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68화 (68/323)

68화 탈취 (3)

“일단……. 검체를 데리고 가는 건 어려울 겁니다.”

즉시 청와대 안가에 소환된 김조은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이거야 당연히 알아서 잘할 줄 알았던 문제 아닌가.

‘왜 나를 불러?’

김조은은 연구를 위해 온 몸 아닌가?

근데 왜 이송에서 문제 터진 걸 가지고 불러?

화가 나는데?

뭐 이런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대통령이 너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 일이 있기 전에 알았던 대통령이었다면 저런 표정을 짓고 있건 말건 어차피 난 외국 가서 살면 된다고 하고 배 째라고 할 텐데.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는 인간 아닌가.

“무슨 이유에서 그렇지?”

게다가 지금은 흥분을 해서 그런가. 반말까지 지껄이고 있었다.

그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조심해야지 뭐.’

힘 있는 사람 앞에서.

그것도 눈깔이 돌아간 상태인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숙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바이러스는 불안정합니다. 검체째로 데려가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추출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때문에 추출된 상태의 바이러스는 아예 없습니다. 상대에게 정보가 있건 없건 사람을 데려가야 합니다.”

“그건…… 음. 통제 제대로 되고 있나?”

대통령의 말에 비서가 즉시 고개를 숙였다.

“네. 인왕산로 인근 도로 모두 막았습니다.”

“병력은?”

“대테러 진압 병력도 이동 중입니다.”

말하자면 경찰 특공대가 이동했다는 뜻이었다.

미국이라면 당연히 델타포스니 뭐니 하는 군부대가 국가 최정예일 테지만.

전쟁 작전을 수행해 본 지 오래된 국가일수록 경찰 특공대가 최정예가 되는 법이었다.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훈련 정도에 있어 군 특수부대와 차이를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윗줄을 점하고 있었다.

“지금은?”

“경찰 병력이……. 의경들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총 쏘는 데 일반 경찰이 가 있다고?”

“현재 특임대는 해당 조직과 전투 중이고……. 요원들도 그렇습니다. 빼서 통제에 쓰기에는……. 그리고 군부대를 불러들이려면 어떤 식으로든 공식적인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건 안 되지.”

이목을 끌면 끌수록 위험한 상황이지 않나.

사람들이 위험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언론에서 물고 늘어지기라도 한다면…….

“각하, HBS에서 연락입니다.”

“HBS? 거긴 뭐야.”

마침 그 생각을 딱 하고 있으려니 공영 방송국인 한국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이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인상이 구겨졌다.

“이메일로 이상한 자료가 왔다고 하는데…….”

“이상한 자료?”

“네. 한국대학교 병원 감염내과 정유현 이름으로.”

“이런 미친놈이……. 보도 지침 내려! 방역에 방해되는 헛소문 방송하면 싹 다 징계 내린다고!”

“네! 근데 정유현이라는 이름이 아무래도……. 다른 언론사 또는 유튜브에도 같은 자료가 갔다면 방송이 되기는 할 거 같습니다.”

“정유현이 대수야? 비리 캐서 매장시켜! 아니면 조작이라도 해서 매장시켜!”

“네.”

언론이 말썽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말썽인 상황이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군부대를 부른다.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대통령은 필연적으로 군을 수도로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 싫어도 쿠테타를 떠올리게 되니까.

“경찰 병력으로 막아. 어차피……. 검체랑 이동해야 된다는 거잖아? 만약 있으면 사살이라도 해.”

“네? 각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귀중한 검체들이…….”

“그게 대수인가! 김조은 박사. 이거 새어 나가면 나만 끝장일 거 같아? 당신도 끝이야. 연구는 다시 하면 되잖아!”

“아니, 그…….”

연구를 다시 하라고?

이 문과 놈 같으니라고.

김조은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바이러스……. 그러니까 ARS-24 베타 버전이 어떤 바이러스란 말인가.

공인된 변종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르는 괴상한 놈이었다.

그 와중에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가 나온 것이 과연 연구의 결과일까?

중국에서와같이 한국에서도 지극히 우연이었다.

유전자 박사랍시고 붙기는 했지만 후조작을 했을 뿐 처음부터 만들 자신은 없었다.

“뭐 할 말 있나?”

“아니, 아닙니다.”

아까운 일이었다.

평생의 역작 아니, 역사에 영원히 남을 만한 업적이지 않겠나.

어디에서도 말은 못 하겠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될 터였다.

‘그래도……. 내가 죽을 수는 없지.’

하지만 여기서 뻗대고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죽을 게 뻔했다.

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사이 대통령은 명령을 이어 나갔다.

“언론 최대한 통제하고……. 유튜브 이쪽도 압박 넣어. 채널 모니터링하면서 뭐라도 뜨면 바로 내리라고.”

“언론 통제…….”

“방역의 일환이라고 해! 관련 법안 생긴 지가 언젠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현장은 일단 몸빵이라도 하라고. 의경 다 보내.”

“네.”

듣기만 해도 참 무책임한 명령이었다.

언론 통제야 하라면 하는 건데, 현장을 저렇게 해도 될까?

‘알아서……. 알아서 하겠지.’

김조은 박사는 검체들을 떠올렸다.

아마 통제가 쉽지 않을 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총 들이밀자마자 설설 기겠지만.

실험체들은 총 따위에 겁먹을 위인들이 아니지 않나.

그나마 박기태, 그러니까 1호는 여전히 이성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기는 했더랬다.

그래도 통제가 될까?

‘아마 저쪽에서도 쉽지 않을 거야.’

그 말은 곧 감염의 위험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구속복을 입혀 놓기는 했지만, 하도 급하게 하느라 그것까지는 특별 제작을 하지 못하지 않았나.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2미터가 넘는 거구들이 그거에 정말로 구속이 완벽하게 될는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그냥 거구도 아니고, 근육이 미친 듯이 펌핑된 이들이었다.

솔직히 말해 김조은 박사는 실물로 그들을 마주한 지는 좀 되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 눈과 덩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려 와서 그랬다.

-아마도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일 겁니다.

박원상의 말이 떠올랐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태고부터 인간은 타고난 살인자들이지 않았나.

비록 효율의 문제로 식인을 일삼는 일족은 적었지만, 그럼에도 동족 살해 건수에 있어서만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동물도 인간을 따라올 수 없었다.

그야말로 밥 먹듯이 동족 살해를 저지르는 놈들이니.

그중에서도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낮은 수컷은 경계 대상이었다.

“으으으. 으아아!”

김조은의 예상과는 달랐지만, 하여간 테러 집단은 지속적으로 감염되고 있었다.

“감염이 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에 그랬다.

국정원과 특임대의 접근을 저지시키기 위해 무장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물렸다.

생각해 보면 그리 황당한 발상도 아니었다.

애초에 폭탄 조끼를 입고 뛰어드는 사람들이었으니.

본인이 감염되어 생체 폭탄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은 당연히 했어야만 했다.

타다다당

그렇게 감염된 이들이 늘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선이 확대되었다.

“독립문역 방면……. 통일로 적 출현! 의경들이 막고 있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총기 무장한 괴한 다수!”

“통일로 12길 적 출현!”

“인왕산로 산책길 따라 덩치 큰 괴한들이……. 어어 달려듭니다!”

무장한 위구르 독립 단체와 그들이 의도적으로 풀어 준 검체들이 사방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삽시간에 주변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얄궂게도 특임대와 국정원 요원들이 뚫으려 하고 있던 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 되고야 말았다.

“이거…….”

“사방에서.”

“탈출을 그쪽으로 하려는 걸까요?”

바로 뒤에 있던 정유현, 오예리 그리고 이진호는 갑자기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 그리고 희미하게 섞여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탕쾅비록 앞에서 여전히 총싸움 중인 데다가, 상대가 중화기로까지 무장하고 있어서 너무 시끄러웠지만.

그럼에도 소음이 들려올 정도로 주변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도로 사정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빵처음에는 클랙슨 소리가 울렸다.

그러다 하나둘 차에서 내려 상황을 보더니 앞다투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어!”

“이거 뭐야!”

오히려 총기를 든 괴한을 마주친 이들은 다행이었다.

그들은 당장의 인명 살상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저 빨리 도망가 그들의 적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으, 으아아악! 이 미친놈이!”

하지만 그들이 풀어다 놓은 거한들과 마주친 이들은 고통스러웠다.

물론 고통스러울 뿐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 한번 물고 나서는 시큰둥한 얼굴이 되어 다른 이를 향해 달렸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시발…….”

게다가 목덜미 등과 같이 위험한 곳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막으려고 내밀었던 손이나 팔뚝 또는 도망치다 붙잡힌 채 다리 등을 물렸을 뿐이었다.

“저, 저리 가!”

같은 이유로 더 많은 이들이 공격당하고 있었다.

한번 물고 나면 바로 다음 타겟으로 이동하고 있는 데다가, 너무 빨랐고, 또 너무 힘이 셌다.

깡의경 중 하나가 들고 있던 진압용 봉을 휘둘러 봤지만 바로 튕겨 나올 정도로 몸이 튼튼하기까지 했다.

“어어…….”

그렇게 봉을 휘둘렀던 의경은 방패째로 들려서 그대로 옷이 찢겼다.

“으, 으아아아!”

그렇게 드러난 맨살에는 곧 거한의 이빨 자국이 남았다.

“진압해!”

그나마 독립문역 또는 경복궁역 방면은 사정이 나은 편에 속했다.

이쪽은 대로고 그만큼 경찰 특공대의 접근이 용이했으니까.

“정지! 더 접근하면 쏜다!”

물론 쉬운 건 아니었다.

전해 들은 말이 없지 않나.

지금 달려드는 이들이 뭔지 이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복색이 특이한 사람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고무탄 쏴! 비무장이야!”

“네!”

해서 고무탄을 갈겼고, 온몸이 근육 덩어리인 거한들은 쉬이 쓰러져 주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진압!”

그래도 진압은 어찌어찌 가능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사이에 테러 조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쫓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인왕산 산책로……. 적 다수 출현! 나도 물렸다!”

산책로 쪽으로 향했던 거한들 때문이었다.

그 인근은 바로 주택가이지 않나.

다행히 물고 딱히 다른 짓은 하지 않아서 경상에 그칠 뿐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주택가로 보내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이동!”

해서 차출되어 나왔던 경찰 병력들은 죄 서촌으로 향했다.

그사이 이 일의 전모를 파편으로나마 알고 있는 특임대와 국정원은 버스에 도달했다.

이미 버스였던 무언가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되찾을 수 있었다.

“욱.”

안에는 핏덩이가 된 실험체들과 끊어진 구속복만이 놓여 있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죽은 실험체의 수보다 끊어진 구속복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었다.

이보다 더한 수의 실험체들이 서울 도심에 풀렸다는 얘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