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91화 (91/323)

91화 서울 (2)

‘그래. 그렇단 말이지.’

물론 얼굴이 거멓게 죽은 건, 연기였다.

속으론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명분 없는 발포는 독이 되겠지만.

명분을 찾게 되는 순간 구국의 결단이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어차피……. 미국도 멸망 직전이야.’

게다가 대한민국은 외국에서 뭐라고 하면 대개 면피가 되는 나라이지 않나.

대통령까지 해 먹고 있는 주제에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한심했지만.

어쩌겠나.

벌어지는 현상인 것을.

같은 물건이나 문화 콘텐츠조차 미국에서 1등 했다고 하면 갑자기 미친 듯이 소비되지 않았나.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못 막는 거다’가 되면 괜찮았다.

타다다당

아니, 미국은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방금 넘어온 정보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전율에 이르게 했다.

세상에 총을 쏘는 감염자라니.

기껏해야 좀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좀비 따위는 여기 댈 것도 아니었다.

거기는 기껏해야 뛰는 놈들이나 나오면 최악이지 않나.

“도저히 방법이 없소?”

하여간 대통령은 우려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김조은은 속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사람이?’

말이 되나?

지금까지 행보를 되짚어 보면 그야말로 비인간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선을 넘기 전까지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한번 넘고 나서부터는 죽이는 것이 가장 편리한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감염자의 치료는 불가합니다. 예방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저들을 격리하든지, 아니면 죽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허어…….”

그럼에도 김조은은 일단 장단을 맞춰 주었다.

원하는 바를 말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확 잘못되는 수가 있었다.

‘죽을 수도 있어…….’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요. 고려하지.”

“네. 과학자로서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러지.”

대통령은 여전히 곤란하단 얼굴이었지만, 결정은 내린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퍼지는 속도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지 않나.

심지어 그 피해 정도마저 예상을 웃돌았다.

‘당연한 일이긴 해…….’

시나리오는 세웠다.

또 다른 팬데믹이 터질 것을 상정하고.

그 팬데믹이 ARS-24 베타에 의한 것이라 여기고.

시뮬레이션은 꽤나 정교했더랬다.

하지만 그 기반이 된 이론이 문제였다.

애초에 물려서 감염이 된다는 게 세계 최초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다들 좀비 바이러스에 준해서 생각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게 되게 그럴싸하다고 여겼고, 또 그보단 훨씬 나을 거라고 여겼다.

‘감염자가 살아 있다는 것이…….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대통령은 고개를 내젓고는 몇 가지 안건에 대해 더 듣고 나서 줌을 껐다.

안건이라고 해 봐야 새로 포획한 감염자들의 특징에 대한 것들이 다였다.

그나마도 딱히 쓸 만한 것은 없었다.

“회의 시작하지.”

그렇게 줌을 끈 대통령은 새로운 회의에 착수했다.

방금 것이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의 회의, 즉 음모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이번 회의는 공적인 회의였다.

내각과 군 참모진들 그리고 여당과 야당의 중진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아니, 다 모여 있어야 했으나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았다.

일단 국방부 장관부터가 자리에 없었다.

“식량 문제가 제일 급한데……. 우선 급한 대로 전투 식량이라도 투입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대신 자리에 앉아 있는 지상작전사령부 사령관 김민석 대장을 바라보았다.

육본이 있는 계룡대는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다.

계룡대 지구 병원에 누군가 이송되어 왔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 후로 쭉 깜깜무소식이었다.

대통령은 어찌 되었는지 예상할 수 있었으나 굳이 관련해서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합참이 있는 용산은.

‘용산은 지옥이 됐지…….’

기차역이 있는 곳이다 보니, 사태 초기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지 않겠나.

지척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가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이 되고야 말았다.

그나마 지상작전사령부 사령관이 용인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700 특수여단 덕분이라고 봐야 했다.

실탄으로 무장한 그들은 주요 간부를 싣고 이곳으로 와 현재는 청와대 경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하오나……. 각하, 지금 군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저번처럼 도심으로 진입했다간…….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부대도 있어 재편하는 데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탄 사용 허가합니다.”

“네?”

“실탄 사용 허가합니다. 감염자, 감염자로 생각되는 자 모두 발포해도 좋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그……. 시민을 향한 발포는……. 군의 사기에도…….”

“그 시민들이 지금 굶어 죽어 가고 있어요!”

인터넷 여론은 그야말로 들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는 인터넷을 다 끊어 버리고 일방적인 방송만 하려고 했는데, 군에서 곤란해했다.

네톡이 없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부대가 너무 많다는 말을 하면서였다.

다행한 것은 그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법적인 근거 또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또 그 대화들을 통해 현재 시민들의 상황을 엿볼 수도 있었다.

상황이 어떻냐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일단 마트나 편의점 등 음식이 있는 곳에 갈 수 있는 인원이 극히 제한되었다.

아이와 노인들이 어찌 갈 수 있겠나.

장정들조차 감염자의 상대가 못 되는데.

그나마 여럿이 모여 어찌어찌 뚫었을 때도 문제였다.

별 소용이 없었다.

식욕이 왕성한 감염자들은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먹어 치워 버려서 그랬다.

“그건…….”

“지금 굶주림에 내몰린 시민들이 키우던 동물까지 잡아먹고 있다고 합니다! 저 감염자들을 다 쓸어 버려야 해요!”

“그…….”

“사령관. 결단 못 내리겠으면 지금 말해요. 결단 내릴 만한 사람으로 바꿀 테니.”

대통령은 김민석 대장 대신, 특수여단장 박윤형 대령을 바라보았다.

까라면 까는, 그야말로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이미 청와대 주변 감염자들을 쓸어 버린 바 있었다.

그 결과 병사들 중 일부가 PTSD를 호소하고 있긴 했지만.

하여간 이 인간은 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상대가 정말로 좀비건 아니면 단순 감염자건 간에.

“아니, 아닙니다. 따르겠습니다.”

“서둘러요.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 가는 국민이 많습니다.”

“네, 각하. 제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알면 됐습니다.”

대통령은 굽신거리는 군인에게, 애민 정신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려 준 후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

“전기 수급은 어떻습니까?”

“3일 정도……. 남았습니다.”

“3일?”

“네. 3일 후면 정전입니다. 그나마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기반 시설은…… 더 버틸 수 있습니다만……. 기름이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나 수력 발전소는?”

“그걸로는……. 그 일대에 돌리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현재……. 가동을 중지해야 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한 곳들이 많습니다.”

“음.”

알고는 있었다.

그나마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건,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퇴근을 못 해서가 아니던가.

“그럼 서울은…….”

“곧 전기가 나갈 겁니다.”

“유조선은 상황은 어떻습니까?”

“유조선은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각하.”

그래, 이미 해상에 뜬 유조선들이 무슨 문제가 있겠나.

이것들이 다 도착하고 나서는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항구에서부터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만 이어지고 있었다.

“도로 이동이 불가합니다. 일단 항구 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트럭이 없습니다.”

“군에서 해결할 수 없나?”

“군에서……. 실탄이 허락된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럼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대통령은 그 후로도 명령을 내렸다.

내각 그리고 국회는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 대통령만큼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말을 아는 사람들은 그저 소름이 돋았으나, 회의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으르릉

곧 군부대가 다시 시내에 진입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트럭 앞으로 탱크가 지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미 새끼 하나 없네……. 전에는 시발 그렇게 달려들더니.”

생존자가 별로 없는 부대는 갈가리 찢겨 다른 부대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그들을 환영했다.

뭐가 되었건 사태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니까.

지휘관 중 일부는 이들이 피해를 줄여 줄 수 있을 거라 여겼고, 또 일부는 부대 내에 돌기 시작한 불온한 소문을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전에는 달려들었다고?”

“네. 중대장님. 장난 아니었습니다, 진짜…….”

그중 강바다 대위는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봐도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전 간부 출입 통제 명령이 내려진 것도 그렇고.

병사 외출, 휴가도 금지가 되었고.

급기야 집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고 보고하는 병사들도 급격히 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됐지.’

강바다 대위의 부모님도 연락이 되질 않았다.

“왜 당시 사진이나 영상이 없지?”

“부대 내에 폰이고 뭐고 다 두고 나왔습니다. 그때 중대장님은……. 중대장님은…….”

“그래, 그. 그건 그만하고. 음……. 그때는 습격을 했다라…….”

전에 시내에 진입했던 부대가 받았던 경고 사항은 그저 감염자들이 좀 난폭할 수 있다 정도였다고 들었다.

그 결과 군 장병은 실탄도 없이 진입했고 어마어마한 수가 죽어 나갔다.

-감염자들이 뛰어들면 발포해도 무방하다.

이번에 받은 명령은 이러했다.

그 외에도 감염자들에 대한 특성도 전달받았다.

‘덩치가 클 수 있고……. 사납고, 빠르다. 이게 뭔…….’

그래 봐야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다.

일부 부대에서 입수한 영상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을 보는 게 차라리 나을 지경이었다.

“자, 이제 시야 안 나오니까 경계 철저히 해!”

“네!”

그 영상에서 감염자는, 덩치가 거대한 괴물은 한주먹에 병사 하나를 아작 내고는 다른 병사를 물어뜯었다.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살아 나온 병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여기가 거기란 말이지…….’

강바다 대위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응?”

얼핏 뭘 본 것 같았다.

‘병사……?’

군복을 입은 누군가가 반대편에서 아주 빠르게 내달렸다.

‘여긴 우리밖에 없는데……?’

배고파 죽겠다…….

안 되겠어요. 저는 나갑니다.

나가면 죽어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런 시발……. 마트가 텅 비었네.

네? 아니, 어떤 놈이 털었지?

그게 아니라……. 좀비 새끼들이 다 먹었어요.

아……. 아니, 왜 좀비가 음식을 먹어?

진짜 좀비는 이런가 봐요. 와……. 죽을 각오까지 하고 온 건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