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67화 (67/323)

67화 탈취 (2)

쾅폭발음.

타다다다다

총소리.

언제 어디로 갈지 알 방도 없이 지구 병원 근처를 서성이던 유현 일행은 소음이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웬 버스들이 줄지어 올라가길래,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은 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인력도 정보도 부족한 상황인 데다가 주변으로 통제까지 이루어지고 있어서 버스가 들어가는 건 알아도 어디로 나가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더랬다.

“이거…….”

“다른 곳에서 나선 모양인데요?”

“일단 근처 서에 알리고, 저희도 가 볼……까요?”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다들 같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즉시 발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폭발음에 총소리까지 들리지 않았나.

상대가 중무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반해 이쪽은 기껏해야 삼단봉이 다였다.

도움이 될까?

아니, 개죽음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었다.

‘진짜 죽일 거야.’

이전의 유현이었다면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그것도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살인이 가능할 거라 믿지 않았을 터였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더 맞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열차에 타 버린 국가 권력은 폭주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누군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 총 쏘는 놈들 또한 폭주하는 놈들일 터였다.

‘이렇게 되면…….’

이제 최악을 상정해야 할 때가 와 버리고야 만 셈이었다.

만약 탈취에 성공한다면.

그 와중에 검체가, 그러니까 감염된 환자가 한 명이라도 서울에 돌아다니게 된다면.

“언론에……. 언론에 알리도록 하죠.”

“네? 가 보지 않고요?”

유현의 말에 오예리가 외쳤다.

이미 발걸음을 그쪽으로 한 채였다.

하지만 오예리 또한 총소리로 인한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인해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지금도 총 쏘고 있는데……. 저희끼리 가서 뭘 어쩔 수 있겠어요. 차라리 언론에 알리는 게 나을 겁니다.”

“덮지 않을까요?”

“여기 총소리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완전히 덮기는 어렵죠. 그리고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자료 다 넘겨주면 아마 뭔가 되기는 할 겁니다.”

“그건…….”

오예리는 어젯밤 유현이 보여 주었던 자료를 떠올렸다.

원래는 어제 당장 언론에 보내 버릴까도 고민했더랬다.

그래도 될 만한 퀄리티였다.

아니, 아예 그것 그대로 발표만 해도 될 지경이었다.

누가 대학 병원 교수 아니랄까 봐 정말이지 그럴싸한 논리를 입혀 놨다.

“될 거 같아요. 근데 루트는 있으세요?”

문제는 어느 경로로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언론마다 공식 창구는 있지만, 그쪽으로 보내도 되는 자료인가?

아마 컷 당할 공산 클 터였다.

또라이 같은 기자에게 직접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뭐……. 아는 기자들이 몇 있기는 합니다.”

다행히 유현은 기자 번호쯤은 몇 개 들고 있었다.

팬데믹 사태 때 그 현장의 최일선에 있던 것이 유현이었기에 그랬다.

뭐라도 특종 거리 잡으려고 애쓰던 기자들 중 열심이었던 이들이 유현에게 접근했던 바 있었다.

그때는 몰랐더랬다.

기자들이 이렇게 절실해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잘해 줄 걸.’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자꾸 방해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퉁명스럽게만 대하지 않았나.

비단 유현뿐만의 일이 아니라, 당시 현장에 있던 의료진들 태반이 그랬다.

심지어 우식도 그랬다.

‘그래도……. 이 자료면 해 줄 수도 있어.’

유현은 일단 자료를 아는 이메일이란 이메일로 죄 보냈다.

제목은 ‘한국대학교 병원 감염내과 교수 정유현입니다, 팬데믹 사태의 주요 변곡점에 대해 정부가 숨기고 있는 게 있어 제보 드립니다’였다.

기자라면 누구라도 눌러 보고 싶을 만한 제목이라 할 수 있었다.

정유현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도 그렇거니와,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점도 포인트였다.

기자치고 음모론 한 번쯤 안 떠올려 본 사람은 없을 테니.

“언론 말고……. 유튜브 채널에도 보내 보는 것이 좋겠어요.”

“유튜브……. 유튜브는 조회 수 때문에 자극적으로 가공하지 않을까요?”

유현은 이것만으로 되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누구라도 이걸 알려야 하지 않겠나.

다행히 이제는 레거시 언론뿐 아니라 유튜브도 파급력이 대단했다.

아니, 어쩌면 뉴스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유튜브가 더 강력할 수 있었다.

공중파 뉴스보다는 유튜브를 더 신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으니까.

하여간 유현은 오예리의 걱정스러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일걸요. 게다가 제 이름을 써도 된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달려들 겁니다.”

“근데 그러면 교수님이 너무……. 너무 위험해지는 거 아니에요?”

“저는 이미 위험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오예리는 시원하게 아니라고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니까.

지금이야 저쪽이 정신없어서 그냥 두고 있다지만.

언제라도 칼끝이 이쪽을 향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도박을 걸어 보는 게 나을 겁니다. 어찌 되었건 대의는 제게 있어요. 바이러스를 무기화하겠다는 발상은……. 그건 악마의 발상입니다.”

“대의라…….”

그 와중에 대의를 운운하는 유현이 좀 답답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이라서 지켜 주고 싶었다.

비록 같이 지낸 세월이 길진 않다고 하지만.

그 세월의 밀도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중차대한 위기 속에서 유현은 한결같았더랬다.

한 번도 비겁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고, 멍청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

“일단 같이 움직여요.”

“저야 좋죠. 아무튼, 보내기는 했습니다. 그럼 일단 가 볼까요?”

“어디로요? 아, 거기로……?”

“네, 가까이는 말고요. 저도 개죽음 사양입니다. 사진 찍을 수 있을 정도만. 못 찍으면 어쩔 수 없고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총격전 중인지 여전히 총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하긴 이쪽도 저쪽도 필사적이지 않겠나.

정부 쪽이야 이거 어디 퍼지기라도 하면 끝장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만든 장본인이니만큼 그 위력도 잘 알 것 아닌가.

뺏는 쪽도 마찬가지이긴 할 터였다.

타국에서 총질이라니.

외교적 결례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자칫하면 선전 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라면…….’

유현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과 함께 불안감에 떨었다.

애써 그 생각을 지워야 했을 지경이었다.

테러라니.

유현은 실시간으로 뉴욕의 무역 센터가 무너지는 꼴을 본 세대 아닌가.

-유현아, 영화 한다!

고3 때였나.

어머니가 그를 정확히 이렇게 불렀더랬다.

재밌는 영화 하는 거 같다고.

-영화 아닌 거 아냐?

-좀 이상하네.

뉴스였다.

자유세계의 상징과도 같았던 건물이 예기치 못했던 공격에 무너져 내렸다.

그 이후 뉴욕 학회에 갔을 때 본 무역 센터 터는 추모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사방에 경찰이 깔린 채로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모하고 있었다.

그때 유현은 어렴풋이 느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적의가 얼마나 황당무계할 수 있는지.

‘아니겠지.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딱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이 딱히 남의 나라의 미움을 살 짓은 안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슬람 세계와는 거리 자체도 멀지 않나.

물론 이 무기 자체는 정말 탐이 나기는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알 방도가 없으리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탕, 탕

총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다.

물론 무턱대고 달리진 않았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음 자체가 이를 막았다.

본능적인 두려움과 이성적인 경계심이 한데 어우러져서, 일행은 인왕산로 초입에 머물렀다.

쾅버스 중 하나가 후진하다가 뒤따르던 버스에 들이받았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괴성이 울렸다.

-크아아아!

-어어!

안에서 필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

타다다다

총성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해서 유현은, 그리고 오예리와 이진호 형사도 얌전히 휴대폰으로 사진만 찍었다.

한창 싸우고 있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탐탁지 않을 만한 일이었지만 사진은 한둘이 찍고 있는 게 아니었다.

길거리에 있던 거의 모두가 카메라를 집어 들고 있었다.

당연했다.

대체 어느 누가 서울 한복판, 그것도 경복궁 바로 옆에서 총성이 울리리라 생각했겠나.

“뭐야…… 이거?”

“영화야?”

“아니지. 병신아! 도망가!”

심지어 도로 한복판에 시신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적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에 총질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기세는 흉험했다.

그럼에도 국정원 요원들과 군인들은 전진하고 있었다.

“으아!”

그 와중에 죽어 나자빠지는 이들이 생겨도 어쩔 수 없었다.

버스가.

앞서가던 버스가 탈취당했으니까.

아니, 탈취당했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차라리 아예 버스가 이동했다면 헬기라도 동원해 그쪽을 쫓았을 텐데, 버스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점거당한 채로.

“전진! 절대로 뺏겨서는 안 된다!”

요원들은 사실상 도움이 안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공작이나 소규모 전투 또는 암살에서는 나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벌어진 시가전에서 권총은 무용하지 않겠나.

자동화기가 무자비하게 쏟아 내는 총알 앞에선 김태평조차 속수무책이었다.

‘이거…….’

김태평은 쓰러진 요원의 시신에서 총알 하나를 발견했다.

‘7.62×39mm탄…….’

이 총알은 주로 AK-47에 쓰이지 않던가.

서구권 국가보다는 주로 동구권 국가들이 쓰는 총이었다.

그중에서도 중앙아시아로부터 중동에 포진하고 있는 테러 단체들이 주로 썼다.

김태평은 몇 번인가 이 총알 세례를 겪어 본 바 있는 몸이었다.

‘얼굴이 안 보이니…….’

해서 상대를 살폈으나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쓴 놈들인 데다가 거리도 있고, 또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이다 보니 파악은 어려웠다.

‘하지만 움직임이 어설퍼.’

미리 자리를 잡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벌써 제압했을 터였다.

그만큼 상대의 움직임은 그저 그랬다.

그 말은 정규군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정규군, 그러니까 국가에 속한 집단이라면 협상도 가능하지 않겠나.

이 바이러스는 미친 듯이 위험한 물건이니 그래야만 했다.

‘대화가 안 통하는 상대도……. 있지.’

하지만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 법이었다.

그중에서도 복수와 대의를 따라 움직이는 이들은 대화 상대로 간주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상대가 그런 이들이라면.

‘안 돼.’

김태평은 다시 한번 무전을 들었다.

“지원 요청! 국적 미상의 적들과 조우! 지원 요청!”

다급한 목소리는 그대로 현장을 싣고 상대에게 전해졌다.

문제는 듣는 이에게 있었다.

“어떻게든 덮어!”

대통령을 위시한 책임자들은 사태가 터지고, 수습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단 언론 통제부터 시작했다.

실제 현장이 어떻게 되는 건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본인들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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