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서울 (3)
“사주 경계…… 철저히! 그리고……. 더 천천히 간다.”
“네!”
군복 입은 병사.
얼핏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잘못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전에……. 전에 당했던 병사겠지.’
감염자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감염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당했다고 해서 다 죽었을 리가 없겠단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얘는……. 얘는 일단 안에 박자.’
영상에서 본 감염자는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좀비와는 영 몰골이 달랐다.
그냥 사람이었다.
덩치가 크고 사나울 뿐.
살이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았고, 얼굴이 망가져 있지도 않았다.
인터넷, 그중에서도 정유현이라는 사람이 운영한다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고는 하던데.
저번 부대가 진입하고 이제 고작해야 1주일 남짓 지났을 뿐 아닌가.
‘알아보면……. 아는 사람을 보면 난동 피울 수도 있어.’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해 보이는 놈이었다.
이런 놈을 줬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게, 다른 부대에 배정된 병사들 중에는 자살해 버린 사람도 다수라고 들었다.
그중 하나는 심지어 실탄을 지급받자마자 쏴 버려서,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군인들을 보면서 이 감염자 새끼들이라고 했다던가?
해서 지금 이 친구에게는 총을 주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 있어.”
“네? 네네.”
다행히 병사는 선선히 전차 안으로 들어갔다.
강바다 대위는 그런 병사를 뒤로하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런 대위에게 옆 전차의 상사가 말을 걸어왔다.
“중대장님.”
“어, 왜.”
“거리가 너무 한산한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산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강바다는 텅 비어 버린 도로를 보며 되물었다.
서울은 엉망이 된 지 오래라고 들었다.
실제로 휴가 나갔다가 복귀도 못 한 인원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그게 벌써 한 달도 더 된 일인데, 그때도 그랬으니 지금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러나 상사는 당연하다 생각지 않는 듯했다.
“그런 게 아니라……. 차가 너무 적습니다.”
“차?”
“여기 원래 빼곡하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차가.”
강바다는 그제야 텅 빈 도로를 보며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
차가 몇 대 놓여 있질 않았다.
그나마 놓여 있는 건 죄다 반파된 차량들뿐이었다.
그 말은 멀쩡한 차량은 누군가 옮겼다는 얘기였다.
동시에 유현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링크를 타고 가서 본 영상도 떠올랐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인터넷이 복구되면서 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하여간 거기서 본 좀비는 아니, 감염자는 진짜로 총을 쏘고 있었다.
대강 봐도 아무렇게나 쏘는 것 같긴 했지만.
하여간 쏘고 있었다.
그리고 총은 어떻게 쏴도 총알이 나가는 물건이지 않나.
나중에 가서 탄창이 비었음에도 쏘는 모습을 봤을 땐 안도도 됐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설마…….’
차도 모나.
몰 수 있나?
절차 기억이 뭐지?
이상하다?
감염자는 주변인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부우웅
그때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새삼스러울 것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어차피 주변이 죄다 차량이었으니까.
탱크만 무려 세 대에, 장갑 차량 7대 그리고 트럭들까지.
그들이 내는 소음은 아무리 저속 운행하고 있다고 해도 어마어마했더랬다.
“잠깐, 잠깐!”
그러나 방금 들린 소리.
그 소리는 이질적이었다.
“중대장님! 옆에!”
“옆에? 이런 시발. 이런 미친!”
차량 하나가 트럭을 옆에서 들이받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의 꼬리 부분이 뒤로 훅 하고 밀려났다.
가뜩이나 노후된 차량에, 노후된 타이어라 그런지 옆에서 주는 충격엔 무게가 무색하리만치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어어, 어!”
“시발 나 떨어…….”
뒤에 타고 있던 병사들 중 일부가 짐짝처럼 떨어졌다.
덜커덕
동시에 부딪쳐 온 차량의 문이 열렸다.
상대적으로 작은 감염자가 나왔다.
다다다다
그러나 그 뒤로 내달려 쫓아오는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뭐, 뭐가 저렇게 커……. 아, 악!”
그쪽으로 시선을 빼앗긴 사이, 작은 감염자가 떨어진 병사 셋을 물었다.
“발포! 발포해!”
“사람……. 사람인데요!”
“미친놈아! 그러다 전에 온 부대 싹 털렸어! 저기 안 보여!”
“네, 네!”
망설이던 병사들은 지급 받은 총기를 감염자들에게 겨누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감염자들 사이에 군복 입은 이들이 뒤섞여 있어서 그랬다.
타다다다당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총기가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달려들던 감염자들 태반이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었다.
타다다당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이미 쓰러진 이들에게 다시 한번 총알을 난사했다.
주로 머리통을 향해서였다.
좀비 영화 때문이었다.
거기선 총을 맞아도 머리가 무사하면 달려드니까.
“이런 미친놈이! 왜 안 죽어!”
하지만 감염자들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죽지 않는 놈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눈먼 총알 한두 발로는 속도가 줄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거대한 감염자가 쇄도했다.
퍽주먹이 날아들고.
병사 하나가 피떡이 되어 죽었다.
그사이, 무방비하게 달려들던 감염자 태반이 모습을 감추었다.
“계속, 계속 쏴!”
“아군이 있습니다!”
“그럼 조준 사격해!”
“너무……. 너무 빨라서!”
거대화된 감염자는 트럭 위에서 살상을 이어 나갔다.
누군가는 물리고, 누군가는 터져 나가고.
“그, 그냥 쏴!”
“아군이…….”
“내놔, 이 시발 놈아!”
이대로 두면 어차피 저 트럭은 전멸.
그리고 또 다른 트럭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거기도 전멸이었다.
인정에 이끌렸다가는 끝장이라는 생각이 강 대위 머릿속을 스쳤다.
탕탕해서 강 대위는 오사 위험을 무릅쓰고 총을 쐈다.
“니들도 쏴! 저거 날뛰면 다 죽어!”
고함을 쳐 가면서였는데, 다행히 몇몇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합리적인 판단에서였는지 아니면 단지 공포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마음으로 쏘든지 총알은 나갔다.
“억.”
“초, 총 쏘지 마아!”
확실히 쓰러지는 아군도 있었다.
“크아아아!”
하지만 감염자도 쓰러졌다.
“저 개새끼.”
혹시 모른단 생각에 강 대위는 총알 몇 방을 쓰러진 감염자에게 더 먹여 주었다.
그제야 아까 트럭에서 떨어진 병사들, 그리고 그 사태를 일으켰던 감염자가 떠올랐다.
“어디 갔어!”
그러나 그 자리엔 미약한 핏자국밖에 없었다.
“이, 일단 탱크랑 장갑차로 방어선 구축해야 합니다!”
“뭔 소리야.”
“저기……. 저기 좀 보세요.”
“이런……. 미친…….”
강 대위는 상사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골목마다 감염자들이 드글드글했다.
그중에는 시동 걸린 차량들도 있었다.
무턱대고 갖다 받고 돌진해 오면 어떻게 될까.
‘길이 넓다고 죽 늘어서서 온 게…….’
실탄이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차를 돌려 나간다?
그런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실탄 발포할 일 있으면 쭉 쏘고, 안전해진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밥이나 주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빠, 빨리!”
“장갑차 밖으로 빼! 트럭 안으로!”
“네!”
다행한 것은 감염자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중 얼핏 얼굴이 마주치는 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마치 두려움에 찬 것 같아 보였다.
‘죽은……. 감염자들을 보고 있어.’
묘하게 죄책감이 일려다 말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트럭.
그 위에서 죽은, 죽어 가는 부하들을 보고 있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린 애들이 있습니다!”
적들의 두려움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간은 벌었다.
그사이 기갑 부대는 포메이션을 바꿀 수 있었고, 그때가 되어서야 피해 상황도 파악할 수 있었다.
“어, 어쩌죠?”
물린 병사는 총 8명이었다.
아니, 3명은 사라졌으니 11명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강 대위의 눈앞에 살아 있는 병사는 총 8명.
그들은 핏발 선 눈으로 강 대위, 전우 그리고 총을 돌아보고 있었다.
‘병사가 도중에 감염되면 쏴도 좋다고 했지.’
아니, 쏘라고 했던가?
하여간 지침은 굉장히 강경했다.
그러나 중대장인 강 대위에게 이들은 부하였다.
여전히 명찰과 부대 마크를 달고 있는 부하.
“가만! 가만히 있어!”
총 들고 나선 병사들도 울면서 명령을 내렸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안 그러면 쏜다고.
쏘기 싫다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아까 트럭…….’
강 대위는 이상하게 트럭 위에 있던 감염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아군의 오사로 죽어 간 병사들도.
지금 바닥에 놓인 시신들 중에 그저 총알 자국만 있는 이들도 여럿이지 않나?
‘안 쐈으면……. 다 죽었어…….’
강 대위는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골목에 감염자들이 보였다.
틈이 보이면 달려들 것 같았다.
그 틈을 이놈들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묶여 있지만, 치료 방법도 없다고 했잖아.
“쏴. 어쩔 수 없어.”
“네? 그……. 이게. 제……. 제 동깁니다, 중대장님.”
해서 명을 내렸으나 즉시 총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총 든 병사들의 항의 아니, 호소만이 들려왔다.
“이리 내.”
“네?”
“내가 쏜다.”
강 대위는 결단을 내리고, 총을 받아 들었다.
감염자들이 웅성댔다.
“안 돼!”
“쏘지 마!”
그들 일부는 의미 있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아주 단편적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이들도 역시 살고 싶다는 걸.
“가, 강 대위님!”
“중대장님!”
“시끄러! 저기 안 보여! 군복 입은 새끼들 한가득이야! 얘들 어차피 다 저렇게 된다고!”
“그…….”
하지만 강 대위도 살고 싶었다.
여기서 죽어 나가고 싶진 않았다.
‘계엄령도 내렸겠다……. 서울도 이 지경이 됐겠다…….’
와 보니 알 수 있었다.
군인이.
직업 군인이 필요한 세상이었다.
잘만 하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냉정해야 해.’
그런 생각으로 총을 쐈다.
철퍼덕
감염자들이 거칠게 날뛰었지만 별 소용 없었다.
이미 포박되어 있었으니까.
가죽까지 찢어 가며 빠져나가려는 놈들도 일부 있었지만 총이 더 빨랐다.
“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피였다.
이렇게까지 피가 튈 줄은 몰랐다.
강 대위는 피범벅이 된 상의를 내려다보다가 명을 내렸다.
“경계 철저히…… 해. 명령 내려올 때까지 대기한다.”
“퇴, 퇴각하지 않고요?”
“차 돌리다가 저거 몰고 부딪치면 다 죽어.”
“네, 네!”
그러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담배라.’
유현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피워 본 적 없는 담배 생각이 어쩐지 떠올랐다.
“교수님. 실탄 쏘는 데도…….”
“죽어 나가고 있어요.”
방금 곳곳에서 올라오는 영상들을 봐서 그럴 터였다.
여기저기서 군인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우르릉
여긴 어떨까.
유현은 시선을 내려 탱크 쪽을 바라보았다.
탱크 하나가 트럭 세 대와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감염자들은 좀비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감염자들은 좀비가 아닙니다.
-감염자들에게는 이성이 남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터이나…….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절차 기억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것이고요. 주의하십쇼. 미국에서는 총 쏘는 감염자 영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