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76화 (76/323)

76화 새 시대 (4)

“으…….”

열흘 만에 보는 친구는, 한눈에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운 몰골이 되어 있었다.

열흘.

불과 열흘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덩치와 근육 등도 그랬지만.

인상이 너무 달라져 있었다.

“왔구나.”

목소리마저 달랐다.

이렇게만 보면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누군가 이순규인 척하는 거라고,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어, 순규야. 왔어.”

“어떻게……. 어떻게 됐어.”

이순규는 애써 눈을 다른 곳에 둔 채 질문을 던졌다.

이유는 듣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봤지. 직접 보기도 했고.’

괴한들은 사람을 무는 데 있어 어마어마한 욕구를 느끼는 듯했다.

아니, 사실은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박기태 환자도 그랬으니.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애써 본능을 누르고 있는 이 친구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박원상은 정보를 주긴 했지만 여전히 거기 있다는 말?

그 정보를 들었음에도 일이 터져 버렸다는 말?

“잘 안 됐구나.”

“어?”

망설이고 있으려니,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이순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웃음 때문에 주름이 잘게 져 있던 얼굴은 이제 없었다.

그저 괴한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괴한과는 느낌이 달랐다.

“어떻게 된 거야.”

이순규의 이성은, 전두엽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바이러스의 명령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 덕에 이순규는 쥐어짜 내듯 의미 있는 말을 해낼 수 있었다.

유현과 양재원을 번갈아 바라보면서도 그랬다.

“퍼지고 있어.”

이 친구에게만큼은 숨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 선 양재원에게도.

유현은 결심을 내린 후, 이렇게 말했다.

동시에 양재원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퍼져?’

이게 퍼진다는 뜻 아니겠나.

양재원의 머릿속은 삽시간에 암울한 미래로 가득 차 버렸다.

그러다 머지않아, 이건 좀비 따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래도 여차하면…… 군대로…….’

막을 수는 있지 않을까.

나라가 힘을 다해서 막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막을 수 있을 터였다.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그런데 정부에서는 은폐하려고만 해. 내가 유튜브 방송도 하고 했는데, 다 지워졌어.”

“아.”

“다행히 조력자를 구하긴 했는데……. 이제 와서는 늦은 거 같아.”

“늦었다. 2차 감염자가 발생했나? 아니면, 3차?”

이순규는 눈을 감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그라고 해도, 계속 사람을 보고 있으면 힘든 모양이었다.

“3차도 넘어섰어. 추적 불가능이야.”

“아. 이게?”

“아니, 너보다 심한 형태야. 놈들이 진화시켰어.”

“박원상……. 걔가?”

“아마 도움은 줬겠지.”

“개새끼가!”

또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억제대를 몇 겹을 이용해 묶어 놨음에도, 침대 전체가 덜컹거렸다.

무엇보다 방금의 외침.

그건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후…….”

흥분이 가라앉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사이 양재원은 잠시 병실 밖으로 나가, 놀라서 모여든 간호사들에게 별일 아니란 얘기까지 전해야 했다.

그만큼 방금의 소란은 대단했다.

덜컥

다시 닫히는 방문 소리가 도움이 됐는지, 이순규는 심호흡을 했다.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해도 되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혹시 나도 박원상 같은 놈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서였다.

“뭐……. 무슨 말이야.”

이순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유현의 얼굴에 드러난 망설임의 흔적을 눈치챘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10년 넘게 갈고닦은 정신과 의사로서의 감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너 나랑…… 세종시로 가자.”

“어……?”

“지금 번지고 있는 바이러스. 이거 아마 너한테 감염된 거에서 기원했을 거야. 뿌리가 같을 거야.”

“날……. 날 가지고 실험을 하겠다고?”

“치료를……. 시도해 보는 거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

이순규는 유현의 말에 당장 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아까 망설임을 눈치챘을 때부터 대강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화가 아까처럼 치밀어 오르진 않았다.

의사라면 할 수 있는 생각이니까.

“너도 치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

평소의 그라면 군말 없이 따랐을 터였다.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을 테니.

아니, 지금도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무언가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이 제멋대로 굴고 있을 뿐이었다.

“어, 솔직히 말하면 그래. 치료……. 네가 치료될지는 모르겠어. 예방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

“솔직해서 다행이네. 다행이야!”

치료가 될 수 없다.

이순규도 알고는 있었다.

이렇게 변해 버린 신체가 어떻게 되돌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아는 게 별로 없었다면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순규는 의사였다.

현대 의학이 제아무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해도, 마법 같은 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진정……. 진정해.”

“하……. 이 개새끼들.”

이순규가 욕설과 함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양재원이 유현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돌아보니 의문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불안이 가득하다고 해야 할까?

“교수님.”

“어.”

“퍼졌다는 게……. 추적이 안 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뉴스 봤을 거 아냐.”

“레지던트가 무슨……. 제가 교수님 없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아, 나보다?”

“아니, 그런 말은 아니지만. 하여간, 못 봤어요.”

못 봤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병원 업무라는 게 만만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마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현생 살기 바빠 뉴스 따위 못 보고 사는 사람도 많을 터였다.

현대 사회는 만만치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온갖 조작과 은폐가 설치고 있다고 해도.

“아까 화성시에서 괴한이 사람 물고 다닌다는 보도 못 봤어?”

“모르겠어요. 하지만 물고 다니는 괴한이라면…….”

“감염자야. 낮에 인천. 저녁엔 화성에서 목격되었어. 이게 뭘 의미하는 거 같아?”

“아…….”

“정부에서 똑바로 대처했다면 서울에서 막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젠 늦었어. 인천이랑 화성은 너무 멀어. 이렇게 되면……. 방역 조치만으로는……. 이제부터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핵심이야. 물론 대피도 해야겠지.”

“대피요?”

재원의 말에 유현은 밖을 내다보았다.

1인 격리실이라는 게 달리 말하면 독방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않나.

환자가 어떤 잘못으로 인해 벌을 받는 게 아니기에, 병원에서는 창을 내어놓았다.

물론 열리지 않는 창이긴 했지만, 하여간에 통창이었다.

이미 사위가 어둑해진 마당이다 보니 서울의 불빛이 한눈에 들어왔다.

번화한 도시였다.

“저기 얼마나 있을 거 같아? ARS-24……. 지금까지의 ARS-24는 걸려도 젊은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았지. 그렇게 티가 나지도 않았어. 하지만 이건 어때.”

양재원은 유현처럼 바깥을 내다볼 수 없었다.

유현이 건네준 휴대폰에 떠 있는 영상 때문이었다.

화질이 별로였지만, 화면 속 괴한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이 속도로 뛰어다니고 있다면, 지금쯤 대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감염되었을지 감히 예상할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특히 정부가 의욕적으로 막았지. 근데 지금은 은폐하고 있어. 뉴스 봐. 어디에도 바이러스 얘기가 없지.”

“이거……. 이러면…….”

“무너지는 데,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은폐하기엔 늦었거든. 소식이 번지면 틀어 막히겠지.”

“그럼 빨리 알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알렸어, 나는. 근데 막혔어. 어쩔 수 없어.”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선을 다해 알리긴 할 터였다.

다름 아닌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러기 위해 이곳에 남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너무 위험했으니까.

‘상대 가능한 건 하나 아니면 둘.’

셋이면 무조건 감염이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여기 있는 오예리가 돕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글쎄, 과연 셋만 다닐까?

여전히 창밖의 풍경은 평화로웠지만.

유현은 그 안에 날뛰고 있을 감염자들이 보이는 듯했다.

어림잡아도 천은 넘어갈 터였다.

임계를 넘었을 터였다.

그래야 이렇게 다른 지역에서도 출몰할 수 있을 테니.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건 아냐. 근데 여기선 아냐. 세종에서 할 거야. 너……. 가족 없지?”

“네?”

양재원은 진지한 얘기 하다가 갑자기 패드립?이란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은 그런 재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짐 챙겨. 바로 가자.”

“네? 아니……. 근데 여기. 이순규 교수님은요.”

“이대로 이송해야지. 이진호 형사 왔죠?”

“아, 네.”

유현의 말에 오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앰뷸런스 몰 테니까, 넌 옆에 앉아. 순규야. 누워서 가자.”

“별수 있나…….”

이순규나 오예리는 몰라도, 양재원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보내온 시간의 밀도는 남들과 달랐기에 그랬다.

어렴풋이 옆에서 보기는 했지만, 직접 체감한 것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유현의 의지이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차 안이었다.

“교수님. 이렇게 갑자기요? 병원은 어쩌고요?”

“나 안 나오면서 담당 환자 없어지지 않았어?”

“아니, 그건 맞죠.”

“이순규 빼고는 중환 없어. 무엇보다……. 내가 감염되면, 우린 끝이야. 나만큼 이 질환에 대해 잘 아는…… 그러면서도 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없거든.”

“그…….”

유현은 재원의 입을 다시 한번 틀어막고는 액셀을 밟았다.

‘또 알려야 할 사람이…….’

머릿속으로는 몇몇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우선 감염내과 교수 몇 명 그리고 렉카 프렌즈 운영자.

‘아……. 그 친구도……. 그래, 그 사람에게는 빚이 있지.’

욕쟁이 배달기사.

이 정도가 마지막이 아닐까 하고 있으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의외의 인물이었다.

김일용 형사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수사에 진전이 있어서요.

“어떤……? 이렇게 말씀하셔도 됩니까?”

-네, 뭐. 일단……. 범인은 아직 몰라요. 진짜 철저히 숨었더라고요. 근데 박태식 의원 뒤를 캐다 보니까……. 김효상 국장이라는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아니, 의원님 살해 당일에 자살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 이상하죠.”

유현은 세종으로 향하기 위해, 경부선을 타면서 답했다.

늦은 시간이라 차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바로 와 봤는데, 현장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요. 여기 경찰들이 그럴 리가 없는데…….

“아, 세종이에요?”

-네. 이제 다시 올라가려고요.

“일단 거기 계세요.”

며칠 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아비규환이 될 터였다.

유현은 마지막 이름에 김일용을 추가해 주기로 결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