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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78화 (78/323)

78화 팬데믹 (1)

“어, 선배. 이렇게 와도 되는……. 되는 거예요?”

세종에서 오랜만에 본 우식은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감염자를 쫓다가, 팀원들이 죽었고.

그 배후를 쫓다가, 국장이 죽었으니.

그 와중에 부른다고 집 앞이라도 나온 게 용한 일이었다.

“어, 뭐. 이제 다 끝났어.”

“어? 진짜요? 우리가 이겼어요?”

유현은 그런 우식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얘는 지금까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나.

뭐 이런 생각에서였다.

“멍청아. 어떻게 이겨.”

“그럼 뭐가 끝나……요?”

“너 뉴스도 안 보냐.”

“보긴 보죠. 근데 보통은 유튜브 봐요. 알튜브라고 알아요? 그거 보면 시름이 잊혀.”

“알몸으로 나오고 그런 거……. 그런 거는 아니지? 아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아니, 아니. 이 사람이. 날 뭘로 보고. 스타예요.”

“어……. 스타가 알몸으로 나오니……?”

“아니, 스타크래프트라고!”

“와……. 넌 진짜 과거에 사로잡혀 있구나.”

유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체념의 미소를 지으면서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차라리 여느 좀비물의 주인공처럼 영문도 모르고 사태가 닥쳤다면.

그랬다면 더 희망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이건 그런 게 아니지 않나.

상대는 죽었다 살아난 좀비 따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나 인사는 언제 할 수 있냐.”

방금 입을 연, 앰뷸런스 뒷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괴물 이순규가 그 증거였다.

비록 뇌사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기억이 온전했다.

인격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다.

저걸 좀비라 할 수 있나?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나?

“아무튼, 순규도 왔어.”

“좀…… 어떤데요?”

“실제로 봐 봐.”

“아, 네.”

아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였다.

최우식도 비슷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그로 인한 망설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어우.”

우식은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순규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순규는 황당하단 얼굴이었다.

대놓고 놀라니까 화도 안 났다.

“너 그거 진짜 실례인 거는 알고 있지?”

오히려 유현이 좀 그랬다.

친구 얼굴을 보고 후배 놈이 이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죄송. 근데. 아……. 진짜 감염되셨구나.”

“그래. 그렇게 됐다.”

“근데……. 난폭하시지는 않네요?”

“너한테는 좀 난폭해지고 싶은데……. 일단은 그래. 약도 먹고 있고. 참고 있기도 하고.”

반면에 이순규는 멀쩡히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놀라운 인내심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순규가 있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해. 계속 저 안에 둘 수는 없잖아.”

“아, 그렇죠. 근데…….”

“너 아직 과장이잖아. 이 근처 병원이면 약발 강하게 들 텐데.”

“아……. 부처가 아니라?”

“질본에 보는 눈이 많을 텐데. 거기에 어떻게 데려가, 인마. 네가 좀 살살 뒤 봐주던 사람 없어? 콩고물 적당히 받으면서.”

“아니, 무슨 제가.”

“있지?”

유현이 알기로 우식은 마냥 순둥이 같은 놈은 아니었다.

물론 대놓고 돈을 받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각종 편의는 제공 받지 않았을까?

아는 병원이 있다는 건, 상비약 받는 데도 도움이 되니까.

“있긴 있어요. 근데 해 줄까 모르겠네…….”

“해 줄 거야. 공기 감염 없어. 그러니까 음압 병동은 아니어도 돼. 그냥 일인실. 대신 일반 간호 인력이나 의료진은 안 돼. 여기 양재원 선생이 일차적으로 보는 걸로 하자.”

“네?”

“네?”

유현의 말에 우식과 재원 모두 유현을 돌아보았다.

“잘 들어. 상황은 끝났어. 운이 좋아서…… 막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사실 잘된 일이지. 하지만 의사는 늘 최악을 상정해야 하는 법이야.”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유현의 머리에는 이미 모든 계획이 서 있어서 그랬다.

우식도 재원도 그러한 점을 모르진 않았다.

그만큼의 친분은 있었으니.

또 경험도 있었고.

후배로서, 전공의로서 이보다 더 의지할 수 있던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았다.

“병원은 여러 면에서 버티기 좋은 시설이야. 약이 있잖아. 거기에 재원이랑 순규가 있다가, 정말로 상황이 안 좋아지면 약이랑 기구 들고 오라고.”

“상황이 안 좋아진다는 게…….”

“뭐……. 봉쇄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무정부 상태가 되겠지. 중간에 감염체가 뛰어다니는 무정부 상태.”

“아…….”

“그때는 식량과 약이 있어야 해.”

그러니까 약은 양재원이 담당해야 한다, 이 말이었다.

“식량은 마트 가서 사 두면 돼. 이건 내가 형사님들이랑 할게. 우식이 너는.”

“네.”

“병원은 일단 최대한 너네 부처랑 가까운 데로 해. 어때 거리가.”

“차 타면 5분? 걸어서는 꽤…… 걸려요.”

“뭐, 그건 어떨 수 없지. 네가 중요해. 부처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해. 검체를 병원에서 채취하고 연구는 부처에서 하는 거야. 혹시 지금까지 내가 보내 줬던 검체로는 결과가 있냐?”

“유전자 분석만 해 뒀어요. 백신은……. 알잖아요. 그렇게 뚝딱 나올 수 없다는 거.”

“가능성은?”

“인력이 유지된다면……. 시간이 걸려도 만들 수는 있죠. 원천 기술이 공개되어는 있으니까요.”

원천 기술 공개라는 말은 사실 어폐가 있었다.

개발한 제약사에서 공개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팬데믹 사태가 초장기화되면서, 또 변종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나서의 일이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굴지의 국가들은 모조리 산업 스파이를 이용해 기술을 빼내 온 바 있었다.

외국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서 개발하고 있으니 이보다 쉬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의까지 있지 않나.

덕분에 질본도 기술은 가지고 있었다.

“좋아. 치료제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 수는 있죠. 다만 이쪽은 인력이 좀 더 많이 필요해요. 변종마다 치료제는 너무 기전이 달라져서…….”

“그중에 믿을 만한 사람 있어? 우리가 식량 나눠 주고 했을 때 통수 안 칠 만한.”

“있기는 한데. 제가 믿는 거랑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거랑은 다르잖아요.”

“어쩔 수 없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네, 그럼 리스트업 해 볼게요. 아, 이럴 때 국장님이…… 살아 계셨으면 훨씬 나을 텐데.”

유현은 우식의 넋두리에 반응을 해 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게 한가롭지가 못했다.

아니,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짐작이 어려웠다.

정말 한순간에 일상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나.

“그리고 병원하고 부처 사이에 임대할 만한 사무실이나 집이 있을까? 상가 주택이 좋을 거 같은데.”

“네? 상가 주택이 왜요?”

“가구 수가 많으면 우리 비축분을 소모해야 하잖아.”

“아……. 그.”

유현의 말은 곧 우리만 살자, 뭐 이런 뜻이었다.

우식은 그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유현의 눈이 너무 진중했다.

“나는 정말 할 만큼 했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할 거야. 하지만 무리를 할 수는 없어.”

“그, 알았어요. 제가 알아볼게요. 어려운 일은 아닐 거 같긴 한데.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거의 없어. 입지나 이런 거 말고 내일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봐.”

“있기는 할 거예요. 요새 실물 경기가 개판이라…….”

“그럼 뭐 하고 있어.”

“네?”

“가서 구해. 리스트 작성하고.”

“아……. 네.”

우식은 학창 시절 때의 유현을 떠올리다가, 금세 시킨 일을 하러 사라졌다.

이럴 때 안 한다고 하면 큰일 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듣다 보니, 언제나처럼 유현의 말이 옳다는 생각만 들었다.

뉴스와 기사를 보고 나니 더더욱 그랬다.

나름 대한민국 방역의 선봉장이었다 보니 느낌이 딱 올 수밖에 없다고 할까?

‘조졌다……. 세종은 안전하려나?’

서울은 이미 버린 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염내과 교수들끼리의 단톡방을 봐도 그렇지 않나.

심지어 이게 며칠 지난 톡이었다.

그 말은 서울의 각 병원에 벌써 환자들이 산재해 있다는 얘기였다.

다 병원에 오는 것도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서울에는 벌써 천 명.

아니, 수천?

누군가 은폐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아, 형사님.”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있으려니, 김일용 형사가 왔다.

세종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지친 기색이 엿보이진 않았다.

“네. 교수님. 대체 왜 여기에 있으라고 하신 겁니까?”

“일단 들어 보세요. 이제는 뭐 숨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혹시 지금 유튜브에 돌고 있는 영상 말씀이신가요? 교수님이 나온?”

“뭐……. 거기서 이어지는 얘기죠.”

유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그가 예상하고 있는 서울 상황을 말해 주었다.

김일용의 얼굴은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해 갔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에서, 경악으로.

그러나 김일용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욱……. 올라가야겠습니다.”

“네? 서울은 이제 위험할 겁니다. 아니, 경기도도요. 여기도 장담하기 어려워요.”

“전 경찰이지 않습니까? 제가 위험한 곳에 가지 않으면 대체 누가 갑니까.”

“음.”

직업 정신이 참 투철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은 설득이 되지 않는 법이라는 걸,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유현도 그렇지 않나.

이번 건만 해도 그랬다.

그냥 잠자코 있어도 될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바로 유현이었다.

바이러스를 무기화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즉 의사의 신념 때문이었다.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근데 가면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일단 감염자와 접촉하지 않도록……. 민간인 통제를 해야겠죠.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 주면 더 나을 텐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감염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병원 시설을 최대한 보전해야죠. 여의치 않으면 검체가 이동할 경로라도 확보해야 하고요.”

유현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적어도 세종까지는 검체를 들고 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연구가 완료되면, 오성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 않겠나.

그것이 백신이건 아니면 치료제건 간에 아무튼, 이곳이 보루였다.

“네, 알겠습니다.”

김 형사는 유현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서울로 향했다.

여전히 깊은 밤이었다.

하필 달도 없어 깜깜한 밤이었다.

“어, 뭐야. 당신 취했으면 얌전히……. 어, 어!”

“이 미친놈이 사람을 물어?”

“이 새끼야!”

서울의 골목은 소란스러웠다.

“뒤통수를 후려쳤는데……. 으아!”

“왜, 왜 이렇게 커?”

“저건 또 뭐야! 야, 여기 더 있……. 도망……. 으아!”

감염자 숫자가 임계를 넘어 버렸다.

우리 병원에도 있습니다.

아……. 누가 데려갔습니다. 전원을…… 아, 이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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