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은폐 (3)
-대박……. 채널 사라짐.
-미친……. 이거 진짜 뭔가 있는 모양인데?
-그게 뭔데, 씹덕들아.
채널 자체는 작았지만, 마지막 실시간 시청자는 수천을 넘었던 상황 아니던가.
보면서 녹화를 떠 둔 사람들이 있어서 유튜브에 링크로 영상이 떠돌아다닐 정도는 되었다.
또 채널이 아예 사라진 것 또한 일부 커뮤니티에서 회자되었다.
-또 날아감. 그 영상 올리면……. 무조건이네.
-이거 진짜…….
-조심해라. 너네 집 앞에 마티즈 서 있을 듯.
-해외 아이핀데?
-그럼 스파크.
이 때문에 김태평도 고민을 하기는 했더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증거란 없어지고 나면 힘이 사라지는 법이었다.
남은 의혹은 바람 한번 불면 날아가는 법이었고.
“그냥 무시하시면 돼. 방역 지침 위반으로 다 때려. 진짜로 방에 넣기 시작하면 잠잠해질 거야.”
“네? 그러다 시위라도 나면…….”
“시위? 그거 방역법 위반인 거 몰라? 게다가 변종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시위를 한다고? 자가당착 아냐?”
“아……. 그렇군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팀장님.”
해서 밀어붙였다.
“이거……. 생각보다 화제가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요.”
유현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솔직한 말로, 이쯤 되면 어떤 성명이라도 발표할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그냥 막무가내로 지우고, 잡아들이면서 청와대에서는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흠.”
유현은 눈앞에서 서성이는 오예리와 이진호, 두 형사를 바라보았다.
탁자에는 먹다 남은 군만두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사실 나가려면 나갈 수는 있었다.
영상에서 조심하기도 했거니와, 아예 영상을 싹 지워 버리는 바람에 유현이 지명 수배되는 일은 없어서 그랬다.
하지만 조심하느라 거의 끼니는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있었다.
“어쩌죠?”
오예리는 남아 있던 군만두 하나를 씹으며 물었다.
이제 복수심은 어느 정도 옅어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한 열심은 오히려 더해져만 갔다.
그날 보았으니까.
-크아악!
일반인은 절대로 대응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들던 그 괴물들.
그 힘과 폭력성.
만약 죽이려고만 마음먹었다면, 그날 거기서 찢겨 죽었을 사람 많았을 터였다.
이렇게 위험한 놈들이 있다면 무조건 막아야 할 텐데, 정부는 소식을 틀어막고만 있었다.
독립문역이나 경복궁 또는 광화문 쪽은 몰라도, 인왕산 쪽은 놓쳤을 텐데도 그랬다.
“어쩌긴요. 계속 뭐라도 해 봐야죠.”
“뭘……. 더 어떻게…….”
의지는 있었다.
그러나 꺾여 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정부는, 그리고 국가는 강하다는 걸 뼈저리게 알아 가고 있어서 그랬다.
유튜브가 외국계라서 그나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네 어쩌네 하더니만 영상은 족족 지워지고만 있었다.
심지어 이 셋이 차명으로 만든 계정에 올린 영상도 마구 지워지고 있을 지경이었다.
“일단……. 사람들을 찾아야 해요.”
“사람들?”
“그날 다친 사람들. 그거 군 병원에서 다 감당 못 할 거예요.”
“아.”
“물론……. 그놈들이 치료를 하고 있을지 아니면 그냥 가둬 놓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유현 또한 오예리처럼 그날을 떠올렸다.
차이가 있다면, 유현은 그날 다친 이들을 떠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충 보기에도 수십이 다쳤더랬다.
애초에 서촌 옆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인 데다가, 놈들이 그야말로 무질서하게 달려들었기에 그랬다.
그중 일부는 지하철역으로도 뛰어 들어갔고, 일부는 골목으로 향했더랬다.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뭐가 되었건 간에 의료진들이 동원되었을 거예요. 치료를 위해서건, 실험을 위해서건.”
“네? 실험이요?”
“네. 벌써 여기까지 저지른 놈들이잖아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그건 그렇겠어요.”
오예리는 믿기 싫은 얼굴로, 그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번 일로 인해 인간의 악의를 진득하게 느낀 바 있어서 그랬다.
“전화를 돌려 봐야겠어요.”
“전화요?”
“네. 일단 뭐 아는 애들 중에 혹시 연루된 애들 있는지 봐야죠. 큰 병원에 있는 애들이라면……. 혹시 모를 일입니다.”
“아, 네.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뭐라도 나오면, 그때요.”
“네.”
유현은 그런 오예리를 뒤로하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개인 폰은 쓰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보니, 이제는 선불폰이 오히려 자기 폰 같았다.
-어. 형.
우선 우식에게 걸었다.
잔뜩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좀 어때.”
-어떻긴. 장례식장 갔다 와서는……. 나도 집에 있지. 무섭네요, 조금.
당연한 일이긴 했다.
같이 다니던 경찰들이 죽었고.
김효상 국장까지 죽었다.
심지어 박태식 의원도 죽었다.
자꾸 옆에서 관련되었던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그래, 잘했어. 근데 말야.”
-어. 뭐……. 도울 일이라도 있어요?
“괜찮겠어?”
-괜찮지는 않지만……. 내가 아무리 위험해도 형만큼이겠어요? 아니, 대체 어쩌자고 얼굴 까고 방송한 거야.
“그렇게 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아니었지만.”
감염내과 교수 정유현.
이 타이틀을 걸면 꽤 주목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게가 가벼웠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정부가 더 무거웠거나.
아무래도 후자이긴 할 터였다.
그날 이후 인터넷상에서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불도저가 따로 없었다.
-하여간……. 왜? 다른 수라도 있어요? 나는 그 이상 우리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 이러다…… 나라 아니, 우리가 알던 세상이 또 한 번 망할걸.”
-뭘 또 그렇게까지…… 아니지. 그럴 수 있지.
우식은 농으로 취급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아닌 게 아니라, 무섭고 지쳐서 그랬다.
먼 미래의 위협보다는 당장 눈앞에 실존하는 위협이 두려웠다.
하지만 명색이 의사고 또 방역 담당관이지 않았나.
그간 방역을 빌미로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치들을 생각하면, 확실히 팬데믹 이전에 있었던 세상은 망하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계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세상이 도래한다고?
‘훨씬 끔찍하겠지.’
우식은 영상이 지워지기 전에 본 바 있었다.
원래 올리려고 했던 영상도 봤고.
이 감염자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환자라기보다는 일종의 재앙이었다.
‘좀비보다도 어쩌면 훨씬.’
죽지 않는 존재도 무섭겠지만.
죽지 않은 존재가, 덩치만 빼놓고 보면 그냥 사람인 존재가 그렇게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것 또한 무서운 일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마음 놓고 총질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같은 사람에게 관대하니까.
“그때 물린 환자들……. 이제 슬슬 변화할 때가 됐어. 아니, 어쩌면 더 빠를 수도 있어. 그때 원상이 말에 의하면 빠르면 시간 단위로 변한다고 했거든.”
-아……. 그럼……?
“일단 그때 물린 환자들이 어디로 수용되었는지 알아야 해. 아니라면, 놓친 환자들……. 그러니까 정부 관리 감독하에 들어가 있지 않은 환자들을 본 의사들이라도.”
-형도 알아볼 수 있지 않아요?
“나보다야 네가 마당발이지. 나 알잖아.”
-아……. 하긴.
유현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일에 미쳐 사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만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우식은 애초에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정부 기관에 입사하게 되었을 만큼, 특이하고 정력적인 인간이었다.
용기가 부족했거나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임상 외에 다른 길을 택하지 못한 의사들에게 특히 더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여태 알고 지내는 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럼 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형도 주니어 스탭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아, 이미 그쪽으로는 물어보셨으려나?
“아니, 나도 정신이 없어서. 사실 영상에 다 걸고 있었어. 현장 일은 애써 잊고 싶기도 했고.”
-하긴……. 아니, 나는 영상으로만 봤는데도……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오더라니까요. 하여간 이렇게라도 얘기하니까 좀 낫네. 아유, 집에서는 이런 거 다 비밀인데 혼자 끙끙 앓고 있으려니까 진짜 죽겠더라고요. 특히 김 국장님……. 상 다녀올 때는 진짜. 그렇게 가면 안 되는 사람인데.
“지역 신문에라도 뭐 나는 건 없지?”
-네? 네. 자살자에 대한 보도 엄청 강화됐잖아요. 아예 일언반구 언급도 없어요. 직장에서도 장례식장 안 간 사람들은 모를걸요.
자살에 대한 보도 자체가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였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일정 부분 상식이 되어 있기도 했고.
따라서 자살에 대한 보도를 제한한다는 법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이렇게 악용이 될 줄이야.
유현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렇군. 그렇게 묻히다니. 너도 조심해.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간다.”
-네. 그래야죠. 하여간……. 물어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래 줘.”
그러곤 전화를 끊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게 다시금 실감 나는 통화였다.
그리고 그 죽음이 자기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 또한 실감 났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기는 어려웠다.
‘주니어 스텝들……. 그래, 내가 왜 이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했지.’
언론에 터뜨릴 생각만 했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더랬다.
잠시라고 해 봐야 3, 4일이긴 했지만.
평소의 유현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만큼 몰려 있었다.
상황이 너무 좋지 못했다.
“전화 받을 수 있어?”
하여간 전화를 걸었다.
숙소에서 나와, 몇 킬로를 걷고 난 후에야.
-어, 정 교수님?
상대는 칠성 병원의 고재현 교수.
아직 젊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감염병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정 교수님 맞아요? 아니, 요새 어떻게 된 거예요. 연락도 안 되고……. 병원에서도 연락 안 된다고 하던데.
“뭐, 좀 그럴 일이 있었어.”
-아닌 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교수님 짤방 봤어요. 지워졌던데……. 뭐 위험한 일에 연루되신 거예요?
“봤어? 그럼 얘기가 빠르겠는데.”
-네, 봤죠.
고재현은 답을 하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김태평이 보낸 요원이 서 있었다.
그는 통화를 계속하라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그래, 그 변종은 실재해. 정부에서는 은폐하고 있고.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교수님 말인데, 아무렴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물린 상처와 더불어 난폭해진 환자 본 적 있어? 혹은 봤다는 소식을 들었거나.”
-아.
고재현은 정유현이 음모에 연루되었다고만 들었다.
있지도 않은 변종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권 전복을 꾀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지만, 정부 기관에서 들이민 명함은 어떻게 봐도 진짜였다.
‘나 이런 환자 봤는데…….’
해서 협조하고 있었는데, 역시 안 했어야 했다.
-교수님. 일단 전화 끊어요.
“어? 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