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공습 (1)
유현은 김태평에게 말을 덧붙이기 전에 일단 고민부터 했다.
거기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놈의 고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유현의 머릿속은 더없이 복잡했다.
‘거기에 지성을 갖춘 개체가 있다고 했지.’
게시판 글을 아무리 뒤적거려 봐도 그런 개체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이쪽 길거리도 그렇지 않나?
초거대 개체가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위협은 없었다.
물리적으로는, 또 단기적으로는 아마 초거대 개체가 가장 위험하겠지만.
멀리 보면 지성을 갖춘 놈들이 최악이었다.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도 결국은…….’
특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로 인해 더 긴밀한 수준의 집단을 이룰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다고 당장 미사일과 화포로 무장한 인간의 군대를 어찌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커다란 위협이 되기는 할 터였다.
그 와중에 죽어 나갈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터였고.
‘아냐, 그래도 연구실을 날리는 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여기 갇혀.’
유현은 방금 자신의 고함에 놀라 나온 이들을 돌아보았다.
병사는 숫제 손을 떨고 있었다.
김현철 소위는 그런 병사를 꼭 붙잡고 있었고.
이진호는 그런 둘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나머지?
나머지는 전부 유현만 보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유현은 자신의 손에 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건방진 생각인 것만은 아닐 터였다.
실제로 이곳에 모인 이후 이들은 대개의 의사 결정을 자신에게 일임하지 않았나.
“연구소는 피해야 합니다. 그쪽에서 진행 중인 연구는 대개의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어떤 연구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럼 제가 더 강력하게 건의해 볼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아니라, 이쪽에 도움이 될 터였다.
당장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냄새가 도움이 된다고 단언해서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냄새를 특정한다고 해도 그걸 생산하진 못할 테니까.
사실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쥐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지 않나.
하지만 유현은 어찌 되었건 눈앞의 사람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저 개체들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우리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네, 그거야 이제……. 교수님 홈페이지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죠.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에 접근 가능한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뿐이겠지만.
유현은 굳이 이러한 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지금 유현은 훨씬 중요한 것을 무시하려는 참이었다.
이 무리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지성 있는 개체의 존재 또한 남겨 두려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포장을 해 보았지만, 가슴 한켠이 아려 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의 발로일 뿐이었으니.
“그 호르몬이 냄새의 차이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개체……. 라드(Re-activation After Death, RAD)라고 했나요? 그들이 자기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용도로 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네? 그건 어떻게……?
사태가 터진 이후라 해도 라디오나 TV는 일부 살아 있었고, 다른 나라와의 소통도 가능했다.
인류는 그들이 당장 맞서 싸워야 하는 적, 감염자들을 라드라 명명했다.
“이순규를 모른다고 하진 않겠죠?”
-아, 알죠.
김태평이 맡았던 작전 중 하나가 이순규 탈취였는데 이를 왜 모르겠나.
그때 실패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이순규의 존재 자체가 라드의 탄생에 있어 가장 커다란 공헌 아니,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이순규의 이름은 김태평뿐 아니라 청와대에 있는 이들도 다 알고 있었다.
“그 녀석 치료됐습니다.”
-네?
“어떤 경유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어요. 때문에 유의미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허……. 어찌…….
“시간상으로 그쪽이 확보했던…… 박기태. 아니지. 1호라고 하죠. 그 사람도 비슷한 경과를 밟았을 가능성이 있을 거 같은데.”
하여간 유현은 거짓말을 하려면, 특히 상대가 많이 아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려면 진짜 정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 봐서가 아니라 많이 들어 봐서 그랬다.
어찌나 속여 먹으려는 놈들이 많은지.
그러나 적어도 감염내과학에 관해서 만큼은 넘어간 적이 없었다.
아무리 솔깃한 얘기를 한다고 해도, 자신이 아는 게 너무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 유실되었습니다.
“네?”
-그때, 탈취당했을 때. 알고 계시죠? 그때 거기 있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아……. 네. 그랬죠. 거기 있었죠. 그럼 그때……?”
-네.
“아.”
유현은 왜 이것들이 공습이라는 지극히 극단적인 수단을 쓰려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완전히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1호가 죽었다는 건, 이들에게는 지금 밖에 나돌아다니는 유형의 감염자들밖에 없다는 얘기 아니겠나.
‘그럼 이것만으로도 주요 정보가 될 거야. 하씨……. 이것도 걱정이네?’
윗놈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이번에 너무도 잘 알게 되지 않았나?
-이건 보고드리면……. 어쩌면 저랑 직접 얼굴 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김태평도 모르진 않는지 운을 띄웠다.
-너무 걱정하진 마십쇼. 이쪽도 자원이 많지 않으니까. 서울 외곽으로 나갈 방법도 없어요. 지금 당장은.
“아까 비행장은 확보했다고…….”
-비행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공습 대상을 제한하는 게 민간인 걱정도 있지만, 그보단 보급의 문제가 더 큽니다.
“아…….”
-아무튼,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하면 아마 이쪽에서도 납득할 겁니다. 연구도 따로 진행하기 시작할 거고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또 다른 건 없습니까?”
다행히 김태평은 요원이지 연구원은 아니다 보니 연구 자체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유현은 혹시 질문이 들어올까 봐 질문으로 역공을 취했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의외로 김태평은 선선히 답을 해 왔다.
-이건 좀 고민을 했는데……. 알려 드리죠. 지금 교수님께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딱히 선의에서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물론 김태평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박원상 교수와 막역한 사이죠?
아니나 다를까 박원상의 이름이 나왔다.
유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모든 걸 그 자식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건 물론 억울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박원상이 이 모든 사태에 있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의사’라는 건 맞지 않을까?
“그랬죠. 지금은 아닙니다.”
-네, 이해합니다. 아무튼, 박원상 교수와 김조은 박사도 교수님의 사이트를 아주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 오늘 보고가 들어가게 되면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루트로 침입해 올 수도 있어요. 그 둘, 사태가 터지고 나서 연구에 진척이 없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거든요.
“아까 자원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네, 자원이 없죠. 그래서 쓸모없는 인간은 배제됩니다.
“배제라니…….”
아까 박기태에게는 유실이라고 하고, 그 연구에 참여했던 이들에게는 배제라는 단어를 써?
유현은 잠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게 습관화된 사람을 앞에 두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 무서운 건 이 기조가 단지 김태평만의 것이 아닐 거라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저 위는 전부 이런 이들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하겠죠. 그중엔 아마……. 침입도 고려 대상에 있을 겁니다.
“하아……. 청와대에서는 이 사태를 예견했을 텐데요? 물자가 충분치 않아요?”
-그들은 몇 년씩 뒤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요. 한 명을 배제했을 때, 남게 되는 물자의 양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저를 포함해 그 일의 진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인간은 숙청 대상일 겁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허.”
유현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생존 하나만 염두에 두더라도 만만치 않은 세상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밖은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있었고, 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위에서는 여전히 권력 다툼 중이라는 얘기 아닌가.
‘이 사태가……. 해결 안 될 거란 생각은 추호도 없구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지금껏 인류가 마주했던 고난이 어디 한둘이던가.
당장 가장 최근에 있었던 팬데믹 사태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더랬다.
죽어 나간 사람만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이었다.
그로 인해 추락한 경제와 사회 가치 변화 및 정치적 불안정 등까지 계산해 보면 그야말로 세계 대전에 준하는 재난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또 대한민국은 뭐가 되었건 그 위기를 아주 잘 넘겼다.
‘미친 새끼들.’
유현은 생각이 달랐다.
이번 건 다를 테니까.
‘이 전례 없는 위기를 앞에 두고도……. 그 지랄을 한다 이 말이지?’
유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말건 김태평은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상관한다 해도 아마 별 소용은 없을 터였다.
-그럼 끊죠. 거기 통신선……. 공습 후에도 멀쩡하리란 보장이 없으니 따로 안테나라도 구비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어디서요?”
-모르죠, 그건. 하여간……. 공습이 있고 나면 아마 저들의 수도 줄 테니……. 그때 위에서 움직일 겁니다.
“하……. 아, 근데 정확한 시일은 언제죠?”
-3일 후입니다. 예정은 그렇지만, 모를 일이니 일단 안에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거 감사하다는 말 듣기 더럽게 힘드네.
김태평은 웃음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유현은 그 후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잘만 읽히던 게시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공습이 있다고요?”
오히려 입을 연 것은 옆에 있던 오예리였다.
물론 오예리 또한 심각한 얼굴이었다.
“네. 공습이 있을 거라네요. 뭐……. 이해는 갑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그냥……. 밀고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건물이 밀집한 곳에서는……. 어려울 겁니다. 제아무리 총을 들고 있어도요.”
서울 함락 난이도가 지상 최악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던가.
빼곡한 아파트가 모조리 은폐, 엄폐물이 되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는 말.
때문에 제공권을 확보해서 폭격이라도 해야 할 텐데, 민간인 학살이 될 테니 국제 사회를 신경 써야 하는 현대전에서는 서울은 그야말로 불침 요새란 얘기도 있었다.
그게 다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얘기치고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여간 3일 안에 주변이 초토화될 가능성이 있어요. 이 근처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될까요?”
“알 수 없죠. 잘되길 바랄 뿐.”
“하긴…….”
유현과 오예리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사라진 지 오래라 보이는 건 오직 어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