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탈출 (1)
이순규는 주무관 둘을 두고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성과가 있긴 했지만 한 가지 위협도 동시에 확인한 마당이라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지적인 존재가 있다……. 이 말이지?’
아니, 불안했다.
때문에 이순규는 연구실에서 빠져나와서 다리를 건널 때까지 단 한 걸음도 쉬지 못하고 내달렸다.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지금은 그 존재에게 들키는 것이 더 위험할 것 같아서였다.
만약 그가 이순규의 특이점을 알아내면 어쩐단 말인가.
만약 그가 저 연구실에 있는 둘의 존재를 알아내면 어쩐단 말인가.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은신처가 들키게 되면……. 그걸로 끝이야.’
확실히 우식과 유현이 고르고 고른 곳인 만큼 안전하기는 했다.
연구소와는 비교를 불허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둘은 아니, 모두는 정도 이상으로 이성을 지닌 존재를 상정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순규와는 달리, 유현이 직접 목도한 감염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폭력적이지 않았나.
그 후로 보고된 바를 쭉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이성이 제대로 남아 있으리란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했다.
‘애초에 식량이 떨어지면……. 그땐 이미…….’
유현에게 생각이 있겠지?
애써 이런 믿음을 가져 보려 하지만.
도저히 그 건물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거기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
그것조차도 의문이었다.
‘연구소도…… 후보지로 적합하지가 못해.’
아니, 연구소는 더 위험했다.
남아 있는 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쪽이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봐야 했다.
두두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순규는 일단 내달렸다.
소음에 숨어 있던 감염자들이 얼굴을 드문드문 내미는 것이 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리고 건물 안에 있던 놈들까지도.
이렇게만 봐도 확실히 수가 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이 올 때마다 감염자들이 죽어 나가긴 했어도, 그보다 더 많은 수가 늘어났으니까.
게다가 점점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 일반인들의 숫자도 늘어만 가고 있었다.
“나 왔어. 문 좀. 밖에 아무도 없어.”
“오케이, 수고했어.”
이순규는 유현의 도움으로 은신처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유현은 오예리 형사와 함께 이순규를 데리고 위로 향했다.
원래 있던 층이 아니라, 하나 아래 있던 강의실로 데리고 갔다.
침구가 그리로 옮겨져 있었다.
“아무래도 좀 불안해해서. 미안해.”
“아……. 아니, 아냐. 뭐, 이해해야지.”
그래, 같은 층에 있는 건 어려울 터였다.
섭섭하긴 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현에게서 더 이상 경계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어땠어?”
강의실 내부엔 우식과 재원도 있었다.
그냥 끌려온 건 아닌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 의료진이다 보니 당연한 일인가 싶었다.
‘아니……. 그건 아니로군.’
오예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긴 그럴 터였다.
오예리는 이 사태에 있어 거의 처음부터 유현과 고난을 겪어 온 사람이니까.
심지어 아는 사람들도 많이 죽지 않았나?
이제 와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마당이긴 하지만.
하여간 오예리는 개인적으로 이 상황에 대해 관심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전화로 들어서 알겠지만 거기 주무관 두 분이 살아 계셔.”
“아, 네네. 다행이에요. 연락이 안 되어서……. 다 돌아가셨나 했는데.”
우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말을 믿어 준 두 사람이지 않나.
그뿐만 아니라 돕겠다고 남았는데 잘못됐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던 참이었다.
특히 바깥 상황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그랬다.
솔직히 이곳의 생활은 살짝 갑갑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낙원이라 할 수 있었다.
바깥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였다.
적어도 매일 불안에 떨며 잠들지 않아도 되니까.
심지어 먹을 것도 아직까지는 풍족하니까.
“그리고 전기도 들어와. 태양열 발전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
“아, 네. 요새 공공건물은 다 그렇게 지어요. 게다가 거기는 연구 시설이라 정전에 대비해야 해서 자체적인 발전 시설을 꽤 잘 갖추고 있어요.”
“그래, 그런 거 같더라. 아주……. 아주 잘 들어오더라고.”
커다란 냉장고까지 돌아갈 정도로 말이지.
이순규는 아직 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건 유현에게만 할 생각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그랬다.
이순규도 사실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미안하지만……. 어려운 결정은 유현이가 해 주는 게……. 나로서도 편하지.’
책임 전가로 보일 수도 있는 얘기였지만.
이순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유현은 예전부터 위기에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우선 이 은신처를 보라.
이것도 유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위업이지 않나.
“그래서 설비도 돌아가더라고.”
“아, 다행이네요. 내심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응. 그래. 일단 나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진 않았어.”
“어……. 그래요? 음전이 되었다고요?”
“그래. 물론…… 보균자가 되었을지, 잠복 감염의 형태를 띠고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지.”
“아.”
바이러스가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 완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대개의 경우에서 이를 뜻하긴 하지만 지금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적, 감염자는 보통의 적이 아니었다.
최악의 최악을 상정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특히 직접 겪은 이순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장담할 수 없었으니.
“그래도 다행이지. 음전이라면 감염이 그리 쉽게 전파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유현이 나섰다.
확실히 보균자가 되었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음전이 되었다는 얘기는 뭐가 되었건 간에 활동성 감염은 아니란 얘기이지 않나.
전파가 쉽지 않다는 것 외에도 다른 희망적인 사안들이 있었다.
“또 증상도……. 네가 안정을 찾은 이유가 화학적으로 증명이 된 셈이야.”
“응, 그래. 그렇지. 아, 그리고 중요한 거.”
“호르몬?”
“응. 내 호르몬 수치는 확실히 초기에 비해 떨어져 있어. 그렇긴 한데 경향성은 여전히 남아 있대. 떨어졌다고 해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높기도 하고.”
확실히 높기는 할 터였다.
만약 일반인만큼 떨어졌다면, 지금쯤 근육이 오그라들지 않았겠나.
특별히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식이를 남들보다 더 신경 쓰는 것도 아닌데.
“그렇군. 그 경향성이……. 저기에 있는 감염자랑 비슷한 건가?”
“어, 거의 유사해. 그 비율에 의해 나는 냄새가 아마……. 감염자가 비감염자와 감염자를 구분하는 냄새겠지.”
“그럼 그것만 알아내면……. 그로 인한 페로몬을 확인하면 밖에 나갈 수도 있겠네.”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얘기야. 하지만 가능하다고 봐야겠지.”
“흠.”
유현은 페로몬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얄궂게도 이때 떠오른 이름은 다름 아닌 박원상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 중 하나.
동시에 호르몬의 대가.
그가 있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아마 되기는 했을 터였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하지만 박원상은 사태가 터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연락이 닿은 적이 없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았다.
거지 같은 새끼.
유현은 욕설과 함께 우식을 돌아보았다.
“근데…… 그 비율을 확인한다 해도……. 냄새를 만들 수 있나?”
“체취를 재현하는 건 어렵죠. 하지만…… 음. 가능할 수도 있어요.”
설비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것이 우식이지 않나.
그가 가능하다고 하면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것이고, 아니라면 단념해야 했다.
“가능하다고?”
“네. 동물 실험이 가능한 곳이거든요. 이 와중에 가능한 실험이야 뭐……. 쥐뿐이겠지만요.”
“왜?”
“중형 동물 이상은 지하에 있어요.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거기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글쎄…….”
“음, 그래.”
하긴 쥐가 아닌 중형 동물의 관리는 난이도가 아예 다르지 않나.
연구실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전문가가 따로 붙어야 했고 그에 따른 수고와 설비 그리고 비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쥐……. 페로몬이 인간과 같을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배가 있잖아요. 선배가 인식할 수 있는 냄새가 난다면…….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죠.”
“아……. 근데 그걸 우리가 활용할 수 있을까? 정제가 불가능할 거 같은데.”
“정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쥐잖아요. 들고 다니면 될 거예요.”
“아…… 아, 그렇군. 흠.”
말 그대로 살아 있는 페로몬을 이용하자, 뭐 이런 얘기였다.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그럴싸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오죽하면 이순규조차 미소를 지었을 지경이었다.
‘아……. 그렇구나. 감염된 쥐를…… 들고 다니면 되는군.’
그가 확인했던 설비는, 물론 이순규가 그쪽으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뭘 정제해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랬다.
백신도 만들 수는 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실험체로서의 백신일 뿐, 대량 생산은 오송이나 다른 산업 단지에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이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해답이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만 되면……. 우리도 이동이 가능할 거예요. 멀리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뭐. 외곽으로 나갈 수는 있겠죠.”
“외곽이라. 거기에 안전한 곳이 있을까?”
우식과 대화를 나누던 유현은 몇 군데 점찍어 놨던 곳을 떠올렸다.
연구소와 가까운 곳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외곽을 아예 배제했던 건 아니었다.
연구도 연구지만,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이었으니.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이곳을 고른 것인데, 연구소 상황이 그 지경이라면 슬슬 다른 곳도 염두에 둬야 했다.
“장담할 수는 없죠. 아무도 연락이 닿질 않으니.”
집주인들과 연락이 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그럼 우리가 선정했던 곳 말고……. 다른 곳들은 어떨까.”
유현은 여전히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꾸준히 글들이 올라오고 있음을 떠올렸다.
적어도 그들은 살아 있었다.
‘딱히 준비를 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지.’
그 말은 곧 그들 중에 꽤 환경이 좋은 사람들이 있을 거란 얘기도 되었다.
“그 사람들에게 가자고요?”
“당장은 아냐. 아직 시간은 한 달도 넘게 있어.”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받아 줄까요?”
“저곳에서 나는 거의 신이야. 이 사태를 예언한 유일한 사람이잖아.”
“그건……. 그렇긴 하죠.”
“앞으로의 일도 대강 알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겠지.”
“그건 거의…….”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다 살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