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공황 (7)
“일단 어지간하면 쏘지 마요.”
“왜, 왜요!”
이순규는 듬직한 덩치로 김 주무관의 앞을 가리고 나서며 말했다.
손에는 근처에서 집어 든 쇠파이프 같은 게 들려 있었다.
그에 반해 달려드는 라드들은 맨손 또는 뭐 이상한 작대기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김 주무관이 볼 때 이순규는 그저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저것들은 맹수.
“총 쏘면 그 소리 듣고 몰려들 수 있어요.”
“아.”
해서 총을 들어 올리려는데, 이순규가 이렇게 말했다.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
나름 군에 있을 때 특등 사수였으니 하나 또는 둘 정도는 사살하거나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저기 거리에 있던 것들이 더 오게 되면…….
탕그때 총소리가 들렸다.
“아, 시발 쏘지 말라니까!”
“저, 저 아니에요.”
이순규는 자동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고, 김 주무관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고 보니 지척에서 발사되는 소리는 또 아니었다.
탕게다가 또 들려왔다.
‘군? 군대가 왔나?’
솔직히 멍청하게 여기까지 차 타고 와서 당했던 것이지, 먼저 공습해서 싹 말려 버린 다음에 총 들고 돌진해 오면 설마하니 지겠나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진짜로 그렇게 했다가는 안에 있던 민간인까지 싹 말려 죽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군이 왔나 싶었다.
탕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렇게 미친놈처럼…….
“야! 뛰어! 저쪽에서 다 온다! 저기 도망가던 사람은 벌써 죽었어!”
그때 유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뭘 멍하니 서 있어! 빨리 와! 쥐 놓치지 말고!”
“어, 어어어어!”
이순규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다.
‘그래 시발……. 둘이 저것들을 어떻게 이겨.’
여포?
여포라면 모를 일이었다.
쇠파이프 하나로 그냥 막 휘둘러 가지고 다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순규는 장수 같은 사람이기 이전에 사람 살리던 의사였다.
‘유현이면 또 몰라!’
지금도 보라지.
딱딱 머리만 맞혀서 터트리는 거 보라고.
이럴 거면 뭐 하러 전에 소위한테 총을 맡겼지?
‘아, 그건……. 자기가 소위 받아들일 명분을 만들려고 했던 건가?’
하여간 뛰었다.
최선을 다해서.
김 주무관의 손 붙잡고.
“야야! 쥐!”
유현은 그 뒤로 따라붙는 놈들을 향해 총을 쏘면서 외쳤다.
“뒤는 돌아보지 마! 그럼 다리 얼 수도 있어!”
정말 많았다.
‘와…….’
이순규조차 시벌 소리가 막 나왔다.
수십 마리.
아니 그 이상일까?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수의 라드들이 있었다.
이 거리에 이렇게나 많았구나.
“뛰어!”
저것들이 다 오면 어떻게 될까?
죽음.
그것만 남게 될 터였다.
아니면 저것들의 일원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꽤 식량이 풍족할 테니.
바이러스의 의지가 생존 그 자체가 아니라 감염에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덜커덩
하여간 이순규는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100여 미터를 뛰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두두두
발소리가 미친 듯이 들려왔다.
그리고 몇몇은 문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야, 이…… 이렇게 되면! 우리 여기 있는 거……!”
강철로 된 이중문이 덜컹거렸다.
저것들은 힘도 센 데다가 본능이 이성을 누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쇠가 아니라 나무문이었으면 아마 부서져 나가지 않았을까?
아니, 그보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나.
이순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전에 유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괜찮아. 어차피 오래 있지도 못해. 식량 점점 떨어져 간다고.”
그에 반해 유현은 태연했다.
쥐에 대해 보고를 받았기에 그랬다.
-괜찮아. 이 쥐가 흥분한 상태가 아니라면……. 딱히 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을 거야.
유현이 보기에 이순규는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었다.
우식의 말에 따르면 주무관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물론 아까 도망가던 그 사람은 좀 그렇긴 했지만.
그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 해도 안 들어. 바깥 상황을 아예 알 수가 없어.
정신과 의사가 아니긴 하지만.
이순규와 대화를 많이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의 정신은 유약하고, 특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망가지기 쉬워진다는 것.
“그래도……. 여기서 뭐 자급자족해야 될 수도 있다며.”
“뭘로?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아무리 급해서 사람을 먹을까? 아무리 저것들이라고 해도 무리야.”
“아.”
이순규는 그런 유현을 보며 급히 떠들어 대다가, 사람 식량 얘기를 듣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호르몬이 들끓을 때조차도, 그러니까 감염이 되었을 때조차도 사람을 먹는단 생각은 하지 못했더랬다.
기껏해야 물고 싶다는 생각이나 했지.
그런데 지금?
게다가 자신을 제외하면 비감염자들인데?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감염자는 특히 위험해.’
유현이 생각하는 지점은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건 위험하다.
감염자들조차 최우선적인 식량으로 사람을 고려하진 않지 않나.
그들에게는 극한 상황이 아닌 이상 사람은 그저 감염 대상일 뿐, 먹어야 할 존재는 아니었다.
다른 감염의 위험 또는 반격의 위험이 있으니까.
‘혹 먹었다가……. 감염이 되면……. 저건 순규를 감염시켰던 ARS-24 변종 알파하고는 또 완전히 다른 거야.’
베타라고 해야 하나?
아니 베타도 아닐 터였다.
김태평의 말에 따르면 각기 다른 유전자 유형들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까.
김태평이야 모르고 있을 것이고, 연구팀에서 들은 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을 듣고 유현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놈들이 뭔가 바이러스 유전자의 메틸기 부분을 건드렸을 것이라는 걸.
그렇게 되면 바이러스가 지극히 불안정해지면서 이리저리 진화가 될 텐데, 그 미친 짓을 기어코 해 버렸다는 걸.
‘그럴 수는 없지.’
유현은 그런 생각과 함께 일행을 일단 위로 끌고 갔다.
“가죠. 어차피 이것들 이러다가 갈 겁니다. 밖에 아주 난리가 나서.”
“밖?”
“응. 저기……. 결국, 버티지 못했어. 쳐들어갔나 봐. 창문 통해서 뛰어내리고 있는데……. 이게 뭐……. 되겠어?”
“아.”
안심도 시켜 주면서였다.
그 안심을 시켜 주는 근거라는 게 참 끔찍하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다들, 그러니까 김 주무관을 제외한 모두는 안심한 채 위로 향할 수 있었다.
그래, 저쪽에 식량 또는 감염 대상이 있으니 이쪽은 한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겠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게다가 쥐가 있잖아. 그걸 이용하면……. 이 입구에서 냄새 비슷한 게 나게 할 수 있을 거야.’
유현은 김 주무관이 지금도 소중하게 꽉 쥐고 있는 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뚫어져라 봐도, 코를 벌름거리며 좀 버둥거리고 있는 것 외에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순규의 말에 따르면 저게 곧 구원이었다.
“괜……찮으세요?”
최우식은 김 주무관과 같이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괜찮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이거 안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지 않나.
“아……. 네.”
놀랍게도 김 주무관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이우선……. 그 친구도 잘만 도망쳤으면 되었을 텐데…….”
그러곤 죽은 이 주무관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최우식은 저도 모르게 그의 최후를 떠올려야만 했다.
끔찍했다.
이리저리 찢겨 죽었으니까.
흥분한 상태의 라드는 지들끼리도 찢어 죽이는 놈들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놈들 입장에서 쥐 냄새가 좀 난다고 해 봐야 크기도 작은 약한 라드일 뿐이지 않겠나.
“그, 그러니까요. 그래도…… 후. 주무관님이라도 오셔서 다행입니다.”
“네? 아, 네네.”
“거기선 힘드셨죠?”
“네? 네. 힘들……. 힘들었죠.”
이순규야 김 주무관이 원래 어땠는지 모르니 얼굴을 봐도 별 느낌이 없었지만.
최우식은 꽤 놀란 상황이었다.
살집도 좀 있는 편인 데다가, 누가 봐도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줄 알던 김 주무관이 이렇게 초췌해져 있을 줄이야.
머리도 좀 많이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표정에 있었다.
‘이렇게 쓴웃음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최우식은 계단을 올라 마침내 은신처에 도달했다.
그들에게는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있던, 아주 당연한 공간이었지만 김 주무관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와…….”
“잘 오셨어요.”
일단 해가 드는 집이었다.
안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 웃으며, 젊은 남자 하나는 뒤로 빠져 있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웃으며 그를 반겨 주고 있었다.
뭔가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망하긴 전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
“어어 넘어지신다. 잡아 드려!”
유현은 떨어지는 쥐 뒷덜미를 잡아 들며 외쳤다.
최우식은 그런 유현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일단 말은 들었다.
김 주무관이 다리에 힘이 쫙 풀린 바람에 넘어질 뻔해서 그랬다.
하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우식도 다 전해 듣지 않았나.
‘거기서……. 어떻게 한 달을 넘게…….’
게다가 이 주무관.
죽은 이우선.
단둘이 버티다가 방금 하나를 잃었다.
최우식은 김 주무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괜찮습니다. 여긴 안전해요.”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지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뭐라 해야 할까.
그간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하면서 오래도록 고민해 왔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다행한 일은 그게 정답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설령 정답이 아니라 해도 괜찮았다.
김 주무관은 그저 해가 드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으니까.
‘역시……. 밖은 지옥이야. 바깥에 나가면 안 돼.’
그런 김 주무관을 보면서 젊은 사내, 병사는 마음을 굳혔다.
‘이것들 다 죽여야 해……. 소위? 그 새끼도 똑같아.’
미친놈들이지 않나?
쥐새끼 저거 하나 들고 나가면 될 거라고?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까 죽은 그 사람.
그 사람도 쥐를 들고 있지 않았나?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보니 쥐가 작았다.
때문에 들고 있었을 거란 생각만 들었다.
‘어쩐다? 어떻게 해야…….’
이미 공포에 의해 제정신이 아니게 된 병사는 주변을 보지 못했다.
형사 이진호가 여전히 자신을 주목하고 있음을.
그러기 위해 아까도 나가지 않았음을 알지 못했다.
‘확실히 교수님 말대로……. 저놈은 문제가 있어. 근데……. 어쩐다?’
물론 대놓고 나서서 뭐라 하지는 못했다.
이 그룹은 지금 아주 잘 견디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게 정말 괜찮아서는 아닐 터였다.
다들 말 그대로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내부에서 자극이 터지면 언제 어디서 잘못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선배는 이런 거…… 못 견뎌 하는 사람이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인다.
지금도 내버려 둔 다른 이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순규와 김 주무관을 구하러 나간 사람이지 않나.
유현의 말대로 이런 일은 자신과 유현.
그 둘이 알아서 해야 할 일었다.
이따 얘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머지않은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