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연구소 (1)
“괜찮을까?”
“나도 모르지. 근데……. 지금도 사실 괜찮지는 않아.”
이순규는 유현의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메고 있는 가방 무게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덩치가 커져서 그런가. 조막만 해 보였다.
“그래, 그렇지. 괜찮지 않지.”
유현은 이순규의 말이, 친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감염자가 되었는데.
그것도 이런 뭣 같은 바이러스에.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환자를 보다가 이에 주먹이 스쳤을 뿐이었다.
“일단 이쪽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엄호할게.”
유현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은 인원을 가리켰다.
김현철 소위가 병사와 오면서 총을 세 개나 메고 왔던 바람에 꽤 여럿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래 봐야 딱히 믿음직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감염자들이 진짜로 몰려든다면, 저 정도 병력은 한주먹거리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혹시 이상 소견 보이면 바로 튀어.”
“그래야지. 나도 겁나. 두렵고.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네.”
이순규는 이름처럼 순하게 웃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 환자 앞에서 지었을 법한 웃음이었다.
평생 남을 돕기로 작정했던 사람이 감염자가 되어 격리되었다가, 다시 남을 도울 수 있게 되어 기쁜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래……. 그럼 내려가자.”
“응. 내가 앞장설게.”
유현은 그런 이순규의 뒤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열었다.
“없어, 이 앞에는.”
이순규가 냄새를 맡아 감염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하지는 않았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확실해야 하지 않겠나.
해서 카메라를 통해 밖을 본 후에야 움직였다.
덜커덕
둔중한 소리에 이어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생각보다 소리가 커서 유현은 문을 차마 더 열지 못했다.
혹 안으로 뭐라도 하나 뛰어 들어오면 어쩐단 말인가.
“알아서 나갈게.”
“그래. 전화 들고 있지?”
“들고 있지.”
이순규는 그렇게 작게 난 틈 사이로 몸을 욱여넣고는 밖으로 향했다.
“후우…….”
나와서는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생각해 보니 감염된 이후로 이렇게 혼자 있어 본 적이 처음이었다.
밖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갇혀 있었다.
묶여 있었고.
친구에 의해.
‘유현이…….’
원망?
그런 것은 없었다.
‘이게 해결이 될까?’
오히려 운이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들과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이런 생각조차 이어 나가지 못했을 테니까.
‘이 근처 골목엔 없군. 대부분 저기……. 저 안에 몰려 있어. 하긴, 저기 먹을 게 많았겠지.’
하여간 심호흡하면서 들어온 냄새로 미루어 볼 때 이 근처는 그나마 깨끗했다.
상가 쪽으로 다 몰려 있었다.
수는 많았다.
처음엔 저렇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그사이 엄청나게 불어 버렸다.
저벅저벅
이순규는 그런 생각을 억지로 털어 내고는 걸음을 옮겼다.
맞는 신발이 없어 양말을 세 겹으로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워낙 굴곡져서 발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혹……. 공격당하면 도망갈 때 힘들겠는데.’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딱히 도망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미 호르몬 분비가 크게 줄어든 자신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 아닌가.
그럼 저들은 어떨까.
벌써 알아차린 지 오래일 터였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건, 동족으로 인식했다는 뜻일 터였다.
‘저긴가……. 정말 가까운 데 있네.’
일부러 한적하면서도 동시에 연구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은신처를 잡았다고 하더니, 현재 이순규 걸음으로 30분도 채 안 걸었는데 목적지가 보였다.
와 본 적이 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철골 구조가 꽤 인상적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중간에 다리가 있어서 그런가……? 완전 다르네.’
이순규는 바로 연구소 쪽으로 직행하는 대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걸 엉망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
“지옥……. 인가.”
여기저기 망가진 차량이 널려 있었다.
소름 끼치는 건 아웃 브레이킹 당시에 부서진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죄다 트럭이나 장갑차를 들이받았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투둑
이순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다가, 반쯤 부서져 있던 보도블록을 밟았다.
무게가 워낙 나가는 상황이다 보니 뚝 하고 부서지면서 소리가 울렸다.
“음?”
“어?”
동시에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성대마저 변해 거칠게 울리는 소리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게 사람 소리인지 아니면 들짐승 우는 소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헷갈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감염자……. 크다……. 이런 건……. 이런 건 처음 보는데.’
그중 제일 앞장서서 나타난 것.
아니, 감염자는……. 키가 무려 3미터가량 되는 것 같았다.
키만 큰 게 아니라 옆으로도 떡 벌어져 있다 보니 이건 그냥 괴물이었다.
왜 탱크가 퍼져 있나 했더니 이거 때문인 듯했다.
“흐으…….”
이순규는 상대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자신도 모르게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공포.
거대한 야수를 앞에 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공포가 이순규의 발을 끈적하게 붙잡았다.
“킁, 킁킁.”
이게 주먹을 휘두른다면 어떻게 될까.
제아무리 2미터가 훌쩍 넘게 자란 이순규라 해도 바로 죽게 될 터였다.
물려고 애를 쓴다면?
머지않아 이들처럼 될 터였다.
아니면 잡아먹히든가.
‘위생 상태는……. 개판이로군.’
이래저래 수틀리면 죽는단 생각이 들어서일까?
이순규는 오히려 침착해져서 상대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놈들은 덩치와 잔여 이성 수준이 반비례하는 거 같지……?’
차를 몰던 놈들, 총을 쏘던 놈들 모두 호리호리했다.
그래 봐야 제대로 된 이성이 남아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처럼, 그저 괴수 같아 보이진 않았다.
“킁, 킁.”
상대는 냄새는 맡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놈들도 같이 잔해 사이로 흩어졌다.
‘피 냄새가…… 났어.’
생피 냄새.
다시 말하면 피비린내.
‘누군가 방금 잡아먹혔나…….’
어딘가에 생존자라도 있나 싶었다.
하긴 그럴 만해 보이는 정경이기는 했다.
이순규가 있던, 그러니까 유현과 우식이 고른 곳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연구실과 더불어 고층 빌딩과 오피스텔 그리고 그 너머에는 아파트 단지까지 있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못해도 살 사람은 살아 있지 않을까.
‘아니, 아냐. 일단은…….’
방금 괴물에게도 확인받지 않았나.
뭐가 되었건 이순규는 본인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거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구실을 향해 곧장.
“와…….”
가까이에서 본 연구실 건물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래도 한때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부처의 핵심 건물이었을 텐데.
유리창은 죄 박살이 나 있고, 여기저기 피 묻은 집기들이 널려 있었다.
그 와중에 시신이라기보단 잔해로 남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게……. 이게 남아 있을까.’
이순규는 가방에 담긴 것들을 떠올렸다.
뽑아 온 피들이 들어 있었다.
‘우식이가 2층에 있다고 했지.’
2층으로 향하는 길목에 밀어 젖혀진 것으로 보이는 책상 뭉치가 놓여 있었다.
계단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던 모양인데, 딱히 뭘 막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죄 유리였으니까.
감염자들이 육탄으로 그걸 깨고 들어올 작정을 했다면, 그야말로 단숨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곳엔 아까 봤던 그런 놈들도 있었으니.
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2층이었다.
‘그나마……. 의사 한 게 다행이네.’
여상하게 표현했지만 실은 끔찍한 광경의 연속이었다.
배 부근이 파헤쳐진 채 버려진 시신도 방금 보았다.
아마 의사가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간 끔찍한 상상을 해 와서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이순규는 2층 복도를 따라 걸었다.
‘음?’
걷다 보니 어떤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
움직이는 소리.
숨 쉬는 소리 등등.
미약하지만, 이건 살아 있는 무언가의 소리였다.
‘아……. 여기 연구실이니까 쥐가 있나.’
실험용 쥐들이라면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일반적인 시궁쥐에 비해 워낙에 작지 않나.
감염자들 입장에서는 한 입 거리도 안 되게 느껴질 테니, 애초에 사냥에서 배제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아닌데……?’
그러나 우식이 알려 주었던 연구실에 가까워져 가면 가까워질수록 숨소리가 좀 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근처 벽 그리고 문에 무언가로 두들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큰 개체는 아냐. 기껏해야……. 나보다도 작을 거 같은데.’
더 큰 개체.
아까 그 괴물까지 갈 것도 없이, 좀만 더 큰 개체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부서졌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문은 어찌 되었건 여전히 굳건히 견디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여긴데.’
이순규는 우식이 그려 준 설계도를 내려다보았다.
설계도라고 해 봐야 간단한 지도에 불과했다.
계단이 어디에 있고, 연구실은 어디에 있다 뭐 이런 수준의 지도.
“계십니까.”
하여간 이순규는 무식하게 문을 두들겨 부수는 대신 입을 열었다.
저들과 비슷하게 거친 목소리였다.
원랜 환자들이 좋아하던, 밝고 부드러운 소리였는데.
“괜찮습니다. 최우식 서기관이 보내서 왔습니다.”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해야 할 말은 그대로 이었다.
계십니까 할 때는 조용하더니 최우식 이름을 얘기하니, 부산스러워짐이 느껴졌다.
‘적어도 둘.’
이순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이가 없네.’
그리고 곧 자신이 그걸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이런 건 정유현, 그 괴물 같은 놈이나 할 수 있던 건데.
호르몬 탓일까?
아니면 그로 인해 이런저런 기관이 변해서일까.
“누, 누굽니까.”
“이순규라고 합니다. 한국대학교 병원 정신과 교수입니다.”
“정신과……. 그런 사람이 왜…….”
“정유현 교수 친구예요. 같이 세종에 내려왔습니다.”
“아.”
하여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최우식이고 정유현이고 죄 질본에서는 모르기 어려운 이름들 아닌가.
팬데믹 사태가 발발한 이래 내내 최선봉에서 싸워 온 이들이었다.
특히 정유현은 외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언을 해 준 사람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경고도 했었고.
“어, 어쩌지?”
“열어야지.”
“그랬다가…….”
“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 본 적 있어?”
“그건……. 아니지.”
“절차 기억만 남는다고 했잖아. 우리가 지켜본 바에 의해서도…… 그래.”
“하긴.”
게다가 여기 남은 이들은 최우식과 정유현의 말을 믿고 이 시기를 준비하려던 사람들이었다.
그 시기와 정도를 예측하지 못해, 이제 다 죽었구나 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나마 실험실이, 그러니까 검사 기기나 시약 등의 이유로 외부 벽이 유리창이 아닌 시멘트벽으로 되어 있어서 여지껏 버틸 수 있었다.
끼익
이제 살았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연 이들은 곧 이순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이런 시발!”
“사람 얼굴 보고 욕을 하시네.”
“으, 으어.”
“기절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