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사태 발발 (3)
왜애애애앵
전국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기갑 부대는 위치 지키고……. 육군 병력만 보내도록 하죠.”
군부대에는 명령이 떨어졌다.
국경선을 지키는 사단과 기갑사단을 제외한 부대 중, 그러니까 후방의 보병사단 중 일부만 우선 시내로 향하라는 명령이었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민정 수석도 국정원도 의무사령부도 모두 이에 동의했다.
그들이 만든 바이러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물인 감염자에 대한 판단이 대동소이해서 그랬다.
‘기껏해야 몸뚱이 좀 큰…… 사람이지.’
좀비랑은 차원이 다르다 생각했다.
이건 죽으니까.
‘발포는 최대한 자제해야 해.’
그래서 더 주의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죽지 않았다는 건, 사람이라는 얘기도 되니까.
동시에 국민이라는 얘기도 되니까.
군인이 자국민에게 총질하는 건 그게 어느 시대건 간에 지탄받을 일이었으니까.
대통령이 그리는 그림은 그런 게 아니라, 사상 초유의 천재지변을 성공적으로 막으면서 동시에 불가피하게 연임을 이어 나간 전무후무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실탄은 후지급하도록 해.”
“아, 네.”
문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 음모에 참여했던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는 막다른 길에 있었더랬다.
그때는 아주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테러를 정권 유지에 써먹겠다는 천재적인 발상이 이를 모두 느물하게 만들었다.
-얼마간의 피해는 오히려 핑계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이 말이 모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전화위복이란 이럴 때 쓰는 말 같았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된 상황이니까.
-시민 여러분, 국가 위기 상황에 의거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물론 국회에까지 이런 내용이 전달되지는 못했다.
절대다수의 국회 의원과 국회 의장이 받은 내용은 그저 테러범이 가공할 만한 변종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고, 이것이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돌고 있는 괴한의 정체였다는 내용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재적 인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기엔 충분했다.
애초에 여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기도 했거니와 야당에서도 정치적인 공격을 하기엔 져야 할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이것이 서울 한복판에서 어제 벌어진 일입니다.”
국회 의장이 들고나온 영상.
을지로 일대에 뛰어다니는 괴한들.
그리고 그 괴한들에게 쫓기는 시민들.
그걸 제지하려 애를 썼지만 도리어 무너져 내리는 경찰들.
무엇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적의 간교한 전략에 당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더 당해 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딱 국회 의결 전에 맞춰서 기자 회견까지 열었다.
그간 침묵을 고수했던 대통령이 청와대 밖으로 나온 만큼 모두의 관심이 팍 하고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 차원에서는 이것이 어떤 공격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공격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괴담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혹은 으레 있어 왔던 변종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일부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괴담이 아니라, 정유현 교수 그리고 일부 감염내과 교수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냐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이를 알리려 했다가 외압에 의해 입을 다문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장내는 소란스러웠다.
언제는 정유현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이라더니, 이제 보니 다 맞는 소리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에 돌연 저널리즘에 불탄 기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습니다. 이는 테러의 결과입니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난 셈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이전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막아 낼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현 사태 해결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국가 내란 혐의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그들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말이 기자 회견일 뿐, 문답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서 그랬다.
그간 입을 틀어막지 않았나?
정보를 주지 않은 탓에 그저 괴한이라는 보도만 나가지 않았나?
이제 와서 그걸 되돌릴 생각일랑 추호도 없었다.
그저 선언이 필요할 뿐이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국가 위기 상황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계엄령 선포를 하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또 지금 떠도는 헛소문에 대해 언급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 내란 혐의를 물을 것이라는 점…… 다시 한번 양지 바랍니다.”
입을 다시 다물라고.
아예 완전히.
그렇지 않으면 국가 내란 혐의를 물을 거라고.
“아니…….”
“그럼 이상으로 제 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질문은 받지 않으십니까?”
“못 들었어요?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바이러스로 인한 테러를 당했다고! 지금도 밖에서는 사람이 죽어 가! 우리 국민이…… 죽어 간다고!”
그러곤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회견을 종료했다.
마지막에는 다소 감정적으로 격앙된 모습도 보였다.
참으로 진실되어 보여서, 진짜 국민을 걱정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그럴 참이니……. 거짓말도 아니지.’
비결은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데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지금까지 이렇게 되기까지 내린 결정에 한 치의 잘못도 없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중간에 꼬이긴 했지만.
이건 다 밑에 놈들 잘못 아니겠는가.
‘결국, 내가 나서야 일이 되는군그래.’
테러와 계엄령을 엮을 생각을 해내지 못했으면 진짜 어쩔 뻔했나.
나라 망할 뻔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본인 같은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이 없어진다는 건 구심점을 잃는 것과 매한가지 아닌가.
휴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위버멘쉬가 따로 있나……. 이게 위버멘쉬지, 그래.’
이런 생각을 하며, 회의실에 들어섰다.
알음알음 모였던 때와는 달리 국가수반이 모두 모여 있었다.
각 부처 장관들부터 해서 장성들 그리고 경찰청장까지.
그래, 이 힘을 모두 동원하면 못 막을 리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행정 능력은 대단한 것이니.
“우선……. 민간 의료원 병상 모두 징발하도록 합시다.”
“네? 그럼 지금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
“누가 강제로 나가라고 한대요? 일단 징발부터 하자는 말이지. 순차적으로 퇴원하면, 그 자리를 이번 변종 환자들 자리로 쓰자, 이 말 아닙니까?”
“아, 네. 각하.”
일단 보건복지부 건은 이것으로 끝냈다.
“군 병원은 이미 ARS-24 중점 병원으로 쓰고 있는 걸로 아는데 맞습니까?”
“네.”
다음은 의무사령관 차례였다.
“변종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네.”
그다음은 국방부.
“감염자들이 일부 난폭해지는 성향을 갖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들었어요.”
“네, 저도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폭력 사태를 넘어서……. 유혈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네. 그럼 발포를…….”
“아니, 미쳤어? 그래도 시민이야! 국민이고! 어차피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을 텐데……. 될 수 있으면 진압만 해요. 고무 총알을 쏘든 뭘 하건.”
“아…….”
국방부 장관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민간인 신분이지만, 그도 한때는 군복을 입었던 사람 아닌가.
‘대한민국에……. 고무총이 얼마나 된다고…….’
인프라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대통령 앞에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에서 의결까지 되게 만든 사람이지 않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만한 사람이 있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고……. 매 시간 단위로 현 상황 모아서 브리핑하세요.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자고.”
“네!”
지금도 보면 다르지 않나.
사상 초유의 사태고, 정말 당황스러울 만한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한 점 망설임 없이 명령이 딱딱 떨어졌다.
덕분에 실무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을 듬직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감염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조금씩 풀어 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반면 대통령은 머릿속으로 전혀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정원 황 팀장의 조언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그렇지?
-이것에 대해 처음부터 너무 많이 아는 뉘앙스를 풍기게 되면……. 의혹을 받게 될 공산이 큽니다. 더군다나 각국의 정보 기관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들어올 겁니다.
-그렇군……. 그래, 우리가 개발 중이던 건 전혀 다른 거다. 이렇게 가자 이건가?
-네. 일부 증거 자료들이……. 독립문 탈취 사건 때 찍힌 사진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건 저희가 최선을 다해 유출을 막았습니다. 아예 실종 처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종 처리가 무얼까.
대통령은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럼 적어도 자신의 죄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정유현 교수……. 그쪽이 좀 골 아프긴 한데……. 계엄령이 동원된 만큼 저희의 운신의 폭이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겠습니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정보를 최대한 적게 풀어야겠군.
-그보다도 저는…… 그저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보도를 따라가는 걸 추천 드립니다. 선제적으로 나서면 이상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 이건 의미 있는 조언이군.
그때 대통령은 정말로 흡족하게 웃었더랬다.
쓸모없는 조언만 해 대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건 자신도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거라 그랬다.
하마터면 놀라운 영도력을 보여 주려고 오버하다가 너무 잘할 뻔하지 않았나.
적당한 피해.
이걸 유념해야 했다.
왜애애애앵
유현도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도로에서는 아니었다.
집 안에, 그러니까 우식이 발품 팔아서 구한 상가 주택 안에서였다.
-시민 여러분, 국가 위기 상황임에 의거 계엄령을 선언합니다. 모두 통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사이렌 후로는 확성기를 통해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평생 계엄령이라는 말이 반가울 줄은 진짜 몰랐네.”
유현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 계획은 매일 질본에 마련된 연구실을 오가며 치료제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도처에 감염자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마트도 잘만 가던데…….’
마트?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딱 하나라도 감염된 지 오래된 사람을 마주치면 그걸로 끝장이었으니.
그나마 식량을 미리미리 다 사 두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터였다.
아마 음식 빠듯하게 쟁여 두고 살던 이들은 이미 굶주리고 있을 게 뻔했다.
“아, 온다.”
그 와중에 군인이 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저대로 와서 유현을 잡아갈 수도 있겠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를 테니, 일단은 마음 놓을 수 있었다.
“근데 왜…….”
유현을 따라 창밖을 보며 오예리 형사가 물었다.
“총은 하나도 안 들고 있어요?”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