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군의 몰락 (1)
김현철 소위가 유현 덕에 구원받은 바로 그때, 다른 부대는 절멸 위기에 놓여 있었다.
“대체 뭐야, 이것들!”
분명히 청사 근처에 올 때까지만 해도 거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핏덩이와 옷가지 그리고 시신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외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진짜……. 변종이 엄청 센가 보다.’
그래서 ‘이번에 퍼진 변종은 치사율이 특히 더 높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긴 그러니까 백신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마스크와 장갑 등의 최소한의 보호 장구는 착용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겠지 싶었다.
그럼에도 큰일이 벌어질 거란 우려는 없었다.
같이 온 부대 수만 수백에 이르지 않나.
감염자들이 좀 난폭할 수 있다고는 했으나, 장정이 수백이었다.
실탄이 없는 총으로 무장했다지만, 달리 말하면 쇳덩이를 들고 있다고 봐야 했다.
-시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곧 식료품 분배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안전을 위해 지금 계신 자리에 있으시길 바랍니다!
때문에 중대장, 대위는 별 위기감 없이 방송했다.
병사들에게는 널려 있는 시신들 중에 혹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일렀다.
또는 상가에 남아 있을 사람들을 수색하라 일었다.
그중 몇몇이 이상한 보고를 올렸다.
뭔가에 파먹힌 흔적이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쥐나 들개 등이 있으니까.
게다가 세종시는 녹지 계획 때문에 공원이 많아서 다른 들짐승도 있을 수 있었다.
“어? 저게 뭐야!”
“저, 저것들 뭐야!”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왜 차량들이 버려져 있지?
이걸 중대장은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했다.
대체 왜 청사 쪽 입구며 1층 유리문이 죄 박살이 나 있는지도.
심지어 그 뒤로 임시로, 정말 급한 대로 만들었을 바리케이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사무실 집기라도 써서 뭔가를 막으려 했다면, 그 뭔가가 대체 뭐였는지 고민해 봐야 했다.
콱그러나 중대장은 그러지 않았고, 부대는 청사 거리에 고립되었다.
소리를 듣고 모여든 감염자의 수는 많았다.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수가 충분하다고 여겨질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았다.
본능만이 아니라 이성까지 갖춘 괴수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막아! 대검 착검!”
공격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로 들어갔던 이들부터 신속하게 죽어 나갔다.
그들도 총은 들고 있었다.
나름의 저항도 했다.
하지만 거대화된 감염자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야말로 솥뚜껑만 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찌, 찔러!”
“중대장님!”
“찌르라고!”
“퇴각하셔야 합니다! 이거……. 이거 안 됩니다!”
그들이 벌어 준 시간 덕에 아직 트럭 근처에 모여 있던 이들은 대검을 착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 착검한 건 아니었다.
아예 안 들고 온 인원도 꽤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정비가 안 되어 있어 끝이 뭉툭하기까지 했다.
그걸로 감염자를 찌르면 뭐가 되겠나.
아니, 찌르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왜, 왜 이렇게 빨…….”
“아, 아아아!”
“이 씨발!”
감염자의 폭주하는 아드레날린과 강화된 근력은 진영조차 짜지 못하고 어설픈 대응에 나선 군부대를 말 그대로 박살 낼 수 있었다.
단지 거대화된 개체들, 그러니까 오래된 개체들에게만 국한된 얘기도 아니었다.
불과 어제, 또는 오늘 아침에 감염된 이들조차 거대한 위협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채 폭주하는 인간은 차라리 흉기에 가까웠다.
“어……. 어.”
“명령을!”
“어…….”
중대장은 패닉에 빠졌다.
사정없이 죽어 나가는 인원을 보면서 정신이 나갔다.
“이런 병신이! 야, 퇴각해! 근처에 있는 놈들이라도 태워서 빠져나가!”
“네, 네! 다른 트럭은?”
“우리 보면 알아서 튀겠지!”
“네!”
옆에 있던 상사가 대신 명령을 내렸다.
일견 차분해 보였으나, 그 또한 겁에 질려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실시간으로 사람이 죽어 가고 있고, 자신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아닌가.
그래서 죽어 가는 이들을 버릴 수 있었다.
그들이 전우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죽음의 파편으로만 보였다.
오히려 구원에 나선 것은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었다.
“여기, 얘 좀 끌어 올려 줘! 물렸어! 다리!”
“어, 어어.”
몇몇이 용감하게 나서 전우들을 구했다.
그중엔 벌써 사경을 헤매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진정, 진정해!”
감염의 징후가 나타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이게 감염 때문인지.
아니면 공격에 놀라서인지.
대개는 후자로 여겼다.
본인들도 너무 놀라고 겁을 먹었으니.
쾅트럭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기 시작했다.
감염자들 중 일부가 차에 치였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운전병은 액셀을 놓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시발, 시발!’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
군에 입대했지만 죽을 각오를 했던 건 아니지 않나.
심지어 좋아서 군에 온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기대했던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야?”
한편 정신을 차린 중대장은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
무전기 따위는 고장 난 데다가, 별로 다뤄 본 적도 없어서 휴대폰으로 걸었다.
* * *
대대장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별다른 추가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대뜸 전화가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자로 해도 나중에 다 확인할 텐데.’
계엄령이 떨어졌고, 부대가 비록 실탄은 없다고 하지만 시내로 진군했는데도 태평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방역 조치를 좀 돕는 일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지금!
그 한가로움에 비해 중대장의 목소리는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뭔데? 관등 성명 안 해?”
-지금!
“뭐야?”
중대장은 진급에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유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직업 군인에게 진급 말고 달리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나.
근데 상급자에게 이렇게 한다고?
대대장은 괘씸하다는 생각보단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뭐냐고! 진정하고 제대로 말해!”
가다 사고가 났나?
아니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환자가 많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감염자들에게 습격받았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공격당했습니다!
“응?”
그래서 공격이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뭔 미친 소리야?’
설마 북한?
“북한군……이야?”
-아, 아뇨! 시민들이.
“시위라고?”
-아니, 아닙니다. 사람을 물어뜯고! 막!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중대장은 패닉 상황이었다.
제정신이 아니란 얘기였다.
사실 전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이었다.
사람의 정신이란 생각보다 공포에 쉬이 날아가 버리기 마련이었으니.
“일단 와!”
-네, 네!
불행히도 대대장은 의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었다.
해서 별 확인도 하지 않고 퇴각 명령만 내렸다.
위이잉
이상한 일은 전화가 계속 온다는 점이었다.
“뭔데?”
이번엔 다른 곳에 보냈던 또 다른 놈이었다.
아파트 단지 쪽이었나?
하도 많이 내보냈더니 기억도 가물거렸다.
-사, 살려!
“응?”
하여간 이번 놈은 전화를 걸더니 이상한 말만 남기고 전화를 떨어뜨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이라고는 죄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니면 비명 아니, 괴성뿐이었다.
“뭐야……. 이거?”
그제야 대대장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대대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지금은 통화 중이오니…….
다른 대대도.
또 다른 대대도.
-지금은 통화 중이오니…….
연대도.
사단도.
그 누구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뭐야……?’
계엄령이라는 것 자체가 찜찜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는단 의미로, 부대의 절반만 보냈다.
주요 지휘관은 죄 본대에 남았고.
심지어 작전 상황실에 모여 있는 것도 일부였다.
그래서 좀 빡센 훈련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부관!”
조금 전까지는 그랬다.
“충성.”
“밖에 나간 애들 다 연락해 봐!”
“충성!”
그러나 쎄한 느낌이 가슴을 팍 하고 찔렀다.
무전이 안 돼?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고쳐 봐야 맨날 망가지는 물건이니까.
하지만 전화가 안 돼?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병소에서 연락입니다!”
그때 부관이 그에게 말했다.
“뭔데?”
“그……. 0000 부대입니다. 아침에 나갔던.”
“아, 그래. 내가 퇴각 지시…….”
지시를 내렸던가?
그래, 오라고 했지.
무슨 일인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만, 하여간.
“지시 내렸어. 들어오라고 해!”
“네!”
“그리고 나가 보자. 뭔 일이야, 대체.”
“네.”
대대장은 그렇게 부대 원복을 지시한 후 밖으로 나갔다.
트럭 두 대가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꽤 많이 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두 대만 올까.
그리고 왜 저렇게 엉망이지?
‘뭐야……. 진짜로 북한군이라도 온 거야, 뭐야?’
불긋한 것들이 묻어 있었다.
암만 봐도 피 같았다.
대대장의 걸음이 빨라졌다.
“무슨 일이야!”
그러자 혼비백산한 얼굴의 중대장과 그를 부축하고 선 상사가 다가왔다.
그 뒤로 넋 나간 병사들과 악을 쓰는 이들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어이, 거기 다친 거 아냐?”
이거 어쩌지 싶었다.
다친 병사들의 몸에서 피가 막 나고 있었다.
남의 귀한 자식 데려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논란과 원성이 휘몰아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안 돼. 안 돼!’
대령은 달고 예편하고 싶었다.
그저 무사히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애가 다쳐?
그것도 한둘이 아닌데?
-야, 다친 애 있으면 일단 가서, 괜찮냐고 하고. 최대한 잘해 줘. 걔가 나중에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더라고.
불현듯 선배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불의의 사고로 부대 내 병사가 죽다 살아났음에도 무사히 진급했던 이였다.
“괜찮나?”
해서 대대장은 일단 달려갔다.
트럭 뒤로.
“어어, 이놈이 왜…… 아!”
그러다 물렸다.
웬 병사 놈이 미쳐 가지고 중령을 물었다.
“이 새끼, 뭐야!”
다행한 것은 주변에 사람이 워낙 많았다는 점이었다.
금세 제지되어 대령은 그리 많이 다치지 않았다.
피가 좀 나기는 했지만.
“군의관 불러!”
그럼에도 소란은 있었다.
뭐가 되었건 이 자리에서는 제일 높은 사람이 다친 거니까.
“어떻게 된 거야?”
대대장은 물린 부위를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중대장은 어버버하다가, 답했다.
“사람들이 사람을 물고……. 죽이고…….”
제대로 된 답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나서려 했던 상사가 앞으로 나왔다.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 나갔던 부대 인원 절반……. 그 이상이 당했습니다.”
“뭐에 당해?”
“시민들이 공격했습니다. 시민이라기보다는……. 짐승 같아 보이긴 했습니다만.”
“뭔 미친 소리야. 시민이 우리를 공격해? 너네 총 받았잖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찌나 사나운지.”
“이게 뭔……. 어. 잠깐만.”
이해가 안 가서 뭐라도 더 물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사단 작전 장교였다.
“지금 바로 오시랍니다. 긴급 회의입니다!”
사단장의 호출이었다.
“어, 알았어. 지금 가지. 운전병 불러!”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전화가 죄 먹통일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