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공황 (3)
“히끅.”
“쉿.”
“히끅.”
“저리로 가요. 가까이 있지 마.”
이순규의 말에 김 주무관은 입을 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구석으로 가 숨었다.
그사이 이순규는 틈새를 통해 냉장고를 살폈다.
제일 잘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시신들이었지만.
그나마 뒤로 얼핏 서성이는 라드 놈들이 보였다.
“어디 갔어?”
그중 하나가 말했다.
‘말했다……. 정말로…….’
발음도 좋았다.
이순규는 김 주무관처럼 딸꾹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까라면 몰라도, 여기서 하게 되면 100% 걸리게 될 테니까.
숨소리마저 죽인 채 상황을 살폈다.
“몰라?”
그에 반해 반대 측에 선 놈은 그저 고개를 저어 댈 뿐이었다.
“어디 갔지?”
또 말을 꺼낸 놈도 가까이서 보니 아주 똑똑해 보이진 않았다.
말을 할 수 있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일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 맞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집단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하겠단 느낌이 일었다.
‘그렇게 찾아서 찾아지겠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꼴이 찾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르겠을 지경이었다.
안에 들어와 뒤적거릴 생각은 아예 못하는 듯했다.
시신이 하나 더 늘었음에도, 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음. 찾아봐.”
그저 단순한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그 말에 여러 개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고 나서도 명령은 내린 놈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덕분에 가려서 안 보이던 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뭐지? 뭔가 다른데……?’
덩치가 다른가?
아니, 덩치는 그냥 그랬다.
다른 놈들처럼 컸다.
그렇다고 초거대 개체처럼 거대한 건 아니었고.
기껏해야 이순규보다 살짝 큰 정도였다.
그보단 다른 무언가가 저놈을 돋보이게 하는 느낌이었다.
‘옷? 아닌데? 옷은 다른 놈들도 입던데.’
아무래도 덩치가 크다 보니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걸쳤다는 말이 더 어울리기는 했다.
뭐가 되었건 놈들은 옷을 사용할 줄 알았다.
발에도 천을 둘둘 감고 다니는 등,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저놈도 마찬가지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 얼굴…….’
근데도 뭔가 다르다 싶어서 뜯어보니 얼굴이 달랐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건 아니었다.
표정.
그래, 표정이 달랐다.
놈은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로 여길 지키던 놈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른 단서를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집단이라는 것만 주의하면 되겠는데.’
이순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조용히 주무관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러곤 무전기를 켰다.
치직
백색 소음이 났다.
“뭘 보고 온 거예요?”
그런 이순규를 보며 주무관이 물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가 딸꾹질은 멈춰 있었다.
“아, 그냥 귀를 대 봤어요. 혹시 뭐 들리는 거 있나 해서.”
“아…….”
“아직 있는 거 같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순규의 말에 김 주무관은 그냥 그런갑다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른 주무관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저거…….”
“폭격 이후로 간혹 저래요.”
“일단……. 약을 좀 드시는 게 좋겠네요.”
이순규가 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요, 교수 아닌가.
딱 보니 공황(두려움이나 공포로 갑자기 생기는 심리적 불안 상태)이 오는 것 같았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가 들지 않는 방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 방에서 폭격 소리를 듣게 되면 누구라도 이렇게 되지 않겠나?
오히려 김 주무관이 더 이상하다고 봐야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원래 좀……. 긍정적인 편이라.”
긍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약을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전에도 이순규는 이 방에서 정신과 약을 확인했던 적이 있으니, 얼토당토않은 의심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순규는 굳이 김 주무관에게도 약을 권하진 않았다.
약을 과용하게 되면 좋을 게 없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이 주무관님. 이거 드세요. 좀 힘드시더라도……. 드시면 나을 겁니다.”
“그……. 네.”
해서 이순규는 조금 가져온 약 중 알프라졸람(alprazolam, 불안 장애를 치료하거나 단기간의 불안 증상을 경감하는 데 쓰이는 벤조디아제핀계의 약물)을 이 주무관에게 건넨 후, 다시 무전기를 조작했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머지 한 짝은 저기 있는 거예요?”
“네? 아, 네. 지금 통신이 다 나가 가지고……. 라디오도 일부만 수신이 되는데, 라디오야 뭐. 맨날 하던 얘기만 하고 있어서요. 공습경보도 안 해 주지 않았습니까.”
“아, 밖은 어떻게 됐어요?”
“밖은…….”
이순규는 주파수를 맞추면서 입을 열었다.
“엉망진창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면서였다.
정말로 엉망이지 않았나?
“이 주변은 다 망가졌어요?”
“네. 연구실이 남은 게 용합니다.”
“거참……. 여기 살아남아 있던 사람들도……. 꽤 있었을 텐데.”
“그랬을 겁니다.”
아마 지금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거의 없기야 하겠지만.
대학 병원에 있다 보면 한 가지 진리를 깨우치게 되지 않던가.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
폭격이 있기 전에는 김 주무관의 말대로 꽤 많은 사람이 살아 있긴 했을 터였다.
“개새끼들……. 알려라도 좀 주지…….”
“그러니까요.”
이순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유현의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왜 정부에서 공습을 알리지 않았는지.
그러니까 왜 피난을 못 하게 했는지 알 것 같다는 얘기였다.
-사람들이 도망치게 되면 그만큼 라드 개체들도 흩어지게 될 거야. 모아 놓고 때려야 할 텐데……. 그게 안 된단 말이지. 더 나쁜 놈들이면 아예 거짓으로 방송을 했을 거야.
-어떤 거짓말?
-폭격 지점이 안전하다고 하는 거지. 그럼 그리로 몰릴 테니까.
-아.
과연 유현은 발상 자체가 남다른 놈이었다.
그놈이 의사여서 망정이지, 지금 정부 측에 붙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아나려는데, 무전기에서 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어?
“어? 어어. 휴, 되네. 거기는 잘 들려?”
-어, 아주 잘 들려. 주무관님들은, 무사하시나?
“응, 무사해.”
그 목소리에 주무관들 또한 눈에 띄게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아니, 방금 안정제 먹은 주무관은 좀 졸린지 꾸벅꾸벅 졸고 있긴 했다.
하여간 이순규도 안심되기는 매한가지인 상황이라, 말이 좀 많아졌다.
“연구는 진행하시다가 공습 때문에 쥐들 스트레스 많아져서 잠시 중단하셨대.”
-아……. 그럼 그건 언제 재개되려나?
“한 이틀이면 된다는데……. 정확히 얼마나 걸려요?”
김 주무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술이라도 한잔 걸친 것처럼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호르몬 분비 조절만 하면 되는 문제라……. 수치 맞추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순규 교수님이 여기 계시면 더 빨라질 거고요.”
-실시간으로 냄새 확인이 가능하니까요?
“네.”
-흠…….
은신처에 남은 유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저 쥐가 확실히 도움이 될 거란 확신만 생기면…….’
이동이 가능해지긴 할 터였다.
문제는 저게 쥐라는 점이었다.
‘수명이 짧아.’
완성이 되면 어찌 됐건 이동을 해야 했다.
이동이 가능해져서 좋긴 한데, 동시에 이동이 강제된다는 얘기였다.
‘망할.’
통신이 남아 있었더라면 별걱정이 없었을 텐데.
이제 유현과 그 일행은 고립된 지 오래였다.
‘주변이라도 탐사하려면 일단 저 쥐는 있어야 해.’
유현은 결정을 내렸다.
애초에 내린 결정은 다시금 확인한 것뿐이기도 했다.
아예 보금자리를 옮기지 못하더라도, 먹을 것을 구해 오기 위해서 쥐는 필요했다.
“그럼 순규야 거기 있어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이순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 나갈 때…….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어. 아예 쥐가 완성이 되면 같이 가는 게 나아.’
총을 세 자루 들고 올 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여하간 이순규는 그렇게 연구실에 남게 되었다.
연구는 바로 다음 날부터 재개되었다.
“찍찍.”
쥐들.
실험용 쥐들이 케이지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숫자는 꽤 많았다.
“원래 이렇게 많아요?”
“네? 아뇨. 원래는 이렇진 않죠. 이번 사태에 관리가 안 되어서 지들끼리 번식한 거예요.”
“아……. 먹을 건 충분한가 보죠?”
“얘네 먹이야 많죠. 연구 준비를 해 뒀으니까요. 설마 사태가 이 지경이 될지는 몰랐지만.”
약을 먹어 그런가 이 주무관도 어제보다는 한결 활기차 보였다.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되나요?”
“호르몬 자체를 주입하는 건 의미가 없어서요. 그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약을 주입할 겁니다.”
“내분비 계통 약일 텐데……. 그런 약이 많아요?”
“이번 사태의 주범은 내분비 교란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라고……. 최우식 서기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건 그렇죠.”
박원상.
그놈도 그래서 청와대인지 남산인지 하여간 그쪽에 붙어먹게 된 거 아닌가.
확실히 이번 사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호르몬이었다.
이순규가 지금과 같은 몰골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고.
“미리 준비하길 잘했어요. 솔직히 지금까지는 죽지 못해 살아남았는데……. 이제야 할 일이 생긴 거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니까요.”
두 주무관은 이순규보다는 쥐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흰 쥐들은 둘을 피해 빨빨대며 바삐 움직였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손을 뻗으면 어김없이 잡혀서 주사에 당했다.
그나마 꼬리 혈관이 잡기 쉽다는 건 이순규도 알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해 보긴 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기계적으로 하는 건 절대 무리였다.
‘도와주기는커녕 방해만 되겠구나……. 존나 가만히 있자.’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 보니 손을 움찔거리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잘하는 짓일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해서 이순규는 머쓱한 얼굴로 둘에게서 멀어진 채, 냉장고 쪽 틈으로 향했다.
둘에게는 귀를 기울이러 간다고 말을 해 두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 살 일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어차피 저거 완성되면 나갈 거니까…….’
게다가 일단 여기는 버리고 도망갈 생각이지 않나.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까지 지금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포기가 존나 빠르네.’
틈새를 통해 보니, 어제와 다른 놈이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그냥 탈주했다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의 그 지성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놈이 지키고 있다면, 일이 어려워질 테니.
‘아마……. 딱 정해진 시간에 오진 않아도 대강 때를 맞춰서 오기는 할 거야.’
어떻게 알았냐고?
시신 한 구가 사라진 참이었다.
아마 먹었겠지.
저게 사라지는 속도만 봐도 집단의 크기가 얼마나 될지 대강은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이순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기적으로 틈새를 살폈다.
그사이 몇몇 시신이 끌려 나갔고.
연구실 내에는 찍찍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