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친구들 (2)
차는 원상이 사는 단지 바로 앞에 위치한 공영 주차장에 댔다.
“역시 조심하는 게 좋겠죠?”
오예리는 티 나지 않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최대한 놀란 티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런 오예리의 눈동자도 평소보다는 좀 더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긴…….’
새삼스럽게 죽을 고비를 넘긴 동지였다.
유현은 그런 오예리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여 주었다.
“네. 뭐……. 지금 저희를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유현은 마스크를 낀 나머지 둘을 돌아보았다.
예전엔 이렇게 마스크를 끼고 있으면 오히려 시선을 끌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맨얼굴이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물론 여러 번의 백신과 그것을 뚫어 내는 변종을 겪으면서 방역 지침이 점차 완화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개인 방역의 일환으로 마스크를 끼는 이들이 많았다.
“밤이니까요. 게다가 단지가 워낙 크고……. 또 학원가도 있는 곳이라 지금도 보세요. 애들이 엄청 다닙니다.”
이진호 형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면서였다.
사방이 탁 트여 있었고, 인도와 차도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거기에 아파트는 대단지.
당연히 오가는 이들이 많았다.
‘뭐……. 박원상이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아버지가 집 없이 살아서 그랬나 이놈은 인생 목표가 집 사는 것인 양 굴었더랬다.
그 결과가 이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딱히 잘못된 일인 것 같진 않았다.
하여간 동기 중에 집은 제일 좋았다.
지금은 그 덕을 유현과 그 일행이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냥 저랑 걸으면 됩니다. 두리번거리지 마시고. 집은 제가 잘 아니까요.”
“네. 근데 거기 공동 현관은 어떻게…….”
“걱정 마세요. 오가는 사람 엄청 많아요.”
유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파트 공동 현관 앞에 서는 대신 우편함 쪽으로 다가가 뒤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문이 열릴 때 맞춰서 ‘아 없네.’라는 좀 어색한 대사를 치면서 안으로 향했다.
다행히 문을 연 학생은 딱히 유현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별 의심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이 해 보신 솜씬데……. 진짜 교수님은 나쁜 생각 먹으면 얼마든지 범죄 저지르겠어요.”
엘리베이터에서 학생이 먼저 내리자, 오예리 형사가 웃으며 말했다.
유현도 그런 오예리를 마주한 채 슬쩍 웃어 주었다.
“점점 그러고 싶어집니다. 당하고 있으려니까요.”
“하긴 저도 그래요. 요새는 제가 경찰인지 아니면 수배범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수배범이라.
정말로 그렇긴 했다.
공식적으로 지명 수배가 되지 않았다뿐이지, 둘이 이렇게 몰래 다닌 지는 오래되지 않았나.
이제부터는 진짜로 지명 수배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김일용 형사가 그렇게 둘 것 같진 않았지만, 모를 일 아닌가.
증거가 조작된다면, 경찰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둘을 추적할 터였다.
“일이 잘되길 바라봐야죠. 일단…… 이 친구부터 보고요.”
유현은 박원상의 집보다 좀 낮은 층에서 내려 계단으로 향했다.
전에 있던 그 층에 도달하니, 초조한 얼굴의 박원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 누구…….”
“아, 나랑 다니는 사람들이야. 내가 좀 위험해져서.”
“위험……?”
“그래. 위험해졌어. 뭐 그건 네 알 바는 아니고……. 거기는 좀 어때. 너 나온 거 보니까 진전이 있는 거 같은데.”
유현은 그런 박원상을 면밀히 살폈다.
초조해하는 기색.
그리고 망설이는 기색.
이대로라면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넘어갈 것 같았다.
‘순규야……. 미안하다.’
그럼 안 될 일이지 않나.
‘사실 이럴 줄 알고 있었어.’
박원상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런 법이었다.
어떤 나쁜 일에 깊이 관여되고 나면 원래 나쁜 놈이었던 것처럼 굴지 않던가.
도매급으로 넘어간다, 이 말이었다.
그럴 땐 뭘 하면 될까.
죄책감을 후벼 파야만 했다.
“이거……. 순규야.”
유현은 미리 찍어 둔 이순규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미 부드럽던 인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키와 체격뿐만 아니라 얼굴도 변하기 마련이기에 그랬다.
-밥! 밥 달라고!
의지를 갖고 본능과, 그러니까 바이러스에 의해 분비되는 호르몬과 싸우고는 있지만 여의치 않을 때도 있었다.
유현이 보여 준 영상은 바로 그때의 영상이었다.
사실 박원상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연구실에는 지금도 이보다 심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특히 알파가 아닌 베타에 노출된 이들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이를 물려고 애쓸 뿐이었다.
“아…….”
그래서 충격이 더했다.
이 안에 담긴 건 실험체가 아니라 자기 친구였으니까.
이미 감염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심지어 이순규는 그가 아는 이들 중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지 않았나.
그런 이가 이런 괴성이라니.
“도와줘. 어떻게든……. 고쳐야 해. 그럴 수 없다면, 이게 완성돼서 퍼지는 일은 막아야 해.”
“그……. 그게.”
마음이 약해진 박원상은 천천히 연구실에서의 일을 털어놓았다.
“이미 완성됐어.”
“뭐?”
이야기는 처음부터 충격적이었다.
오예리나 이진호도 놀랐지만, 의사인 유현만큼은 아니었을 터였다.
유현은 그야말로 머리끝이 송두리째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완성이라고?”
“그래. 완성됐어. 이것보다…… 더 강해. 이성을 날릴 수 있어.”
“이런 미친놈이……. 바이러스를 무기화했다고?”
“알잖아. 이거 애초에 무기였어. 우리는 개량한 거야.”
“그게 그거야. 실패작이었잖아. 근데도 벌써 몇 년을……. 온 세상이 이것 때문에 대체 몇 년을 앓고 있는데. 그걸 알면서 개량해?”
“통제 가능해. 이건 공기 중 감염도 안 되고……. 반드시 1대1로만 감염된다고.”
“어떻게 장담하지?”
그러고 나서는 변명이 계속되었다.
이순규를 보고 나니 본능적으로 뭔가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었지만, 유현은 이제 그러한 것을 계산할 여력이 없었다.
자칫하면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릴 것만 같았다.
“장담할 수 있어. 실험했어.”
“실험……. 사람 상대로 했구나, 너.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냐?”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 사형수들이야.”
“이런 미친…….”
유현은 친구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친구가 보여야 하는데 웬 괴물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바이러스를 무기화하기 위해 인체 실험까지 서슴지 않고 한 괴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뻔뻔한 얼굴로.
평소라면 그 얼굴을 후려쳤을 텐데, 지금은 그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 올 따름이었다.
‘그래서…… 박태식을 죽였구나. 이미 완성이 됐는데……. 가서 딜을 하려고 했다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어느새 유현의 차가운 이성은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후.”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박원상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괴물이 서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화를 시도해야만 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위험해. 변종이 생긴다면 대응할 수 없을 수 있어. 아니, 이것보다 더 위험하다면 이미…….”
“아냐.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길 거야. 남산으로…… 아, 아니. 이건.”
박원상은 그런 유현에게 답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말한 것도 죄 기밀이기는 했다.
하지만 옮긴다는 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밀이었다.
-각국 정보기관에서 노리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만큼 이 무기가…… 비대칭 전력으로써의 가치가 있단 얘기죠.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박원상 교수님. 다만……. 그래서 남산 밑으로 옮길 텐데, 이때가 위험합니다. 우선 작전할 때는 집에 가 계시고, 작전이 끝나면 다시 남산으로 오시면 됩니다.
처음 보는, 그러나 얼굴만 봐도 높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을 했더랬다.
위험하다고 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랬다.
연구 시설을 옮기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검체를 옮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걸 다른 이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해서 입을 다물었다.
“옮겨? 남산으로? 바이러스를? 이게 안정화되기는 하는 거야?”
문제가 있다면 들은 이가 유현이라는 점이었다.
감염병에 있어서는 가히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
그 사람이 하는 질문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왜 말이 없어. 이거 설마……. 검체……. 감염인을 옮기는 건가? 그런 거지?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거잖아. 공기 감염이 안 된다는 건……. 너……. 서울 도심에 이거에 감염된 사람들을 옮기겠다고?”
“그…….”
뜨끔했다.
아니, 속이 후벼 파지는 것 같았다.
해서 뭐라도 내뱉었다.
“철저히……. 철저히 한다고 했어. 실제로 호송 차량까지 완전히 개조한다고.”
“애초에 이동은 왜 하는 건데. 거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는 거지? 폭탄도 터졌으니. 그 말은 거기 뭔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잖아.”
“그…….”
박원상은 순간 유현이 혹 정보기관 사람인가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건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알았지만.
그럼에도 이건 좀 너무 정확한 추론이지 않나.
제아무리 진단 과정에서 논리적 추론 과정을 훈련받은 사람이라곤 해도 너무했다.
“그럼 이송 과정이 제일 위험할 텐데……. 심지어 사람을? 난폭할 테니 자기들끼리 붙여 놓지도 못할 텐데. 한두 대가 아닐 거 아냐. 설마하니……. 검체를 포기할 거 같지도 않고.”
“그…….”
계속해서 정곡을 찔리고 있었다.
찔리는 사람은 고통스러웠으나, 찌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즐거운 건 아니었다.
‘얘는 어차피…… 책임자도 아냐. 이미 결정된 거겠지. 나온 게……. 단순히 완성돼서 나온 게 아니구나.’
당연한 일이었다.
바이러스라는 게 그렇게 뚝딱뚝딱 만들어질 리가 없지 않나.
아니, 만들어진 것 같다 해도 꾸준히 관찰을 해 봐야 했다.
연구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단 얘기.
“너……. 남산 언제 가기로 했어.”
“그, 그게.”
“어차피…… 알게 되었잖아. 말해 줘. 순규 같은 사례를 더 만들 거야?”
“그……. 근데 나도 어딘지는 몰라.”
“날짜라도 말해 봐.”
“3일 후……. 3일 후에 출근 예정이야.”
“3일……. 그럼…….”
내일 아니면 모레라는 뜻이었다.
아니, 어쩌면 오늘 새벽일 수도 있었다.
‘남산으로 무사히 간다 해도 걱정이야.’
거기에 간다면 언젠가 연구가 완료되지 않겠나.
이런 게 무기화된다면 세상에 어떤 재앙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큰 일은 거기에 못 가는 일이었다.
중간에 탈취된다면.
‘아…….’
멀쩡히 탈취되는 건 그나마 나았다.
그 과정에서 검체가 유출된다면?
그러니까 서울 한복판에 박기태나 이순규 같은.
아니, 그보다 더 난폭한 환자들이 풀리게 된다면?
“막아야 해.”
방법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막아야 한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