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팬데믹 (2)
“각하…….”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있었다.
안가가 아닌 청와대에서.
아니, 침실 바로 앞에 마련된 책상 앞에서.
미처 잠옷에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지도 못한 채였다.
“다시 말해 보게.”
“금일 새벽……. 사람을 문다, 덩치 큰 괴한이 있다는 식의 신고가 벌써 만여 건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출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벌써 신고 건수가 만 건에 다다른 상황이니까.
중복 신고가 있기는 하겠지만.
하여간에 큰일 났다는 말조차 너무 가볍게 느껴질 정도의 사안이었다.
“다른 나라는?”
“아직……. 테러의 징후조차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대응에 나서야만 했다.
정보 통제를 풀어야 했다.
유튜브에 나돌고 있는 유현의 영상을 일개 낭설이 아니라 정설이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해야만 했다.
필요하다면 계엄령이라도 내려야 했다.
“덮어.”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은 테러로 인한 것이라고 밀어붙이기에 무리가 있었으니.
“하지만……. 각하. 지금 이대로면.”
민정 수석은 식은땀을 닦았다.
이미 인터넷은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이거 진짜로 정부가 은폐하고 있었다고.
유현의 말이 맞다고.
거의 만 하루 동안 방치된 영상은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었고, 뒤늦게 삭제 작업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괴한 사태까지 결합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정말로…….”
“닥쳐! 이 일이 밝혀지게 되면 나만 옷 벗고 끝날 거 같아? 다 끝나는 거야. 다 끝나는 거라고!”
“그…….”
“자네가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한패라고. 우리는 한배를 탔어! 그럼 어떻게든 덮을 생각부터 해야지!”
“그…….”
민정 수석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대통령의 말이 맞아서 그랬다.
이 일이 밝혀진다?
‘끝…….’
그저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감옥에 가게 될 터였다.
명예는 땅에 떨어질 터였다.
죽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게 뻔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이제 여력이 없습니다.”
“영원히 막으라는 얘기가 아냐. 이거…… 다른 나라라고 다를 거 같아? 막을 수 있겠어?”
“음.”
어떤 식으로 테러가 일어나게 될까.
장담컨대 지금까지의 테러와는 다를 터였다.
911 테러 당시 무너지던 무역 센터 빌딩도 충격이었지만.
이건 결이 다를 게 뻔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회를 무너뜨릴 테니까.
“못 막아, 이건. 그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했나.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했어. 그런데…….”
“예상을 훨씬 넘어갔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럼 우리만큼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나라가 있을 거라고 보나?”
“없을 겁니다.”
“그래. 못 막아. 못 막을 테지.”
대통령은 그러길 바란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얼굴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본인이 나서서 테러라도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아 온 바에 따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위인이었다.
‘하지만…….’
민정 수석은 비난할 수 없었다.
본인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전 세계가 다 같이 나락에 가고, 이에 업혀 갈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네.”
“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대통령이 영 엉뚱한 소리를 했다.
이 사람이 미쳤나 싶었다.
나이를 고려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치매가 오려면 이른 나이였으니.
“대선이 곧이야.”
“네, 그러니…….”
그래서 큰일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
대선이 코앞인데 이게 대체 무슨 악재란 말인가.
악재란 말도 순진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숫제 재앙이지 않나.
세상에 다른 사람을 물리적으로 상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라니?
전파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완전히 마비될 것이 뻔했다.
“자네는 지금 이 상황에서 대선이 가능할 거라 보나.”
“네? 아니……. 그게.”
대통령도 마비된 사회를 보았다.
다만 그 너머에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더 악랄할 뿐이었다.
아니, 현명하다고 해야 할까?
“불가능해. 나오라고 해도 못 나와. 자네도 현장 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말야.”
“아, 네. 봤죠. 그건…….”
끔찍한 광경이었다.
오금이 저렸다.
그걸 만든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아무리 축소해서 말을 해도, 크게 기여를 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대선은 불가능하네. 국가 위기 사태니 내 임기는 자동 연장이야.”
“아.”
민정 수석은 번쩍이는 대통령의 눈을 바라보았다.
광기 따위는 엿보이지 않았다.
말의 내용은 광기 그 자체였음에도, 대통령은 그저 여상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 확신에 차 있었다.
민정 수석이, 또 다른 추종자들이 그를 따르게 만든 그 얼굴이었다.
“계엄령 준비하고 있게. 외국 추이 잘 보고……. 소요 사태 일어나는 거 같으면 바로 우리도 계엄령 내리고, 통제에 들어가는 걸세. 물밑에서는 추적 중단하지 마. 잘 막아 내면 기회는 올 거야.”
“아……. 네.”
“대답이 영 시원찮은데.”
“아닙니다! 반드시 덮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나가 보게.”
“네, 각하.”
대통령은 허리를 숙인 채 황급히 밖으로 나가는 민정 수석의 등을 바라보았다.
들어올 때에 비하면 많이 펴져 있었다.
저렇게 되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시킨 일만큼은 잘하는 놈 아닌가.
‘그래……. 이 사태가……. 대체 얼마나 갈 거 같나.’
해서 다음 대를 맡기려 할 때는 망설임이 일었더랬다.
차기 대통령이라 주목받고 있는 현 여당 대표도 문제였다.
‘뒤통수치는 놈들이 여간 많아야지 말이야. 박태식이 그 자식도……. 같은 당이면서 이빨 드러내고.’
혹 퇴임하고 나서 영향력을 잃게 될까, 그것이 유일한 염려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굴러가게 되면…….
퇴임은 좀 더 뒤로 미뤄도 될 것 같았다.
연임이라는 게 한 번 하는 게 어렵지,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그다음은 쉬울 테니까.
국가적 위기 앞에서 대선이라는 선택보다는 차라리 연임을 시키는 게 국민들에게도 더 쉬운 일일 테니까.
‘정말로……. 차라리 잘됐군.’
잠을 설쳤던 나날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대통령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퍼지고 있을 감염 따위.
죽어 가고 있을 사람들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어, 새벽에 미안하네.”
“아닙니다. 각하.”
“출출해서 그런데……. 라면 하나 먹을 수 있을까?”
“네, 바로 올리겠습니다.”
“겉절이도 있으면 좋겠네.”
“네.”
거머쥐고 있는 이 권력.
이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연임은 불가능하다 여겨서, 다른 방향으로 풀려고 했건만.
이제 보니 마치 계획이라도 세운 것처럼 일이 이리되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됐단 말이지.’
대통령은 새벽부터 특별 편성되어 돌아가는 뉴스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속보입니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서울 도처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이대기 기자가 연결합니다!
기자가 나가 있다는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팔뚝을 물린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굴을 물린 사람도 있었다.
아예 얻어맞고 쓰러진 사람도 있었고.
상대의 덩치가 어마어마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네, 현장에 있는 이대기입니다. 평소 같으면 새벽 출근에 바빴을 이곳은 현재 부상자들로 가득합니다. 증언에 따르면 서너 명의 괴한이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요청…… 어……. 어!”
그사이 바이러스가 더 진화한 모양이었다.
물려서 쓰러져 있던 사람이 구조에 나선 119 요원을 공격했다.
다행히 가볍게 물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저 친구는……. 알아서 추적하겠지.’
대통령은 짧게 요원의 운명을 애도했다.
“각하, 라면 왔습니다.”
“아, 놓고 가게.”
“네.”
그뿐이었다.
틱대통령은 뉴스를 끄고, 라면을 먹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장밋빛 생각뿐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권력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이상하지 않아?”
며칠이 지나고, 욕쟁이 배달기사, 김순구는 후배들과 있었다.
박태식이 죽던 날 같이 있던 후배 그리고 딱히 그때 가까이 있지 않아 사건을 공유하지 못한 후배들과 함께.
“뭐가요?”
그중 멀리 있던 후배가 되물었다.
방금도 배달 하나 마치고 들어오던 길 아닌가.
어쩐지 최근 배달이 더 늘어서, 심지어 배달비도 올라서 개꿀이다 싶던 참이었다.
근데 이상하다니?
그러고 보니 이 형님 최근에 배달도 잘 안 나간다고 들었다.
‘그때 뭔 일 있었다더니……. 우울증 같은 건가.’
뭐 이런 생각만 들었다.
“너 요새 119랑 112에 전화해 봤냐?”
“아뇨? 할 일이 없잖아요.”
“해 봐. 통화 잘 안 돼.”
“에이…….”
“진짜야, 인마. 해 봐.”
“해 볼까요? 에이, 신호 가는구만. 받았는데요? 아씨, 나 장난 전화로 걸리잖아!”
“어? 이게 왜 받지?”
“아, 짜증 나게……. 저 일단 콜 와서 가 볼게요. 형, 이상한 소리 할 시간 있으면 배달이나 한 타임 더 뛰어요.”
“야, 인마. 진짜로…….”
게다가 이상한 얘기까지 하고 있지 않나.
마침 콜이 오기도 했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머지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태식 사망 당일에 같이 있던 후배는 그러지 못했다.
“형, 진짜야? 요새 잘 안 돼?”
“어. 이건 너만 알고 있어. 감방 갈 수도 있는 비밀인데.”
“그럼 말하지 마…….”
“김일용 형사님 알지? 그날 본.”
“아니, 말하지 말라고.”
“요새 이상한 신고가 엄청 많대. 근데 그거 씹으라고 지침이 내려와서, 어? 게다가 인터넷 지금 실검도 막혔고, 여기저기 막히기도 했고.”
“톡은 풀렸잖아요.”
“하도 지랄하니까 그렇지. 근데 알지? 파일이나 링크 공유는 또 안 되는 거.”
“그거야……. 그 뭐지. 성범죄 예방이랑 방역 관련 헛소문 못 퍼지게 하려고 한 거지. 예전부터 한 걸…….”
형식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러고는 컴퓨터 창을 띄웠다.
이상한 사이트가 떠 있었다.
“형 사이비……. 뭐 이런 거 하는 거예요?”
유현의 얼굴이 합성되어서 중앙에 박힌, 말마따나 사이비스럽게 생긴 사이트였다.
“인마 정유현 교수님이 하는 사이트야. 여기서 이런저런 정보 주고받게 해 놨어. VPN 돌려서 차단돼도 바로 살아나더라.”
“아니……. 그러니까. 왜…….”
“봐 봐. 여기. 사진 봐. 이거 어디 같아.”
“을지로네. 뭐야 이거?”
“괴물이야, 괴물. 이게 변종이래.”
“아이씨……. 합성 가지고 진짜. 지랄할래? 형? 이런 거면 뉴스 나왔지.”
“뉴스에 맨날 괴한이라고 뜨는데 이거라니까!”
둘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을 때쯤, 먼저 나갔던 후배는 달리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쭉 까졌음에도 불구하고.
“뭐, 뭔데! 뭔데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