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66화 (66/323)

66화 탈취 (1)

끼이익

호송 차량 하나가 지구 병원 앞에 섰다.

겉으로 봐서는 이게 그저 군인 수송 차량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입구가 가려지게 서 있었기 때문에 각국의 정보기관은 살짝 혼란에 빠졌다.

“뭐지? 지금 뭐가 온 거야.”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이 근처에서 통신량이 급증했었습니다.”

“군부대 감청은?”

“전혀……. 인근 군부대에서 차량 출발한다는 소식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중국의 국가안전부(MSS)였다.

동맹국인 미국이나 미국과 같은 진영에 속한 영국이나 일본 등과는 달리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규모 방첩 활동을 한국에서 펼쳐 온 덕이었다.

들어오는 정보의 양 자체가 비할 수 없으리만큼 많으니 대응도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각국의 정보기관이 MSS의 동태를 살피며 대응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럼 저 차량 저거, 이상한 거네.”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한두 대가 아니라는 건데.”

버스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삼청동 골목을 오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삼청동의 골목이 워낙에 구불거리기도 하거니와 오가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으니.

하지만 지금은 입구에서부터 무언가가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공사 중. 저거야 당연히 가라고. 확실히 오늘 뭐가 있군.”

“네. 경로 파악은 어렵나?”

“현재 통신이 아예 없습니다. 이미 사전에 준비된 곳으로 가는 모양입니다.”

“하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하겠지.”

도청 방지 시스템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도청 기술의 발전이 더 빨랐다.

원래 찌르는 쪽이 막으려는 쪽보다야 유리한 것이 당연한 얘기 아니겠나.

때문에 일이 치러지는 중간에는 변동 사항이 있지 않은 한, 통신을 아예 안 하는 것이 최근 정보기관이 일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히려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러니까 서류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나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서울 시내 신호등 현황 파악할 수 있나?”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

“네, 그렇습니다.”

“경찰 병력 이동 파악은?”

“그건 바로 됩니다.”

“좋아. 그럼 그중에 수동으로 조작 중인 신호등 파악해. 거기가 이동 경로일 거야. 전에 폭탄 터뜨려 놓은 것 때문에……. 이동할 거란 첩보는 있었잖아. 주의한답시고 신호를 최적으로 조작해서 가려고 하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MSS 요원 옌은 경례 대신 고개만 살짝 숙이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MSS 측이 확보하고 있는 온갖 끈을 동원해 지시받은 사항을 알아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음양으로 한국에 공을 들인 지 한참이었으니.

공식적으로 스파이라고까지 할 만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친중 인사로 분류될 만한 사람은 너무도 많지 않나.

중국 요원치고 한국에 끈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네, 그렇군요. 아뇨.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파룬궁 관련 시위가 있을 거 같아서……. 저희 쪽에서도 어느 정도 대응에 나서려고 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옌은 한국통으로 분류되는 인사였다.

이미 한국에서 지낸 지도 10년이 지난 이였기에 그랬다.

애초에 이 첩보 작전에 합류하게 된 것도 그의 한국에 대한 풍부한 지식 때문이었다.

덕분에 어떤 핑계를 대야 한국 측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또 협조해 줄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 네. 삼청로에서 인왕산로로. 아, 여기도요? 네네. 그렇군요. 아…… 네.”

심지어 도로명만 들어도 이 길이 어디쯤 있는지 다 알았다.

‘돌아가는군……. 남산으로.’

덕분에 옌은 얘기를 듣자마자 목표가 어딘지 바로 알아들었다.

제대로 된 요원이었다면 바로 책임자에게 지시받았던 사안을 보고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옌은 그렇게 하는 대신 요원실을 빠져나왔다.

“어디?”

“담배.”

“아, 그래.”

피우지도 않는, 그러나 피우는 것으로 위장한 지 한참 된 담배를 물고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따위 것을 왜 피우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옌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무리 피워도 익숙해지지 않는, 역한 냄새를 견디며 옥상 위에 숨겨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음.

상대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옌은 한족으로 위장할 때 지었던 표정 대신 전사의 표정을 드러냈다.

오랜 탄압. 거의 민족 말살에 가까운 짓거리를 견뎌야만 했던 이들의 얼굴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새겨져 있었다.

“이맘므입니다.”

-그래, 소식 있나?

“네. 무기가 남산으로 향합니다.”

-남산……. 경로는?

“최적의 위치는 인왕산로인데, 가능합니까? 시간이 거의 없어요.”

-가능해. 그날 이후 우리는 계속 무장 상태야.

“좋군요. 방법은 아시죠?”

-알지. 각오는 되어 있어.

“독립을 위해.”

-독립을 위해.

옌 아니, 이맘므는 전해야 할 정보를 모두 전달한 후에야 다시 팀장에게로 돌아갔다.

표정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러기엔 이미 첩자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계기가 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우연히 위륌치의 한 가정에서 한족과 얼굴이 비슷한 아이가 태어났던 것.

그리고 그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것.

그 전까지는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그 후로는 필연이었다.

“남산으로 갑니다.”

“남산?”

“네.”

“하긴 거기 뭐……. 있어도 있을 법한 곳이지. 경로는?”

“삼청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그리고 곧장 향하거나 이쪽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차량은 아직인데……. 시간이 있으려나.”

팀장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버스는 서 있었다.

버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크아아!

그때 소음이 들려왔다.

딱히 주변에 설치해 둔 도청 장치가 필요 없을 정도의 소음이었다.

덕분에 그 소음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괴성이었다.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뭐야.”

“그……. 실험체 아니겠습니까?”

“실험체……? 폐기하고 이동하지 않나?”

“그건…….”

“아니, 아니지. 하긴 우리도 그랬지.”

다른 정보기관이었다면 아마 이해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이쪽은 이미 같은 연구를 먼저 진행했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ARS-24에 대해 알고 있지 않겠나.

이 미친 듯이 빠른 변이 속도를 자랑하는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는 한없이 불안정해지기 마련이었다.

특히 물리적 손상을 수반하는 방식으로 100% 타액 전파를 꾀했던 마지막 형태의 바이러스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검체 중 하나를 흑룡강성 인근에서 분실했고 그걸 한국이 주워다가 여기까지 만들어 낸 것 아닌가.

‘그 말은……. 우리가 다시 검체를 탈취해 오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지. 그 과정에서 서울이 박살이 날 수는 있겠지만. 뭐, 어쩌겠어.’

한국은 중국에 있어 꽤 주요한, 일종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는 했다.

물론 서부 전선에 비하면 동부 전선의 중요성이 좀 떨어지기는 할 테지만.

그럼에도 미군 기지까지는, 자유 진영의 칼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은 중국이 공을 들여야만 하는 국가였다.

그 국가의 수도가 박살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탈취 과정에서 검체를 다 잡아들일 수는 없을 테니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도시 한복판에 검체 하나만 풀어놓아도, 아수라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행정력이 보통은 아니니……. 모를 일이지만.’

인구 밀집 지역인 데다가 떳떳하지 못한 실험의 결과물이니만큼 처음부터 모든 정보가 공개되기는 어려울 터였다.

공개가 어렵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중국에서 ARS-24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던 역사가 이곳에서도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이 바이러스는 초기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사회적 파장이 클 테니 한동안 국가 역할이 마비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내 알 바는 아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터였다.

하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게 있으면 이 일은 못 하지 않겠나.

사람이 죽는 건, 팀장에게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무장해.”

“네.”

해서 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그 말에 옌을 비롯한 요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사물함에 있는 무기를 떠올리면서였다.

차라리 중국이었으면 구하기 쉬웠을 무기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CCTV가 사방에 깔려 있는 데다가 애초에 총기 반입이 불가한 국가 아닌가.

이거 분해해서 들여온다고 별 지랄을 다 했어야만 했다.

보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찰칵

자동화기 소총은 물론이거니와 수류탄 등의 폭발물까지 확보할 수 있었으니.

무방비 상태의 적이라면 순식간에 박살 낼 수 있는 무장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상대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일단 추적하자고.”

게다가 경로를 알아냈을 뿐, 한발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아아앙

이미 첫 번째 버스는 지구 병원을 떠나지 않았나.

두 번째 버스 또한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 이미 다 태운 참인 듯했다.

탈취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따라잡기까지 해야 한다니.

어려운 임무가 될 터였다.

“중국 측에서 움직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움직여.”

게다가 그런 그들을 뒤쫓는 이들도 있었다.

여차하면 방해할 만한 나라들이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요원들이 곧장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우우웅

그렇게 조용했던 삼청동 골목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국정원도 당연히 낌새를 눈치챘다.

“중국, 미국, 영국, 일본 움직입니다.”

“예상했던 일이잖아. 동태 파악하고……. 무력 행동에 나서면 바로 대응해.”

박 국장에 황 팀장도 실각한 지금.

전권은 김태평이 쥐고 있었다.

해외에서 불러들인 주제에 허드렛일만 시켜서 일의 주변만 알고 있다가 돌연 중앙에 들어오게 된 참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김태평은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옵니다.”

“쏴.”

“네!”

한 가지 모자랐던 점이 있다면.

정보기관만 ARS-24 베타 버전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몰랐다는 것이었다.

“뭐, 뭐야!”

인왕산로에 들어선 요원, 그러니까 버스를 몰던 요원은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기는 했다.

너무 조용했다.

거리에 생기가 없다고 해야 할까.

자세히 맡아 보니 피 냄새가 났다.

사람 피 냄새.

하지만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RPG가 날아들고 있었다.

쾅그러고는 무장한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찢어발겨진 문을 통해.

검체들이 있는 버스 안으로.

“이것이 우리의 성전이다!”

알 수 없는 언어로, 하지만 적개심 가득한 얼굴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