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만약 그렇다면 (1)
“고지능 개체가 있다고?”
“아마도.”
“음.”
유현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이성이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아무리 전두엽이 억제되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뇌 기능이 아예 사라졌을 리는 없을 테니.
애초에 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능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니, 몸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뇌 기능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는 얘기이지 않겠나.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순규가 전해 온 말은 아예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있고 명을 받드는 사람이 있다?
이미 하나의 집단이 이루어졌다는 걸 뜻했다.
“냉장고를……. 정말 사용하고 있었다고?”
“어. 거기에 이미 시신을 하나 두고 있었어.”
“썩지 않도록…….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지……?”
“응. 게다가 명령을 내린 놈은 그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동시에 냉장고를 식량 창고로 사용할 만큼의 지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이건…….’
최악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아니, 최악은 아닌가?’
적어도 요 앞 거리에 그런 개체가 없다는 건 다행일 테니까.
“너……. 같은 개체일 가능성은 없겠지?”
“없지. 사람을 먹는 거야. 난 절대 못 할 짓이야.”
“차이가……. 뭘까?”
유현은 이제 이순규의 이성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그가 더 이상 배고프다고 외치지 않아서 또는 이따금 보이던 공격성이 사라져서는 아니었다.
이순규는 이성을 가지고 아주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 본능만 가지고 있는 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행동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도 곰곰이 생각을 해 봤어. 일단……. 바이러스의 차이겠지.”
“바이러스라. 하긴……. 저쪽은 너를 감염시켰던 바이러스랑은 다르지.”
“응. 변이를 일으킨 거야. 감염 단계를 보면 나는 죽었다 살았다며. 거의 열 시간가량.”
“응. 뇌사 소견을 보였었지.”
사실 지금까지는 그리 심각하게 이순규와 저들의 차이를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
이순규 또한 환자라 생각을 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검사를 통해 증명하지 않았나?
이순규의 감염은 음전되었다.
“그에 비해 저놈들은 그게 없거나, 아주 짧지.”
유현은 감염자들을 떠올렸다.
저들의 감염 과정은 본의 아니게 여러 차례 보지 않았나.
처음엔 강도들, 그러다 군인들이 감염당해 한패가 되고야 말았으니.
개체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1분이 채 안 걸려서 감염자가 되었다.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난 뇌가 어느 정도 회복했을 수도 있어. 뭐,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저기는 그 시간이 짧아서 그렇게 되는 거다? 음. 알기 어렵군…….”
“분명 뭔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뭐라 떠들기는 어렵지. 이 상황에서 떠들어 대는 건 의사답지 않은 일 아냐?”
“그렇지. 근거가 너무 부족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놈들은 너랑 다르다는 거지. 그중에 고지능 개체가 있다는 거고. 그 개체를 봤어? 눈으로?”
그 개체가 어찌 생겼을까?
유현은 그게 궁금했다.
아쉽게도 이순규는 확인까지는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돌이켜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덩치는 커도 이순규는 그냥 사람 아닌가.
평범한 사람 중에서도 점잖은 축에 속하는.
그렇게 겁나는 와중에 뭔가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그놈이 이상한 것이었다.
“아니, 보진 못했어. 그냥 뭐라고 하는 것만 들었지.”
“뭐라고?”
“한국어였어. 나도 뒤에 숨어 있느라 정확히 못 들었지만. 몇 마디 알아들은 건 그랬어.”
“말을 알아들었다……. 그냥 손짓 발짓을 보고 알아듣는 거면 좋겠는데.”
“아.”
물론 이순규는 최선을 다해 관찰했더랬다.
그리고 유현은 그렇게 단편적으로 얻어 낸 정보만으로도 많은 걸 유추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개체의 목소리는 어땠어?”
“아……. 허스키했어.”
“얼마나.”
“꽤……?”
“초거대 개체 정도 될까?”
“목소리만으로는……. 구분이 어려워. 알잖아. 목소리도 지문같이 다 다르다는 거.”
“그렇긴 하지. 하지만 꽤 허스키했다 이거지?”
“어, 낮기도 했고.”
남성 호르몬으로 인한 변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다.
그중엔 목소리 변화도 있었다.
성대를 길어지게 만들기에, 낮아졌다.
지나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더해진다면 성대 주변근의 쓸데없는 강화로 인해 목소리가 쉬기까지 했고.
“그럼 작은 개체는 아닐 거야. 희망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을 듣는 놈은 말로 인한 명을 알아듣는 게 아니라, 위압에 의해 명을 따른다고 볼 수 있겠지. 아까 봐서 알겠지만 저놈들 사이에서도 개체별로 위력 차이가 상당하잖아.”
“절망적으로 생각하면?”
“저쪽에……. 고지능 개체가 퍼지고 있다는 거.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나처럼 유별난 개체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물론 넌 천성이 부드럽게 태어나긴 했어. 하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없었겠냐? 네 특성이 영향을 아주 안 미치진 않았겠지만……. 그동안 투여했던 약이랑,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차이가 가장 컸을 거야.”
유현은 이 사태가 결국, 바이러스에 의한 것임을 상기했다.
“저쪽에 고지능 개체가 있다는 건……. 개체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쪽에 도는 바이러스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이런 시발.”
이순규는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더랬다.
당연한 일이었다.
워낙 정신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감염내과가 아니다 보니 그런 쪽으로 머리가 돌지도 못했다.
“그 말은……. 너 거기 들어가는 거 목격한 개체가 있어?”
“있기는 할 거야. 건물로 들어가는 건. 봤을 거야.”
“그럼 그 연구실에는?”
“그건 없어. 확실해.”
“흔적은?”
“흔적은…….”
흔적이라.
이순규의 얼굴이 시커메졌다.
그냥 조심스레 들어갈 생각이나 했지, 흔적까지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랬다.
‘어쩌지? 나 때문에……?’
대번에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순규는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니까.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거기 어두웠지? 전기……. 제대로 안 들어온다며?”
유현의 말이 있고 나서야 이순규의 굳어졌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생각해 보니 거기 엄청 어둡지 않았나.
그래, 이순규조차 걸어가면서 몇 번이나 발을 다칠 뻔했을 지경이었다.
“어. 복도나 이런 데는 다 안 들어와. 딱……. 연구실하고 냉장고인지 뭔지 하는 곳만 들어오는 거 같아.”
“다른 곳을 다 확인한 건 아니지?”
“그건 아니지.”
“하여간 복도는 어두운 거고.”
“응. 어두웠어.”
“그래도 발자국이 남기는 했을 거야. 거기를 누가 청소했을 리는 없을 테니.……. 하지만 뭐……. 그놈들이라고 해서 연구실 입구까지 왔다 갔다 한 적이 없지는 않았을 테니……. 일단 희망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유현은 그렇게 말하곤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이성이 있다……. 집단을 이룰 수 있다…….’
어마어마한 위협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대규모 집단을 이루게 되면 가히 군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소규모 집단을 떠올려 보니 살짝 생각이 바뀌었다.
대략 서넛에서 대여섯.
‘이성과 야성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지.’
군기가 딱 잡힌, 그러나 싸울 때는 야성에 취해 싸우는 군대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 말은 지능이 어느 정도 있는 놈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흉폭함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리란 말로 이어졌다.
“순규야.”
“응?”
“거기 주변은 상태가 어때?”
“여기보다 훨씬 안 좋지. 그냥 별일 없이 연구소 들어가는 도중에 본 초거대 개체만 몇인데…….”
“다른 개체도 많았어?”
“많았지.”
“그 말은 거기도 곧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는 뜻 아닐까?”
“음……. 그게 그렇게 되나? 하긴 개체 수가 많다면……. 그럴 수 있겠지.”
지금 이 거리에 배회하는 놈들 수준의 지능이라면 그저 싸움을 벌이기에 급급할 터였다.
아까도 그러지 않았나?
하지만 고지능 개체의 집단은 어떻게 할까.
싸우는 대신 떠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 대 일의 구도로 사냥에 나설 수도 있고.
‘뭐……. 모든 건 다 가정에 불과하지.’
유현은 생각을 정리하고 이순규를 바라보았다.
앞으로의 일이 어찌 될지는 결국, 이 친구가 왔다 갔다 하면서 뭘 더 봐야 알게 되지 않겠나.
“순규야.”
“응?”
“다음에 갈 때는 총이라도 들고 가. 어지간하면 쏘지는 말고.”
“그래……. 그래야겠지?”
“아마도. 지능이 정도 이상 높다면 너……. 포섭당하거나 공격당할 수도 있어. 최대한 조심해야 해. 아예 밤에 움직이는 게 답일 수도 있고.”
“음……. 그래, 다음엔 그래야지.”
“대신 보이는 것만큼은 최대한 자세히 봐 줘. 그래야 우리도 어찌할지 계획을 짤 수 있어.”
“그래. 그럴게.”
유현은 그렇게 이순규를 다독인 후, 몸을 일으켰다.
“일단……. 게시판이나 좀 봐야겠다. 넌 좀 쉬어라. 그런 새끼들이 있었다면……. 왔다 갔다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 그래.”
그러곤 위층으로 올라가 컴퓨터를 켜고 게시판에 접속했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이 느려지고 있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의외로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회선이 죽는 만큼 접속할 수 있는 이들도 줄어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이런 이유라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성이 있는 놈들이 있다는 건……. 일단 나만 알고 있자.’
들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순규는 신중하구나였다.
이런 소식을 남들도 알게 되면 얼마나 불안해하겠나.
“아까……. 봤어요? 사람들…….”
“아직 먹을 거 있잖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조용히 해. 너랑 내가 제일 늦게 합류한 거 몰라서 이래?”
“그래서 더 불안한 거죠!”
“조용! 조용히 해! 이 미친놈아!”
이미 병사는 패닉이었다.
김현철의 말대로 멘탈이 별로인 모양이었다.
‘이상한 짓 하는 거 같으면……. 바로 제압하라고 했지.’
해서 유현은 이미 거동이 자유로워진 이진호 형사에게 병사를 잘 보라고 일러두었다.
전에 다쳐서 그렇지.
사실상 대인 전투력만 따지고 보면 이진호가 오예리보다도 나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예리 형사만큼 유연한 대처를 못 한다는 것인데…….
그건 원래 하던 일을 맡김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어디…….’
유현은 이진호와 병사를 힐끔 바라보고는 게시판을 뒤졌다.
서울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다.
매일 비슷한 광경을 찍어 올리고 있어서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쪽은 유현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는 이 근방의 소식을 원했다.
이미 근처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도 싹 정리해 두지 않았나.
그중 한 명이 글을 올렸다.
X 됐다고.
‘무슨 일이야?’
-X 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