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공황 (5)
“흐음…….”
어두운 실험실에서 또 며칠이 지났다.
이순규는 김 주무관이 들이민 쥐를 보면서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건 다르다.’
거울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꼴을 직접 보게 되면 자괴감이 들 테니.
하여간 이러한 비애감과는 별개로 이순규는 쥐를 들고 있었다.
아니, 쥐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둥거리는 꼴이 꼭 무슨 미친 쥐 같았다.
‘미친 쥐 맞지.’
강제로 호르몬이 널뛰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나.
지금 돌고 있는 바이러스, ARS-24가 인수 공통 바이러스에서 벗어난 덕이기도 했다.
만약 이게 여전히 인수 공통 바이러스였다면, 쥐도 감염이 되지 않겠나.
실험만 생각하면야 훨씬 수월하겠지만.
이 실험실 밖을 생각하면 그건 지옥이었다.
‘이것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기는 한데…….’
감염된 쥐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저, 교수님? 어때요?”
그렇게 이순규가 한참을 가만히 있자, 김 주무관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며칠간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폭격이 벌어지고 난 후라 그런가 힘든 모양이었다.
밖으로 정말 1분 정도 나가는 일도 불가능해졌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좋군요. 이 냄새라면, 속을 겁니다.”
“아, 다행입니다.”
그래도 김 주무관은 이 주무관에 비하면 나은 것이었다.
이미 알프라졸람을 먹고 있음에도, 이 주무관은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이야 졸피뎀을 먹고 잔다고 하지만 그 외에 시간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뭐……. 다른 약이 있으면 좋겠는데.’
은신처로 가면, 더 도울 수 있는 방편이 있을 터였다.
아니, 사실 거기로 가서 여기보다 더 좋은 환경에 노출되기만 해도 훨씬 낫기는 할 터였다.
그걸 생각해서라도 빨리 가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이 쥐들 배낭에 넣죠.”
멀쩡한 쥐들도 있었다.
아직 약을 쓰지 않은 쥐들.
이 녀석들은 우리 안에 얌전히 있었는데, 그대로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괜찮을까요?”
문제가 있다면 이 쥐들을 대체 저 감염체들……. 그러니까 라드들이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였다.
아니, 사실 어떻게 인지할지는 알고 있었다.
식량.
‘나도 그렇게 보여.’
물론 생으로 막 씹어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잘 조리해서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은 들었다.
그에 비해 남성 호르몬과 아드레날린 등이 미쳐 날뛰는 이 쥐는 달랐다.
잡고 있는 손을 물려고 지랄발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먹나 싶었다.
마치 애완견 같달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미친 거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벌어진 현상에 대해 이런 일이 왜 벌어졌을까 고민하는 건 의미 없는 일 아니겠나.
“최대한 싸 봐야죠. 어차피 은신처까지 가는 길이 멀지는 않으니까……. 최대한 싸서 냄새나 소리가 안 나게 하면 아마 괜찮을 겁니다.”
“공격이라도 당하면 어쩌죠?”
“그때는 뭐 미끼라도 던져야죠?”
이순규는 쥐 두 마리가 들어 있는 작은 케이지를 가리켰다.
그것도 이미 비닐로 둘러싸서 안에 쥐가 보이진 않았다.
케이지도 철이라 쉽게 깨지진 않을 터였다.
“아…….”
“이게 미끼 역할을 충분히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러길 바라야 합니다. 그것보다 그거 잘 들 수 있겠어요?”
“아, 네. 이게 케이지가 모자라서……. 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오히려 호르몬을 올려 버린 놈들이 문제였다.
생각해 보면 딱 세 마리만 만들면 됐었는데,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8마리를 만들었다.
근데 이놈들은 지들끼리 두면 막 싸워서 죽이지 않나?
어떻게 확인했냐고?
방금 낮은 확률에 베팅하는 셈 치고 두 마리를 같은 케이지에 두었더니 바로 싸워서 하나는 죽고 다른 하나는 병신이 되었다.
아마 이대로 두면 곧 죽을 터였다.
그러니까 옮겨야 할 6마리를 각기 다 다른 케이지에 담아야 한다는 건데, 커다란 우리 하나 제외하고, 미끼로 쓸 거 제외하고 나면 남은 케이지가 단 두 개뿐이었다.
“전 이렇게 한 손에 하나씩은 들 수 있습니다.”
이순규는 그중 두 마리를 각기 손에 잡아 들었다.
“스트레스……. 괜찮을까요?”
“제 걱정은 안 하고요?”
“솔직히 그 손가락……. 그거 물려도 괜찮을 거 같긴 합니다. 물 수도 없을 거 같고요.”
김 주무관은 이제 나갈 수 있단 생각에 신이 나는지 농담도 던졌다.
살짝 선 넘는 개그였지만 이순규의 선은 되게 넓어서 괜찮았다.
“네, 뭐. 저도 쥐가 더 걱정되기는 합니다. 문제는 두 분인데.”
“저도 케이지에 하나 넣고……. 하나는 잡아야죠. 사실 이거 저희 전문이기는 해요.”
김 주무관은 웃는 낯의 이순규를 보며 장갑 낀 손으로 쥐의 뒷덜미를 집어 들었다.
전문이라고 해 놓고선 시간이 꽤 걸렸다.
어쩔 수 없었다.
쥐가 하도 지랄을 하니까.
“이 주무관. 자네도 집어 들어.”
“그냥 케이지에 든 놈만 가져가면 안 돼요?”
“안 돼. 쥐 이거……. 가서 똑같이 사육이 가능하리란 보장이 없어. 우리 살기에야 여기가 척박해도 얘들한테는 여기가……. 진짜 좋은 환경이었다구.”
진짜 좋은 환경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쥐들에게 이곳이 유일한 환경이었던 것은 확실하지 않나?
이 주무관이 아무리 불안 증세에 시달린다고 해도,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이 주무관은 할 수 없다는 얼굴로 쥐를 집어 들었다.
“아야!”
아니, 집어 들려고 했다.
쥐가 물지만 않았다면.
“와……. 피 난다.”
“아으……. 이 새끼가…….”
실험용 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시궁쥐랑은 다르지 않던가.
기껏해야 햄스터 정도나 될 것 같은 놈인데, 물린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와……. 이놈이 이렇게까지 세게 물 수 있나?”
“으…….”
쥐한테 물렸다고 신음 흘리면 좀 엄살인가 싶어야 정상인데.
지금 그런 말을 하면 뒤질 것 같았다.
진짜 피가 막 나고 있었다.
“잠깐 봐요.”
“어어. 피 나는데 괜찮아요?”
“나 바이러스 없다니까요? 그 전에 의사예요. 정신과긴 해도 이 정도는 볼 줄 알아요.”
“아…….”
이 주무관의 얼굴에 핏기가 슥 사라졌지만, 일단 날뛰지는 않았다.
이순규가 꽤 진중하게 손을 살펴 주었기에 그랬다.
“이거 돌아가면……. 일단 꿰매야겠어요. 여기 보면 1cm도 넘게 찢어져 가지고…….”
“아…….”
“우선 물로 닦고, 소독해 드릴게요. 이런 거 들고 오길 잘했네.”
“으…….”
“아픈 건 알겠는데 너무 소리 내는 건 자제해 주시고요.”
이순규의 말에 이 주무관은 벽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얼굴에 핏기가 더 사라져 버려서 이순규도 입을 다물었다.
‘실수했네.’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한테 괜히 저 밖을 인지시켰구나 싶었다.
하여간 밴드랑 붕대를 감아 주고 나니, 피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음…….’
하지만 냄새는 났다.
피 냄새가.
이제 이순규에게는 별 의미 없는 비린내가 되어 버린 지 오래지만, 저들에게는 어떨까.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 이순규는 쥐를 대신 잡아다 들이밀었다.
“일단 들어요. 이게 성가신 것보다는 안전 때문이니까.”
“어…….”
확실히 두 마리를 드니까 냄새가 좀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희석’된다는 것이 불안했지만.
하여간 이제 나가야 했다.
‘아까……. 여기 지키던 놈이 어디로 갔지.’
아마 화장실 아닐까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화장실이라기보다는 그냥 배변 보는 곳이긴 하겠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가까운 곳은 아닐 터였다.
아예 밖일 수도 있었다.
일반적인 감염체들조차 배변 활동은 다른 공간에서 한다는 것을 유현 일행은 알고 있지 않나.
이놈들은 다 지성이 더 대단한 개체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지성체에게 관리되는 놈들이니만큼 더 깔끔할 터였다.
끼이익
이순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둘에게 손짓했다.
그러곤 문을 열었다.
먼저 나온 건 이순규였다.
‘없다.’
주변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저 대가리만 꼴랑 내밀고 그렇게 확신하진 않았다.
복도를 걸어 냉장고 앞까지 와서 주변을 확인했다.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아무리 감염체들이라고 해도 시신들이 잔뜩 있는 이곳에 식사시간이 아니고서야 오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
“오세요.”
“네.”
“대답하지 말고. 그리고 뭘 봐도 소리는 내지 마요.”
이순규의 말에 두 주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순규의 등에 딱 붙었다.
이순규는 일부러 냉장고가 안 보이도록 몸으로 가렸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몸이 크니까.
게다가 뒤에 있던 둘은 시야가 완전히 좁아진 상황이었다.
‘심장 소리……. 너무 크게 들리는데.’
긴장해서 그랬다.
그제야 이순규는 라드들과 인간들의 차이를 또 하나 알게 되었다.
‘그 인간들이……. 진짜 특이하긴 해.’
유현은, 또 오예리는 달랐다.
그들은 긴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처럼 대범하지 않았나.
그에 비해 이 둘은 일반인이라 그런가 쿵쿵 뛰는 심장을 안고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순규에게는 들릴지언정 거슬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라드들에게는 어떨까.
‘이게 신호가 되면 좀 그런데.’
이순규는 그렇게 생각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뒤에…… 저 새끼…….’
뒤쪽에 지성체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럿이.
저놈들은 이 무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닐 것 같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주목하지 않았을 테니.
그러나 달려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 이순규가 차고 있는 총 때문일 터였다.
이걸 쏘려면 쥐를 던져야 하는데, 그거까지는 계산을 못 한 건지 아니면 쥐가 뭔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
‘잘된 일이지.’
이순규는 이러한 사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두 주무관에게 굳이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으…….”
“이건…….”
그와 동시에 탄내가 확 끼쳐 왔다.
이순규야 발달한 후각으로 인해 안에서도 맡고 있었지만, 둘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런 광경도 처음이었다.
불타는 시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도시 조각들.
전장, 아니면 지옥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나만 따라오세요.”
“네.”
“네네.”
이순규는 그렇게 말하곤, 앞으로 나섰다.
‘주변에 있어. 아직도 살아 있는 놈들이 있구나.’
냄새?
아니, 기척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놈들도 일행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터.
쥐만 믿고 유람하듯 걸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튀어야 했다.
“어…….”
“보지 마요.”
그래 봐야 시간은 걸렸다.
일단 바닥이 패어서 개판이었으니.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감염체들이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할 놈들.
“어어.”
거대하고 눈에 핏발이 선 이들.
주무관들은 그런 놈들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 보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김 주무관보다는 이 주무관의 반응이 강렬했다.
“어어어어.”
“가만. 가만히.”
그러다 쥐를 놓쳤다.
상대는 가까이 오고.
이 주무관은 남은 하나의 쥐, 그러니까 케이지만 보고 있었다.
“괘, 괜찮겠죠?”
그러곤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괜찮지 않을 것 같은데.’
이순규는 입을 다물고, 그저 앞을 돌아보았다.
라드들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