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14화 (114/323)

114화 갈등 (1)

“그러니까……. 이 쥐가 있으면 괜찮다, 이 말이죠?”

병사가 지랄을 하건 말건 분위기가 진정된 다음부터는 쥐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과 몰려드는 라드들, 그리고 그로 인한 살육이 한창이었지만.

이들은 창을 닫고 커튼을 치고 우선 쥐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끔찍한 광경이라 해도 밖이 고팠던 김 주무관을 제외하면 그랬다.

그만은 이따금씩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원래 여기 있던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거리가 아니라 하늘을 본다는 점이었다.

‘좋구만…….’

다시는 하늘을 보지 못할 줄 알았다.

적어도 이렇게 안전한 상태에서, 그저 한가롭게 서서 보는 하늘은 더 없을 줄 알았다.

‘우선이, 이 친구. 왜 그런 거야 대체.’

그냥 뛰지.

그랬으면 여기 같이 서서 하늘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저기, 주무관님?”

“아, 네.”

김 주무관은 차라리 친구의 최후를 보지 못한 것에 안도를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은신처에 있던 사람들이 죄 나와 있었다.

딱 하나.

그걸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아래층에 갇혀 있는 감염자, 즉 라드를 제외하고서는 그랬다.

‘9명.’

총 9명이나 되는 사람이 남녀노소를 떠나 모조리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최우식과 이순규도 끼어 있었다.

무리의 리더는 정유현이라는 감염내과 교수라고 하지만.

실제 그에게 은인으로 다가오는 건 저 둘, 그중에서도 이순규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우선이 먼저 생을 마감하고, 자신도 따라나섰을 터였다.

‘그래. 이제 그 은혜……. 나도 갚아야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설명이 그랬다.

“네. 이 쥐는 쉽게 말해 저기 밖에 있는 것들과 비슷한 쥐라고 보면 됩니다.”

해서 말을 꺼냈더니 대번에 쥐가 들어 있는 케이지에서 사람들이 후다닥 멀어졌다.

유현과 이순규 정도를 제외하면 다 그랬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아, 감염이 되었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올린 겁니다. 그래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쥐는 수명이 짧아요. 정확히 얼마나 될 거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하여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김 주무관은 지금 이 쥐의 상태에 대해 아주 간략히 설명을 해 주었다.

호르몬, 그중에서도 남성 호르몬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일으키는 영향에 대해서였는데.

자세히는 아니고 그냥 심장이나 이런 데도 커져서 심혈관계 질환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는 얘기였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요?”

적극적인 편인 오예리 형사가 이순규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순규는 그냥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 주무관 또한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제가 의사는 아닙니다만…….”

확실히 의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식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에 대한 공부를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으니까.

다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 경험이 없고 그쪽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확실히 수명 자체는 줄었을 겁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단……. 쥐랑 사람은 수명 자체가 달라요. 수명이 준다고 해도……. 10년, 20년…… 극단적으로 줄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쥐가 며칠 못 살고 죽게 되는 거랑은 얘기가 완전히 다를 겁니다.”

“아…….”

“게다가 ARS-24의 변종은 심장 근육을 공격해서 심장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아마 심장에 있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또는 남성 호르몬의 리셉터(receptor, 세포막이나 세포 내에 존재하며 호르몬이나 항원, 빛 따위의 외부 인자와 반응하여 세포 기능에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를 망가뜨리는 거 같은데, 그 때문에 수명이 크게 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결국, 잘 모른다는 게 결론입니다. 근데 여기 정유현 교수님이 계시니까, 한번 의견을 들어 보고 싶은데요.”

김 주무관의 말에 유현이 나섰다.

뭐 별로 더할 말은 없었다.

저건 정론이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에 있죠. 중요한 건……. 저들의 여명이 1년 이내가 아닌 이상……. 우리의 생존부터 걱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겨울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어디건 경작지가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다음 겨울은 장담하기 어렵죠.”

“아……. 거기까지는 제가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하여간 수명 부분은 그렇습니다. 그럼 다시 쥐로 돌아올까요.”

김 주무관은 케이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쥐가 발작하듯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걸 돌아다닌다고 할 수 있을까?

털이 바짝 선 채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작은 쥐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보고 있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다.

“이 쥐는 지금 통상적인 호르몬 양의 대개 5배의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습니다. 아니, 분비된다는 말은 이상하죠. 부족한 부분은 제가 주사로 주입했으니까요.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시궁쥐와는 달리 이 실험용 쥐는 더 예민해서……. 제가 보기에 아마 이 쥐는 남은 수명이 일주일도 안 될 겁니다.”

김 주무관은 그 쥐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껏 실험 때문에 희생시켜 온 쥐의 숫자와 그가 쥐에 대해 느끼는 비감은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아무리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하여간 희생되는 쥐가 그렇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적어도 미안해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치고는 실험실에서 도망 나오기 전까지는 너무 헐레벌떡 실험을 진행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지금은 다시 원래의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저 쥐들의 생존과 번식입니다.”

김 주무관은 아까 이순규가 매고 왔던 케이지를 가리켰다.

안에는 대충 봐도 열 마리가 훌쩍 넘는 쥐들이 보였다.

같은 쥐라기엔 훨씬 얌전했다.

우리가 실험용 흰 쥐를 떠올릴 때 주로 보이는 그런 쥐였다.

“아……. 그럼……?”

“먹이고 관리하는 건 제가 할 겁니다. 제가 여러분께 양해드릴 일은 바로 먹을 거죠. 쟤들도 먹긴 먹거든요. 물도 마시고.”

“아…….”

“근데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개체 수가 많아도 사람이 먹는 음식의 한 끼 분량이면 하루 먹고도 남아요. 워낙 작아서요.”

“그 정도는 뭐…….”

오예리가 맞장구를 쳐 주면서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쥐의 존재는 필수지 않은가.

딴 데 나가서 잡아 올 수 있다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근처에 과연 뭐가 있을까?

아마 다 잡아 먹혔을 터였다.

눈이 벌게져 가지고 돌아다니는 짐승이 한두 마리가 아니니.

“네, 감수해야죠. 혹시 반대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유현의 형식적인 질문에 다들 기계적으로 답했다.

모두 유현의 리더십을 존중하고 있는 것을 넘어 의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잘 꾸려 주시죠.”

“네.”

“답답하시면 잠시 옥상으로 가실까요? 아무래도 바깥이 그리우셨을 거 같은데.”

유현은 그렇게 회의를 끝내고, 김 주무관 그리고 오예리, 최우식을 대동한 채 옥상으로 향했다.

이 근처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로가 앞에 있어서 그런가. 시야는 탁 트여 있었다.

그나마 다리 너머 연구소가 제일 잘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그쪽을 굳이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멸망을 떠오르게도 만들고.

“와……. 여기 채소도 키우고 있네요?”

누구보다도 김 주무관이 제일 그쪽을 피했다.

억지로라도 밝은 목소리를 내면서 작은 밭부터 가리켰다.

“아, 네. 신선 식품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럼 우리 더 버틸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뭐……. 그건 어렵긴 합니다. 길어야 한 달이에요. 그사이에 군이 어떻게 하면 또 모르겠는데…….”

“군……. 음.”

김 주무관은 이 사태에서 꽤 오래 살아남은 축에 속했지만.

그에 비하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지 않겠나.

안에만 있었으니.

“폭격 한 번쯤 더 할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전차 부대로 밀고 들어오면……. 진입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문제는 그만한 여력이 있는가겠죠.”

물론 밖에 있었다 해서 정보의 양 차이가 엄청난 건 아니었다.

통신의 단절은 김 주무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까.

물론 라디오가 있긴 하지만.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정보 전달은 너무 제한적이었다.

거의 프로파간다의 목적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최악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겁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제가 홈페이지 운영하면서 나름 이곳저곳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그중에 갈 만한 후보지가 있습니다.”

“아……. 그건 다행이네요.”

“물론 폭격을 피했는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그럼……?”

김 주무관의 표정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안도했다가 어두워졌다가.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나마 좀 나아 보이는 건 이미 유현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였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죠.”

오예리가 나섰다.

언제나 그러하듯 당찬 사람이었다.

이 와중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혈색도 제일 좋아 보였다.

“소수의 정찰대를 이뤄서 나갈 생각이에요.”

“어, 저는.”

“아, 주무관님은 아니고요. 쥐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팀은 저희가 짜려고 해요. 우선 여기 계신 정 교수님하고 최 서기관님은 번갈아 가실 겁니다.”

“아. 번갈아……. 그럼 저는 최대한 쥐를 만들어야겠네요.”

“네. 부족하지 않도록 조절을 잘해 주셔야 합니다. 당장 내일부터 나갔으면 해요. 옮기는 것이야 나중이 되더라도 갈 만한 곳이 있다면, 훨씬 나을 거 같아서.”

오예리의 말에 김 주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한 부탁도 아니지 않나.

위험을 무릅쓰겠단 사람들 앞에서 달리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아, 그리고 주무관님.”

“네?”

이제 최우식이 입을 열었다.

“약은 얼마나 있죠? 그것도 중요할 거 같아서요. 아무래도 더 구하기는 어려울 약이니까요.”

“아……. 지금 이 인원이면 충분합니다. 쥐 한 100마리는 준비시킬 수 있는 양이에요.”

“그럼 정찰 횟수가 제한되는군요.”

“아……. 충분한 게 아니군요.”

분명 상황은 좋아지긴 했다.

김 주무관 입장에서는 아주 극적으로.

원래 여기 있던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좋아졌다.

둘 다 전에 없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유현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은 해 보죠. 먹힌다는 건 확인했으니까요.”

리더로서 할 수 있는 건 일단 이거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