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새 시대 (1)
‘X 된 거 같은데…….’
김태평은 회의실에 앉은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좀처럼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가 가져온 결과도 그렇거니와, 경찰 측에서 들고 온 결과물도 비슷하게 절망적이어서 그랬다.
심지어 질병관리부에서 들고 온 자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니까……. 물림 상처로 보고된 환자 수가 지금 급증하고 있다, 이건가?”
이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여전히 안가에서 진행 중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이 일에 관여한 모든 높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덮길 원하고 있어서 그랬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제 와 이게 터지게 되면 단순히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진 않을 테니.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를 끝낸 희대의 미친놈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일부 감염내과 교수들을 축으로 해서……. 이 환자군에 대해 신종 감염병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유현인가?”
“그건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평소 정유현 교수와 교류가 있을 법한 교수들인 것은 맞습니다.”
대통령 앞에서 진땀을 뻘뻘 흘려가며 보고를 올리고 있는 이는, 놀랍게도 황 팀장이었다.
죽은 김효상을 대신해 국장 자리에 오른 이에게도 이 일은 비밀이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그의 보고가 다이렉트로 올라올 수가 없었다.
한 다리 거쳐서, 쓸 만한 자료로 가공해서 올라와야 하는데 그 일을 황선우가 맡고 있었다.
내치고 싶은 마음이야 한가득이었지만 이제 와 이 일의 전모를 아는 이를 또 늘려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구관을 계속 써야만 했다.
“대응은?”
“일단 질병관리부 입장은 확인은 해야 한다는……. 그런 입장입니다.”
“당연하겠지. 감염병 하나로 일개 부처에서 장관급 기관이 되었으니. 일단 덮어.”
“네? 근데 그렇게 하려면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이유를 네가 만들라고!”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무능한 황 팀장을 써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이내 경찰 측을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경찰은 아니었다.
경찰 내부 정보를 모아 가져온 민정 수석이었다.
음모의 처음부터 함께한 그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고 있지? 감염자 중에 검거한 사람 있어?”
“그……. 비슷한 인상착의의 용의자를 검거한 사례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습니다.”
“늘어? 우리가 놓친 건 단 세 명 아닌가?”
말이 이상하지 않나?
때문에 대통령의 목소리도 살짝 떨려 왔다.
병원에 환자가 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그랬어야 하는 게 맞았지만.
비의료인인 대통령에게는 어쩐지 환자보다 용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 더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 이미 검거한 용의자가 스물을 넘어갑니다. 처음에는 효자동 인근이었다가……. 이제는 탑골 공원에서 주로 검거되고 있다고 합니다.”
“탑골 공원……?”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친.’
동시에 김태평은 속으로 욕설을 삼켜야만 했다.
탑골 공원이라면 사건이 터진 인왕산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지 않나.
그 사이에 있는 번화가만 해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거……. 진짜 X 된 거 같은데.’
작전이고 나발이고 다 접고 공개 수배로 전환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맞았다.
적어도 김태평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지금처럼 쉬쉬하다간 진짜로 서울 전체가 저 병인지 지랄인지 뭔지에 끝장이 날 것 같았다.
‘무기라며……. 핵에 준하는 비대칭 무기라며.’
김태평은 결심을 기대하는 얼굴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그에게는 이 계획에 협조하고 말고가 선택 사항이 아니긴 했다.
까라면 까는 것이 정보기관 요원의 숙명이었으니까.
가치 판단까지 일개 요원이 하려 했다간 머리 터져 죽지 않겠나.
하지만 내심 이 계획에 마음속 깊이 동조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핵에 준하는 비대칭 무기가 생길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기를 보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 무기가 서울 한복판에서 터진 상황이었다.
“네. 매일 밤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기는 한데……. 현재 지침으로는 봉쇄가 불가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조금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로 일대에는 새벽이나 늦은 밤 혼자 지내는 노숙자들이 많아 그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민정 수석의 이마를 따라 흘러내린 땀방울이 툭 하고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김태평은 그게 눈물인지 땀인지 헷갈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엄중한 상황이었다.
말을 저렇게 하고 있을 뿐, 실상은 아예 통제가 안 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서울은 얼핏 보면 일상을 영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심지어 그 시한폭탄의 시계는 결코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런 망할.”
대통령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나.
아니, 그야말로 이 자리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그였다.
‘안 돼……. 이대로는…….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는 너무 쥐고 있는 게 많다는 점이었다.
일단 대통령이지 않나.
대한민국의 정점에 선 사람이었다.
심지어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50%를 넘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일단……. 지금보다 더 강화하라고 해.”
“네?”
“인력 보충하라고! 검문검색 강화하라는 말이 어려워?”
“아니, 아닙니다.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민정 수석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보통 대통령이 퇴임하면 그냥 그렇게 같이 퇴임하기 마련인 것이 민정 수석이라는 자리이지만 이 사람은 어마어마한 지지율에 힘입어 다음 정권에서 더 높은 자리를 약속받은 사람이었다.
아마 한 번 더 버티고 나면 대통령도 꿈은 아니지 않을까.
‘이 비겁한 새끼들이.’
김태평은 그런 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국정원은 어떻게 하고 있지.”
대통령이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우선은 감염 환자 추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태평은 속내를 감추고, 침착하게 답했다.
“정유현은?”
그에 비해 대통령은 정유현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집착하고 있었다.
‘이 사람아……. 그 사람은 적이 아니잖아.’
김태평으로서는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민간인이라 해도 해를 가하는 게 꺼려지는 것이 사실인데, 정유현은 지금 이 상황에서 일종의 영웅이지 않나.
아무도 몰라서 그렇지.
그가 지금껏 보여 온 행보는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홀로 실험을 방해해 왔을 뿐 아니라, 이제는 정부의 은폐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 팀장이 판 함정도 기가 막히게 피해 나갔고.
“정유현 교수는……. 본격적으로 숨어 버려서 찾으려고 하면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필요합니다. 자원이 무한정하게 주어진 것이 아닌 이상, 요청하신 대로 정 교수를 잡으려면 감염자 추적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런 멍청한! 그럼 더 지원을 해 주겠다고!”
“음.”
김태평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일단 집은 여깁니다.”
고재현 교수는 유현과 오예리 그리고 이진호 형사와 함께 병원 근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경비가 막아섰지만, 병원 교수라는 직함은 비단 병원 내가 아니더라도 잘 통하는 법이었다.
게다가 간호사가 걱정이 돼서 왔다는데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오히려 일사천리로 길이 뚫려서 문 앞까지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띵동
유현이 벨을 누르자,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넘어지고 망가지는 듯한 소리.
“뭐죠?”
“일단 뒤로.”
유현과 오예리는 본능적으로 삼단봉을 폈다.
과연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상 완전히 완성된 감염자는 아니지 않겠나.
대응이 가능하긴 할 터였다.
“어떻게 하죠?”
“대기.”
김태평은 그 자리에 있었다.
유현을 쫓아온 것이 아니라, 간호사를 쫓아왔는데 유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일부러 유현에 대한 감시를 느슨하게 가져가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뭐야, 이 양반.’
숨어 다니는 주제에 여기는 왜 왔단 말인가.
“저거 정유현입니다.”
“일단 대기하라고 했어.”
“아, 네.”
김태평은 렉카 프렌즈 채널 폐기 후 확인했던 영상을 떠올렸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상이었다.
이게 서울에서 터지게 되면 얼마나 끔찍할지 바로 알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어디서건 터지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될 터였다.
‘저 사람은 그냥…… 비극을 막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야. 김효상도 그랬겠지.’
박태식은 솔직히 모르겠다.
그 인간도 대통령 못지않게 욕심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정유현, 저 사람은 그저 비극을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의인이었다.
‘내가 막는 게 맞나.’
솔직히 빠지려면 이미 빠졌어야 했다.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이 자리에 있다.
저런 인간은 처음 봤더랬다.
국가적 사상에 경도된 것도 아닌 일개 개인이 저렇게 심지가 굳을 수 있나.
김태평은 유현을 보면서 처음으로 주제넘은 짓을 했다.
“제압했어요!”
“아까 할돌 재 놨죠? 찔러!”
“네, 네!”
밖으로 뛰쳐나온 간호사는 어떻게 봐도 위험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제아무리 삼단봉을 들고 있었다 해도 당했을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하지만 오예리와 정유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해 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태평은 지시를 내렸다.
“철수.”
“네?”
“철수.”
“아, 네.”
내리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기는 했다.
요원으로 살아오는 동안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지시라 해도 죄 이행해 왔으니까.
지금의 명성 또한 그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니까.
하지만 지시를 내렸고, 부하들은 그의 불합리해 보이는 지시를 따랐다.
뭔가 있겠지.
큰 뜻이 있겠지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 지원을 모두 감염자 추적에 사용해도 모자랄 거 같습니다만.”
김태평은 얼마 전 있던 일을 떠올린 채로, 대통령에게 답했다.
뒤에 있던 민정 수석과 황 팀장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그런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미쳤나 싶어서였다.
변함없이 서 있는 건 오직 한 명, 김태평뿐이었다.
“하아…….”
대통령은 그 말에 한숨을 푹 하고 쉬다가,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평소라면.
아니, 이전까지는 이 자리까지 불려 오지 않았을 사람 둘을 바라보았다.
“김 박사, 박 교수. 치료제나 백신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마음속으로 김태평은 아웃시켰다.
‘장기말이…….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무능한 게 차라리 나았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거역하기 마련이니까.
설령 그 거역이 옳은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게.”
한편 김조은 박사와 박원상 교수는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백신이나 치료제라니.
그건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은 과제여서 그랬다.
아니, 가능하기는 한 건지조차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