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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83화 (83/323)

83화 악화일로 (1)

-시민 여러분, 안심하시고 집에 계십시오. 곧 식량 배급이 있을 예정입니다.

소대장 김현철 소위는 이제 임관한 지 불과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학사 장교였다.

운 좋게 후방에 배치되어 내심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전 명령이 하달되었다.

-계엄령 선포.

처음엔 이게 실환가 싶었다.

혹시 쌍팔년도로 회귀했나 싶기도 했고.

해서 멍하니 있었더니, 중대장이 소리쳤다.

안 기어 나오고 뭐 하냐고.

‘쿠데타는 아니라서 다행인데.’

군대가 무장한 채로 시가지로 향하는 일.

금기시되는 일 아니던가.

특히 대한민국은 2번이나 쿠데타를 겪은 탓에 알러지가 있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불가항력적인 일로 무력을 쓸 일이 생기면 일단 개머리판으로 치라고 했다.

“소대장님, 계속 말씀하셔야죠.”

“아.”

김현철 소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같이 나온 하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렇지.

그가 맡은 임무는 근처 10블록 내외의 면적을 돌며 방송을 거듭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위기에 처한 시민이 있으면 구조해 수송 차량에 태우면 되었다.

그렇게 거리가 비워지면 본격적으로 식료품 배급에 나서는 것이 이번 작전의 대략적인 개요였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시고 집에 계시기 바랍니다! 곧 식량 배급이 있을 예정입니다!

말하면서도 이상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식료품 사정이 별로 좋지 못할 거라고 들었더랬다.

그런데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군데군데 피와 살덩이 등이 보였다.

‘저건 대체……. 시발……. 실탄 필요한 거 아냐?’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보니 딱 봐도 집이 아닌 곳, 그러니까 상가 창가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초췌해 보였다.

군인을 봤으면 비명이라도 질러 댈 법도 한데, 조용한 게 이상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구해야 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이거.”

거리에 사람도 없는데 앵무새처럼 떠들어 봐야 뭐 하겠는가.

상황은 하달받은 작전과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어쩐다…….’

알아서 뭘 해야겠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애초에 무사히 전역하는 게 목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톡이 왔다.

후방 부대다 보니 무전기니 뭐니 성한 것보다 고장 난 게 더 많아서 카톡으로 거의 모든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괜히 카카오톡만 해킹하면 군 통신이 마비되는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도는 게 아니었다.

면피용으로 보고를 했더니 더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왔다.

직접 구하라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장정 수십 명이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가능하겠지.

‘난폭해진다 이거지?’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그래 봐야 일반인인데.

이쪽은 총도 있었다.

총알은 없지만, 소총을 들어 본 사람은 알 터였다.

그냥 그 자체로도 훌륭한 흉기라는 걸.

“하차!”

해서 자신감 있게 명령을 하달했다.

김현철은 그렇게 병사들과 차에서 내려 마트 쪽으로 향했다.

직접 시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였다.

병사들도 협조적이었다.

긴장해서 그랬다.

고요한 시내와 널려 있는 핏덩이들은 누구라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쟤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유현은 여전히 창가에 오예리와 함께 서 있었다.

아까보다 초조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무래도……. 상가 쪽에 갇힌 사람들 구하러 가는 거 같은데…….”

유현도 그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었다.

일행은 풍족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수준으로 물품을 쟁여 두고 있었다.

우식을 통해 병원에서만 쓰는 주사, 기구도 들여왔고.

약국에서도 약을 어마어마하게 챙겨 왔다.

거기에 더해 먹을 것도 풍족했다.

당장 옥상에 쟁여 둔 통조림류의 음식만 해도 몇 달은 너끈히 버틸 수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비로소 다른 이들이 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맞은편 상가 층에 갇힌 이들이었다.

“저기 있잖아요. 감염자.”

해서 유현은 오예리, 이진호 형사 그리고 우식과 함께 구출 시도를 했던 바 있었다.

오예리의 말대로 감염자가 있었다.

한 달은 되어 보이는.

가까이서 보니 그냥 괴물이었다.

진짜 총이라도 쏴야 할 것 같았다.

‘삼단봉이고 나발이고……. 거기다 대니까 이쑤시개더만.’

혹시 몰라 전기 충격기 기능이 있는 삼단봉도 구해 놨지만.

그걸로도 될까 싶었다.

그래서 도망 왔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아니, 못 돌아보고.

아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죽었거나 감염되었을 터였다.

“총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도 달랑 셋인데.”

들어가는 인원은 오예리의 말대로 셋이었다.

김현철 소위와 하사 둘.

나름 간부끼리 위험을 부담하러 가는 길이었다.

병사들은 주변 통제를 담당했다.

‘이렇게 구출하려면 진짜 한참 걸리겠네……. 그나마……. 와, 이거 뭐냐. 하여간 시발, 시민 의식 보소.’

건물로 들어서면서 보니 1층 상가 쪽 유리는 죄다 깨져 있었다.

물건을 함부로 가져간 흔적도 역력했다.

가전 쪽이었던 것 같은데.

남아 있는 거라곤 그저 잔해뿐이었다.

불이라도 안 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강도들이랑 마주쳤으면 그게 더 쫄릴 뻔했네.’

놈들은 무장하지 않았겠나.

총알도 없는 빈 총으로 칼 든 사람하고 싸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 김 소위님.”

그때 옆에 있던 하사가 어깨를 두드렸다.

마침 창이 다 깨진 상가를 지나고 있던 참이라 을씨년스럽단 생각을 하고 있어서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해서 짜증스럽게 물었더니, 하사가 목소리를 죽였다.

“뭐…… 있는 거 같은데요.”

계단 쪽을 가리키면서였다.

“뭐, 뭐가 있어.”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심각한 표정.

이놈이 이렇게 담이 작던가? 싶었다.

‘사회에 있을 때 좀 놀았다며…….’

생긴 것도 그렇고 해서 이럴 때 딱 의지가 될 것 같았는데.

그런 놈이 제일 쫄아서 몸까지 숙이고 있으니 겁이 났다.

자기도 모르게 총을 빼 들었지만, 총알이 없다는 사실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 소총이라도 빌려 올걸.’

심지어 장교랍시고 들고 온 것도 권총이었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흐으으으으

그때 바람결에 실려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

“모르……. 모르겠습니다.”

“사람…… 아닌 거 같지?”

“네? 네. 들개……. 들개일까요?”

“아니……. 여기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들개가 있어.”

아포칼립스도 아니고.

뭔 들개가 돌아다닌단 말인가.

1층 상가가 죄 박살이 나 있어서 그렇지, 세종시 한복판이었다.

시내란 얘기였다.

쿵쿵해서 아닐 거란 생각으로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데 천장이 울렸다.

말 그대로 천장이 울었다.

“뭐야.”

“뭐지?”

따라 들어왔던 셋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소총을 들고 있던 둘은 총구를 계단 쪽으로 겨누다, 김현철의 말에 총검술 자세를 취했다.

“배……고파!”

그때 계단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

“사람인데?”

“구조 요청자 아닐까요?”

최고조에 달했던 긴장이 확 풀리는 순간, 굉음이 울렸다.

덩치가,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가 눈앞에 나타났다.

‘뭐야……. 이게.’

김현철은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콱옆에 있던 하사의 머리가 괴물의 손에 붙잡힌 채 딸려 올라가는 걸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김 소위님!”

그나마 다행인 건, 사회에서 놀았다던 하사는 정신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팔을 잡아끌고 나서야 김현철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아, 으아! 사, 살. 아!”

파먹히는 다른 하사에게서 눈을 떼진 못했지만.

“뭐, 뭐야!”

“이, 일단 도망. 도망가야 합니다!”

다행이라면, 괴물도 먹는 것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시빨 뭐야 저거!”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사정없이 올라가는 목소리 톤.

도망 나오는 두 명의 군인을 보며 유현이 혀를 찼다.

아니, 탄식했다.

“안 돼……. 소리 지르면, 안 돼.”

감염자들의 감각은 넘치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극대화되어 있는 듯했다.

당장 이순규만 해도 정상치를 훨씬 웃돌지 않던가.

그나마 안정제를 주렁주렁 맞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작은 소리 하나 날 때마다 흠칫거렸을 터였다.

그런데 저건.

저것들은 이순규과 비할 수 없을 무언가였다.

아직 실험체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긴 했지만, 꼭 뭘 봐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 정도로 미약한 변화가 아니었다.

쿵쿵고요했던.

폭도들조차 혼비백산한 채 도망가게끔 만들었던 것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수십?

여긴 주거 단지도 아니고, 상권이 죽어 버린 곳이었으니 그나마 저게 다였다.

“어, 어어!”

하지만 병사들을 당황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실탄도 없이 달랑 k-2 소총 하나씩 쥐고 나왔던 이들은 겁에 질린 소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다, 타! 타! 빨리!”

다행히 소대장은 얼빠진 채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무언가 의미 있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고 다 따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으, 으악!”

벌써 물린 사람도 있었다.

“이, 미친! 이, 이거 왜!”

나름 저항은 있었다.

다들 젊은 장정들이었으니.

하지만 때리면 뭐 할까.

“그만!”

사나운 포효와 함께, 날아든 주먹에 얼굴이 부서져 내렸다.

으적

죽음이 확인되자 괴물들은 본격적인 포식에 들어갔다.

죽은 이에겐 안 된 일이지만 차라리 모든 괴물이 그렇게 먹는 데 열중했다면 다행일 터였다.

“발…… 밟고 있어? 이 시발! 오잖아!”

하지만 대다수는 트럭을 노리고 있었다.

이미 선탑 차량은 버려진 지 오래였다.

“밟고 있습니다!”

“지랄 마! 근데 왜! 어어, 야! 쳐! 쳐!”

수송 트럭은 군용답게 낡은 차량이었다.

더럽게 무겁기도 했고.

그래서 느렸다.

어느새 후미에 따라붙은 감염자들은 눈에 핏발이 선 채, 놀라운 반응 속도로 트럭 위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아, 이런 씹…….”

몇몇 병사들이 그 힘에 밀려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현장, 현장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물리고, 또 물렸다.

“하……. 하아.”

남은 이들에게도 그쪽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점점 트럭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긴 했지만, 여전히 붙는 놈들이 있어 그랬다.

그나마 총으로 쳐 내니 떨어지기 시작해서 다행이었다.

아무렇게나 달린 트럭은 골목 어귀에 멈춰 섰다.

“아……. 안 따라오지?”

괴물들이 어느 순간 따라오기를 포기하고 떨어진 이들을 향해 달려가서 그랬다.

“네.”

“휴……. 다친 사람 없어……?”

김현철은 계속 입을 놀렸다.

멈추면 자꾸 눈앞에 핏덩이가 아른거려서 그랬다.

그때 병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팔뚝에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저…….”

“다행히 그렇게 많이 다치진 않았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수석으로 가.”

“네! 감사합니다!”

진행 상황은?

시신 수습은 나중에 해도 돼. 일단 사람들부터 구해.

데리고 나와야지. 감염자들이 좀 사나워진다니까, 그건 주의하고.

거리엔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상가에…… 사람들이. 그리고 길가에 시신이 있습니다.

어떻게 구할까요?

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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