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90화 (90/323)

90화 서울 (1)

-군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실탄 없이 진입했습니다.

김일용 형사의 답은 탄식으로 시작했다.

유현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치적 부담감 때문인가?’

물론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았다.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건 그것만으로 반감을 살 수 있는 일이지 않나.

그런데 서울에서 발포까지 해?

아직 군사 정변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역린을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었다.

-몰살당했어요. 다 보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하여간……. 제 은신처가 신논현역 근처라고 말씀드렸었나요?

“네. 제가 그렇게 조언을 드렸죠.”

여차하면 고속 도로도 가깝고.

불야성을 뽐내던 지난날과는 달리, ARS-24에 의해 상권도 어느 정도 망가져서 유동 인구도 줄었고.

무엇보다 본격적인 주거지가 적었다.

강남이다 보니 나름 골목길도 널찍했고.

그렇다 해도 지방으로 도망가는 것보다는 못했을 것 같긴 했지만.

-집에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소리만 나면 개떼같이 몰려들어요. 군복 입은 감염자도 이제 적지 않습니다.

“다른 곳은……. 다른 곳은 어떻습니까?”

-비슷할 겁니다. 인터넷만 봐도 뭐……. 그나마 저희는 물자가 풍부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서…….

“행여나 도우러 나갈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저희도 거의 갇혀 지내는 신세입니다.”

-네, 뭐……. 용기가 안 납니다. 사람이 맞나 싶어요. 어지간하면 상대가 될 텐데. 제가 유도에 태권도에 합이 7단인데도 뭐.”

김일용의 말처럼 감염자들은 정면에서 맞설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그나마 작은 개체라면,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가능은 하겠지만.

밖에 돌아다니는 것들 중엔 거대화된 개체가 적지 않았다.

“그럼 그때 군부대 한번 오고 나서는 더 움직임이 없는 겁니까?”

-네? 아, 네. 몰살당했는걸요……. 한 사람도 빠져나가질 못했어요. 단 한 사람도.

“어째서 그렇죠? 거기 도로가 넓어서……. 그래도 좀 나을 텐데.”

-도로에 버려진 차들이 꽤 됩니다. 바리케이드가 되고 있어요.

“아…….”

유현은 의문을 표했다가 이내 납득했다.

세종시, 그중에서도 이 주변은 사실상 주간 낮 영업만 하는 곳이었다.

그나마도 팬데믹 사태 이후로는 상권이 거의 죽어 버려서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논현은 어떤가?

팬데믹이고 나발이고 평일 대낮에도 길이 막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갑자기 감염자 무리가 들이닥쳤다면?

유현부터 타고 있던 차를 버리고 도망갔을 터였다.

-그래도 방송은 나오고 있습니다. 앵무새 같은 말만 반복하고는 있습니다만…….

“아, 그래요? 서울은 방송이 나와요?”

-거긴 안 나옵니까?

“네. 인터넷만 됩니다. 그것도 되게 느려요. 유선은 안 되고요. 아무튼, 어떤 내용입니까?”

-일단 정부에서 최대한 빨리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고요. 식료품 분배를 위해 군부대가 재진입할 거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하고요. 실제로 정부에서 배포하는 관련 자료를 보면……. 그렇긴 합니다.

유현은 ‘이거 그냥 선전물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실제로 뭐가 되는 건 하나 없이 하겠다고만 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외국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게 만든단 점에선, 저런 방송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당장 세종은 좀 다르지 않나.

자포자기한 채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오던 사람들을 벌써 여러 번 보았다.

그들의 결말은 모두 같았다.

-근데 이거 진짜 해결이 될는지……. 유튜브에 뉴욕 현 상황이라고 치면 영상이 뜨는데, 개판입니다. 다른 곳이라고 다른 거 같지도 않고요.

“아, 경황이 없어서 인터넷도 거의 안 하고 있었는데.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연구는 어찌 되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정부보다는 교수님이 나을 거 같아서.

김일용의 말에 유현은 뭐라 답하기가 어려웠다.

자신도 모르게 돌아본 창밖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아까 김현철 소위가 들어오면서 모여들었던 감염자들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저러다……. 사람이 나오면 몰려나오지.’

이성이 있다는 게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마치 함정이라도 파고 기다리는 것 같지 않나?

아니, 이걸 함정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을 함정이라 해야 할는지 알 수 없었다.

“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현은 현실을 말해 주는 대신, 그저 잘된다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김일용이 희망을 품을 테니.

‘정부도 이런 생각인가? 진짜로 뭐가 되고 있어야 할 텐데.’

남산.

거기는 그래도 좀 다르지 않겠나.

천혜의 요새라고 들었다.

박원상이 그랬다.

‘이 새끼는……. 연락도 안 되고. 제수씨도 전화 안 되고…….’

궁금한데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아마 여기보단 사정이 나을 것 같긴 했다.

거기야말로 대한민국의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상황 파악을 잘하고 있었을 테니.

‘개새끼들.’

유현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그러다 통화 중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교수님이 희망입니다.

수화기 너머론 연신 김일용이 다행이라 중얼거리는 말만 들려왔다.

망할.

* * *

“대체 제 아내랑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겁니까?”

유현의 예상과는 달리, 남산 쪽도 사정이 아주 좋지만은 못했다.

상황 파악을 하기는 하고 있었는데, 낙관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가장 큰 요인은 의외로 김조은과 박원상이었다.

둘이 만들어 낸 변종은 이 정도가 아니었으니.

예상도 딱 거기에 맞춰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자연 상태에서 더 이기적으로 진화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안전하게 잘 있습니다.”

남산의 호위를 맡게 된 것은 처음 보는 군인이었다.

아니, 얼굴은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김선태 밑에 있던 이였다.

그는 늘 근엄하게 굴었다.

“아니, 그러니까……. 안전한데 왜 못 오냐고.”

“그보다 대통령께서 맡긴 일은 잘하고 있는 겁니까?”

박원상은 그래서 불만이 컸다.

혈혈단신인 김조은과는 달리, 자신은 가족이 있는 몸 아닌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일단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한 일이었다.

그는 수렁에 발을 들인 지 너무 오래였으니.

-마트 가서 닥치는 대로 다 사고, 집에 있어. 위험하니까 절대 밖으로 나돌지 말고!

그다음에는 경고를 했다.

다행히 아내는 말을 잘 들어주었다.

박원상이 이렇게까지 말한 게 처음이어서 그랬을 터였다.

그렇게 따로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군에서 따로 보호를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해 주었다.

딱히 박원상에게만이 아니라 여기 모인 모든 연구원을 향해서였다.

그래, 그래야지.

이게 당연한 거지.

우리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질……. 인질이야.’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가 속한 집단이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믿었을까.

후회해 봐도 별 소용은 없었다.

“그건…….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럼 자리로 돌아가서 성과를 내세요. 기대가 크십니다.”

놀랍게도 동기 부여는 되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가족을 다시 보려면 성과를 내야만 했다.

일종의 부정 강화인 셈인데, 그 덕인지는 몰라도 박원상을 비롯한 모든 연구원들은 밤잠을 반납해 가며 연구 중이었다.

‘시발…….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뭔 바이러스냐고.’

그렇다고 뭐가 잘되지는 않았다.

ARS-24의 특성 탓이었다.

미친 듯이 변이를 일으키던 이놈은 알파와 베타가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베타#127……. 미친.”

군이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시민 구출 명목으로 출동한 이들이야 별 정보 없이 나갔다 당했지만.

그 자체로 다음엔 실탄 발포를 허용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 위해 희생양이 되고야 말았지만.

특임대를 비롯한 일부 부대는 제대로 무장한 채, 감염자들을 이송해 왔다.

“이거 놔!”

“안 풀어?”

아니, 포획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지금도 연구소 한켠엔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인지 병실인지 모를 곳에 감염자들이 하나둘 쌓여 가고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다 같은 감염자 같았다.

하지만 막상 검사를 해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을까?”

김조은은, 세계적인 유전자 박사이자 전문가인 그는 같은 것을 보며 감탄했다.

베타#127이 뜻하는 것이 바로 127번째 변이여서 그랬다.

감염자들은 각기 다른 유전 형질을 보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황이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타겟해서 백신을 만들거나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어려울 텐데.

벌써 이 지경이니 어찌 대응을 할 수 있겠나.

“이걸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김조은은 마치 우리나라는 괜찮은 것인 양 말하고 있었다.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싶었다.

어떻게 보면 오래 걸린 것일 수도 있었다.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멸망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박원상도 수면제 없이는 잠이 오지 않는 상황이지 않나.

말 그대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오늘 회의 때는 말씀드릴 내용이 있겠군요.”

하지만 김조은은 미친 게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었다.

“무슨……. 지금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박원상이 볼 때는 여전히 미친 것 같았다.

달라진 게 뭐가 있다고 저런단 말인가.

아니, 달라지기는 했다.

최악의 방향으로.

이건 막을 수 없다.

방금 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이제 둘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끝장낸 사람들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기게 될 터였다.

그걸 기록해 줄 사람이라도 남아야 가능하겠지만.

“아뇨, 있습니다.”

하지만 김조은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박원상은 이 사람이 뭘 또 어쩌려고 이러나 싶었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그래……. 난 닥치고 있자.’

면피가 가능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회의가 열렸다.

당연히 무선으로 열렸다.

대통령은 청와대 벙커에 있었으니.

뒤로는 김선태가 보였다.

저기만큼은, 감염자가 서울을 뒤덮어도 안전할 것 같았다.

“각하.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한참 현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무렵, 김조은이 의견을 제시했다.

박원상의 눈이 동그래졌다.

결과?

그런 게 어디 나왔단 말인가?

이놈이 설마 거짓부렁을 고하려고 하나?

미친놈이 다 죽으려고?

“오, 드디어!”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은 화색을 띠었다.

김조은은 그런 대통령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치료는 불가합니다. 예방도 불가합니다. 현재로서는 아니, 앞으로도……. 감염자를 격리하거나 다 죽이는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대통령의 얼굴이 다시 시커멓게 죽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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