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군의 몰락 (2)
대대장은 군의관에게 간단한 소독만 받고는 바로 사단 작전 본부로 향했다.
후방이기는 해도 나름 벙커가 마련되어 있었다.
포대에서 쏘는 건 막을 수 있을 정도?
“충성.”
“어, 안에 다 계시나?”
“네,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래.”
검문은 형식적이었다.
당연했다.
아는 얼굴이고, 나름 중령인데 막아서 뭐하겠나.
위병소의 병사뿐만 아니라, 작전 회의실 앞에 있던 병사들도 한켠에 비켜섰다.
‘음.’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엄했다.
골프장에서나 봐서 그런가. 늘 즐거워 보였던 사단장도 얼굴이 거무죽죽했다.
계엄령이 내려서 그런가 싶었으나, 진입 명령을 내릴 때조차 저렇진 않았다.
‘우리만 공격당한 게 아니로구나.’
오면서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 자리에 앉지.”
사단장은 대대장에게 착석을 권했다.
“급하다니까, 일단 얘기나 들어 보자고. 방금 와서 혼란스러울 텐데, 내용은 들으면서 파악해.”
“네.”
그러곤 비어 있어야 할 곳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따라 돌려보니 웬 짬찌 하나가 서 있었다.
소위 나부랭이.
아까 부대로 원복했던 놈보다도 아래였다.
차이가 있다면 나름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정도?
“김현철 소위?”
“충성!”
“말해 봐. 그나마 자네가 지금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거 같으니까.”
사단장은 그렇게 말하다 말고 담배를 물었다.
어떤 보고가 오고 갔길래 요즘 같은 시기에 담배를 물까.
그리고 사단장이 소집한 회의에 왜 본부 사람들밖에 없는 걸까.
중령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현철을 응시했다.
“네, 일단……. 제가 출동했던 곳은 아름남길 방면입니다.”
“그게 어디야?”
“여기.”
사단장의 말에 부관이 부리나케 PPT 화면을 띄웠다.
“아, 저기구나. 그래.”
“네, 도착하니 거리에는 시신……. 들이 있었습니다. 상가 1층엔 약탈의 흔적이 있어 주의해서 진입했습니다.
“사진 있나?”
“경황이 없어서…….”
“에이.”
사단장은 쯔쯔 혀를 찼다.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의 질이 하나같이 개판이었다.
물론 아예 보고도 없는 놈들도 많으니, 여기까지 와서 보고를 하고 있는 김현철은 실로 에이스라 할 만했다.
“계속해.”
“네.”
바짝 얼어 있던 김현철은 떠밀리듯 말을 이었다.
“그러다 상가 안쪽……. 4층에 시민들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구조에 나서기 위해 저, 김종택 하사, 사대진 하사가 나섰습니다. 나머지 병사들에게는 경계를 명했습니다.”
“구조 요청이 있었나?”
“아뇨.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럼 왜 구조에 나섰지? 그냥 거기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
김현철은 답답했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책상물림 같으니.
원래도 단기 장교로서, 장기 군인에 대한 반감이 있기는 했더랬다.
하지만 지금처럼 극심했던 적은 없었다.
‘세상에 멀쩡한 집 내비 두고……. 1층 박살 난 상가에 있을 사람이 어딨냐…….’
부대 밖은 이미 지옥이지 않나.
관사에서 빠져나가 시내로 한 번이라도 나가 봤으면 이따위 소리는 하지 못할 텐데.
1주 전부터 내려온 영내 대기 명령 때문인가 싶었다.
설마하니 사단장도 그런 명령을 지킬 줄은 몰랐는데.
“집이 아닌 상가였고……. 제 판단에 안전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었다?”
“네.”
“아무튼, 계속해 봐.”
그럼에도 한숨을 쉰다든지 하는 불온한 행동은 자제했다.
‘제대로 알려야 해…….’
책임감 때문이었다.
억지로 온 군대긴 하지만.
그가 입은 유니폼, 즉 군복은 그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다른 대다수의 장병들처럼, 그 또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군인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하사 둘과 저, 이렇게 셋이 건물에 진입했습니다. 그때 굉음이 들렸습니다.”
“굉음?”
“총소리나 폭발음은 아니었습니다. 땅이 울리는 소리였습니다.”
“음.”
뚱딴지같은 소리였으나, 사단장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대령, 그러니까 현장 지휘를 맡기 위해 나갔던 이가 땅이 울린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뭔 소리냐고 했을 땐 답이 없었다.
애초에 김현철이 반드시 사단장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한 것을 들어 주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칙대로라면 더 위에 놈이 와야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김현철의 직속 상관부터 해서 그 위는 죄다 부재중이었다.
“잠시 후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김현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전히 산 채로 찢어지던 하사 녀석의 얼굴이 생생했다.
그 비명과 핏물.
그리고 괴물.
다리가 오들오들 떨렸다.
‘뭐지…….’
다 큰 성인이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 두려워하는 걸 본 적 있는가?
대부분은 없을 터였다.
여기 있는 이들도 그랬다.
오히려 그래서 공포가 전염되었다.
아직 무어라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김현철의 열린 눈 그리고 몸짓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괴물…….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응?”
그러나 괴물이란 말은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정부에서 변종 바이러스에 걸린 이들이 난폭해질 수 있다는 정보는 준 바 있었다.
실제로 뉴스 보도에 나왔던 폭도인지 괴한인지 하는 이들 중 일부가 바이러스와 연관이 있다고 했고.
“괴물이라고?”
사단장은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가 패닉 상태라 돌아 버렸나, 싶었다.
“네, 괴물이었습니다. 사단장님! 전 미친 게 아닙니다!”
김현철은 사단장의 목소리에서 의심을 읽어 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자리에 사대진 하사가 사망했습니다. 머리가……. 머리가 뽑혔습니다. 당시 김종택 하사가 같이 있었고, 증언 가능합니다.”
“네, 저도 봤습니다.”
“음.”
효과는 있었다.
하기야 둘이 봤다는데 뭐 어쩐단 말인가.
그렇다고 믿어 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왔는데……. 나오니까……. 거리에 온통 놈들이었습니다.”
“놈들?”
“괴물이요. 그러니까……. 감염자들…….”
“음.”
감염자라.
사단장은 괴물을 괴물같이 난폭한 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쇠로 무장한 병사들이 이렇게 당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때 비하면……. 얘들이 군인이냐.’
나약해 가지고.
쯔쯔.
사단장은 혀를 찼다.
“그다음부터는 도망가는 데 바빴습니다. 그러다……. 생존한 시민을 만났습니다.”
“시민? 구출했나?”
“아뇨. 그 사람 말이, 변종 바이러스는 사람을 물면 퍼진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부대에서 구출했던 병사가 갑자기 난폭해지면서 다른 이를 물려고 했습니다. 다리에……. 어…….”
김현철은 상대의 반응이 어떻건 간에 일단 중요한 말부터 내뱉었다.
“으!”
그리고 그때.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중령의 얼굴을 마주했다.
“으으!”
“자네 왜 그러나?”
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핏발 선 눈.
아까 본 병사와 같았다.
“이런 미친!”
그제야 김현철은 중령이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군복으로 가리고 있었던 것이, 옆에 있던 부관을 공격하는 바람에 드러났다.
“뭐야! 이놈 왜 이래!”
“물린 겁니다! 물린 거예요, 사단장님!”
“뭐……?”
“도망……. 피하셔야 합니다!”
“무슨…….”
동시에 김현철은 미처 유현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변종 바이러스의 특성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으아아!”
부관.
방금 물린 부관이 옆에 있던 이를 공격했다.
“뭐야, 왜 아까보다 빨라!”
물린 곳이 머리와 가까우면, 더 빠른 변이를 보였다.
어찌 보면 유추해 볼 수 있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보지 않고는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도망가!”
“문 열어 이 새끼야!”
둘이 넷이 되고.
넷은 여덟이 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감염자 앞에 군인들은 무력했다.
사단장은 권총을 빼 들었지만 쏘지 못하고 당했다.
맨날 얼굴 보고 지내던 놈을 어찌 단숨에 쏠 수 있단 말인가.
덜컹
김현철은 사단장 옆에 있다가 그가 무력하게 당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주저 없이 문가로 달렸다.
벌써 두 번째라 가능한 일이었다.
“소위님 살려…….”
아니, 운도 좋았다.
아까 같이 일을 겪었던, 심지어 김현철을 도왔던 김종택 하사도 당했으니.
바닥에 널브러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일어나 김현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혼자 가려고?”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면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좀비 따위가 아니었으니.
“씨발!”
김현철은 문을 열고 뒤도 못 돌아본 채 내달렸다.
주변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하단 얼굴로, 뭔 일인가 싶어서 다가가다 당했다.
“도망쳐, 도망!”
그 꼴을 보고 나서야 김현철은 이렇게 외쳤다.
별 소용은 없었다.
전염이 너무 빨랐다.
감염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김현철 혼자 날뛰어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는 수가 되었다.
“이런 망할…….”
김현철은 어느 순간 외치는 것을 멈추고, 우연히 따라붙은 병사 하나와 탄약고로 향했다.
그러곤 실탄만 잔뜩 챙겨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
비명이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저 멀리, 사단 본부가 있던 곳에서부터였다.
“어, 어디로 갈까요?”
차도 못 타고 도보로 뛰던 병사가 물었다.
그제야 김현철은 깨달았다.
“어디로 가지?”
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그때……. 거기…….’
동시에 유현을 떠올렸다.
4층 상가 창문가에 모여 있던 이들과는 뭔가 달랐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왜 달랐는지는 이제 깨달았다.
‘옷이 깨끗했어. 초췌해 보이지도 않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건 다친 병사도 돌봐 준다고 했었다.
가면, 받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 차부터.”
“아, 네!”
물론 거기까지 가려면 살아남아야 했다.
도보로 도망갈 수 있을까?
절대 무리였다.
김현철은 거리에서 놈들이 달리던 모습을 보지 않았나.
폭발적인 기세로 달려들던 놈들은, 일반인이 절대로 떨쳐 낼 수 없는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숫제 짐승이었다.
“조용……. 조용히.”
생존 본능 덕일까.
김현철은 차분해졌다.
그리고 아까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분명 놈들은 소리에 예민했다.
동시에 먹을 것에 집착했다.
“식당으로 간다…….”
예상대로 감염된 놈들은 식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중간에 마주친 모든 사람을 물어뜯으면서였다.
그렇게 물린 사람은 곧 감염자가 되어 합류했다.
손발이 다시금 덜덜 떨려 왔다.
하지만 김현철은 그럼에도 차로 향했다.
“키, 키가 있어. 일단 타!”
“네, 네!”
그러곤 영내를 빠져나왔다.
“아……!”
여전히 귓가엔 비명이 감돌고 있었다.
아까와 비슷했지만, 좀 달랐다.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었다.
아니, 감염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가자, 일단 도망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