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공황 (4)
“잘되어 갑니까?”
“네. 일단 한번 봐주시겠어요? 냄새를…….”
“네. 음. 근데 안에 있으니까 이게 좀 약한데요?”
“아, 네네.”
벌써 이틀 아니, 삼 일이 지났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날짜 가는 걸 그나마 알아차리고 있는 것은 시계 덕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매일 적어도 한 번 이상 유현 팀과 무전기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쪽도 이쪽도 아직 별 변화가 없다 보니 할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쪽에 와 있는 이순규에게는 정서적으로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이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버틴 걸까.’
이순규는 조심스레 쥐를 꺼내고 있는 두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김 주무관은 본인이 말했던 대로 확실히 좀 긍정적인 사람 같았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지만, 하여간.
‘그에 비해서 이분은……. 흠.’
이 주무관은 괜찮을까 싶었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쥐새끼, 이거 가만히 있어!”
“아니, 애를 왜 때리고 그래. 걔 남성 호르몬 팍팍 나오니까 빨빨거리고 다니는 게 당연하지.”
“그러니까 저 새끼들이랑 비슷하잖아.”
“아무것도 없는 곳 가리키면서 말하지 마……. 무서워.”
간신히 버티고 있는 느낌이었다.
칼날 위를 걷는 듯 예민해져 있었다.
상황 때문이니 이 상황이 해결되면 훨씬 나아지긴 할 터였다.
문제가 있다면, 여기서 은신처까지 가는 길이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텐데…….’
그때 괜찮을까.
‘아니, 일단 지금은…….’
이순규는 억지로 고개를 털어 낸 후, 두 주무관이 집어 든 쥐에 집중했다.
“찍, 찌지직!”
확실히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어서 그런가, 애들이 좀 흉포해 보였다.
이순규도 나름 쥐 실험을 해 봐서 아는데 보통 실험용 쥐는 이렇지 않았다.
“어우.”
“이게 정말 사납습니다.”
“그렇네요. 흠…….”
“하여간, 어떻습니까?”
이순규는 두 주무관의 기대를 받으며 냄새를 맡았다.
‘확실히…… 다른 쥐들하고는 달라. 근데…….’
미약한 느낌이었다.
“호르몬 수치가 지금 어떻죠?”
“수치 밸런스는 거의 인간 감염체랑 비슷하게 맞췄습니다. 물론 지금 설비도 그렇고 해서 완전히 딱 맞추는 건 어려워요. 왜요. 너무 다릅니까?”
“다르다기보다는……. 약해요.”
“약해……?”
“쥐는 사람과 다르긴 할 테니…….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의 호르몬을 분비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 물론 저는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지는 말고요.”
“흐음.”
이순규는 이리 말을 했지만, 김 주무관은 가벼이 넘기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순규는 살아 있는 판별기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벌써 두 번이나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나.
안에 갇혀 있느라 바깥 상황을 완전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더럽게 위험하다는 점이었다.
폭격 소리도 공포였지만 그 후 이곳에서 벌어진 살육인지 뭔지 모를 일 때문에 들려온 소리도 공포였다.
‘그걸 통과해 온 사람이 하는 말은 당연히 믿어야 해.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냄새.
달리 말하면 후각은 청각이나 시각과는 좀 다른 종류의 감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들어가는 정보의 종류도 다르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유해성에 있었다.
시각은 아무리 안 좋은 것을 봐도 나한테 직접적인 해가 되기는 어려운 정보이지 않나.
때문에 끔찍한 것을 봐도 잘 견딜 수 있을뿐더러 많이 보다 보면 적응도 되기 마련이었다.
그에 비해 청각은 너무 큰 소리는 소음성 난청 또는 돌발성 난청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시각보다는 그 역치가 더 낮았다.
하지만 이 또한 안 좋은 소리라 해서 직접적인 해가 될 확률이 적은 감각이라고 보면 되었다.
‘냄새는 달라. 특히 포유류나…… 아니지. 동물에게 있어서 냄새는 달라.’
냄새는 앞서 열거한 감각들 하고는 결이 달랐다.
이건 위험할 수 있었다.
때문에 역치가 훨씬 낮았다.
악취를 맡으면 자기도 모르게 코를 막게 되거나, 고개를 돌리게 되지 않던가?
공기 중에 혹시 모를 독성 성분을 본능적으로 염려하는 탓이었다.
때문에 인류를 비롯한 많은 동물은 냄새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또 판단해 왔다.
물론 예민하기로 따지면 미각이 훨씬 더 예민하기는 했다.
하지만 미각으로 무언가를 구분하려고 드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던가.
“그럼……. 냄새가 더 짙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래야 이게……. 어느 정도……. 뭐라고 하나? 그래, 보호 냄새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흠.”
김 주무관은 그런 생각 끝에 쥐에게 약을 더 주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니, 근데.”
이 주무관은 생각이 좀 다른지, 손을 저었다.
김 주무관은 그런 이 주무관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우리 생각이 뭐가 중요하지? 이 양반 말에 따라야…… 살 수 있을까 말까인데?’
그렇지 않나?
감염된 사람이 그렇다는데 자기가 뭐라고?
하지만 이 주무관은 그저 자기 생각을 털어 낼 뿐이었다.
“여기서 더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게 만드는 건……. 일단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인데, 위험합니다. 얘네 안 그래도 수명 짧은 애들이고 한데……. 지금도 보세요.”
“하지만……. 이거론 안 됩니다.”
“어떻게 확신하죠? 애초에 당신 감염자잖아. 이걸 어떻게…… 믿냐구. 함정일지 누가 알아.”
“야, 이 주무관! 너 인마 지금 그게 무슨……. 이분이 죽을 각오 하고 여기 온 건데.”
불안불안하다 싶더라니 결국, 선을 넘었단 느낌이 들었다.
김 주무관은 눈치를 살피며 이 주무관을 나무랐다.
이러다 화나서 자신들을 놓고 나가면 어쩐단 말인가.
이 둘을 기다리고 있는 건 오직 하나.
죽음뿐이었다.
“확신이라……. 아.”
물론 이순규는 이런 반응에 일일이 화를 낼 만큼 성질이 급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 진료하면서 단련이 됐지.’
비록 호르몬이 날뛰어서 화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기본 바탕이 어딜 가겠나.
해서 이순규는 정말이지 인자한 얼굴로 이 주무관이 들고 있던 쥐를 집어 들었다.
“이거……. 없어도 됩니까?”
그러나 하는 말도 인자하진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급해서 그랬다.
“어…….”
“네, 뭐. 실패작이니까요.”
김 주무관이 대신 답하고, 이순규는 그 쥐를 가지고 문 쪽으로 향했다.
당장 열거나 하지는 않았다.
혹 안에 누가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해질 테니까.
해서 이순규는 쥐를 든 채 귀를 기울였다.
“찍찍!”
그 와중에도 쥐는 발버둥을 쳐 댔다.
원래 실험 쥐는 겁이 많아서 이렇게 뒷덜미를 쥐면 똥오줌이나 갈기고 마는 게 보통인데.
확실히 이놈은 좀 다르긴 했다.
‘여기서 더 난폭해지면……. 핸들링이 어렵긴 하겠다.’
전용 케이지가 있어서 담고 다닐 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지들끼리 붙여 두면 무조건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이 되어서 지금도 어렵게 분리해 보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걸 들고 다닌다라.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끼익
하여간 지금은 그런 걸 염려할 단계가 아니다 보니, 이순규는 아무 소음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문을 살짝 열고 쥐를 풀었다.
다다다다
아마 주무관들에게는 쥐의 발걸음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을 터였다.
덜컥
문이 닫히고 나니, 이제 이순규에게도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슨…….”
“두고 보죠. 냄새가 괜찮다면, 공격을 안 당할 테니까요.”
“그럴까요? 그래도 크기가 작으면…….”
“쉿.”
벽이 꽤 두꺼움에도 불구하고 쿵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쥐가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
그중에서도 꽤 육중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 낼 법한 소리였다.
쿵쿵쿵
마구 뛰고 있었다.
그러더니,
“찌지직!”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려왔다.
그래 봐야 쥐다 보니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이순규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틈새가 뚫려 있어서일 텐데, 다행히 나머지 둘은 워낙 작은 소리다 보니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잘 분간을 하지 못했다.
“아.”
“죽었군요. 여기서 더 키워야 합니다. 냄새가 괜찮았다면 아마 넘어갔을 거예요.”
“그건 어떻게…….”
“제가 그럴 테니까요.”
“하긴, 지금 교수님 외에 저희가 믿을 수 있는 존재도 사실 없긴 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주무관은 여전히 불신에 찬 얼굴이었지만.
김 주무관은 완전히 납득한 얼굴이 되어 쥐들에게로 돌아갔다.
어떻게든 시작은 해야 하지 않겠나.
그가 그러고 있으니 이 주무관도 결국엔 실험에 재차 들어갔다.
이순규는 그런 둘 그리고 쥐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을 감추기 위해 쥐들이 있는 곳과 틈새가 있는 곳 사이의 중문을 닫았다.
그러곤 살금살금 걸어 틈새를 통해 안을 바라보았다.
‘아…….’
놀랍게도 죽은 쥐가 거기 놓여 있었다.
솔직히 저 정도는 몰래 먹어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걸 굳이 저기 놓았다는 건 지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놈에게 일말의 충성심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였다.
혹은 공동체 의식이라든지 하는 것이.
뭐라고 불러도 좋은데, 하여간에 별로 좋진 않았다.
‘지금 앞에 있는 놈은 전에 있던 놈보다는 지성이 더 좋은 놈인가.’
단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심은 됐다.
해서 이순규는 녀석을 자세히 살폈다.
지겹지는 않았다.
유현에 의해 갇혀 있을 때, 조용히 끈을 풀고 침대에 걸터앉아서는 밖에 돌아다니던 놈들을 줄곧 보고 있었지 않나.
그때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나았다.
‘놈들은 소리나 자극에 굉장히 민감해.’
하여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일반적인 감염체는 크기에 관계없이 어떤 자극이 있으면 민감하게 반응했다.
처음엔 과연 무서운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닌 거 같았다.
본인도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되었지만 늘 민감하게 행동할 수 있던 건 아니지 않나?
가령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땐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았다.
그 말은 곧 일반적인 감염체들은 생각보다는 본능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었다.
‘저놈은…….’
눈을 봐도 대강 유추가 가능했다.
그놈들의 눈은 어딘가를 돌아볼 때가 아니고서는 동공이 살짝 풀려 있었으니.
그에 비해 저놈.
지금 냉장고 앞을 지키고 있는 놈은 달랐다.
‘생각을……. 하고 있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좌우로 연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니, 딱히 정찰보다는 그저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일단 저놈이 있을 땐……. 피해서 도망가야겠네.’
지성체로 의심되는 놈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더 위험할 것 같았다.
해서 이순규는 녀석의 옷차림과 생김새를 최대한 기억해 두었다.
뒤쪽에서는 찍찍거리는 소리가 아주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