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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02화 (102/323)

102화 탈출 (4)

탕김현철은 호흡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학사 장교라더니 군 생활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아니면 공부하던 열정과 집중력으로 사격을 해서 그런가. 확실히 총을 꽤 잘 쐈다.

아무리 표적이 크고,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있다곤 쳐도 이건 실전이지 않나.

탕딱 두 방 쐈는데 두 방 다 초거대 개체의 복부에 꽂혔다.

“크아아아!”

아까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였다.

머리를 맞았을 땐 한 방에 쓰러지더니, 지금은 꿈틀대기만 했을 뿐 움직임에 큰 제한이 없어 보였다.

“저……. 맞은 거죠?”

유현은 자기 눈으로도 피가 튀는 걸 확인했지만, 상대가 별 타격이 없는 것 같아 이렇게 물었다.

김현철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은 거 같은데. 아니, 맞았어요. 분명. 더 쏠까요?”

“아니, 그건……. 그건 안 될 거 같습니다.”

아까 한 방.

그리고 이번에 두 방.

제아무리 천으로 총구를 둘둘 휘감았다고 해도, 소리는 컸다.

계속 듣다간 귀 나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도 그런데, 저들에게는 어떨까.

‘둘이 여전히 여길 보고 있어.’

당장 뛰어오는 놈은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놈들에겐 낮은 수준의 지능이 남아 있으니까.

군에 갔다 온 경험이 있다면 이게 총소리라는 걸 알지 않겠나.

아니, 꼭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저번에 군부대가 와서 총을 쏴 댔기에 오히려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수가 적다는 거……. 그리고 비감염자들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면…….’

군 부대에게 달려들던 감염자들의 모습을 유현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나 했는데, 오늘 확실해졌다.

이성보다 본능이 우선하는 듯했다.

호르몬이 미친 듯이 날뛰는 데다가 전두엽이 억제가 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 어, 공격한다.”

“피 나는 걸 본 건가?”

“와……. 그거 두 방을 배에 때려 맞았는데…….”

“저런 미친…….”

오예리 형사가 욕설을 내뱉었으리만큼, 현장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까 쓰러진 놈은 이제 해체되었고 한몫 챙긴 놈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놈들 중 만만해 보이는 놈들에게 또 달려드는 놈들도 있긴 했지만, 이제 와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크아아아!”

방금 배에 총을 맞은 놈.

그놈이 피를 뚝뚝 흘려 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던 거대 개체가 머리통을 후려쳤다.

적어도 머리가 약점이라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한 방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만한 위력이었는데 초거대 개체는 배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조차 쓰러지지 않았다.

놀라운 목의 근력으로 충격을 버텨 내고는 짐승처럼 뒤로 돌아서서 기어코 다른 개체의 몸통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와…….”

아마 멀쩡한 상태였다면 상대가 아무리 2미터를 훌쩍 넘는 개체라 해도 망가졌을 것이 확실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배의 통증 때문에라도 힘이 완전히 들어가지 못해서, 상대는 그저 뒤로 몇 미터 튕겨 나가는 것에 그쳤다.

“크…….”

“배고파!”

죽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사실일까?

평소라면 가까이 가지도 못했을 개체들까지 모여서 초거대 개체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너무 멀어서 눈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중 일부의 눈에서는 빛이 나는 듯했다.

마치 짐승처럼.

퍽성급한 놈 몇이 먼저 달려들었고, 사방으로 부서져 날아갔다.

작은 것에 만족할 놈들은 그 시신을 들고 뛰었지만 어떤 것들은 초거대 개체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아까 맞아 나가떨어졌던 놈이 그랬다.

퍽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몽둥이가 배에 작렬하고.

“크르르르르!”

쓰러지는 초거대 개체를 향해 감염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푸아아악

작은 개체들이라 해도 힘이 약한 놈들은 아니지 않나.

일반인에 비하면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초거대 개체가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나갔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거칠어진 성대가 외치는 비명이 거리 전체에 울렸다.

“으.”

“미친…….”

산 채로.

그야말로 산 채로 온 몸이 찢겨 나가고 있으니,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툭문제는 소리가 너무 커서 커튼에 매달려 있던 이가 놀라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아주 높은 데서는 아니었지만, 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리고 있었다.

“시발, 시발. 시발시발.”

욕설을 내뱉으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감염자들의 시선은 이제 온통 초거대 개체에게 아니, 초거대 개체였던 것에 쏠려 있었다.

또 그놈을 공격하다 약화되었거나 죽어 버린 개체에게도.

아무리 약한 놈들도 생존자들보다는 훨씬 잘 먹었기 때문일까?

살아남은 놈들은 흡사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시발…….”

다리 다친, 비쩍 마른 사람은 계속 도망갔다.

유현 일행이 있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해서.

“어쩌죠?”

오예리가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을 따름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있겠냔 물음이었다.

“하긴.”

할 수 있는 게 있어도 데려오는 건 고민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 은신처에 있는 식량도 한 달가량 버틸까 말까 한데.

입이 늘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지 않겠나.

“하나 남았는데……. 쏠까요?”

김현철은 어느새 총구를 다른 놈에게 겨누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초거대 개체였다.

녀석은 거리가 멀었다.

아니, 아예 건물 안에 있었다.

제일 커다란 조각을 들고서 들어가 버린 까닭이었다.

‘맞힐 수 있을까? 아니……. 맞히고 나서……. 괜찮을까?’

이미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커튼에서 뛰어 내려오던, 꽤 건장해 보이던 사내만 해도 그렇지 않나.

“어, 어어어어.”

마침내 그에게 감염자들의 주의가 쏠렸다.

일종의 낙오자들이었다.

갑자기 죽어 나간 초거대 개체의 조각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그렇다고 해서 지들끼리 죽어라 싸우지는 않았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나니 흥분이 가라앉아서일까?

아니면 비감염자, 그중에서도 통통해 보이는 사람이 등장해서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 저들이 지금 막 내려오고 있는 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건 명확했다.

“사, 살려……!”

이제 커튼에 매달려 있던 이 중 제일 위에 있던 사람이 떨어졌다.

퍽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즉사였다.

그에게는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지이이익

그 즉시 시신이 분해되었으니.

“오, 올라가! 올라가 시발 놈아!”

그걸 확인한, 제일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그 말이 있기 전부터 바로 위에 있던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후에는 갈기갈기 찢겼고.

“어어……. 이 시발……. 시발 놔!”

문제는 내려오는 것보다 올라가는 게 훨씬 힘들다는 점이었다.

매듭을 묶어 두긴 했지만, 하여간 그걸 발판 삼아 등으로, 팔로 당겨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

체격이 건장하다 해 봐야 상대적으로 건장하다는 것일 뿐 사태 발발 전의 일반인 수준도 못 되는 상황이었다.

“크…….”

그에 비해 감염자들은 빠르고 강했다.

세차게 커튼을 흔들어도 더 떨어지지 않자, 급기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악!”

그러곤 상대를 물었다.

가뜩이나 겨우 매달려 있었는데 물리기까지 하니 어찌 버티겠나.

커튼을 놓치고.

“으……. 으아아악!”

밑에 떨어진 상대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주먹을 쥐었다.

“컥.”

확실히 다른 사람을 겁박해 밀어낼 정도의 수완과 기지는 있어 보였다.

“으……. 으아아아.”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굶주린 감염자들에게 그는 그저 한주먹거리도 되지 못했다.

“어, 어어어.”

마지막 남은 이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히고는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눈앞에서 셋이 죽어 나갔다.

그에 비하면 아까 사라져 간, 다리 절뚝이던 사람은 퍽 운이 좋았다.

어떻게든 도망가서 지금 당장은 살아남은 듯했으니.

“우리도 튀죠.”

유현은 그렇게 셋의 생명이 스러지고, 찢겨 식량이 되어 가는 현장을 보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죽어 나갈 때와도, 또 강도 무리가 죽어 나갈 때와도, 몇몇 생존자들이 죽어 나갈 때와도 다른 느낌이었다.

어쩐지 저들은 아주 남 같지는 않아서 그랬다.

특히나 유현과 오예리는 저들을 구하기 위해 저 길 너머까지 건너간 적도 있지 않나.

초거대 개체 흔적만 보고 후다닥 도망가긴 했지만.

“네? 아, 네.”

“그래, 이쪽으로 와요. 저기 슬슬 우리 힐끔거리는 놈들이 늘고 있어요.”

뭐가 어찌 되었건 튀기는 해야 했다.

이순규의 말대로 확실히 이쪽을 주시하는 놈들이 있어서 그랬다.

그렇다고 당장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다.

일시적으로나마 풍족해져서 그랬다.

게다가 놈들에게는 더 가까운 곳에 인간들이 있지 않나.

대부분은 커튼이 걸려 있던 곳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걸려 있던 커튼을 잘라 버린 것을 보았기에 그랬다.

“휴…….”

일행은 원래 있던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유현은 그 후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따라붙은 놈은 없었다.

“휴우우…….”

오늘 할 일은 다 했단 생각이 들었다.

초거대 개체 둘을 처리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물론 저쪽에 있던 사람 셋이 죽기는 했지만.

유현은 언제부터인가 이 집단 안에 있는 사람만 신경 쓰기로 한 참이었다.

아니, 사실 이 집단 내에서도 유현이 그은 선이 있을 지경이었다.

가령 김현철이나 다른 병사는 아직 그 선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아, 유현아.”

하여간 한숨과 함께 이제 좀 쉬려는데, 이순규가 그를 불렀다.

진중한 얼굴이었다.

‘게시판 살피는 것보다야……. 중요한 일이겠지.’

밖에서 뭘 봤을 수도 있었다.

이순규라면 그럴 수 있지 않겠나.

당장 감염자들끼리 맡을 수 있다는 냄새도 다른 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으니까.

“어, 무슨 일?”

“둘이 얘기 좀 할까?”

“둘이?”

“어.”

“그래, 뭐.”

이제 와 이순규가 공격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그러려고 했다면 더 좋은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해서 유현은 이순규와 단둘이 방으로 향했다.

이순규의 방이었다.

잡아 놓은 감염자는 이제 조용해진 지 오래였다.

어느 순간부터 유현이 밥을 주지 않아서 그랬다.

‘도망치려면……. 저놈들이 얼마를 굶주렸을 때 얼마나 약해지는지…… 또는 죽는지 알아야 해.’

뭐 이런 생각에서였는데 재원에게는 말해 주지 않았다.

우식에게만 공유를 했고, 그는 자기 전공을 살려 데이터화 해 두고 있었다.

“유현아.”

“응.”

안에 들어오자 이순규가 아까보다도 더 진중해진 얼굴로 불렀다.

“연구소 가서 본 건데 말야.”

“응.”

“아무래도……. 지성이 있는 개체가 있는 거 같아.”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지성이야 쟤들도 있지 않나?

원시적인 수준이라서 그렇지?

“냉장고를 창고로 쓰고 있어. 명령을 하는 개체와 듣는 개체가 있었고.”

“뭐……?”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듣고 나서는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여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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