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95화 (95/323)

95화 상가 (3)

이순규는 꽤 자연스럽게 걸었다.

벌써 한동안 이렇게 방에서 거닐었던 모양이었다.

“너…….”

“그래, 좀 됐어. 어느 날인가……. 이거 혼자 얼마든지 풀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도 참았어.”

이순규는 바로 방에서 빠져나가는 대신 말을 이었다.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면서였다.

그러고 보니 손목에 자국 하나 남아 있질 앉았다.

“내가 이걸 풀어도…… 괜찮을까. 혹 공격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어떤데, 지금은.”

유현은 언제든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는 것을 보아하니 괜찮을 것 같았지만.

딱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 다른 사람 물어 가고, 찢어 먹고, 구워 먹는 걸 보지 않았나.

지금도 하늘을 봐라.

맞은편 하늘을.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저 연기가 무엇인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괜찮잖아. 별로……. 공격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런 욕구가 없어.”

“그건……. 흐음. 안정제도 안 들어가고 있지?”

“응.”

엄밀히 말해서 이순규와 저 밖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다른 존재이긴 했다.

원인이 된 바이러스가 좀 다르긴 하니까.

하지만 모체가 된 바이러스는 같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까지 달라졌다고?

“으음…….”

“나도 고민을 많이 해 봤어. 나는 뭘까.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취했던 여러 조치들 중 하나라도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자연적으로 사멸이 된 걸 수도 있고. 원래 바이러스라는 게 면역력으로 이겨 낼 수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아니면…….”

“보균자로 남은 걸 수도 있지. 알아, 나도. 하여간 지금 당장은 증상이 없어. 그걸로 일단 된 거지.”

이순규는 순한 미소와 함께 문을 열었다.

“어어, 시발.”

마침 가까이에 있던 이진호 형사가 욕설과 함께 옷장으로 달렸다.

옷을 꺼내기 위함일 리는 없었다.

그 안에 든 총.

총 생각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만요!”

유현이 그를 말렸다.

어차피 이진호가 마음이 급한 것이지 다리는 다 낫지 않은 상황이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교수님! 그러게 제가!”

“괜찮아요.”

“뭐가. 뭐가요!”

“저 같은 방에 있었잖아요.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렇지, 순규야?”

유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옷장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여차하면.

그래, 여차하면 쏴야 했다.

어쩌다 보니 이 그룹의 장이 되어 버렸으니.

모두의 목숨과 미래가 내게 걸려 있으니.

“그래. 맞아. 괜찮습니다. 물론……. 이렇게 계속 돌아다니겠다는 건 아니에요. 일단 유현이랑 한번……. 확인할 게 있어요.”

“어, 그래요. 확인을……. 해야 합니다. 재원아.”

“어……. 저요? 저도요?”

재원은 제일 먼 곳으로 튀어 있었다.

유현과 뭐 할 때는 같이하긴 하지만.

또 이순규가 뭔가 다른 것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무섭지 않나.

방금도 저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똑똑히 본 참인데.

“괜찮아. 네가 맨날 괜찮지 않아요? 했잖아.”

“그건……. 나 혼자서는 좀 어려워.”

“선배, 제가 갈게요.”

재원 대신 나선 이는 우식이었다.

유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넌……. 넌 가족이나 지키고 있어.”

“아뇨. 저 공무원입니다. 할 일은 해야죠.”

“지랄……. 공무원들이 맨날 세금 축내는 거 모르냐? 지금도 그냥 축내고 있어. 일단.”

“아뇨, 아니에요. 지금 이순규 선배 행태……. 이거 보고해야 할 사안에 해당해요. 감염자……. 이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번 신종 변형 감염자 중 아마 최초일 겁니다. 제가 이런 거 분류하고 정리하는 거 여기서 제일 잘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반박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아하니 가족과도 얘기가 된 모양이었다.

우식의 아내는 그저 고개를 세게 끄덕일 뿐, 별말이 없었다.

‘하긴……. 제수씨도 저거……. 보통 독종 아니지.’

지금이야 애 때문에라도 이러고 있지만.

아마 위험해지면 뭐든 할 수 있을 사람일 터였다.

기재부라는 곳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나.

그 안에서도 승승장구할 정도로 악바리였다.

“아무튼, 가자. 그럼.”

“네, 선배.”

“저도요.”

“그…….”

어쩌다 보니 오예리도 끼어들었다.

유현은 뭐라 하려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가자는 건 아니지 않나.

우선 확인이나 해 볼 요량이었다.

“그럼 재원아, 이진호 형사. 잘 부탁합니다.”

“네.”

해서 유현 일행은 한 층 아래에 있는 학원으로 내려갔다.

말이 학원이지 창고 및 감옥으로 쓰이는 시설이었다.

수감자는 군인.

정확히 말하면 군복 입은 감염자였다.

“여기지?”

이순규는 한 번도 내려와 본 적 없는 길을 잘도 걸었다.

“냄새로 안 거야?”

“어.”

“코가……. 예민해지나?”

“다른 냄새는 딱히. 그냥……. 이 특유의 냄새가 있어.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이순규는 문 앞에 서서 책걸상을 이리저리 밀었다.

소음이 발생하자, 안에서 버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전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먹이는 양이 턱없이 부족해서일 터였다.

“역시 죽어 가고 있었군, 그래.”

이순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그것이 의아했다.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 그래, 백번 양보해서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죽어 가는 걸 알아?

그건 이상한 일 아닌가.

“어떻게……?”

“뭐라 말하기가 좀 그래. 보통 사람이 냄새로 이런 걸 알지 않잖아.”

“그렇지.”

“근데 짐승들은 가능하지?”

“가능……. 하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의사소통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인간이야 말을 할 수 있으니 그런 게 다 퇴화된 것 아니겠나 하는 의견이, 의료계 주류 의견이었다.

“나도 그게 가능해진 모양이야. 짐승이 된 거지. 일종의.”

“뭐……. 그렇게 말할 필요 있냐?”

“묶였다가 풀렸으니 좀 나은가.”

이순규는 뼈 있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으…….”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악취가 풍겨 왔다.

방금 나눈 대화 때문인지, 오늘따라 병사가 더더욱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그래, 짐승 같아 보였다.

그것도 학대받는.

‘혹시…….’

저거 보고 동종 의식 들어 가지고 휙 도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과 함께 유현은 오예리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총을 꺼내 들고 있던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라는 뜻이었고, 실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간 오예리는 그만큼의 신뢰를 유현에게 심어 주었다.

“음.”

그러나 이순규는 달려드는 대신 병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말이 쪼그려 앉은 것이지 덩치가 하도 커져서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나랑 비슷한 걸 느끼나 본데.”

“그러게. 이러는 건……. 처음 봤는데.”

이제 병사는 유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와서 때리기는커녕 밥을 주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묶여 있지 않나.

게다가 배에 뭘 찌르면 정신을 잃었다.

그로 인한 두려움을 유현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처음에 보였던 공격성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 이것은 확연히 달랐다.

‘안심…… 했어.’

유현은 그런 생각과 함께 우식을 돌아보았다.

이 녀석도 밖에는 안 갔지만, 여기까지는 자주 오지 않았나.

아까 말했듯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에 있어 전문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르네요. 정말……. 뭔가…… 뭔가 통하는 게 있는가 본데요?”

“여러모로 그렇지. 근데 아마 냄새일 거야.”

이순규는 자신의 외양을 가리키다가 이내 코를 훌쩍였다.

그러곤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은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길거리는 텅 빈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가의 7층은 그렇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고래고래 소리치던 사람들이 힘없이 창가에 늘어진 채 있었다.

“괜찮을 거야.”

이순규는 유현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리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저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유현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야, 야.”

그러나 유현은 이순규를 말렸다.

“왜.”

“네가 공격을 받지 않을 확률은……. 그래, 있어. 있는데, 네가 데려올 사람들은 공격받을 거야. 그거 보호가 되겠어? 저것들……. 감염자끼리 잘 안 싸우는 거지, 싸우긴 싸워.”

봤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딱 물고 나면 그냥 그대로 두기도 했다.

사람이 죽는 건, 이대로 물기 어려울 경우에나 그랬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그러니까 감염을 위한 습격이 아니라 사냥을 위한 습격을 하면서부터는 경쟁이 있었다.

“나도 보긴 봤어. 그래도……. 하나라도 구하면 좀 알 거 같아서 그래.”

“뭘?”

“아, 내가 아직 사람이구나.”

“아니, 야……. 너 사람이야. 지금도 봐.”

“공격하지 않아서? 그런 빈약한 근거가 얼마나 도움이 될 거 같냐. 잊고 있겠지만…… 나도 의사야. 사람 살리고 싶어서, 의사 됐어.”

“그…….”

이순규.

그의 의대생 시절 그리고 레지던트 시절부터, 군의관, 펠로우 그리고 교수 시절까지 다 기억하는 유현으로서는 뭐라 말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어느 때고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그리고 또 의사다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 이순규여서 그랬다.

그에 비하면 유현은 차라리 좀 냉정한 편이었고.

“그래도. 실패하면 저 사람들도 다 죽어. 지금 아마 바리케이드 치고 있을 거야.”

“너……. 그럼 그냥 내가 어떤지 확인하려고 내려온 거야?”

“아니, 그건 아냐.”

덕분에 유현은 이순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정말 괜찮으면……. 적들이 널 공격하지 않는 게 확실하다면.”

“말해 봐.”

다행히 이순규는 그런 유현의 선택을 존중하는 편이었다.

유현이 이순규에게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던 것처럼, 이순규 또한 유현에게 같은 것을 느끼고 있어서였다.

“넌 검사실에 갈 수 있어.”

“검사실…….”

그 말에 우식이 눈을 빛냈다.

언젠가 유현과 함께 갔다가 죽을 뻔한 그곳.

거기는 아마 여기보다 사정이 더 나쁠 게 뻔했다.

당장 확인했던 감염자들 수가 몇 배는 되었으니까.

게다가 식당가가 있어 먹을 것도 풍족한 곳이다 보니, 아마 거대화된 개체들도 많을 터였다.

다시 말하면 유현이나 우식은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사실 의미 없는 짓일 가능성이 커. 다 망가졌을 수도 있고……. 전기가 안 들어올 수도 있고.”

“음……. 가서 의미가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지?”

“우선 네 피에서 바이러스가 있는지 아니면 사멸했는지를 볼 수 있지. 있다면 변이를 일으켰는지 어쨌는지도.”

“아……. 그리고 저 사람 피도 볼 수 있을 것이고. 네가 말하는 냄새의 근원이 뭔지 한 번 더 들여다볼 수도 있을 거야.”

“그럼…….”

이순규는 창가를 돌아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긴 무리다.

어차피 죽는다.

뭐 이런 생각을 억지로 해냈다.

“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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