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역공 (6)
대통령은 똥 씹은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이삿짐도 말야……. 어?’
물론 연구실 집기나 이런 걸 다 이동하는 건 어려운 일이긴 할 터였다.
하지만 사실 다른 건 택배를 보내도 될 일이지 않나.
중요한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이러스.
그러니까 베타.
검체야 바이러스만 있으면 알 바 아니지 않나.
모조리 폐기해도 좋을 일이고, 그럴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럴 만한 인간들만 모아 두었다.
그런데 아직이라니, 너무 부진한 거 아닌가.
적어도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조은입니다.
“아, 그래요. 김 박사. 대통령입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그 와중에 받은 전화다 보니 평소처럼 예의를 차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방금도 황 팀장에 대한 살의를 참느라 인내심을 거의 다 발휘한 바 있지 않나.
-네, 송구스럽지만……. 연구실 이전이 쉽지만은 않을 거 같습니다.
“왜 그렇죠?”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입니다.
“특성?”
-네. 변이가 워낙 강한 객체인 데다가……. 상대에게 타액 및 혈액 등을 직접적으로 주입하면서 100% 감염을 꾀하도록 진화한 객체이지 않습니까?
“음.”
이 말은 질리도록 들었더랬다.
그것도 김조은 박사에게서, 그러니까 정확히 같은 입을 통해서.
“그래서요?”
해서 대통령은 퉁명스럽게 물었고, 김조은은 예상과는 달리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우수함을 보였으니까.
전 세계 정보기관에서 이쪽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 때문에 이 바이러스는 공기에 노출되면 거의 바로 사멸합니다.
“응?”
-정제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오직 숙주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바이러스입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문제가 됩니까?”
당당한 말투.
흔들림 없는 목소리.
이제야 대통령은 김조은을 다시 공손하게 대하고 있었다.
무언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랬다.
-숙주째로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사를 하려면 사람을 같이 옮겨야 한다는 뜻이죠.
“그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시겠지만 베타에 의해 감염된 숙주는 엄청나게 난폭해집니다. 또 거대해지지요. 현재 실험 결과로 발생한 숙주들은 전원 2미터를 넘어갑니다. 연구 시설 내에서조차 통제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재워서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호르몬의 영향으로 수면 효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과량을 썼다가는…….
“숙주가 잘못되면 안 될 일이지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네. 호송 차량이 필요한데, 따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직접 보여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대통령이 연구 시설, 그러니까 지구 병원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었다.
그 근처에 정보기관이 쫙 깔렸다고 하지 않나.
당연히 알파나 1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 것일 테지만.
만에 하나 대통령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그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김조은 박사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겠죠. 알겠습니다. 이송은 무척 중요한 문제니……. 서두르기는 하되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대통령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머리를 싸맸다.
확실히 김조은의 말은 객관적이었고 동시에 설득력이 있었다.
남산이라고 해 봐야 도심 한가운데이지 않나.
거기로 가는데 숙주가 날뛰어서 소음이 난다면…….
‘안 그래도 지금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야.’
새벽에 가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오히려 각국의 정보기관이 공작하기에 더 적합한 환경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면 낮에 가야 할 텐데, 이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다 엎어……? 아냐. 그건 말이 안 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잠시 다 포기해 버릴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건 선택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강을 건너지 않았나.
그중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강도 있었다.
가령 민간인 감염이라거나, 또는 민간인 살해 등등의 강들.
한번 건너면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강이었다.
부우웅
그렇게 잠시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김선태의 폰은 아니었다.
대통령 개인 휴대폰이었다.
‘누구야.’
이 시간에 누굴까.
급한 용무가 아닐 리가 없을 터였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인간 중 하나이지 않나.
적어도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존중해 줄 만한 인간들뿐이었다.
‘아.’
해서 번호를 보니 냉큼 받아야 할 전화였다.
“음. 날세.”
-네, 각하.
경찰청장이었다.
오늘 대통령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을 시킨 바 있었다.
“어떻게 됐지? 현장은 어때.”
-네……. 일단 박태식 의원이 살해당했습니다.
“살해당해?”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이 담그라고 시켰으니까.
독대를 청하더니 감히 협박을 하지 않았나.
나랏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아는 놈이 그래서 더 괘씸했다.
아마 본인이 들고 있는 자료가 아주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있었고, 대통령은 이미 여러 명을 죽여 왔단 것은 몰랐단 점이었다.
-네. 그…… 유감을 표합니다.
“아니……. 어쩌다가?”
물론 비공식적인 일이었기에 대통령은 모르쇠를 쳤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도 했다.
직접 보고 있었다면 속아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어설픈 수준이었지만.
유선상인 데다가, 경찰청장은 설마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넘어갔다.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영상……?”
심지어 이제부터는 진짜로 놀란 상황이었다.
‘영상이라니?’
이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영상이 왜 있어.
-네. 살해당하는 영상은 아니고요. 그, 한국대학교 병원 감염내과 교수 정유현과 오예리 형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신을 발견하는 영상입니다.
“음?”
일단 박태식이 살해당하는 영상, 그러니까 황 팀장이 나온 건 아니란 말에 안도가 되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방금 경찰청장이 말한 영상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 게 어떻게 있단 말인가.
‘설마 지들이 찍었나. 그런 것도 증거가 되나?’
머리를 굴리고 있으려니, 경찰청장이 말을 이었다.
-치킨 배달 왔던 배달 기사의 바디 캠에 찍혀 있었습니다. 1층에서 정유현 교수와 만나고, 올라가서 시신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스크를 쓴 괴한들이 집에 침입해 그 정유현 교수를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돌아가는 것도 영상에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정유현 교수는 결백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 그게 영상에. 나도 뭐 그냥 제보를 받은 거라. 괘념치 마요.”
-네.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 영상은 그럼 경찰청에 있나?”
-네? 아, 네. 광수대 바로 꾸려서 경찰청으로 증거 이관했습니다.
“그 배달 기사분은 괜찮고? 그분이 혹시 이 영상으로 뭐 유튜브에 올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럼 박태식 의원이, 피해자한테 물의가……. 물의가 빚어질 수 있을 텐데.”
대통령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증거물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경찰청장은 애초에 대통령에게 의심 한 자락 품지 않기로 마음먹은 인간인 데다가, 어떻게든 잘 보여서 더 위로 그러니까 금배지 달아 볼 생각밖에 없는 인간이기도 해서 그저 그대로 답했다.
-아, 네. 저희가 바디 캠째로 입수해서 들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영상 확인하는 용도로 쓴 태블릿 피시도 들고 있습니다. 이게 무단으로 풀릴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거 아주 잘 됐네. 담당 형사는 믿을 만한 사람이죠? 언론에 풀리면 이거 골 아파. 모든 게 확실해지고 나서 알립시다.”
-아, 네. 물론입니다. 수사도 아주 잘 하는 친구고……. 언론하고는 아예 연이 없는 친구라서요.
“그렇구만.”
수사를 잘한다라.
이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뒷덜미라도 잡히면 어쩐단 말인가.
‘아냐……. 그래도 국정원 요원들인데 증거를 남기진 않았겠지.’
황 팀장…….
못 미덥지만 그래도 요원이지 않나.
병원에서 그 난리를 치고도 잡히진 않았으니 이번에도 기대해 봄 직할 터였다.
게다가 김효상 건은 더없이 깔끔하게 끝나기도 했고.
유족들조차 문자를 보자 납득했다지 않나.
-혹시 변동 사항 있으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담당 형사와 저도 계속 소통하도록 하겠고요.
“그래.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걸요.
“그래. 그럼 또 연락합시다.”
-네.
경찰청장이 그렇게 대통령을 안심시킬 때쯤 김일용 형사는 흉기 지문 감식 결과를 전달받고 있었다.
“이거 확실해요?”
“네? 아, 네. 근데……. 모양이 좀 이상합니다. 칼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매만진 흔적만 남아 있어요. 물론 이렇게 하다가 장갑을 끼고 찔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 멍청한 놈이 어딨어, 세상에.”
“그것도 그렇긴 하죠. 하지만……. 아무튼, 여기 나온 지문은 이게 다입니다.”
“거참.”
결과가 이상했다.
‘존나 이상한데?’
그것도 존나게.
‘정유현 교수 지문이 나왔어?’
일단 지문이 뜬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정유현의 결백은 영상과 경비실에서 딴 출입 기록이 증명하고 있지 않나.
그 사람은 정말로 그 시간 전에는 위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게다가 현장에서 봤을 때 장갑 따위는 끼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오고 나서 벗었을 가능성도 없을 터였다.
분명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왜 이 사람 지문이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와 있지?’
전과자로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실종자로 올라온 것도 아니었고.
그냥 올라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며칠 전에 올라왔다.
퇴사한, 아니, 죽은 형사의 아이디로.
‘이거……. 함정 파려고 한 거잖아. 정유현 교수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대체 누가? 왜?’
의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정유현.
그 사람이 현장에서 어땠던가.
침착하기 그지없었더랬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사람처럼.
보통은 그런 일을 겪으면 배달 기사처럼 비명을 질러야 정상이었다.
아니면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못 하거나.
‘오예리 형사도 이상해.’
일단 둘이 같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오예리 그 친구, 분명 본청에 있던 형사이지 않나.
같은 건물이라고는 해도 너무 큰 건물이다 보니 자주 마주치진 못했지만.
사람 얼굴 잘 기억하기로 소문난 김일용에게 오예리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니, 잠깐만.’
김일용은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매만지며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지문을 올린 형사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오예리와 같은 팀이었던 형사였다.
‘이거……. 이거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