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공황 (1)
폭발음.
불.
그리고 죽어 나가는 감염자, 즉 라드들.
직접 나가서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병사는 그 모든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이런 시발…….’
저 폭탄이 빗나가서 여기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 죽지 않았을까?
또 몰려드는 놈들은 어쩐단 말인가.
후에 합류했다 보니 아무래도 겉돌고 있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여기 비축해 둔 물품이 차고 넘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하루가 지날수록 나빠졌다.
-허튼 생각하지 마. 여기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어.
팔자 좋은 소위는 이따위 소리나 하고 있지만.
어쩌란 말인가.
물론 이 양반들 덕에 산 건 맞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되면……. 공습 후에 군대가 와야 나갈 수 있어. 우리끼리 밖으로 나갈 수는 없어.’
연구소?
날아갔을 터였다.
애초에 병사는 이순규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떡하니 감염자 몰골을 하고 있는데 그걸 믿는 게 더 이상했다.
다 거짓말일 수도 있었다.
‘근데 아직도 저렇게 많잖아? 또 공습할 수도 있어. 이거 차일피일 밀리다 보면……. 여기 물품 모자랄 거야. 그렇게 되면 당장 나부터…….’
김현철은 특유의 부드러운 성품으로 인해 이 그룹과 동화되고 있지만.
병사는 애초에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 한 참이었다.
유현 때문이었다.
유현이 단순히 이 집단의 한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어떻게 봐도 그는 리더였다.
리더가 배척한다.
이건 대단한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잠이 안 오냐?”
해서 뒤척이고 있으려니 같은 방을 쓰는 김현철이 물었다.
-병사 잘 지켜보세요.
-그……. 교수님. 교수님이 나서시면 좀 낫지 않을까요?
-정신과는 순규예요. 가까이 가기만 해도 발작을 하던데…….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제 최우선 순위는 집단의 생존입니다. 불안 요소는 제거할 수밖에 없어요.
속으로 유현과 잠시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서였다.
“네? 아, 네.”
“일단 자……. 자는 게 좋아.”
“잠이 와요, 소위님은?”
제발 잤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병사는 김현철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터앉는다 싶더니만 이쪽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 저거…….’
김현철은 병사 대신 벽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 있을 이순규를 떠올렸다.
귀 밝은 그가 이 대화를 듣고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는 게 좋았다.
‘아마 그럴 거야.’
유현이 자신에게도 언질을 해 놓았는데 이순규를 배제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 난 잘 오는데.”
“그래요? 전……. 아까 보셨잖아요. 탈출이 가능할 거 같아요?”
“우리가 초거대 개체를 둘이나 죽였잖아.”
“대신 엄청 몰려왔잖아요. 거의 30, 40기는 왔던데.”
“절반은 죽었어.”
“그게 다 먹이가 될 테니……. 더 커지겠죠.”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마. 우리는 정유현 교수님도 계시고……. 이순규 교수님도 계시잖아.”
해서 김현철은 다분히 아부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선생님.’
이순규가 듣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저 양반……. 열심이네.’
확실히 이순규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까 들은 얘기가 있어 그렇기도 했지만.
사실 낮에 있던 공습 탓이 더 컸다.
잠이 오질 않았다.
눈앞에서 터져 나가던 불길과 열기.
그리고 불이 붙은 채 도망 나오던 감염자들과 거리에서 벌어진 치열한 싸움.
아예 좀비처럼 그냥 사람 비슷한 무언가의 형상을 하고 있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이것들은 어떻게 봐도 그냥 사람이었다.
“이순규가 제일 문제예요. 감염자잖아요. 그걸 어떻게 믿고 여기다가…….”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어. 연구소에도 다녀왔다고.”
“그걸 어떻게 믿어요. 거짓말일지 아닐지 어떻게 알아요. 저놈이 스파이 짓 해서 우리 다 죽여 버릴지……. 읍.”
병사가 흥분한 채 떠들어 재끼기 시작하자 김현철이 입을 틀어막았다.
혹 들을까 염려해서는 아니었다.
내용을 듣고 이순규가 쳐들어올까 봐 무서웠다.
‘정상……. 완전 정상일까?’
괜찮을 거라 얘기는 하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라 그랬다.
“너무 크게 외치지 마, 인마!”
“으…….”
“너 누구 덕에 산 건데……. 이런 말을 해.”
“앞으로가 문제죠! 막말로 저것들 없으면 우리 여기서 6개월은 더 버틸…….”
“미친 소리 하지 마. 우리라는 소리도 하지 말고.”
“소위님?”
“너 나랑 같은 부대원도 아니잖아. 사단이 같은 거지.”
“아니…….”
그러나 듣다 보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단 생각이 들었다.
저것들 ‘없으면’이라니?
‘없애면’이라는 말과 같지 않나.
‘안 돼……. 그건 안 돼…….’
물론 6개월을 버틸 수는 있을 터였다.
여긴 입이 많으니까.
그걸 줄이면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그럼 그 후에는?
이들이 없이 살아남을 수 있겠나?
저기 있는 아무나 데려다 놔도 이 병사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제가 막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고요…….”
“뭐가 그런 말이 아니야. 난 너랑 달라. 함부로 엮지 마.”
“그…….”
병사도 김현철의 말에 주눅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손을 저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순규가 다 들었으니.
‘이게 참, 사람 뜻대로 다 안 되는구나…….’
말만으로 내쫓거나 하진 않을 터였다.
아니, 이순규라면 진짜로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유현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 아닌가.
아마 언제든 배제될 가능성이 생겼을 터였다.
병사에게 위험한 임무라도 맡기게 되지 않을까.
“재원아.”
“네?”
“넌 괜찮냐?”
“아……. 아뇨.”
잠 못 드는 이는 비단 아래층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위쪽도 사정은 비슷했다.
“생각보다 폭격이라는 거……. 무서운 거더라.”
“네, 그러니까요.”
“통신 끊긴 것도 걱정이고.”
“교수님?”
유현은 실로 드물게 약한 소리를 주절대고 있었다.
재원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아는 유현은 그야말로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당황한 적이 없지 않나?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전기도 나갔고…….”
“전기가 나갔어요?”
“우리는 괜찮아. 발전기가 있긴 하니까……. 컴퓨터만 꺼 두면 꽤 오래 갈 거야.”
“어…….”
“식량이야 대부분 건조식품이니 다행인데…….”
“하…….”
근데 듣다 보니 모르는 사실들이 있었고, 하나같이 개떡 같은 일뿐이었다.
그런 걸 이제야 입에 올리다니.
이 인간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원은 더 누워 있지 못하고 일어나 앉았다.
그제야 유현이 애초에 누워 있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일 순규……. 연구소 보낼 거야. 괜찮은지 확인을 해 봐야 해.”
“근데……. 보니까 흥분하면 지들끼리도 엄청 싸우던데요?”
“그래서 총을 하나 줄 거야.”
“하나…….”
“우리는 나갈 수 없어.”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진퇴양난이어서 그랬다.
“이 근처는 오늘 자로 더 위험해졌잖아. 당장은 지들끼리 치고받아서 사냥에 나서지 않겠지만……. 늘어난 개체 수만큼 다음 사냥이 빨라질 거야. 그 말은 거처 옮기는 계획도……. 예정대로 해야만 한다는 거야. 아니면 더 빠르게 해야 할 수도 있지.”
“여기까지 올까요?”
“안 올 거 같냐?”
“아뇨.”
“오면 막을 수 있을 거 같고?”
“아뇨…….”
재원은 부리나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전에는 와도 뭐 별거 있겠나 싶었더랬다.
하지만 지들끼리 싸우는 걸 두 번이나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감염자, 즉 라드는 좀비도 사람도 아니었다.
숫제 흉포한 맹수들이었다.
그것도 머리가 나쁘지 않은.
“쥐라도 있어야 해. 뭐라도 방어 수단을 갖춰야 해. 여긴 안 돼.”
“내일 갔는데 연구소가 무너져 있으면……. 그럼 어째요?”
“넌 이 상황에서 꼭 그딴 소리를 해야 마음이 편하냐?”
“아니, 교수님이 지금 내내 절망적인 소리를…….”
“그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어.”
“아.”
재원은 연구소가 무너졌다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라는 뜻이라고 알아들었다.
그랬더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상 무너졌냐?”
“안 무너졌어요?”
“무너지긴 했지.”
유현도 따라 쉬었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어제랑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식량도 물도 딱 하루 치만 사라졌다.
근처에 감염자들도 없었고.
그러나 통신이 끊기자 더없이 불안해졌다.
마치 세상에 우리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교수님이.”
“뭐 인마. 그럼 안 무너졌어? 제대로 되는 게 없는데.”
“아니……. 그래도…….”
“그래도 살아남긴 해야지. 공습이 가능한 걸 보면 어찌 되었건 정부 기능이 어느 정도 살아 있다는 것일 테니까.”
“통신이 이제 안 되지 않을까요?”
“아니……. 위성 이용하는 건 될걸.”
“위성 통신?”
“나도 몰라, 인마. 근데 그렇지 않겠어? 거기 군사 전문가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설마 이것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유현은 그런 말을 하면서 설마 예상치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도 남을 새끼들이긴 하지 않나?
하지만 통신은 다를 것 같았다.
애초에 위성이란 게 군에서 쓰는 거 아닌가?
아니면 어쩌지?
‘그럼 뭐……. 다 같이 X 되는 거지…….’
망할.
유현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튀어나오는 거 보니까……. 공습 한 번 더 때릴 수도 있어. 뭐가 됐건……. 우리한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연구소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지.”
유현은 아까 방으로 들어가던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들 상기되어 있었다.
열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무너져 내리는 도심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미 망가진 지 오래지만 멀리서 보면 형태는 유지되고 있었지 않나.
애써 부정하고 있던 종말이 눈앞에 나타난 버린,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오예리 형사…….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어.’
정말이지 강한 사람이었다.
유현도 강하다 자부했지만 오예리는 결이 달랐다.
유현은 강제로 인간성을 끄는 방식을 애용했으나, 오예리는 측은지심을 간직한 채로도 강했다.
그런 오예리조차 오늘만은 빈말로라도 웃지 못했다.
그도 그런데 저기 연구소에 있을 사람들은 어떨까.
‘가뜩이나 순규가……. 약 먹고 자고 있다고 했지.’
해가 들지 않는 곳에 있으니 정신적으로 더 취약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통신도 끊겼다.
순규라도 가서 건재함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연구소가 무너지기 전에 저들이 무너질 것이 뻔해 보였다.
“일단 자자.”
“잠이 안 와요.”
“누워라도 있어.”
“네.”
“봐라, 이진호 형사님은 잘 자잖아.”
“저도 안 잡니다.”
“아, 그렇구나.”
유현은 쓴웃음을 지은 채 자리에 누웠다.
부디 저쪽에 있는 이들도 버티고 있길 바라면서였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