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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74화 (74/323)

74화 새 시대 (2)

실험은 진행 중이긴 했다.

기왕에 있는 실험체들도 몇몇 소실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다시 잡아들인 이들이 있지 않은가.

‘일반인들도 몇 있지.’

게다가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들.

그러니까 실험체들에 의해 감염된 이들 또한 일부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현장에서 모두 이송해 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좀 지나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더랬다.

놓친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러니……. 치료제를 내놓으라고 하는 거겠지?’

황당한 요구였다.

특히 의사인 박원상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비록 내분비내과 의사로서, 팬데믹 사태에 선봉장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상황이 급했을 때는 동원도 되지 않았나.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인 정유현이 바로 감염내과 의사였다.

‘아직도……. 아직도 효과적인 약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인류는, 그러니까 현대 의학은 꽤 대단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팬데믹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신을 만들어 냈을 정도였다.

문제가 있다면 바이러스에 있다고 해야 했다.

ARS-24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든 바이러스의 안 좋은 점만 지니고 있다 여겨지는 이 바이러스는 변이가 너무 빨랐다.

“백신은 우선 개발 중에 있습니다.”

박원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김조은이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었다.

아니, 아닌가?

확실히 개발 중에 있기는 했다.

‘전혀……. 전혀 진척이 되고 있질 않은데.’

다만 진행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 어디까지 됐지?”

“유전자 분석 중에 있습니다.”

“유전자 분석? 바이러스를 만든 당사자가 그걸 왜 모른단 말이지?”

“그게.”

변이가 빠르다고 하지 않았나.

김조은이 ARS-24에 저지른 짓은 뭐라고 해야 할까.

‘불에 기름을 부었어…….’

바이러스의 특성을 억제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부분에 메틸기를 입히지 않았나.

브레이크가 해제된 셈이었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판단했더랬다.

당시엔 박원상도 그랬다.

어차피 전 지도를 들고 있으니까.

일단 실험체의 무기화가 가능하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면, 그때 가서 얼마든지 방패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현장에서 온 일부 실험체들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가……. 제각각입니다.”

“응?”

만들긴 했다.

기존에 팀이 만들었던 바이러스, 베타에 대해서는.

하지만 바이러스는 이미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아니, 빠르다는 말조차 터무니없을 정도로 느껴질 만큼이나 급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각각이라는 게 무슨 뜻이지?”

문과 출신인 대통령조차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들은풍월이 있어 그랬다.

“변이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더 많은 검체가 필요합니다.”

“변이라니. 그럼 벌써 기존에 만든 백신이 안 듣는단 말인가?”

“아직 디자인만 되어 있을 뿐 백신 생산은 못 했습니다. 남산에 있는 시설이……. 아직 부족합니다. 게다가…… 네, 맞습니다. 이대로 백신을 만들어도 다는 듣지 않을 겁니다.”

“그럼 치료제는?”

“그에 대해서는.”

김조은은 박원상을 바라보았다.

박원상은 이 새끼는 왜 나를 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대통령까지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별수 없었다.

그저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걸 답이라고 해야 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아직 연구를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설비도 인력도 없습니다.”

“댁은 의사 아닙니까?”

“네. 호르몬에 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치료제는…….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말 말고, 보다 책임감 있는 말을 하세요.”

“의사로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박원상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나는 이순규였다.

이미 괴물이 되어 가고 있는, 그의 동기이자 친우.

또 하나는 밖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정유현.

그 둘에 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런 시발.’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다.

의사로서 책임감 있는 말을 하라는 말에 가슴이 불에 댄 듯 뜨거워졌다.

“의사로서 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뿐입니다.”

“뭐죠?”

“이제 이 건을…… 공개해야 합니다. 서울 아니…… 어쩌면 경기도까지 번졌을 수도 있어요. 우선 공개 수배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 막을 수 있어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군. 그렇게 되면 여기 연루된 사람은 다 죽는 거야.”

“다 공개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저 이런 변종이 있다. 막아야 한다. 이거면 됩니다.”

“그건 정치적인 사안이니, 의사로서의 발언치고는 주제넘는단 생각이 드는데.”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고 회의에 오긴 했다.

어렴풋이 X 됐음을 알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무능한 새끼들.’

그렇게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줬으면 뭔가 결과를 보여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와서 한다는 말이 죄 비슷하지 않나.

요약하면 ‘X 됐다’였다.

그 간단한 말을 길게도 늘어놓고 있었다.

“일단 박사팀은 연구나 하세요. 쓸데없이 입 놀릴 생각하지 말고.”

“아, 네.”

“민정 수석은 경찰 잘 단도리해서 철저히 수색하고. 범위를 경기도 전역으로 늘려도 좋아요.”

“네, 각하.”

“국정원은 병원 정보에 접근해서 색출하도록 하고.”

“네.”

대통령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지시를 내렸다.

명료하게.

“다음 회의에서는 의미 있는 보고가 있으면 좋겠군.”

그리고 압박도 했다.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하여간 대통령이 빠져나가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김조은과 박원상은 남산으로.

민정 수석은 경찰청으로.

황 팀장 또한 그랬다.

“팀장님.”

김태평은 여전히 안가 앞에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팀장님?”

딱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불조차 붙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X 됐어.’

대통령.

남다른 카리스마를 가지고 전 세계적인 초유의 사태를 막아 온,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랬었던 것 같았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인간이지.’

원래 권력자의 속성이 그런 것이긴 했다.

대통령이야 계속 바뀌지만, 요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지 않나.

그래서는 안 된다 배웠지만 현실적으로는 정권의 영향을 받는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서, 김태평은 여러 정권을 살펴 온 바 있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저런다고?

“팀장님.”

팀원이 세 번이나 부른 후에야 담배를 땅에 떨어뜨려 발로 비볐다.

“불도 안 붙이셨습니다.”

“나도 알아. 나 담배 끊었어.”

“근데 왜…….”

“의식이야. 고민의 의식이지.”

김태평은 그렇게 부서지고 있는 담뱃잎 조각을 바라보았다.

흩어지는 조각이 어쩐지 흩어지는 연기와 비슷해 보였다.

“해산하자.”

“네? 해산이요? 명령이…….”

“이대로 우리가 X 빠지게 달리면……. 뭐가 될 거 같냐?”

“음.”

“솔직하게 말해 봐. 될 거 같냐?”

“아뇨. 그…….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일단 나대로 방법을 찾아보고, 그러고 연락할게. 기다리고 있어.”

“아, 네. 팀장님.”

팀원은 이러고 있는 김태평이 잘 이해가 가진 않았다.

요원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 안 되는 사람 아닌가.

권력자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완성시켜 줘야만 하는 사람 아닌가.

‘김태평은 좀 다르지.’

그러나 김태평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었다.

이 인간은 해외를 떠돌면서, 진짜 다른 정보기관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지원만 받아 가면서도 어마어마한 성과를 내지 않았나.

건너건너 들은 사람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김태평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그렇게 자기 팀을 멈춰 둔 김태평은 차를 타고 망원동으로 향했다.

별 망설임은 없었다.

그저 액셀을 밟았다.

‘정유현…….’

지금 대통령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사태가 터지고 나서 단 한 번도 본인만 생각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무모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겁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

‘일단 만나나 보자.’

그라면 해결이 가능할까?

그가 나서고, 내가 돕는다면 될까?

뭐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디……. 집에 있군.’

그저 잡기에 찝찝해서 두고 있었더랬다.

다 알고 있으면서 그랬다.

사건의 본질과 엇나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유현을 붙잡는 것이 정치적인 이득 외에 무엇을 가져다줄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김태평은 GPS에 신호를 확인한 후, 차를 골목에 댔다.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고, 김태평은 집 안에 들어섰다.

누군가의 은신처가 되어 주기에 이 집은 너무 낡았고, 설계도 개판이었다.

“누, 누구. 윽.”

이진호가 삼단봉을 들고 뛰어왔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단순히 격투 실력이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김태평은 불확실함을 싫어하는 사람이기에, 비겁한 짓을 저지르는 데 있어 한 점 망설임이 없었다.

툭테이저건 한 방으로 이진호 형사를 제압한 김태평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엄폐물 뒤에 숨은 정유현을 바라보았다.

“정유현 교수님. 국정원 소속 김태평입니다.”

그러곤 총을 겨눈 채 입을 열었다.

당연하게도 유현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맞은편 방에 있는 오예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 돼. 총이 있어요.’

입 모양으로 말을 해 주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언가 던질 만한 것이라도 있을까?

없었다.

도망갈 구석은?

그것도 없었다.

‘근데 혼자예요.’

그야말로 외통수.

이상한 것은 상대가 혼자라는 점이었다.

물론 집을 둘러싸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CCTV상에는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유현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김태평은 말을 이었다.

“변종에 대해 알고 계시죠? 지금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그거 알리기 원하시죠? 제가 돕겠습니다.”

돕는다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들어온 거 자체가 그래.’

정말이지 그림 같은 잠입이지 않았나.

CCTV에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였으니.

그리고 빨랐다.

미리 루트를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돕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작정이었던 유현의 입에서 답이 나갔다.

김태평은 그런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전히 총은 겨눈 채였다.

“말 그대로입니다. 정부에서는 은폐할 생각밖에 없어요.”

“댁도 요원이니 그쪽 편 아닙니까?”

“그렇죠. 근데 은폐할 수 있는 사이즈를 넘어간 거 같아서요.”

“무슨…….”

“대충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각 병원에 접근해 환자 격리 조치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감염내과 교수들도 움직이고 있고…….”

김태평은 말을 하다 말고,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틀었다.

-속보입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괴한들이 날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저 미친 사람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 눈에는 그보다 더 절망적인 현실이 보였다.

“헌데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이거……. 이미 번졌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인천…….”

“X 됐습니다. 단순히 우리만이 아니라 교수님도요. 아니, 대한민국이 X 됐어요.”

“어쩌자는 겁니까?”

“그걸 모르겠어서 온 겁니다.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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