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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94화 (94/323)

94화 상가 (2)

그래.

인육은 영양학적으로도 그렇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에게 그리 좋은 영양 공급원이 될 수 없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는 게 왜겠나.

‘무엇보다……. 다른 질환에 감염될 수 있지.’

동물은 인수 공통 감염병에 한해서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데 반해, 인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감염병을 그대로 섭취자에게 옮길 수 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겠지만, 바로 이것이 식인을 하는 집단이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였다.

인신 공양에서 어린 처녀를 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라, 의사들은 추정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감염병의 가능성이 적고 동시에 성병도 없어서이리라.

“저걸 먹고 있다는 건…….”

“저 집단에 괴사가 올 거라는 얘기야. 문제가 있다면 그 전에 이 근처가 초토화될 거란 거지.”

이순규는 우묵한 눈으로 유현을 향해 말했다.

답답할까 봐 일부러 창이 있는 방에 두고 있었는데, 단순히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순규의 이성은 확고히 남아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풀어 놔도 되는 거 아닌가?’

저 정도면 감염이 되어도 괜찮은 것 아닌가?

어쨌건 저 눈앞에 있는 놈들처럼 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아니, 아니지…….’

그러다 이순규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떠올리고 나니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당시 이순규는 안정제가 없이는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했다.

아니, 안정제가 들어가는데도 폭발했다.

단지 심리적인 문제만 우려되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수명.

호르몬의 균형이 정교하게 잘 맞아도 인류는 100년을 채 못 살지 않나.

저만큼 폭발하면서, 이순규의 수명은 대체 얼마나 줄었을까.

아마 바이러스의 폭주가 멈춘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정말로 머지않았을 수도 있다.

타다당

탕상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바깥 상황 때문이었다.

2층에서 뛰어내린 감염자들은 기어코 트럭 위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감염자가 뛰어든 트럭은 곧 전멸이었다.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지 않나.

게다가 거대화된 개체도 몇몇 끼어 있었다.

“쏴!”

“으, 으아아!”

“도망가지 말고 쏴! 어차피 도망가면 다 죽어!”

“사, 살려 줘!”

제아무리 서진우 소령이 명을 내려도 소용이 없었다.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린 인원들이 총을 든 채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됐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골목에서 감염자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홀로 떨어진 병사들을 채 갔다.

그 자리에서 물어뜯기기도 했지만 절대다수는 말 그대로 잡혀갔다.

왜 저런 번거로운 일을 할까.

이유는 뻔했다.

“이거……. 이걸 그대로 둬도 될까요?”

오예리 형사가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이미 장롱을 향해 있었다.

저 안에는 김현철 소위가 건넨 총이 들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쓸 일이 없었다.

안전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이 더 위험해지면서 바로 옆에 있는 병원 건물조차 가지 못하게 되었다.

“소리가 나면 위험해요. 순규 말대로……. 여기가 타겟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긴……. 1층이 철문이잖아요. 창문도 다 샤타 내려가 있고요.”

“그래서 안전했죠. 근데 오늘 저것들 하는 거 보니까…….”

보통 사람들조차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이 상황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나.

인터넷에 보면 주거 밀집 지역은 더 심한 듯했다.

그렇게 나온 이들은 대개 저들의 일원이 되거나 밥이 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밖으로 나오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호르몬이 미쳐 날뛰는 저것들은 어떨까.

“맨손으로라도 철문 뜯을 거 같은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도울 수 있으면 도울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유현은 탱크와 장갑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트럭?

트럭은 이미 끝났다.

저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타다다당

“이런 미친.”

총을 빼앗긴 채, 그 총에 맞아 죽는 병사까지 나오고 있었다.

감염자들 중 일부가 총을 쏘고 있다, 이 말이었다.

다행히 조준 사격까지 해내는 놈은 없었지만.

일단 쏜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다다다다다다

그나마 장갑차는 건재했다.

총으로 뚫을 수 없는 장갑을 지닌 차량은 운신이 자유롭지는 못해도 총질을 멈추진 않고 있었다.

그렇게 꽤 여러 감염자들이 죽었다.

병사들이 더 죽었지만.

“물러간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유현의 중얼거림처럼 감염자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시신을 끌고서였다.

개중에는 감염자의 시신을 끌고 가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뭐가 되었건 먹을 것을 구했으니, 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거리는 삽시간에 비었다.

남은 건 탱크, 장갑차와 트럭의 잔해 그리고 감염자들이 몰고 왔던 차량들뿐이었다.

“이런 미친…….”

서진우 소령은 살아남았다.

트럭 앞자리에 운 좋게 끼어 들어간 덕이었다.

감염자들이 적극적으로 공격했다면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감염시키는 것보다, 생존에 더 주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살았다.

그리고 서진우는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이런 미친…….”

적이 물러가고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서진우는 차에서 빠져나왔다.

얼빠진 얼굴의 운전병을 대동한 채였다.

손발이 후들거렸다.

상황은 이미 지나갔지만 눈앞의 참상은 안정을 허하지 않았다.

피로 물든 거리.

조각난 시신.

감염된 채, 신체가 망가져 울부짖는 무언가.

그리고 시신이, 부하들이 끌려간 핏자국들.

“위험합니다! 퇴각을…….”

“퇴각하면, 퇴각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살아야죠!”

“끌려간 애들 두고? 나는……. 나는…….”

“아직 살아남은 애들 있습니다. 걔들은 살려야죠.”

멍하니 있던 서진우에게 상사 하나가 달려가 조언했다.

합리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살려 달라고!”

“우리 다 죽게 생겼다고!”

“세금으로 먹고살았으면 좀 살려 줘!”

특히 상가 7층에 갇혀 죽을 날이 유예된 이들에게는 그랬다.

“어…….”

“무시하십쇼. 이대로는 안 됩니다. 아까 보셨잖아요. 저 건물. 저 건물 안에 저 새끼들 가득 차 있다고요!”

아마 아까의 서진우였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돌진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어쩌시려고요? 보니까 한둘만 있어도 다 죽겠더만!”

“그…….”

“일단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재정비해서 옵시다! 예?”

“그래도…….”

“아, 진우 형! 우리 다 죽는다고! 애들 얼굴 좀 봐요! 싸우겠어? 싸우겠어요?”

상사에게 쉬이 설득되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누가 저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전투의 양상은 거의 일방적이지 않았나.

저들은 너무 강했고, 무엇보다 망설임이 없었다.

인간을 그저 감염 대상 또는 사냥감으로만 봤으니까.

그에 비해 군은 아니, 인간은 아직 인간이었다.

괴물이 되지 못했다.

“그…….”

서진우는 상사의 말에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핏기가 죄 사라져 있었다.

같은 경험을 했고, 또 같은 광경을 보고 있으니 당연했다.

전우가 처참하게 죽어 나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또 가라고?

“가세…….”

“그래요. 일단 갑시다! 저 새끼들 안 돌아갔으면 우리 진짜 다 죽었을 겁니다!”

상사는 너무나도 다행이란 얼굴로 서진우 소령을 잡아끌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병사들도 모두 겁먹은 상황이었다.

다 죽을 뻔했으니까.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야, 야! 그냥 가?”

“살려 달라고, 시발 놈들아!”

서진우 소령의 명령과 함께 장갑차, 탱크 그리고 그나마 성하게 남아 있던 트럭 두 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상가 7층의 생존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잘 먹지도 못했을 텐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맞은편에 있던 유현에게까지 똑똑히 들릴 지경이었다.

“그냥 가!”

당연히 군인들에게도 들렸다.

병사 중 정말 소수가 웅성거렸다.

그러자 상사가 빽 하고 소리쳤다.

지랄 말고 도망가자는 뜻이었다.

“어어, 저……. 저 시발 놈들이.”

“아……. 우리 어떡해요?”

“이런 망할…….”

그렇게 군대는 꽁무니를 빼고 빠져나갔다.

상가 쪽에 남아 있던 이들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유현은 망원경으로 그들을 모조리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저긴 뭐가 없어.’

지금 이 은신처에 남은 식량은 아껴 먹는다면 대략 석 달은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석 달.

꽤 긴 시간이지 않나.

아마 그 시간이면 애초에 주거 지역도 아닌 이곳은 감염자들에게도 버림받은 땅이 될 터였다.

그 말은 저 상가에 먹을 것이 있다고 해도, 굳이 나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갈 필요는 없지.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길에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유현은 생각을 정리하고 오예리를 돌아보았다.

하고 많은 직업 중에 경찰을, 그중에서도 형사를 고른 오예리는 그런 유현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저들은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물리적인 한계로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있긴 했지만.

그래서 더 처참해 보였다.

“어렵죠. 아무도 안 보이지만…….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저 안에 아마 가득 차 있을걸요. 아까 보셨잖아요.”

“그건……. 그렇죠. 하긴.”

오예리는 이진호를 돌아보았다.

나간단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려 오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죽음의 공포는, 지척으로 다가왔던 공포는 쉬이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라도……. 나라도 저렇게 됐을 거야.’

오예리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안으로 향했다.

유현도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러곤 이순규에게 향했다.

딱히 그를 보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그 방에 있는 창문도 닫아 주기 위함이었다.

“유현아.”

그렇게 들어갔더니, 이순규가 자신을 불렀다.

유현은 왜 그러나 하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왜.”

“저 사람들……. 내가 구해 볼까?”

“어……?”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순규가 말을 이었다.

어느새 포박이 느슨해져 있었는지 팔을 이리저리 잘도 움직이고 있었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감염자들끼리는 적으로 인식을 안 해.”

“거기 네가 들어갈지는 모르는 일이야. 넌 다르잖아.”

“다르다고?”

“다르지.”

“그래, 다르지. 이성이 온전……. 온전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들보다는 많이 남았으니까. 하지만 난 어쩐지 같은 거 같아. 그리고.”

“그리고?”

이순규는 어느새 몸을 일으킨 후였다.

‘언제……. 언제 풀었지?’

유현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답을 기다렸다.

달려들면 대응할 생각이었다.

가능할까?

그건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순규는 식사량이 줄었고, 근육도 꽤 빠졌다.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이순규가 말했다.

달려들진 않아서, 유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밑에 감염자 있지?”

“어……. 어떻게 알았어?”

“냄새. 아마 호르몬 때문이겠지.”

“냄새……?”

“그래. 냄새가 나. 나도 그런 냄새가 난다면, 아마 감염자가 날 적으로 인식하진 않을 거 같은데…….”

냄새라.

그래, 호르몬은 냄새에도 관여를 하지.

그게 피아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건 확인해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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