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98화 (98/323)

98화 연구소 (3)

부스럭

이순규는 야밤에 깼다.

예민해진 그의 감각 때문이었다.

원래 잠은 진짜 잘 잤었는데.

불면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런 거 보면……. 확실히 유현이가 은신처를 잘 구하긴 했어.’

후미진 곳이 아닌데, 막상 보면 후미져 보이는 곳이지 않나.

건물도 단단하니 잘 지어져 있고.

방음도 괜찮았다.

드드드득

그에 비해 이곳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무언가 끌리는 소리.

-으, 으으으아!

죽어 가는 소리.

왜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 건물 안에……. 감염자들이 자리 잡고 있구나.’

하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염자들도 이성이 있지 않나.

전기가 있고, 물이 나오는 이곳은 일반인들에게뿐 아니라, 감염자들에게도 쾌적한 곳일 터였다.

겨울이 오면 또 모를 일이긴 하겠지만.

‘얼마나 될까.’

이순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들어 있는 두 주무관을 돌아보았다.

정말이지 개판이라고 해도 좋을 환경이었다.

이 와중에 이렇게 잘 자다니.

기기기기긱

귀를 기울이면 1층에서, 3층에서, 또 같은 층에서 지속적으로 소리가 나는데.

‘이 사람들 여기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슥 보니 그래도 먹을 게 꽤 있기는 했다.

그 질이야 형편없다고 해도.

단둘이다 보니 앞으로 한두 달은 문제없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은 먹을 것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였던 아니, 정신과 의사인 이순규는 알 수 있었다.

‘손목에 흔적.’

김, 이 주무관 모두 손목을 그은 흔적이 있었다.

흉터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으로, 아마 사태가 터지고 나서 그은 것일 터였다.

자해?

아니, 주저흔이었다.

원래 자살이라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거든.

하지만 평소에 전혀 그럴 생각이 없던 사람이 주저흔을 남기게 되었다는 건 큰일이었다.

‘이렇게 잘 자는 것도…….’

먹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숙면이지 않나?

하루 종일 그리 넓지도 않은 연구실에서, 그것도 햇빛도 아닌 인공조명 아래서 생활하는데 이렇게 잘 잔다고?

쾌적한 공간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터였다.

약의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온 게……. 아마 모멘텀이 되어 주긴 할 거야.’

계속 이렇게 둘뿐이라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둘의 세상은 이제 다시 넓어졌다.

그래 봐야 몇 킬로미터 반경일 뿐이고.

나갈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지만.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수단이 생겼고, 감염자 몰골이기는 해도 다른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런 건……. 이런 걸 연구해 볼 수 있던 정신과 의사가 있었을까?’

이순규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문득 천장이 보이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이곳은 암실 같은 곳이었다.

웅웅

묵직한 소음과 함께 돌아가는 기기가 증명하듯, 연구실이고 또 실험실이지 않나.

햇빛에 민감한 시약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그런데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일반인들은 눈치채기 어려울 터였다.

약을 먹고 잠들기 시작했다면 더더욱.

‘어디지.’

희미한 빛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 닿기 전에 소리를 들었다.

기기기긱

아까부터 들리던 소리였다.

그래, 좀 이상하긴 했다.

여러 소음이 있을 텐데.

비명을 제외하고는 이 소음만 들리지 않았나.

그렇게 벽에 닿았을 때, 이순규는 미약한 틈을 확인했다.

정말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얇은 틈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틈이기도 했다.

기기기기긱

그 사이로 소음이 들려왔다.

아까보다는 확연하게 크게.

‘이게…… 뭐가 부딪치면서 생긴 틈인데…….’

틈이라기보다는 금이라는 말이 더 걸맞을 것 같았다.

이순규는 그 벌어진 틈에 눈을 댔다.

‘아……. 이거.’

감염자가 있었다.

기기기기긱

뭘 끌고 있었는데,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신……. 이걸 왜 여기……. 아.’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

이거 생각해 보면 진짜 부자연스럽지 않나?

물론 밖에 걸린 네온사인들 중엔 여전히 빛이 들어오는 것들도 많았다.

때문에 은신처에서는 한밤중에도 커튼을 걷어 내면 빛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방을 통과해서 넘어올 만큼의 광량이던가?

이 주변이 아무리 더 번화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공기가 차.’

그리고 틈에 대고 있던 눈이 아릴 정도로 차가운 기가 느껴졌다.

옆은 냉동고 내지는 냉장고일 터였다.

뭔가 보관할 일이 많은 곳이지 않나.

검체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이 안에도 작은 냉장고가 있기는 했지만, 가정용이었다.

‘적어도 세 구는 있어. 어디서 이렇게 사람을……. 아니, 그보다 냉장고를 쓴다고? 보관용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던 이순규는 틈에서 눈을 떼어 냈다.

들킬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소름이 돋아서 그랬다.

우선 시신을 차게 모아 둔다는 건 식량으로 쓰겠다는 발상 탓일 터였다.

잔인한 발상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보면 영리한 발상이었다.

‘이성이 있는 정도가 아냐.’

분명 아까 시신을 끌고 들어왔던 감염자.

그놈에게 지시를 내리던 놈이 있었다.

문밖에 하나가 서 있었거든.

차가운 곳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놈에게 지시를 내린다.

‘집단행동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군인들을 습격할 때, 지시를 내리던 놈이 있었나?

아무리 예민해진 감각을 동원해 살펴도 그런 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유리한 행동을 취했을 뿐이었다.

목적을 위해 느슨한 연대를 이루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지시를 내리고 복종한다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였다.

‘이건……. 이건…….’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저 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이런 걸 알았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체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삶을 이어 오지 못했을 터였다.

“잘 주무셨어요?”

이윽고 날이 밝았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그런 표현이 온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불을 켜니 나름 아침이라는 느낌은 일었다.

“아, 네.”

이순규는 우선 이 둘에게는 숨기기로 작정했다.

지금처럼 깨어 있을 땐 불을 켜고, 잘 때는 불을 끄는 삶을 이어 나가는 이상, 옆에 뭐가 있는지 눈치채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나.

“검사는……. 네, 결과 나왔네요.”

눈치를 챈다면 이들에게 협조를 구할 수 없을 터였다.

검사 결과를 보지 못하게 될 터였다.

검사라는 게 무슨 피 넣고 뚝딱하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시약을 써야 하고, 적당한 기계를 찾아 돌려야만 했다.

그러자면 이들은 온전히 이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천성이 착한 이순규에게는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순규야. 이거 온전히 네 손에 달렸다.

하지만 유현의 부탁이 있지 않았나.

검사와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뭐라도 나올 터였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안전해질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둘은 이걸 모르는 게 나았다.

그게 차라리 더 안전할 수도 있었고.

‘이성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이만큼의 지능이 있는 놈이라면 진짜 위험해.’

말을 할 수도 있었다.

유의미한 언어로.

“우선 바이러스가…… 음. 교수님은 검출이 되지 않습니다. 감염자에서는 검출이 되고요. 타이터(titer, 일정량의 다른 물질과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물질의 양)는……. 굉장히 높습니다. 말이 안 될 정도로……. 이 정도면 한 방울만 들어가도 감염이 될 거예요. 지금 다른 감염자가 감염된 지 얼마나 됐다고 했죠?”

이순규의 생각과는 반대로 김 주무관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아, 조금 조용히…….”

이순규는 그런 김 주무관을 말렸다.

“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니,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주 단위로는 들락날락하게 될 거 같은데……. 눈길을 끌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론 틈 때문이었지만.

이순규는 밤새 생각해 낸 그럴싸한 변명으로 주무관을 설득했다.

“아, 네네. 그렇죠. 하하. 이게 오랜만에……. 뭐라고 해야 하나.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주무관은 그런 이순규를 보며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하여간……. 얼마나 됐죠?”

“이제 일주일 좀 넘었습니다.”

“엄청나군요. 음……. 확실히 전에 우리가 전달받았던 검체들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완전히 다르다는 게……?”

중요한 말이었다.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걸 수치로 알지는 못했으니까.

물론 아직 유전자형 검사는 시행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검출마저 다른 모양이었다.

“이렇게 타이터가 높게 나온 적이 없어요. 게다가 호르몬…… 수치도 다릅니다. 저희가 최우식 서기관님께 따로 부탁받아서 계속 진행해 온 검사 결과가 있는데……. 여기 어디. 아, 여깄네.”

“아.”

수치를 보자마자 이순규는 이게 자기 수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번인가 유현이 보여 준 적이 있어서였다.

“보시면 감염 직후 채혈한 검체에서 타이터가 피크를 쳐요. 근데 그래 봐야 지금 이 검체의 반도 안 됩니다. 일단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나 양이 다르고……. 그 후로는 완만하게 떨어지죠. 호르몬 수치도 그렇습니다. 특히 행동 양식에 관여하는 것들……. 가령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의 톤은 비감염자에 비해 세 배 이상을 넘지 못했어요.”

“음, 그렇군요.”

하긴 그러니까 안정제가 통했지.

이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유전자형은 가지고 있긴 한데……. 이건 아직 지금 이 감염자의 바이러스 유전자형을 확인하지 못해서 의미는 없고……. 다만 호르몬 수치를 보세요. 그때 전달받았던 감염자의 세 배를 넘습니다.”

“아…….”

이순규는 감염자, 즉 병사를 떠올렸다.

그는 약해진 상황이었다.

죽어 가고 있었고.

그런 개체마저 이 지경이라면 밖에 날뛰는 놈들은 대체 얼마나 높다는 걸까.

“이렇게 되면……. 폭주할 수밖에 없어요. 앞뒤 가리지 않고……. 배가 고프면 사람이라도 먹겠어요.”

“그……. 네.”

이순규는 벽을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라고 해도 좋은데……. 그나마 비슷한 트렌드를 따르긴 하네요.”

“어떤……?”

“이번에 가져오신 교수님 검체. 호르몬 분포도가…… 비슷합니다. 아마 이것이……. 교수님이 저들 사이에서 안전한 이유 같은데. 이게 냄새라고 하셨나요?”

“네.”

“이 비율로 호르몬들이 균형을 이룰 때 과연 어떤 냄새를 나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겠습니다. 그게 나오면……. 대놓고 나돌아 다니지는 못해도, 지금보다는 안전해지겠죠.”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저희 어차피 이 일 말고는 할 것도 없으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쥐를 이용해서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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