아무래도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되는 법이었다.
때문에 100% 확신하기 전에는 저렇게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다는 둥.
유현도 이순규가 무슨 심리에서 저렇게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총을 앞세운 채 아래로 향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에는 쥐가 든 철사 통을 감고서였다.
“흠.”
손전등은 이순규가 들었다.
권총이 아니라 소총이다 보니 손이 남질 않아서 그랬다.
“어둡네…….”
“손전등 하나니, 뭐……. 아예 자동차로 밀고 들어와서 불 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흐음…….”
“물론 자동차는 사람들이 모는 거라는 인식을 하고 있을 테니, 표적이 되겠지.”
유현은 위에 난 구멍, 그리고 구멍을 통해 보이는 자동차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별로 의미 있는 말들은 아니었다.
저 중에 움직이는 차가 있기야 하겠지만.
움직인다고 해도 몰고 나갈 수는 없을 테니.
아니, 이 아래까지 끌고 내려올 수도 없을 터였다.
저 반대편 벽은 죄 무너져 내렸으니까.
‘공습이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유현은 여전히 탄내가 나는 건물 지하로 천천히 내려갔다.
“읍.”
“어우.”
먼저 신음을 흘린 건 이순규였다.
냄새 때문이었는데, 유현보다는 아무래도 더 예민해서 그랬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썩는 냄새……. 아닌가?”
“아, 전기 때문에?”
“모르겠는데. 대부분 포장되어 있지 않나?”
비닐에 싸여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냄새는…….
“아.”
이제 지하 1층이었다.
이순규는 불을 주변에 비추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평소라면 유현이 뭐라고 했을 터였다.
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빨리 딴 데도 비춰야지 뭐 하냐고, 그런 말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유현도 이순규가 불을 비추고 있는 곳을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멈춰 선 채 보고 있었다.
“저거…….”
“안전은 할 거 같다.”
시신이 널려 있었다.
사람 시신은 아니었다.
라드들.
그중에서도 꽤 거대한 개체가 몇 구 보였다.
어디 한 군데도 파 먹힌 흔적은 없어 보였다.
다만 불에 타거나, 머리를 다치거나 한 흔적이 있었다.
“안전? 왜?”
이순규는 천천히 다가가면서 유현에게 물었다.
유현 또한 총구를 겨눈 채, 걸으며 답했다.
“라드가 있다면……. 저것들을 그냥 썩게는 안 뒀을걸.”
“아……. 먹었을 테니까?”
“그렇지.”
“그래도 혹시 몰라.”
“응, 모를 일이긴 해. 쥐가 안 보여.”
“씨가 말라서 그러길 바라야지. 쥐가 없어서 그런가……. 벌레는 엄청 많네.”
이순규는 손전등을 갖다 댈 때마다, 또 발을 디딜 때마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는 벌레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바퀴벌레들 같은데, 딱히 눈여겨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었다.
유현에게도 그랬다.
해서 일부러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딱히 없었다.
그거 스스슥 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우리뿐인 거 같지?”
“벌레 말고는.”
이순규는 유현의 말에 큰 키를 이용해서 손전등을 더 멀리, 구석구석까지 비쳐 보았다.
아무래도 아까보단 좀 더 과감해 보였다.
확실히 뭐가 없어 보여서 그랬다.
“다른 사람들도 내려오라고 할까?”
유현은 두리번거리고 있는 이순규의 얼굴에 별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물었다.
그러고는 이순규가 끄덕이자, 위를 향해 외쳤다.
“내려와요! 괜찮아!”
“아, 네!”
오예리 형사가 답하고, 나머지 셋이 차례로 내려왔다.
모두 이순규와 유현이 아까 보였던 반응을 차례로 보였다.
냄새에 코를 막고, 시신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벌레들을 보고 외면하고.
하지만 각오했던 만큼 끔찍한 광경은 아니었는지 곧 사방으로 흩어져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신선 식품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죄 썩어 있었다.
아니, 사실 놓여 있는 게 그리 많지도 않았다.
이미 다 먹은 모양이었다.
“과자다.”
그러나 과자나 통조림 같은 것들은 꽤 남아 있었다.
유현은 이 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저것들이 이 건물을 점거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오질 못했나?’
병사나 이진호 등은 그저 운이 좋다고 여기고,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을 챙기고 있었다.
오예리도 둘을 도와 음식을 가방에 담았다.
그러나 유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까 확인한 시신이 고작해야 다섯 구밖에 안 되어서 그랬다.
‘아무리 라드들이라고 해도……. 다섯 마리로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어.’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말은 여기 더 있었을 거란 얘기였다.
물론 불길이 꺼지고 난 후에 와서 그렇지, 포격 당시에 여기 있었다면 죄 죽어 나갔을 것 같긴 했다.
그러나 또 모를 일이었다.
‘음식이 저렇게 많다면……. 굳이 시신을 먹지 않았을 거야.’
사람이 사람을 먹지 않는 건, 비단 윤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 않나.
많은 창작물에서 너무나도 쉽게 식인을 표현하지만.
사람은 궁지에 몰리고 또 몰리지 않는 이상 식인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본능이 시켜서 그렇다곤 하지만.
내밀한 곳을 보면 가장 이성적이고 또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영양학적으로도 인간의 시신은 그리 유리하지 못했고, 감염의 원인도 될 수 있었다.
‘모아 놨나…….’
이제 보니 라드의 시신들은 모조리 신선 식품 코너에 몰려 있었다.
썩은 음식들 사이에 모여 있었다는 얘긴데, 상식적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다친 상황에서 굳이 저기로 모여들 이유가 있겠나?
“순규야.”
“응?”
이순규는 그때까지 큰 몸과 강한 힘을 이용해 배낭에 음식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러다 유현의 말에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심각하자 바로 달려왔다.
괜히 이러는 놈이 아니니까.
“불 좀.”
“불?”
“응. 저기 좀……. 자세히 비춰 봐.”
“바닥인데? 그래 봐야 벌레밖에 없어.”
“아니, 한번 봐 봐야겠어.”
“응……. 알았어.”
내키지 않는 일을 시켰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불을 비췄다는 얘기였다.
아까처럼 벌레가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생김새부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놈들이었기 때문에 이순규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유현은 참았다.
참고 바닥을 살폈다.
“이런 시발.”
“거봐. 벌레 있는데 그렇게 봐서 뭐 해.”
유현이 별안간 욕을 하길래, 이순규는 거보라고 했다.
하지만 유현은 고개를 돌리는 대신 아예 이순규에게서 손전등을 받아 들고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너 벌레 좋아하냐?”
“아니, 벌레는 싫어.”
“근데 왜…….”
“여기 봐.”
“싫은데.”
“봐 봐. 끌려간 자국이 있잖아. 저쪽으로. 저거…….”
“응?”
끌려간 자국.
이순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을 같이 살피기 시작했다.
오래된, 눌어붙은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흐른 게 아니라 방향성을 띠고 있었다.
저쪽, 그러니까 라드들의 시신이 놓인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거 누가 옮긴 거야.”
“누가……. 사람은 아닐 거 아냐.”
“사람은 아니겠지. 사람이었다면…….”
저렇게 뭐가 다 썩어 가는데 그냥 뒀을까?
여긴 마트인데?
뭐라도 뿌리지 않았을까?
딱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라드……. 그럼 왜 지금까지 아무…… 아무 움직임이 없지?”
“적거나, 다쳤거나. 둘 다거나 아닐까.”
“아. 도망…… 가야 되나?”
“일단 모아 보자.”
여기가 안전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겁이 나지 않는 건 아니라서, 다들 가까이 있었다.
덕분에 불러 모으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 나가야죠.”
유현의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병사였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일단 총부터 집어 들었다.
‘거기……. 총알 없는데.’
제대로 된 탄창은 유현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위안이 된다면 뭐 상관없었다.
정신이 나가서 이쪽으로 쏴도 별 상관없었고.
“잘 생각해야 돼요.”
해서 유현은 그냥 말을 이어 나갔다.
“뭐, 뭘요.”
“여기까지 오는 길……. 위험해 보였지만 안전했죠.”
“그……. 음.”
“그리고 여기 물자가 적지 않아요. 이것만으로도 한 달 이상 더 버틸 수 있어요.”
유현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부분 정크 푸드로 분류될 만한 것들뿐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이대로 상황이 유지될 경우 어차피 제명에 죽기는 그르지 않았나.
건강식 찾다가는 뒤질 터였다.
“반대로 다른 은신처는……. 또 모험입니다.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도……. 여기는…….”
“지금까지도 나서지 않은 걸 보면 약한 개체일 거예요. 아니면 적거나. 혹은 그냥 사람일 수도 있죠. 이쪽을 완전히 비워 버리면……. 생존이 더 유리해질 겁니다.”
유현의 말에도 병사는 계속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가는 길을.
그러나 나머지는 혹한 얼굴이었다.
오예리, 이진호는 애초에 유현이 뭐 하자고 하면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이고.
이순규 또한 성향 자체가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뭐든 할 사람이어서 그랬다.
“그럼……. 찾아볼까요?”
“딱 붙어서 찾죠. 위험할 수 있어요.”
“하긴.”
“한 바퀴……. 돌아봅시다. 물품도 찾을 겸 해서요.”
“나, 나가자니까요?”
“돕시다.”
병사는 계속 불만이었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무서워서 그랬다.
안전한 길이라 해도 혼자서는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돌아가서 뭐라고 둘러댈지에 대한 걱정은 들지도 않았다.
머리가 돌다 말아서 그랬다.
“아이 시발.”
때문에 일행은 뒤늦게 따라붙은 병사까지 모두 포함해 지하 1층을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