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악화일로 (2)
“저 병신이 뭐 하는 거야.”
공교롭게도 트럭은 유현이 있는 상가 주택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망쳐 올 때까지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비록 몇몇이 희생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트럭 한 대분의 사람은 살지 않았나.
며칠 사이에 이거라도 어딘가 해야 할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서 물린 사람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홀로 조수석에 태워?
“교수님?”
“일단 내려가서 말은 해 줘야겠어요.”
말려야 했다.
트럭 모는 중에 덮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 저기 있는 사람들 다 죽게 될 터였다.
단지 사고만 얘기하는 건 아니었다.
저 길거리에서 이동 수단 없이 방치된다면, 그것이 곧 죽음일 테니.
“밑에 또 감염자 있으면 어쩌려고요! 우리 근처에도 하나 있었잖아요!”
“아까 소란 일어났을 때 달려가는 거 봤어요. 다시 안 돌아오더라고.”
“아.”
“이 사람들……. 이성이 남아 있잖아요. 먹을 거 있고, 하면 한동안 안 올 거예요.”
“그래도 혼자는 위험해요.”
“얘기만 하고 올건데요, 뭐.”
유현은 그리 말하곤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휴대폰에는 각 층마다 설치된 캠이 촬영하고 있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1층부터 철문을 내려놓았으니까.
끼익
그러나 유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1층까지 가서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었다.
뒤에 선 오예리는 전기 충격 장치가 달린 삼단봉을 뽑아 들고 있었다.
너무 지나치게 경계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감염자의 위력은 상상 초월이었다.
그나마 여긴 괜찮은 상황이었다.
‘방심하지 말자…….’
유현은 유리문을 당겨 열고는, 철문을 끌어 올리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
바로 사흘 전, 우식과 연구실로 향하던 길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잊고 싶지도 않았지만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기억이었다.
* * *
“형! 시발 형! 저거!”
원래 계획은 우선 이순규의 혈청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감염자를 포획해 그걸 이용해서 연구를 더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연구소 내부에도 어느 정도 물자를 가져다 놓은 상황이었다.
그냥 거기에 있으면 안 되나 싶긴 했지만.
그건 우식이 반대했다.
“미친…….”
왜 반대했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들었으니까.
다만 그걸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더랬다.
“돌려, 돌려!”
연구소는 다른 행정부처와 나란히 있었다.
그 말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또 주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상가가 있었고, 군데군데 모텔들도 많았다.
다른 목적이 있어 지어졌다기보다는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공무원들이 잠자기 위해 마련된 시설이었다.
-거기……. 거기가 서울이랑 교류가 제일 빈번한 곳이에요. 제일 위험할걸요.
그래, 위험할 거란 생각은 했더랬다.
그래서 일부러 은신처를 좀 떨어진 곳에 잡은 것이고.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이야.
쾅일단 한 달은 넘은 것으로 보이는, 그러니까 괴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감염자가 얼핏 봐도 셋은 넘어 보였다.
본능에만 의지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있는 놈들이다 보니 딱 유리하다고 느꼈을 때 몰려나온 건지 뭔지.
감염자들이 한데 모여 튀어나왔다.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큰 개체도, 작은 개체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빠르고 사나웠다.
“뭐, 뭐야!”
“이거……. 이거 으…….”
“아악!”
거리는 삽시간에 피와 비명 그리고 공포로 가득 찼다.
“밟아! 밟아! 어어!”
“하, 시발!”
유현의 말에 우식은 일단 밟았다.
그러다 감염자 하나를 차로 쳐 버렸다.
끼이익
본능적으로 세웠다.
괜찮은지 보려고.
그런 우식의 머리통을 유현이 날렸다.
“정신 차려! 여기서 내리면? 내리면 어쩌려고!”
“아!”
기분이 나빠지기 전에 일단 정신부터 차렸다.
깡뭔가 깨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창문에 날아들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발이 잡힌 건지 뭔지 그대로 끌려갔다.
그 뒤에는 2미터 아니, 그 이상은 족히 되어 보이는 괴물이 서 있었다.
말단 비대증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인 두툼한 손과 턱이 보였다.
부우웅
우식은 욕도 하지 못하고 일단 다시 액셀을 밟았다.
하필 감염자 하나가 또 앞에 있어 쳐 버리긴 했지만,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청사 주변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더 이상 피비린내가 나지 않게 되고 나서야, 내내 뒤를 돌아보고 있던 유현은 입을 열 수 있었다.
“X 됐구나.”
별로 의미 있는 말은 아니었다.
연구실.
그 주변.
모두 초토화되어 버렸다.
“연구실 사람들은 괜찮을까?”
“주의는 했었어요. 가능할 때만 오자고.”
“출근은?”
“하기는 했을 거예요. 딱히 지침이 없으니까. 공무원들이 원래 출근은 잘하잖아요.”
“이 와중에 농담이 나오냐?”
“진심인데. 아무튼…… 아까부터 전화하는데 아무도 안 받아요. 어쩌지?”
우식이 그렇게 연구원들을 비롯해 청사 측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사이, 유현은 112를 눌러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무도 받질 않았다.
아마 모든 회선이 마비된 것 아닐까.
“그나마……. 제수씨랑 애들…… 은신처로 옮겨 놓길 잘했네.”
유현은 연결음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창가에 묻은 핏물엔 지문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걸 새긴 사람은 어찌 되었을까.
단순히 물리기만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이러스의 행태가 또 변했는지, 뭔지.
아까 감염자들의 행동은 이때까지 유현이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달랐으니.
“그러니까요. 아무튼, 이제 어쩌죠?”
우식 또한 뒤를 보고 있었다.
그래 봐야 보이는 것은 푸른 공원뿐이었다.
청사는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어떻게 됐을까.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연구는 이 시점에서 말이 안 돼.”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살아 나온 것이 고작이었다.
돌이켜 보니, 앞에 있던 버스가 미끼가 되어 준 느낌이었다.
하필 정차를 위해 섰다가 열린 문으로 감염자 하나가 뛰어든 것이 결정타였다.
물린 기사는 운전 불능 상태에 빠졌을 테고, 그렇게 버스는 거대한 배지 내지는 식량 창고로 전락해 버렸다.
“그럼 저걸……. 저걸 그냥 두자고요?”
“어쩌자고. 안 죽은 게…… 감염 안 된 게 다행이야. 우리 손을 떠났어. 이제는 그저 생존만 신경 써야 해. 너는 인마 처자식도 있는 놈이.”
“그렇긴 한데……. 이거 진짜 이러다 세상 망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저런 병이…….”
“모르지. 그나마…….”
유현은 의식적으로 잊고 있던 친구를 떠올렸다.
박원상.
그리고 그가 있을 남산 연구소.
시설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연구 설비가 있기는 할 터였다.
‘원흉이긴 한데……. 어찌 되었건 저런……. 저런 미친 바이러스를 만들 역량은 있다는 얘기니까.’
유현은 눈을 뜨며, 상념에서 깨어난 채 같은 기대를 한 번 더 마음에 담았다.
“교수님.”
오예리는 그런 유현을 불렀다.
유현이 철문을 쥐고는 가만히 있어서 그랬다.
“아, 네.”
유현은 다시금 밖을 휴대폰을 통해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사주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가 흠칫하고 놀랐다.
아니, 아예 주저앉았다.
“으, 으앗!”
“쉿. 조용! 저놈들 소리에 예민합니다.”
무리는 아니었다.
방금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눈앞에서 동료가, 전우가 그리고 친구가 죽었으니까.
하지만 사정 봐줄 때가 아니었다.
유현은 재빨리 달려, 입을 틀어막았다.
어차피 총알은 없다는 걸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
“아, 소위구나. 지금 당장 조수석에 태운 감염자 내리게 하세요.”
“네?”
김현철은 그런 유현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유현의 단호한 지시에도 그러지 못하고 우물쭈물 있었다.
“빨리 내리게 하라고. 이미 감염됐어. 증상 나타나는 게 엄청 빠르니까, 빨리 내리게 해!”
그러자 유현이 다시 한번 외쳤다.
“어…….”
소용은 없었다.
해서 유현은 오예리와 함께 달렸다.
애초에 팔뚝에 안전장치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의는 해야만 했다.
어 하는 순간 당할 수 있으니까.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상태의 감염자는 일반인이 어쩌기에는 너무 빨랐다.
덜컥
유현이 문을 열고, 오예리는 한 걸음 떨어진 상황에서 삼단봉을 겨누었다.
“교수님.”
“왜요?”
유현은 차 문 옆에 있다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 일단 닫을 요량이었다.
그래서 아직 상대 얼굴을 보지 못했다.
대신 오예리를 주시했다.
그간 살펴 온 바에 따르면, 오예리는 비단 형사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세밀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 눈이 빨개요.”
“빨갛다…….”
유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래서 뭐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다.
이순규는 그런 증세를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유현은 일련의 사건을 겪어 오면서, 또 애초에 ARS-24를 겪어 오면서 이 바이러스가 미친 듯이 빠른 변이를 보인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또 원래 알고 있던 의학 지식을 재조합하는 데도 능한 사람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빠른 건……. 아마도 아드레날린……. 그럼.’
유현은 일단 문을 쾅 소리가 나게끔 닫았다.
“어? 갑자기요?”
“벌써 증세 시작된 거 같아요.”
“네? 이렇게 빨라요? 분명……. 분명 죽었다 살아나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게 특징이긴 했지만…….”
불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그만큼 위험 부담을 지는 일이니까.
딱 죽기 전까지만 감염을 일으켜 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게 최고 아닐까?
하여간 유현은 답을 하는 대신, 오예리 그리고 김동연 소위에게 문을 막으라 이르고 반대편으로 뛰어가 운전병을 끌어 내렸다.
“아, 아야.”
좀 다치긴 했지만, 운전병은 불평 하나 하지 못했다.
쾅갑자기 안에 있던 놈이 차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으니까.
잔뜩 핏발 선 눈으로.
어찌나 사나운지 창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금이 가고 있었다.
“뭐……. 뭐 저런…….”
더 무서운 건, 그 와중에 문을 제대로 열려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성이 남은 채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유현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
‘미친……. 이런 걸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는 차치해 두고서라도,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의문이었다.
개새끼들.
유현은 애써 욕설을 삼킨 채, 긴장한 얼굴로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일단 총 들고 내려요! 내려서, 내가 문 열면 제압해야 해. 근데 엄청 빠르니까, 주의하도록 하고.”
“어……. 네.”
“너무 걱정은 말아요. 내가……. 문 열었다가…….”
유현은 병사들이 자리한 것을 확인하고는 살짝 문에 가하던 압박을 풀었다.
그러자 정말 맹수 하나가 뛰쳐나오듯, 물린 병사가 문 틈새로 나왔다.
아니, 나오려 했다.
콱유현이 다시 닫아서 그의 다리를 끼게 만들지 않았다면 반드시 나와서 누군갈 해쳤을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별수 없었다.
“일단 묶어. 자세한 얘기는 묶고 합시다.”
유현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고는 말했다.
병사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의 지시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