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사태 발발 (1)
어떻게 여기까지 돌아온 걸까.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잔상처럼 남은 건 오로지 비명뿐.
“허억허억.”
손발이 저려 온다 싶더라니, 정신을 차려 보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 이렇게 뛰어 본 적이 없었으니.
아니, 최근이 아니라 근 몇 년간을 합산해도 그랬다.
어쩌면 평생 동안 이렇게까지 죽도록 뛰어 본 적은 없지 않을까.
“허억, 허억.”
간신히 숨을 좀 진정시키고, 몸을 일으켰다.
“으, 으으으으!”
그제야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뛸 때는 몰랐는데, 어지간히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다리의 통증도 훅 하고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기절하듯 쓰러져 눕고 싶을 정도였다.
“으, 으아!”
“으아악!”
“누, 누가 좀!”
그러나 주저앉지는 못했다.
창밖에 그야말로 눈을 떼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어서 그랬다.
저 지옥도 속에 자신도 끼어 있었단 생각을 하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주, 죽을 뻔했어…….’
그저 배달을 하러 나갔더랬다.
순구 형이 자꾸 위험하다고, 개소리를 하긴 했지만.
무시했다.
원래도 좀 허언증이 있던 형 아닌가.
전에 사람 죽었다는 것도, 아마 다친 정도였을 터였다.
입만 벌리면 구라를 해 대서 별명도 벌구였으니까.
‘미친……. 이게 대체.’
그래서 그냥 일을 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그 형 말 듣고 안 나가는 애들도 있어서, 이 근방 콜은 더 잘 잡혔다.
개꿀이라고 생각했다.
일은 많아지면서 배달비는 오르고.
일석이조 아닌가.
이렇게 몇 달만 더 벌면, 여기 보증금 빼서 작은 가게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팬데믹 때문에 당장 권리금도 거의 없어진 참이니 절호의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이게 대체 뭐냐고…….’
괴한?
아니, 괴물이었다.
2미터가 훌쩍 넘은 것들이 사람들을 물고, 방해하는 사람을 찢었다.
그 근방에 있던 사람들 태반은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도망칠 수 있던 건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였다.
그저 바로 옆에 자신이 살던 오피스텔이 있어서 그랬다.
‘시발……. 순구 형 말이 맞았어. 이거……. 괴물이야. 말 들을걸. 아……. 뭐 사 놓으라고 할 때 좀 들을걸.’
괴한?
아니, 괴물이었다.
사람 형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옷을 벗고 있거나 미어터지는 옷만 입고 있었다.
그 밑에 드러난 흉악한 근육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흉포함이라니?
사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시발……. 내가 왜 안 믿었지?’
그나마 오피스텔에 돌아오고, 철문으로 가로막혔다는 걸 인지해서 그런가. 서서히 공포심은 가라앉았다.
전화를 할까.
구해 달라고?
아니, 아까 그렇게 말하고 나왔는데 와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당장 누가 온다고 해서 나가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그래도 답답함은 해소해야 할 것 같았다.
해서 원래 자주 접속하던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글을 남겼다.
그나마 다행히도 다 막혀 있던 얼마 전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이트가 다시 열려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창밖을 통해 찍은 사진과 함께였다.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인터넷이 사방에서 터지는 시대에 여론을 완전히 틀어막는 건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아무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막고 있다고 해도, 알 사람은 다 알아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창밖만 봐도 난리가 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댓글로 채팅처럼 이어지던 대화가 끊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종종 있던 일이었다.
그때는 그냥 화장실을 갔겠거니 했더랬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시발……. 그 괴물.’
왜 그 형 말을 안 들었을까.
사실 후배 형도 거들었는데.
순구 형 하나만 그랬다면야 무시했어도 될 일이었지만.
다른 형의 말까지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믿었어야만 했다.
아니, 믿는 정도가 아니라 뭔가 해야 했다.
도망을 치건 아니면 준비라도.
‘설마하니……. 이런 괴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어.’
그때 소음 들려왔다.
아주 가까이에서.
-사, 살려 줘. 살려 줘!
복도였다.
쾅그것도 문 앞.
‘시발 뭔데.’
무언가 현관문을 세게 쳤다.
아니, 부딪쳤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일상에서는 듣기 힘든 소음과 느끼기 힘든 진동이 집 안을 덮쳤다.
“으, 아윽. 으아!”
해서 문가에 달려가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뭐가 안 보였다.
뭔가 들썩이는 느낌만 들었다.
‘흡.’
그러다 얼굴이 보였다.
입가에 피 묻은 얼굴이.
“으으으…….”
동시에 낮은 곳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물었어. 또 물었어!’
일단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몸이 굳었다.
사람이 너무 거대한 공포에 사로잡히면 이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본다, 본다……!’
괴물은 놀랍게도 이성이 있는 건지, 바깥에서 눈을 외시경에 들이댔다.
눈만은 또 일반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 더 소름이 끼쳤다.
다행한 일은 외시경으로는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쾅쾅몇 번인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무너져 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좀 자국이 남았을 뿐이었다.
‘휴…….’
안도가 되니 급작스럽게 다리에 힘이 툭 하고 풀려 버렸다.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문 앞에 죽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통통그때 현관문에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괴물인가 싶어서 황급히 뒤로 피했다.
딩동
“헙.”
초인종 소리도 들려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시발, 시발!’
욕설을 내뱉으며 화면을 확인했다.
거기엔 사람이 서 있었다.
진땀을 흘리고 있는.
-도, 도와줘요.
도와달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손 쪽에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다.
‘아, 물린 사람…….’
저항하다 손을 물린 모양이었다.
왜 저 괴물이 손만 물고 그냥 갔을까?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시위 현장에 두고 왔던, 이름은 자세히 모르지만 하여간 뜻을 함께했던 이들이 떠올랐다.
죄책감.
그것에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문을 열 수는 없었다.
밖에 괴물이 있으니까.
“가, 갔어요? 괴물.”
-네네. 빨리, 저 좀…… 도와주세요. 너무 아파…….
해서 물었고.
또 살폈다.
확실히 지금은 없는 것 같았다.
딸깍
문을 열었다.
“빨리요.”
“네, 네.”
“일단 신고부터 해야죠.”
“그……. 네.”
상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파서 그런가 싶었다.
아프면 보통 이렇게까지 땀이 나는구나 싶었다.
‘눈도 엄청 빨게…….’
핏발이 섰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좀 무서운 인상이었다.
아니, 무섭게 생긴 건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모든 요원이 통화 중이오니…….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잊진 않았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다는 듯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112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멍청한.”
아까는 잘만 되더니!
세상에 112도 안 되고, 119도 안 되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어……. 일단 누워 계세요.”
그때 숨어들어 온 이가 움직였다.
처음엔 비척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빨라졌다.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이거. 이거 괴물……?’
덩치도 소리도 달랐다.
하지만 움직임 자체는 흡사했다.
“아, 아악! 이 미친놈이! 갑자기 뭐야!”
사람이지 않았나?
사람인데.
분명히 사람인데.
왜 나를 물까.
“이 시발 새꺄!”
팔뚝을 문 상대는 쉬이 놓지를 않았다.
아무리 때려도 아픔을 모르는 놈처럼 그저 매달려서 물었다.
그렇게 파고들기 시작한 이가 아니, 이빨이라고 해야 할 것이 드디어 옷을 뚫고 상처를 냈다.
“아, 아아아악!”
피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상대는 한동안 놓지 않더니, 어느 순간 관심이 떨어졌다는 듯 훅 하고 돌아섰다.
“저…… 저 미친놈이.”
나가진 않았다.
도리어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특히 냉장고를.
우적우적
그러고는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조리되지 않은 것도, 조리된 것도.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저, 저…….”
아무리 팔뚝을 물렸다고는 해도 지금쯤이면 정신을 차릴 수 있어야 했다.
움직여 도망치든지 아니면 저놈을 제지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심장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심장이 덜컥 멎는 느낌도 들었다.
조이는 듯한 통증.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에 이러면 경색이라던데.
‘아니, 아닌가.’
그러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평범한 속도가 아니라, 미친 듯이.
땀이 더 쏟아져 내렸다.
눈에 압력이 도는 느낌도 들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와 달랐다.
자꾸 사방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나- 도-!”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냉장고에 달려든 후였다.
평소 먹던 식재료들이었다.
솔직히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쟁여 둔 사료 같은 음식들도 많았다.
“배고파!”
그런데 너무 맛이 있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래도 일주일 치는 쌓여 있었던 것 같은데.
달그락
둘이 순식간에 비워 버렸다.
철커덕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더 먹기 위해.
그리고…….
“어어, 뭐야 당신!”
다른 이를 물기 위해.
그렇게 오피스텔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 * *
“아……. X 됐네.”
순구는 욕설부터 내뱉었다.
연이 닿아 함께 온 김일용 형사는 그런 순구를 돌아보며 물었다.
차에서 내리진 않았다.
오히려 액셀 위에 발을 올려 두고 있었다.
여차하면 튀려고.
“여기라고? 그 친구 집이?”
“아, 네. 제 후밴데……. 이거……. 이래서야…….”
여기로 오자고 한 건 순구였다.
정유현에게 전화를 받고 바로 김일용 형사와 힘을 합쳐 만들어 두었던 은신처로 가려다, 생각이 나서 왔다.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가야 할 거 같지 않아요?”
“내 생각도 그래.”
김일용은 챙겨 나온 실탄을 떠올렸다.
몇몇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막을 수 있을까?
아까 도로에서 마주했던 괴물.
그 괴물이 이거 몇 방 맞는다고 멈출까?
“그럼 가지.”
“네, 시발. 미안하다.”
해서 일행은 오피스텔 앞을 떠나려 했다.
“사, 살려 줘요!”
미련 없이 은신처로 가려 했는데, 비명이 들렸다.
건물 안에서.
“이런 시발.”
김일용은 차마 액셀을 더 밟을 수가 없었다.
-님들. 지금 밖에 장난 아닙니다. 괴물이 돌아다녀요.
-어, 저도 봤어요. 식당에서……. 와……. 사람 쳐 죽이더니 밥 뺏어 먹던데.
-나도 봄……. 근데 이거 왜 보도가 안 돼?
-미친 거 같음. 다 은폐 조작 중인 듯.
-새로운 밈인가? 윗분들 몬솔?
-서울 안 사시나 보네. 서울은 지금 미쳤음.
-근데 우리 회사는 이 와중에 출근하라고…….
-재택 안 하심? 우린 팬데믹 이후로는 선택인데.
-대면 업무가 기본이라……. 부럽.
-그래서 나가셨어요?
-어떡해요. 일단 나가긴 해야죠. 근데. 어? 뭐야.
-왜요.
-누가.
-댓글 왜 더 안 달림.
-무슨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