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관찰 (2)
유현은 일단 절망은 뒤로하고, 아닐 거라 믿으며 밖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보이는 것은 한 대였다.
딱 한 대의 트럭이 골목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쿵벌써 몇 명의 감염자를 쳐 버렸는지, 범퍼는 반파되어 있었고 피로 물들어 더 엉망으로 보였다.
‘그래도 쇳덩이라……. 오히려 더 나은가?’
아마 어지간한 승용차였다면 벌써 막혔을 터였다.
하지만 트럭은 별로 속도도 줄지 않은 채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방금도 감염자 하나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음에도 그랬다.
“으.”
의사인 주제에 심약한 편인 재원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오예리도 감히 정면에서 보고 있지 못했다.
오직 유현만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와라. 옳지.”
딱 한 대만 온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하여간 잘해 내고 있었다.
트럭의 굉음에 감염자들이 흠칫거리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 수가 아주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엔 결국, 내려야 할 터였다.
바로 어제 골목길을 지나다 습격당한 후, 버려진 차량 때문이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죽거나 감염자가 되었다.
끼이익
유현의 예상대로 트럭은 차 앞에서 멈추어 섰다.
“내려, 내려!”
김현철은 그 즉시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손에는 k-2 하나를 든 채였다.
허리에는 탄창 여럿 그리고 권총 하나가 달려 있었다.
“네, 네!”
반대편에서 내린 병사도 무장 상황이 그리 다르진 않았다.
“총 더 챙길 생각은 하지 마! 그러다 뒤져!”
김현철은 차 안에 쌓아 둔 총기를 돌아보고 있던 병사의 머리를 땅 때린 후, 유현이 있는 건물로 달렸다.
그 뒤로 감염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다행히 트럭을 따라오기 시작할 때, 이미 한 차례 달린 후라 속도가 그냥 일반인 비슷했다.
오히려 더 느려진 개체도 있었다.
‘몸이 망가졌나? 하긴……. 아무리 호르몬이 폭주한다고 해도……. 내구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인간의 뼈는 꽤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물질이기는 했다.
그저 경도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탄력성도 갖추고 있어서, 오히려 쇠보다 더 장력을 견디는 힘이 강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계는 있었다.
유현은 뒤처지는 개체 중 덩치가 꽤 큰 것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노트에 적었다.
이걸 적어 놓는다고 해서 뭐가 당장 달라지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나중에라도 한번 써먹을 데가 있지 않을까?
“총 쏘지 마! 그건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 저 새끼들 소리 들으면 미친 듯이 달려든다!”
한편 김현철은 잘해 내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달려, 일단 달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서일까?
스스로 책상물림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네, 네!”
덕분에 병사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달릴 수 있었다.
뒤따르는 감염자들이 있음에도 총구 한번 돌리지 않았다.
“어쩌죠?”
이제 모두가 저 군인 둘이 어디를 목표로 삼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상가 주택이었다.
‘총……. 탄창이 여러 개인 걸 봐서는 총알도 있긴 할 거야. 그래 봐야 이 근처를 정리하는 것은 무리긴 하겠지만…….’
유사시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군인이 들어와서 돌변할 수도 있었다.
“일단 구해야지. 오 형사님은 우선 1층 구석에 있어요.”
“왜요?”
“혹시 모르니까.”
“아.”
유현의 말을 오예리는 못 알아듣지 않았다.
‘설마 그럴라구요?’라는 순진한 생각 따위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이미 앞에 즐비했던 상가가 털리던 것을 두 눈 똑똑히 뜨고 본 바 있어서 그랬다.
강도질이라는 게 늘 그러하듯 폭력적이었다.
심지어 강도질에 나선 이들끼리 무력 충돌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는데…….’
그저 전자 기기 그리고 일부 옷이나 기타 물품을 구하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기꺼이 다른 사람을 두들겨 팼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수에 불과하던 감염자들은 빈틈을 틈타 급습했고 이제 거리의 주류가 되었다.
“아무튼, 구하긴 하죠.”
“네.”
유현은 밑으로 달려, 쇠문을 열었다.
그사이 오예리는 전기 충격기를 들고 옆으로 슥 숨었다.
“빨리, 빨리!”
“감사합니다!”
“말할 시간 있으면 일단 달려!”
“네!”
김현철과 병사는 아슬아슬하게 열린 틈새로 뛰어 들어왔다.
유현은 그와 동시에 철문을 다시 밀어 닫았다.
잠그는 동안 무언가 철문에 와 부딪치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 가면서였다.
쿵쿵김현철은 그제야 쇳덩이에 사람이 들이받으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그리고 어떤 진동이 느껴지는지 알게 되었다.
유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괜찮을 거야…….’
그간 잘 관찰해 오지 않았나.
이놈들은 이성이 있는 놈들이었다.
무작정 마지막에 인기척이 있던 곳을 헤매는 대신,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는 놈들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취약한 사람들이 많아…….’
감염자 입장에서 보면 여기보다 훨씬 접근이 쉬운 곳들이 많았다.
미안한 생각이지만, 그들이 미끼가 되어 줄 터였다.
사실 지금도 그러고 있었고.
당장 제일 위험해 보이는 곳은 바로 맞은편 상가 거리였다.
대개 벽돌로 이루어진 이쪽과는 달리, 저쪽은 1층, 2층 할 것 없이 대부분 유리창이었다.
강도들이 죄다 유리를 깨 놔서 왕래가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로웠다.
“또 뵙는군요.”
하여간 유현은 자연스레 손을 내밀어 병사의 총을 건네받았다.
본능적으로 김현철보다는 병사 쪽이 훨씬 멘탈이 갈려 나갔다는 걸 눈치챈 덕이었다.
“아, 네.”
김현철도 사실 제정신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유현이 총을 쥐게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유현이 일부러 질문의 포화를 멈추지 않은 탓도 있었다.
쿵쿵
게다가 밖에는 여전히 철문을 두드리는 감염자들이 있었다.
김현철은 유현의 말에 답하면서도 연신 문가를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당연했다.
죽을 뻔했으니까.
유현도 이진호를 오예리와 함께 끌고 도망칠 때, 적잖이 당황하지 않았나.
“보고는 올렸습니까?”
유현은 김현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총을 뒤로 걸건 어떻게 하든 하여간 들고 있지는 말라고 얘기한 후였다.
김현철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맨 뒤에는 오예리가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러하듯 침착한 얼굴로, 삼단봉을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처리해 줄 것임을, 유현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아……. 네.”
유현의 말에 김현철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방황하며 확장되는 동공.
축축해져만 가는 손바닥.
이것만 봐도 주의력 깊은 의사인 유현은 대강 김현철의 심리를 알 수 있었으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저 표정이었다.
죽을 고비를 방금 넘긴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슬프게도 점점 익숙해져만 가고 있는 그런 얼굴.
“그……. 그게.”
“어떻게 되었습니까? 군대는 더 안 옵니까?”
“모르겠습니다. 사단……. 지휘부는 전멸입니다.”
“전멸?”
무슨 일이 있었겠다 싶기는 했지만 전멸이라니?
이 미친놈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네. 전에 말씀해 주신 대로……. 감염자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래도 이상하긴 하다고 직접 와서 하라더군요. 그래서 갔는데……. 거기 감염자가 있었습니다. 중령이…….”
“아. 그래도……. 하나 아닙니까? 거기 무장한 사람들도 있고 그랬을 텐데요?”
“막상 좁은 곳에서 달려드니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건…….”
김현철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핏발이 선 채 달려들던 중령.
어어 하다가 당한 사단장.
그 사단장은 그 직후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옥……. 지옥이었어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김현철은 그 외에 달리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유현 또한 그랬다.
직접 그 꼴을 본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저런 거랑 좁은 곳에서 마주하면…….’
저절로 군인이 떠올랐다.
그 강의실 안에서 운신이 자유로운 상태의 그놈이랑 붙으면 제압이 될까?
아니, 죽일 각오로 덤빈다고 해서 죽일 수는 있을까?
‘이젠 되겠군, 그래.’
총.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총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위에서는 압니까?”
그렇다고 해야 할 질문을 잊진 않았다.
유현은 하늘을 가리켰다.
실제로는 청와대.
또는 육본 등의 상위 부대를 뜻했다.
김현철도 그것을 못 알아듣진 않았다.
“아뇨. 저희 사단은 아마……. 끝났을 겁니다.”
“다른 사단이 어디로 갔는지는 압니까?”
“아, 음. 전체적으로는 모릅니다. 하지만…….”
“단톡방이 있겠네요. 연락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네, 네.
김현철은 부리나케 휴대폰을 꺼냈다.
다행히 아직 배터리는 남아 있었다.
사회가 무너지고 있었지만, 통신, 전기, 가스는 여전히 공급되고 있지 않던가.
거기는 괜찮은 건지 아니면 그냥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전자라면 다행이나, 후자라면 곧 모든 것이 멈추고 말 터였다.
“일단 오송 방면으로 향한 사단에 제 동기가 있습니다.”
하여간 김현철은 곧 단톡방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음.”
다른 동기도.
또 다른 동기도.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게……. 충청권에 임관한 저희 동기방인데……. 아무도 연락이 안 되네요.”
“그렇군요.”
김현철은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유현은 그저 담담했다.
슬픈 얘기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종이 이 지경인데 다른 곳이라고 다를까?
부산 지역 감염내과 교수들도 연락이 안 된 지 한참이었다.
그들은 유현이 경고를 주었고, 또 허투루 생각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서울?
거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지금은 어찌 되었으려나.
“일단…….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총은 쓸 일 없으실 테니, 물품 있는 방에 보관하죠.”
“어…….”
“걱정 마세요. 안 좋은 마음 먹고 있었으면 열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하긴……. 하긴 그렇습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상가 주택에서 남자들이 쓰던 방으로 안내했다.
남자들이라고 해 봐야 몇 있지도 않아서 누울 자리는 넉넉한 편이었다.
여차하면 유현은 우식이나 재원을 데리고 밑에서 잘 생각도 있었다.
지금은 냉난방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기니까.
‘괜히 강의실 쪽에서 지내라고 했다가……. 감염자 보고 동요하면 곤란하지.’
유현은 감염자에 대해선 일부러 아예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복도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연결음이 지속될수록, 불안해졌다.
결국, 죽었나? 싶어졌을 무렵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김일용.
자진해서 서울로 돌아간 형사였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아, 네.”
-거기는 좀 어떤가요?
“서울만 할까요……. 거기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군대, 들어와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아주 잘 살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