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친구들 (1)
“아, 잠시만. 전화 와서요. 병원이네.”
유현은 대화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 가지는 못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불의의 습격을 받으면 장담할 수 없지 않겠나.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하고 있기는 해도, 유현은 오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의를 한껏 맛본 참이었다.
해서 유현은 가게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네, 정유현입니다.”
-네. 교수님. 환자들이 오후 회진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은 못 오신다고 전달해야겠죠?
병동에서 이런 전화가 오는 경우는 사실 드물었다.
교수들이 오후 회진 빼먹는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유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무조건 돌았고, 또 그럴 일이 있으면 미리 알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그 또한 놀랐으니까.
“네. 오늘은……. 어렵습니다.”
-네, 무슨 일 있으신가 봐요.
“네, 뭐, 좀. 재원이는 병원 들어갔죠?”
-아, 네. 양 선생님도 여기 계세요. 그렇지 않아도 통화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꿔 드릴까요?
“네.”
다행인 것은 믿을 만한 레지던트가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재원의 꿈이 대학 병원에 있지 않고 강호의 정점에 있긴 했지만.
하여간에 해야 할 일을 허투루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던가.
그 점이 아까워 벌써 몇 번이나 설득해 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새끼. 너 같은 놈이 대학에 남아야 하는데.’
하지만 강요는 할 생각이 없었다.
교수 하려면 뭐가 되었건 집안에 여유가 있어야 하니까.
그게 아니라면 유현처럼 아예 결혼이나 다른 취미를 갖지 않던가.
-교수님. 괜찮으세요?
“어? 어, 괜찮지. 지금 뭐 먹고 있어.”
-와……. 교수님은 진짜 대단하시네…….
“근데 왜. 뭐 노티 할 환자 있어?”
-네? 아, 네.
양재원은 반대로 유현에게 놀라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현장 때문이었다.
‘아니……. 나도 아직 떨리는데…….’
어찌나 무서웠던지 지금도 병동에 일부러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게다가 저번 사건 때문에 시큐리티가 아직도 하나는 남아 있었다.
그래 봐야 칼 들고 여럿이 뛰어오면 별수 없겠지만 혼자 있는 것보단 낫겠지 싶었다.
근데 거기 있었던 사람이 환자 생각할 여유가 있다고?
‘이 사람은 역시……. 아포칼립스 상황 벌어지면 무조건 교수님 옆에 있어야지.’
양재원은 얼마 전 읽었던 좀비 사태에 관한 소설을 떠올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멘탈이 털려서 그런가. 아무리 친해도 교수랑 통화 중인데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다른 환자들은 다 괜찮은데요. 이순규 환자분이…….
“아, 순규.”
유현은 이순규 이름 석 자를 듣고 나서야 다시 친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런 시발…….’
진짜 몰리긴 몰린 모양이었다.
이 시점에서 친구를 잊다니.
그것도 감염된 친구를.
“어떻게 됐어?”
-종종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주고 있어요. 식사량도 계속 늘고……. 그나마 협조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무게랑 키를 쟀는데…….
“쟀는데.”
-10cm 이상 커지셨어요. 몸무게는 20킬로가량 늘고요.
“허……. 그럼…….”
-교수님보다 커졌다고 잠깐 웃으시던데.
“그 새끼는 그 와중에 웃음이 나온대?”
말이 10cm지, 성인이 된 후 강제로 나오는 성장 호르몬에 의한 성장으로 10cm나 자랐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을 수반하고 있지 않을까?
감염된 지 이제 얼마나 됐다고.
숫제 괴물이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행이죠. 진짜 강한 사람 같아요.
“그건……. 그래. 내 친구지만 나도 그런 점을 존경하지.”
보통은 강하다고 하면 유현 같은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일 터였다.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 또는 화를 잘 내는 사람.
하지만 병원에 있다 보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었다.
정말 강한 사람은 아픈 와중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이순규는 가히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화 원하시는데……. 바꿔 드려요?
“어? 어. 그래야지.”
-네.
재원은 전화기를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
“후…….”
짙은 한숨을 쉬고 있는 이순규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보니 살짝 무서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어깨와 팔뚝은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무리가 없었으니까.
“양 선생.”
하지만 이순규에게는 여전히 이성이 남아 있었다.
그는 무리 없이 재원을 알아보았고, 호칭도 제대로 불렀다.
“유현이야?”
“네.”
“바꿔 줘.”
“손이 묶여서…….”
“스피커폰으로.”
“네.”
그럼에도 묶여 있긴 해야 했다.
뭐가 되었건 남을 물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나.
아마 재원을 물고자 한다면 절대로, 그야말로 절대로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원래는 비슷한 체구였으나 이제는 말도 안 되는 격차가 벌어져 버린 탓이었다.
재원은 그런 이순규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유현아.”
그러고는 자리를 피했다.
그 직후 이순규는 유현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유현은 그 순간 바로 알아차렸다.
친구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는 걸.
아마 성대 부근의 근육 비대와 더불어 성대 자체의 변성 때문일 터였다.
“어, 순규야. 좀 어때.”
-너는 어때. 위험하다더니.
“아…….”
그 말은 곧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의미할 터였다.
박기태 환자도 그렇지 않았나.
좀 커지나 싶더니만 어느새 거대화되어 병원을 빠져나갔더랬다.
그 와중에도 이순규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뭐……. 괜찮아.”
-목소리는……. 아닌데.
“사실 위험했어.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그건 다행이네.
“너는? 너는 어때.”
-나?
이순규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뭐라 더할 말이 없어 유현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흐흐.
그러다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난 끝났지.
“아직 살아 있잖아.”
-내가 아까 폰 들고 오는 양 선생 보면서 제일 먼저 무슨 생각 했는 줄 아냐? ‘물고 싶다’야. 이 충동……. 이건…….
“그래도 안 물었잖아.”
-문 거야. 묶여 있으니까. 난……. 난 끝났어.
정신과 의사가 자신은 끝났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아마 상황이 조금만 더 가벼웠다면 무슨 말이라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순규가 정신과 의사라면 유현은 감염내과 의사였다.
지금 상황의 심각성은 그 누구보다 유현이 잘 알았다.
아마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미 포기했을는지도 몰랐다.
질병 경과를 잘 알고 있으니.
“아냐. 박원상이 지금 거기 안에 있으니까……. 뭐라도 알게 될 수도 있어. 나도……. 우식이 알지? 걔 통해서 연구 중에 있어.”
-연구라.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이미 감염은 되었고, 아직 연구에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이순규는 친구를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넋두리를 늘어놓지만은 않았다.
일부러라도 희망을 품었다.
시늉에 불과할지라도.
-그래, 그건 뭐……. 좀 다를 수 있지. 확실히 원상이는 국가 시설에 있으니. 근데 그놈이 뭘 알려 줄까? 그러다 위험해지는 거 아냐?
“알잖아. 재밌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이지만……. 그래도 의리가 없는 놈은 아냐. 정신 팔렸다가도 돌이킬 거야.”
-뭐……. 그런 놈이라 믿고는 있는데…….
“말 나온 김에 오늘 다시 연락해 봐야겠다.”
-연락? 위험하다며?
“이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겠냐.”
-아, 그런 상황이군.
이순규의 납득했다는 말을 끝으로 유현은 전화를 끊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고 한편으로는 좌절스럽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이순규에게 들어간 바이러스는 착실히 그를 변화시키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럼에도 이순규는 이성을 지키고 있었다.
‘박원상 말에 의하면……. 1호도…… 어느 정도 이성이 남아 있었다고 했지.’
1호.
그러니까 박기태로 위장했던 환자는 박원상에게 얘기 들었을 당시 이미 감염된 지 한참 지난 상황이지 않았나.
그 말은 곧 이순규의 정신이 이대로 쭉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이순규가 그 환자보다는 강할 것 같았으니.
“아, 제수씨. 오랜만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현은 전화를 걸었다.
곁눈질로 자신이 있던 테이블도 확인했다.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하여간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아……. 네. 안 그래도 전화 드리라고 하려고 했는데. 바꿔 드려요?
“아, 왔어요?”
-네. 오랜만에. 고생이 많았나 봐요. 살이 쭉 빠져서.
고생이라.
연구에 열중했다는 뜻일 터였다.
재미가 있었을 테니 그렇게 했겠지.
‘진전이…… 있었단 얘긴데. 집에 왔다는 건……. 진전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살이 빠졌다는 말에 유현은 인상을 썼다.
-아, 유현아. 이렇게 통화…… 해도 되나?
그러고 있으려니 박원상이 전화를 받았다.
조심스러워하는 게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유현은 길게 말하는 대신 짤막한 말만 남겼다.
“그때 거기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사실 쓸데없는 노력이긴 했다.
어차피 황 팀장까지 경질 직전이라 박원상에 대한 감시는 소홀해진 지 오래여서 그랬다.
게다가 박원상은 이미 연구에 너무 깊숙이 참여한 참이라, 감시 대상에서 어느 정도 풀려난 마당이기도 했다.
오늘 온 것도 갈아입을 옷이나 가지러 온 참이지 않나.
계좌에도 대가성 보수를 또 받은 상황이라 누가 뭐래도 공범이었다.
이제 박원상은 제정신이라면 어디에서도 관련된 발언을 할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때 거기.’
하지만 박원상은 완전히 나쁜 인간은 또 못 되는 사람이라 유현의 말에 아파트 계단을 떠올렸다.
“얘기 잘 나누셨습니까.”
유현은 전화를 끊고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아, 네. 그냥……. 얘기를 들어 보니 마냥 믿어 달라는 얘기는 못 드리겠군요. 하지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전 경찰이니까요.”
뭔 얘기를 들었는지 몰라도 김일용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의지를 불태웠다.
유현은 대답하는 대신 오예리를 돌아보았다.
오예리와 이진호 형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괜찮단 생각을 하게 되었단 뜻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예전이라면 덜커덕 믿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유현의 눈빛을 읽어 낸 김일용은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군요. 수사가 진전되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감사했습니다. 모쪼록……. 몸조심하시고요.”
그러고는 가게를 빠져나갔다.
유현은 그가 완전히 빠져나갔음을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긴히 가 볼 데가 생겼어요.”
“어디요?”
“전에 말했던, 연구 시설에 있다는 친구……. 연락이 닿았어요. 나온 모양입니다. 원래 같으면 혼자 갔을 테지만.”
“같이 가요.”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