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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75화 (75/323)

75화 새 시대 (3)

김태평은 그렇게 말하면서 총을, 그러니까 테이저건을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니 이미 뭐 된 마당 아닌가.

‘아무리…….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안 나와.’

여기서 설령 정유현이라는 의사에게 두들겨 맞건 어떻게 되건 간에 별 상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유현의 의견이라도 들어 봐야 하지 않겠나.

문제가 있다면 저 인간이 엄청 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천하의 김태평조차 유현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데 애를 먹었을 지경이었다.

아니, 우연히 오피스텔 앞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지금도 몰랐을 수도 있었다.

덜컥

해서 김태평은 내려놓았던 테이저건을 발로 밀었다.

“총 내려놨습니다. 저는 진짜 대화를 원합니다. 교수님.”

유현은 당연하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태평이 총을 내려놓고, 손을 올려 깍지를 낀 채 뒤통수에 대는 모습까지도.

그렇게 차분히 바라보던 유현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삼단봉은 든 채였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다만 저도 대화는 하고 싶군요. 특히 이 뉴스를 듣고 나니까요.”

김태평의 휴대폰에서는 여전히 괴한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괴한이 사람들을 물고 다닌다.’

‘펄쩍 뛰더니 금세 골목으로 사라졌다.’

‘물린 사람이 스물이 넘는다.’

‘경찰이 나섰으나, 그럼에도 제압하지 못했다.’

어디에도 바이러스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다행이군요.”

김태평은 유현과 자신 사이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음.’

유현은 바로 소파에 앉는 대신 이진호 형사를 살폈다.

다행히 출력이 아주 높지는 않았는지 바이털은 양호해 보였다.

이대로 그냥 두어도 회복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으음.’

유현은 괜찮겠단 확신이 들고 나서야 몸을 재차 일으켜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답을 모르겠단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선을 보면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인물이 이러고 있으니 괜히 불안해질 지경이었다.

“형사님.”

“아, 네.”

유현은 오예리에게 경계를 부탁한 후, 맞은편에 앉았다.

“교수님.”

김태평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어느새 답을 구하는 눈을 하고서였다.

“이걸 제가 도와서…… 알리게 되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유현에게는 낯설지 않은 질문이었다.

이 질문, 많이 들어 보지 않았겠나.

팬데믹이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을 때.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로 인한 사회, 경제적인 파장을 더 염려하고 있을 때.

공무원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더랬다.

그중 정치인들은 은근히 압박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순수하게 궁금해하는군. 바라는 답이 없어.’

막을 수 있다고 말하라고.

아니, 알리지 않아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정치인들은 그런 답을 원했다.

사회적인 혼란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 판단해서 그랬다.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못 막습니다.”

유현은 그때 말했던 답을 그대로 읊었다.

“방역이 효과적일 때는 우리가 방역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모두 추적할 수 있을 때뿐이에요. 저거, 알고 계셨습니까?”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는 휴대폰을 가리키면서였다.

김태평은 고개를 저었다.

몰랐다.

인천까지 퍼졌을 줄은.

아마 경찰도 모르지 않았을까?

그 말은 안가에 있던 모두가 모르고 있었단 뜻이 되었다.

“네. 추적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2차, 3차, 4차 감염자가 어디서 발생할지 절대 알 수 없어요. 이제 와서 공개한다고 해도, 별 소용은 없을 겁니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공개하지 말아요?”

“공개는 해야죠. 다만 한 스텝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한 스텝이라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백신과 치료제만이 유일한 희망이에요. 의사로서 이런 말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는 이미 ARS-24에 지고 있어요.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 봐야죠. 저는 계속 그래 왔으니까요.”

유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돌아보았다.

푸른 하늘과 지붕 그리고 널어 놓은 빨래가 보였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그러나 진정으로 평화롭던가.

‘지금도……. 병원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

백신도 나왔고, 치료제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냐고 하면,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ARS-24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을 감염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재감염자도 속출하고 있었다.

변이가 너무 빨랐다.

‘지고 있는 와중에…… 이런 미친 변종까지 나왔다라.’

그럼에도 현장에 있는 의료진은 꾸준히 싸워 왔더랬다.

추이가 점차 유리해지고 있기는 했으니까.

이대로라면, 이대로만 이어진다면 끝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그러나 이번에 나온 변종은 차원이 다른 적이었다.

유현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그대로 있었다.

할 말이 없는 건 김태평도 마찬가지라 한동안 집 안은 고요했다.

“일단…….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유현이었다.

“영상 추적해서 지우던 것만 멈춰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겠군요. 그걸 당신이 하고 있었군.”

“네, 저는 요원이니까요.”

“운영자는 어떻게 됐죠?”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좀…… 회의감이 들어서.”

“그건 다행이군요.”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상이 지워지지 않을 경우를 생각했다.

당장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대단한 노하우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거 언제까지 되겠습니까?”

“길어야 하루죠. 그 후로는 따로 팀을 꾸릴 겁니다. 일단 제가 하겠죠.”

“아……. 나와서 돕는다는 건 아니군요.”

“개인인 저는 그리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하긴. 그럼?”

“저희가 가지고 있는 언론사를 이용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언론사……?”

언론사를 국가 요원이 들고 있어?

유현으로서는 이해가 도통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태평은 그야말로 태평한 얼굴이었다.

“국정원이 여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그건……. 그건 소설에서는 봤죠.”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주로는 무역회사를 운영하지만요.”

어떤 나라에 입국할 때, 나 국정원 요원이요 하고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화이트 요원이 아닌 이상에는 제아무리 동맹국인 미국에 입국하던 길이라 해도 일단 조사를 받게 될 터였다.

그렇다고 관광객으로 위장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작전을 수행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

돈과 물자가 드는 일이지 않겠나.

게다가 일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걸 해결하려다 보면 여러 번 들락날락해야 할 일도 생길 텐데 관광객이라고 하면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인터넷 뉴스 내는 곳들은…… 요새는 거의 허들이 없죠. 인력이 얼마 드는 일도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럼 거기를 이용해서……. 이걸 알릴 수 있겠군요.”

“네. 그중에는 중앙에서는 모르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기자라고 하면 못 가는 곳이 별로 없다 보니 팀장급에서 가라로 만드는 곳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곳을 몇 개 들고 있습니다.”

“좋군요.”

달리 무슨 용도로 사용했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여론 조작이나, 신문을 빙자한 암호 전달 등등.

떠오르는 건 몇 있었지만.

유현은 우선 눈앞에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야만 했다.

대한민국은 아니, 어쩌면 인류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를 마주해야 할 수 있으니.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또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자유롭게 다니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네. 추적 중단했습니다. 사실 꽤 됐어요. 교수님이 몰랐을 뿐.”

“아…….”

그러다 자유롭다는 말을 듣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순규.’

이제 직접 못 본 지 벌써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말은 기껏해야 열흘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새로운 변종이 이만큼이나 번졌다는 얘기도 되었다.

‘아니, 지금은 일단 순규한테 가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김태평이 해 주겠다고 한 일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물론 이순규에게 간다고 해서 그를 치료할 수 있거나 한 것도 아니긴 했다.

그래도 가야 했다.

친구니까.

“같이 가 드려요?”

“그래도 괜찮은 거 같긴 합니다. 이 형사는?”

“일어났어요. 살짝 저리다고는 하는데, 괜찮아 보여요.”

김태평이 떠나고, 오예리가 유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엄지로 앉아 있는 이진호를 가리키면서였다.

이진호 형사는 괜찮다는 뜻으로 따봉을 보여 주었다.

“그럼 가죠. 일단…… 이 사람이 약속은 지켰네요.”

“영상……. 안 내려가고 있죠?”

“네. 엄청나게 공유되고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그간 지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바이럴이 됐는지.”

“그러네요.”

새로이 올라온 영상은 운영 중지되었던 채널에 떠 있었다.

처음엔 살아 있냐? 외국에 있는 거냐 등등의 댓글과 이게 진짜냐는 내용 그리고 허위 사실이면 고발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와 별개로 조회 수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댓글이 다채로워졌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던 사람들의 댓글이 더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인터넷은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부우웅

그렇게 인터넷이 뜨거워지고 있는 동안, 유현은 병원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 일부러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골라서였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미행하거나 하는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잡아가려면 집에서 잡아갔겠지.’

여전히 100%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믿는 게 맞았다.

적어도 유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교수님. 괜찮……으신 거예요?”

오랜만에 보는 것은 단지 이순규뿐만이 아니었다.

양재원도 있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

“안 괜찮으시단 뜻 아녜요?”

“그렇긴 한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게 무슨…….”

유현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양재원을 바라보았다.

‘얘도……. 이제 알아야지.’

원래는 비밀로 하려 했다.

감춘다고 비밀이 될 가능성이 있을 때까지는 그랬다.

-속보입니다! 경기도 화성 행정중앙2로에서 괴한이 행인을 무차별 습격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인근에 계신 분들은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유현은 또다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병실을 가리켰다.

“너도 들어가자. 얘기 좀 하게.”

“아……. 저도요? 두 분 얘기 들어도 돼요?”

“이제는 들어야 해.”

“어……. 네. 알겠습니다.”

-거봐, 내가 뭐 있댔지?

-내 친구도 물리고 나서 병원 간다고 하고 실종이라니까?

-시발 진짜 이거. 해명해야 되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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