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상가 (1)
유현은 그저 주시했지만, 거리에 있던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유현의 은신처 맞은편 상가.
그중에서도 작은 학원
그 안에 있던 이들은 이제 한계였다.
그나마 누군가의 기지로 계단에 책상과 걸상을 쫙 던져 놔 접근을 막기는 했지만.
엘리베이터 문 앞에도 책상을 쌓아 안전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여기! 여기 살려 주세요!”
안전하면 무엇 하나.
먹을 것이 없는데.
“제발 살려 주세요!”
아니, 안전한 건지조차도 의심스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가끔 보이는 거대한 감염자는 이 밑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모두 치우려면 치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처음부터 이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어제도……. 어제도 이 근처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살려 주세요!”
전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조용히 있으면 마치 이 건물에 7층, 꼭대기 층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으니까.
이제 이유를 알았다.
‘이젠……. 이젠 곧 우리 차례야.’
이놈들.
사냥하기 쉬운 것들부터 노리고 있었다.
차라리 초반에 사냥당한 이들은 행운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감염’이 되었을 뿐, 죽지는 않았으니.
그러나 이젠 먹을 게 부족해서 그런가 더 이상 감염만 시키질 않았다.
잡아 먹혔다.
산 채로.
때로는 요리되어서.
“시발! 살려 주세요!”
어제 본 그 충격적인 광경이 떠오르자 욕지기가 치밀었다.
책상을 던져 막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만큼이나 침착했던 학원 원장이 발작하듯 외쳤다.
학생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또한 어제 같은 광경을 봤으니까.
쿵 소리와 함께 옆 건물 창문에서 떨어져 내린 사람들을.
그 뒤로 습격하던 감염자들과 그 후로 벌어진 참상까지도.
“시민들이 구조 요청을 해 오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들의 비명은 군인들에게도 똑똑히 전달되었다.
서진우 소령은 그 비명을 들으면서 경고문을 떠올렸다.
‘이쪽에서……. 하사 하나가 죽었다고 했지?’
살아 돌아온 지휘관과 다른 간부는 엉뚱하게도 사단 지휘 본부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 둘만이 아니라 그냥 지휘 체계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들었다.
사단장을 포함해 수많은 간부가 죽어 버린 탓이었다.
실제로 서진우 소령은 어제 사단장 아니, 사단장이었던 감염자를 목도하지 않았나.
총에 여러 발을 맞아 죽어 버린 후이긴 했지만.
“함부로 접근하지 마! 어제 봤겠지만, 감염자들이 다가오면 즉각 발포해야 해!”
“네!”
하여간 어제 사단 본부를 밀면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하 몇을 잃기는 했지만.
사단 본부라는 곳이 좁은 곳이 아니다 보니 한두 부대가 진주한 것이 아니었고.
덕분에 괴멸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철커덕
또 살아남은 녀석들은 예외 없이 감염자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냥 위에서 경고해 준 것 정도가 아니었다.
‘총도 쐈지……. 미친놈들이.’
감염자들은 지능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이러스의 조종을 따를 뿐, 사람이지 않나.
정유현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따르면 절차 기억, 즉 운전과 같은 기억들은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남는 것 같다 했다.
“어제 봐서 알겠지만, 차량으로 돌격할 수 있으니까 트럭은 장갑차 안쪽으로 바짝 붙어서 와!”
“네!”
“탱크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발포해! 건물은 말고, 차에 대고.”
“네!”
처음 부하에게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을 땐 뭔 개소린가 했다.
지금 싸우러 가야 하는데 절차 기억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과연 사람은 뭐라도 알긴 알아야 했다.
세상에 트럭으로 돌진해 올 줄이야.
서진우 소령이 이끄는 부대는 운이 좋아 놈들에게 피격당하지 않았지만.
피격당한 부대는 거의 궤멸당해 버렸다.
뒤에 타고 있던, 군복 입은 감염자들이 충돌과 동시에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지휘관이 그들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필요하다면……. 전우에게도 총부리를 겨눌 수 있어야 해.’
하여 서진우는 스스로를 다잡고 있었다.
그 어떤 변수가 발생한다 해도, 설령 지독한 놈이라 욕을 먹는다 해도 냉정해야 한다고.
‘차……. 차만 조심하면 돼. 여기 왔던 부대는 총기가 없었어. 뭐……. 흉기를 휘두를 수는 있겠지만……. 그건 기껏해야 막대기나 칼이겠지.’
그래, 차를 조심해야 할 터였다.
탱크나 장갑차는 그래도 나을 테지만.
트럭은 생각보다 취약했다.
‘거……. 국방비도 어마어마하게 쓰면서 말야……. 고물차나 주고.’
명색이 소령인지라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지만.
하여간에 옆에서 들이받으니까 속절없이 흔들리거나, 넘어졌다.
후두둑
그때 무언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뭐야?”
“어……. 중대장님…….”
“왜, 뭔데. 뭐야, 이거. 뭔 빨간…….”
“위, 위를 보십쇼!”
옆에 있던 소위 하나가 하늘을 가리켰다.
당황한 얼굴로 위를 보니, 웬 덩치 큰 놈이 덜렁거리는 무언가를 휘두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아래로 흩뿌려지는 건 피였고.
“저, 저 시발 놈이!”
“조심하십쇼!”
화를 내려는데 소위가 태클을 걸어왔다.
쿵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시신이 방금까지 서진우 소령이 있던 곳에 떨어졌다.
아니, 던져졌다고 해야 할까.
“헉. 헉.”
저기 서 있었으면 죽었다.
그 생각이 나자마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살려 주세요!”
도망갈까?
대번에 이 생각이 들었는데, 상가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고 외치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해서 곧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죽을 게 확실했다.
“이런 젠장. 위! 위도 주시해!”
그렇다면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하여간 지금 이 사태야말로 군의 존재 가치 증명을 할 수 있는 시점이지 않나.
서진우도 살짝 그렇긴 한데, 동기 중 몇몇은 이때를 위해 군인이 된 것 같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고 있을 지경이었다.
쿵불행한 것은 서진우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벌써 시신 몇 구가 던져졌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거 몇 개 떨어진다고 해서 트럭이 전복되거나, 대량 살상 사태가 발생하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 어어어! 이거!”
“우, 우웁. 우웨에엑!”
맞아 죽거나 다친 이는 그야말로 중대의 티끌에 해당했다.
떨어진 시신 파편도 그리 많지 않았다.
“으아, 치, 치워 줘! 나……. 나 닿았어!”
“이, 이거 움직이는 거 아니지? 아니지!”
그러나 그 몰골이 지나치게 끔찍했다.
몇몇은 구워져 있었다.
이빨 자국도 남아 있었고.
사람의 형상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얼굴은 또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에게 죽은 사람의 얼굴이 주는 공포란 얼마만큼인가.
익숙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의 공포 그 자체라고 봐야 했다.
“이런 개새끼들.”
유현은 창가 근처에 딱 붙어서 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휘관은 잘하는 듯했다.
딱 봐도 차량 돌진을 경계하고 있었고.
병사들 또한 언제든 사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저기서 시신을 던져?”
“어떻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이순규 그 사람 후로 감염되던 사람들은 이성이……. 거의 없다고…….”
“바이러스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거라……. 저도 이제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오예리 또한 가까이 다가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옆을 보니, 김현철과 다른 병사 하나 또한 같은 상황이었다.
모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으아아!”
감염자들은 시신을 떨어뜨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차량을 운전해 왔다.
다행히 탱크가 재빨리 그중 하나를 폭발시켰지만.
두 대는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래 봐야 상대가 탱크다 보니 별 타격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들이받은 놈들이 죽어 나가는 느낌?
“어어, 뛰……. 뛰어내린다!”
“사격해! 망설이지 말고 쏴!”
그러나 2층, 3층에 있던 감염자들이 장갑차 위로 뛰어내리면서부터는 점점 문제가 심각해졌다.
대개 유리창으로 이루어져 있던 상가들 태반이 이미 감염자들의 영역이 된 지 오래라 가능한 일이었다.
“으, 으아아!”
장갑차 뒤에서 이동하던 트럭부터 아비규환이었다.
감염자들의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것이야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쏴!”
“하지만…….”
“지랄 말고 쏴! 사단에서 못 봤어? 어차피 다 적이야!”
서진우 소령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아마 다 죽었을 터였다.
타다다다당
좀 늦기는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대응 사격이 이루어졌다.
감염자들 몇이 대번에 뒤로 넘어갔다.
붉은 피를 흩뿌리면서였다.
‘됐어. 죽은 사람은 좀 안타깝지만…….’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주먹을 휘둘렀다.
총.
확실히 비대칭 전력이지 않나.
이거라면 감염자들도 어쩔 도리가 없을 터였다.
이성이 있다는 건 두려움도 있다는 것이니.
실제로 감염된 채 갇혀 있는 병사는 이제 유현을 두려워하지 않던가.
때리지도 않고 그저 가둬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현과 재원을 보며 낮은 울음소리만 내었다.
“으아아아!”
“계, 계속 쏴!”
유현의 예상과는 달리 감염자들은 끝없이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면서도.
“왜……. 도망을 안 가지?”
벌써 수십이 도륙당했는데도.
감염자들의 기세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왜 저러는 거죠?”
오예리 또한 이상하다는 얼굴로 유현을 향해 물었다.
오 형사가 비록 이쪽으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갈 일이 있으면 거의 함께해 온 덕이었다.
저들의 특성에 대해서는 아마 유현 다음으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배고프니까.”
답은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이순규였다.
그는 방 안에 홀로, 스스로를 묶은 채 입을 열었다.
“뭐?”
“그래……. 이제는 난 괜찮아졌어. 하지만 호르몬이 요동칠 때는……. 진짜 미칠 거 같았지. 약……. 안정제라도 맞지 않았으면 진짜 돌았을걸.”
이순규는 인상을 쓴 채 말을 이었다.
그때 느낌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내가 봐도……. 저것들은 나보다 이성이 부족해. 그 결과 더 흉포해지고, 더 감염을 잘 일으킬 수 있는 거겠지. 당연히 배고픔도 못 견딜 거야.”
“아…….”
“우리야 잘 지내고 있지만. 저기 앞에 상가 봐라. 저 사람들 전에는 죽을까 봐 찍소리 하나 안 내던 사람들이야. 유현이 네가 저기 갔을 때도 말 한마디 안 했고, 전에 군인들 왔을 때도 그랬어. 근데 오늘은 어때. 소리 지르고 있잖아. 지금도. 군인들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이 근처에 진짜 먹을 게 씨가 말랐구나. 하긴……. 그러니까 인육이라도 먹으려고 하겠지.”
“그래. 영양학적으로 인간은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아. 그만큼 저 새끼들……. 절박한 거야.”
“그럼…….”
“도망가라고 해. 아니, 아니다. 그냥 있어. 괜히 소리 내면 이리로 올 거야. 어떻게든 뚫을 거고.”
“이런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