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연구소 (2)
이순규는 상처받은 얼굴로, 그러나 별 망설임 없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뭐가 되었건 문이 열리지 않았나.
이대로 두었다가 다른 놈들이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어지간한 놈들보다 내가 더 크긴 하지.’
체급은 현재 이순규가 거의 깡패라고 할 수 있었다.
의사 아니라 프로 체육인들 사이에서도 피지컬이 좋다고 할 수 있던 유현보다도 그가 더 커지지 않았나.
하지만 싸움이란 건 덩치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이순규는 아직도 눈만 감으면 군인들이 죽어 나가던 순간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빠른 움직임.
엄청난 파괴력.
등등 무서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상대를 죽이거나 파괴하는 데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는 점이었다.
“어어……. 어……. 이런 시발! 이렇게 죽으려고 지금까지 버텼다고?”
이순규는 그런 생각으로 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걸쇠가 단단하게 돌아갔다.
이만하면 확실히 어지간히 거대한 개체가 아니라면 뚫고 들어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진정하시고.”
이순규는 안심한 얼굴로 우식의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이, 이런 제기랄.”
그럴수록 상대는 진정하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하긴……. 유현이도 뭐……. 계속 경계는 하고 있었지.’
불알친구까지는 아니어도 친하게 지낸 지 20년 가까이 된 놈도 안심을 못 하는데, 이 사람들이 진정하라고 진정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해서 이순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
덩치는 훨씬 작았지만, 하여간에 저 인간이 든 칼이 좀 걸렸다.
가죽이 좀 두꺼워지긴 했어도 찔리면 엄청 아플 테니까.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보세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순규, 한국대학교 병원 정신과 교수입니다.”
“지랄 말고……. 감염자잖아!”
“그럼 감염자랑 대화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저는 감염자이긴 한데, 아무래도 다 나은 거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돼요. 왜냐면 더 이상 여러분을 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그걸……. 그럴 어떻게 믿지?”
“뭐, 일단은 이걸 받아 보시죠.”
이순규는 입을 꽤 잘 터는 사람이었다.
원래 정신과라는 곳이, 정신과 의사들은 부정하지만 일정 부분 말로 먹고사는 면이 있지 않나.
그럼에도 상대가 들을 생각이 없다면 별 소용이 없었다.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던 일이었다.
해서 준비를 해 왔다.
“이게……. 이거……. 휴대폰…….”
“통화 버튼 누르면 최우식 서기관한테 연결될 겁니다.”
“음…….”
상대는 잔뜩 긴장한 채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 연결음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리고 최우식의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어……. 최 서기관님?”
-아, 김 주무관님! 살아 계셨군요!
“네네. 겨우……. 그나마 여기 뭐 준비해 놔서요. 근데……. 근데 제 앞에 계신 이분…….”
-아, 네. 이순규 선배요.
“그…….”
-괜찮습니다. 저도 기전이 어떻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희가 확인했습니다. 정유현 교수님 아시죠? 저랑 정 교수님이 보증합니다.
“그럼……. 후……. 아유. 꼼짝없이 죽는 줄 알고.”
김 주무관이라 불린 이는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이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어서 그랬다.
‘시발…….’
연구실이 안전했다고 해서 살아남는 게 쉬웠겠나.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사태는 점심시간 즈음해서 터졌더랬다.
김 주무관은 1층 로비로 내려가다가 아는 얼굴을 한 감염자가 뛰어 들어오는 걸 보았다.
유리창은 온통 박살이 나 있었고, 막으려 해도 이들은 물리거나 찢겨 죽었다.
그 선봉에 거대한 놈이 하나 있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솔직히 말하면 그 후로 얼마간은 기억이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뛰었다.
같이 있던, 지금은 기절해 있는 이 주무관의 뒷덜미를 잡고.
연구실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단지 제일 익숙한 곳이라서 그랬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문을 열고 빼꼼히 밖을 돌아봤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다른 곳에 있었다면 죽었을 거라는 걸.
“괜찮습니까?”
“아? 아아.”
“아니, 뭐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들으셨겠지만 저는 괜찮아요.”
“그……. 네. 아……. 여기가……. 여기 상황이요.”
“네, 저도 올라오면서 봤습니다.”
이순규는 거리와 건물 내부를 떠올렸다.
언젠가 분명 와 본 적이 있던 곳이었으나,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구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소에 죽음이 도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 나갈 수 있을까요? 이 친구랑 둘이 있으려니……. 너무 외로운데.”
김 주무관은 이순규가 바로 옆에 다가왔음에도, 사실 언제든지 자신을 해치울 수 있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얌전히 있는 것을 보고는 안심이 됐는지 슬쩍 부탁까지 해 왔다.
그래,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한 환경이었다.
연구실은 빛도 들지 않는 곳이었다.
창문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밖에는 감염자들이 돌아다니고.
대충 보니 모아 둔 물자도 별것 없었다.
거의 즉석식품뿐이었다.
그거야 유현이 마련해 둔 은신처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쪽은 옥상에서 뭐라도 기를 수 있지 않던가.
“아뇨. 안 됩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네? 왜……. 왜요?”
오래 같이 있던 것도 아니면서, 김 주무관은 이순규의 말에 배신감이라도 느꼈는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감염자였다고 말씀드렸죠?”
“네? 네네.”
괜찮았다.
설득이 어렵진 않으니.
이순규는 자신이 떠올렸고, 유현이 확인한 이론을 읊었다.
“모습을 보시면 알겠지만……. 여전히 호르몬이 아마도, 남들보다는 많이 나올 겁니다. 무슨 호르몬인지는 모르겠어요. 그걸 알아보려고 온 건데……. 하여간 그 호르몬 때문에 제 체취가 변했을 겁니다.”
“체취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그건 댁이 너무 안 씻어서 코가 마비된 걸 겁니다. 냄새가 너무 지독하네요.”
“거……. 여기선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똥 냄새도 나고요. 화장실이 없나?”
“있겠습니까?”
김 주무관은 이순규의 시선이 향한 곳을 돌아보지 못한 채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은은한 똥내와 함께한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나 버린 마당 아닌가.
“없군요. 하여간. 제 그 냄새 때문에……. 저도 맡을 수 있는 냄샌데……. 그거 때문에 저들이 절 공격하지 않는 거예요.”
“어……. 같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건 확인해 보지 못했는데, 직접 해 보실 거면 저는 거부하진 않겠습니다.”
비록 똥 냄새에 땀 냄새에 하여간에 참 엿 같은 냄새가 나는 연구실에 들어온 마당이었지만.
이순규는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갇혀 있다가 나와서는 아니었다.
감염된 이후 처음으로 사람으로서 구실을 하는 것 같아서였다.
욕심 같아서는 상가의 인원을 구해 보고 싶었지만, 그건 유현의 말을 듣기 전부터 이미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 그럼 여기서 확인할 것은 뭐죠?”
“제 피에 여전히 높게 남아 있는 호르몬을 확인해야 합니다. 아니, 다른 게 있다면 뭐라도요.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고요.”
“아……. 거기선 그게 안 되겠군요.”
“네, 간단한 검사가 가능했던 병원이 있는데, 지금은 거기도 밖으로 나가는 게 좀 위험해져서. 근데……. 여기는 가능한 겁니까?”
이순규는 몸을 일으켜 연구실을 돌아보았다.
솔직히 말해 엉망이었다.
‘이해는 가. 뭐……. 그렇겠지.’
다 죽고 둘만 살아남았다.
해도 들지 않는 곳에서.
씻을 수 있기는커녕 화장실도 없는 곳이었다.
보아하니 하필 휴대폰도 망가졌거나 방전이 된 것 같았다.
사태가 터지고 거의 즉시 연락이 되질 않았으니.
‘살아 있는 게 어디냐 싶은데.’
그렇다 보니 둘이 이 몇 주간 얼마나 엉망으로 살았는지 딱 눈에 보였다.
“됩니다. 혹시 모른단 생각으로 버틴 거니까요.”
이순규의 생각과는 다르게 김 주무관은 부리나케 몸을 일으키고는 기기를 켜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죽고 싶었습니다. 희망이 없으니까요. 여기서 벌레보다 못하게 살다가 죽느니, 깔끔하게 가고 싶었어요. 그나마 최우식 서기관님이라도 계셨거나 연락이라도 닿았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간 대화라고는 넋두리밖에 하지 못했던 바람에 제대로 된 말이 고팠는지, 아니면 드디어 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신이 났는지 하여간 말을 쉬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단 말을 저 친구가 했습니다.”
고개를 돌아보니, 이 주무관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곰도 아니고.
죽은 척하면 괜찮으려나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모르지 않냐고. 이만한 설비를 갖추고 있는 곳이 어디 흔하겠냐고. 전기까지 들어오는 곳은 더 드물 거라고 했죠.”
“네, 근데 출력이 됩니까? 여기 있는 것들, 전압이 더…….”
“당연하죠. 당시 이거 짓는 데 예산이 얼마나 들었는데요. 괜히 비싸게 짓는다고 유리창 써서 이 지랄이 나기는 했는데……. 하여간 설비는 완벽합니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전기 공급이 끊길 것까지 상정해서 지어 놓은 거라 여기 전기 저장 용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자체 태양열 발전소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
이순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혹 여기 외에 다른 곳에 괜찮은 곳이 있다면 은신처를 옮기는 것도 방법이겠단 생각을 했다.
뭐가 되었건 연구를 더 제대로 하려면 여기가 낫지 않겠나.
게다가 전기는 아주 커다란 문제였다.
‘방송에서 서울은 곧 전기가 끊길 거라고 했지?’
서울도 그 모양인데 세종이라고 계속 남아 있을까?
비록 기름 발전기가 옥상에 하나 있기는 하지만, 정작 기름이 별로 없었다.
진짜 응급한 상황 말고는 전기를 쓰지 못하게 될 터였다.
“검체 들고 오신 거예요? 아니면 여기서 뽑아요?”
“다 뽑아서 왔죠. 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감염자 것도 하나 있습니다.”
“네? 이……. 지금 돌아다니는 저것들요?”
“네.”
“어떻게…….”
“몰라요. 정유현 교수가 잡았는지 어쨌는지. 군인입니다.”
“아……. 군인들.”
김 주무관은 이순규가 건넨 검체를 받아 들고는 얼마 전 이 주무관과 둘이 몰래 나가 창문 틈새로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 으악!
방송 때문에 나갔는데, 나갔을 땐 이미 군인들이 아작이 나고 있었다.
나름 탱크도 있었는데 그 안에 있던 군인이 끌려 나와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 덕택이라고 하면 너무 죄책감이 드는데, 하여간 그쪽으로 감염자들이 다 몰려간 바람에 둘은 실로 오랜만에 해를 봤다.
동시에 너무 많은 피도 봐서 속이 울렁이긴 했지만.
“자……. 이제 한 8시간? 10시간? 기다리면 됩니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군요.”
“네. 그……. 자리가 좀 협소하긴 한데…….”
“괜찮습니다. 묶여서 자는 것보다는 나으니.”
“네?”
“아뇨,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