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역공 (5)
“남는 방이 하난데.”
유현은 오예리 그리고 오예리의 후배와 함께 방을 찾아 나섰다.
재원은 굳이 같이 잘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당직실로 보냈다.
따지고 보면 주요 인사가 아닌 이상 병원만큼 안전한 곳도 없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유현을 죽이려고 작정한 놈들이야 있을 법하지만, 재원은 그렇진 않지 않겠나.
-순규 잘 부탁해.
이순규만 잘 봐달라고 하고 온 참이었다.
시간이 늦기도 했거니와 금요일 밤이다 보니 진짜로 남는 방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어렵게 찾아온 허름한 모텔도 사정이 이랬다.
“그냥 우리 집으로 가는 게 어때요?”
보안이 오히려 나빠 보이는 곳이었다.
여기 있느니 도청의 위험이 있어도 각기 집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유현은 이 안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 세 가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쯤이었다.
오예리의 후배가 입을 연 것은.
“아……. 너네 집?”
“네. 저 어차피 자취하는데 투룸이라 커서요.”
“하긴 너네 집 크지. 어때요, 교수님?”
“그럴까요? 거기가 어딘진 몰라도 여기보단 나을 거 같습니다.”
오예리도 유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기사분 괜찮을까요? 아…….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달리는 후배의 차 안에서, 오예리가 입을 열었다.
찝찝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치킨을 배달시켜야겠다는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원래는 증인과 증거물만 확보하면 될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것은 추격전이었다.
오예리는 상대가 그토록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단 오늘은 경찰서 갔다가……. 후배들이랑 같이 지낼 거라고 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여차하면 연락 달라고 해서 연락처도 받았고요.”
유현은 그 기사가 준 연락처를 들여다보았다.
이름은 김순구.
욕을 그렇게나 하더니만, 이름은 또 순했다.
‘하긴. 사람은 순했지.’
욕을 할 뿐, 사람은 착하기 그지없었다.
사과도 받아 주었고.
후배들이 경찰에 잡혀갔다니까 앞뒤 안 가리고 거기부터 가고.
“그런데……. 그 영상 담긴 탭이랑 바디 캠은 다 형사가 가져갔는데 이제 어쩝니까? 그게 원칙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게 찜찜하네요. 워낙에 지금 저쪽이 하는 짓들이.”
오예리의 후배가 말을 돌렸다.
이쪽이 훨씬 중요한 주제이기는 해서, 오예리도 곧장 화제에 몰입했다.
“아, 그러게. 그게 그나마 무기가…….”
“있어요.”
유현은 둘의 걱정에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손에 든 휴대폰을 흔들어 주면서였다.
휴대폰 화면에서는 예의 그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어…… 언제?”
“그 탭……. 클라우드로 올렸죠.”
“아……. 재생할 때요?”
“네. 여차하면 뿌리면 됩니다.”
“아……. 진짜 잘하셨어요.”
오예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여간 이 정유현이라는 사람은 보통이 아니었다.
의사라고는 하는데, 저럴 때 보면 형사 같았다.
아니, 형사 중에서도 저만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끼익
그 후로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더 나누고 싶은 얘기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지쳐 있었다.
오예리, 유현은 물론이거니와 후배도 그랬다.
직접 일을 겪은 건 아니었지만 그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쭉 빨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일단 들어가시죠.”
“오. 좋은데요?”
후배의 집은 빌라였다.
투룸 빌라.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
아니, 인테리어가 굉장히 괜찮았다.
“네, 제가…… 집돌이라서요. 집 꾸미는 걸 중요시합니다.”
“그렇구나. 좋네요.”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소파에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마저 들어 그대로 눈도 감았다.
오예리는 그런 유현을 보고 있다가, 후배를 돌아보았다.
“아, 너 집에 혹시 밴드 있어?”
“네? 아……. 네. 있죠.”
“하나만 줘 봐.”
“왜요? 다쳤어요?”
“어.”
“어디요?”
“나 말고.”
오예리는 턱으로 유현을 가리켰다.
그제야 후배도 유현의 손톱이 들려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긴 아까 엄청 급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영상을 보기만 해도 급해 보였다.
“아. 네. 여기요.”
“그래, 고마워.”
그렇다고는 해도 오예리가 저렇게 세심한 사람이던가?
후배는 밴드를 주면서도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둔감하기로 따지면…… 팀 내 1등 아니었나.’
지금이야 다른 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서에 와 버린 몸이었지만.
원래 본청에 있을 때만 해도 오예리를 위시한 다른 형사들과는 거의 가족처럼 지냈더랬다.
그때 본 오예리는 그냥 털털 그 자체였다.
잠복근무도 제일 잘 견딜 정도로.
‘그때 좋았지.’
그러다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 둘도.
그때는 이유를 절대 알 수 없었더랬다.
‘와……. 그게 가족 유무로…… 가른 거였다니.’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그리고 우연히 살아남은 오예리가 말을 해 주고 나서야.
위험하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음에도 전폭적으로 협조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죽은 이들은 오예리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가족이었으니까.
툭하여간 오예리는 후배에게 받은 밴드를 유현의 배 위에 던졌다.
몰캉 하고 안착할 줄 알았던 밴드는 마치 단단한 쇠 위에 던져지기라도 한 듯 튕겨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음?”
“음?”
유현은 눈을 떴고, 오예리도 황당해서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하다. 사람 배는 원래 좀 부드러운 거 아닌가.’
물론 해명해야 할 사람은 오예리지 않나.
해서 오예리는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아까 손 다쳤잖아요. 밴드요.”
“아. 언제 보셨데.”
“장님인가 뭐.”
“감사합니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
“남 까진 건 보고, 본인 다친 건 몰라요?”
“오늘은 진짜 위험했으니까요.”
유현은 밴드를 손톱에 감으면서 눈을 잠시 감았다.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칼들이 여전히 선명했다.
‘미친.’
이제껏 칼이라고는 메스만 보지 않았나.
그나마도 내과 의사다 보니 거의 보지 못했더랬다.
그런데 그만한 칼이라니.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했던 날이었다.
* * *
“이 병신이.”
유현에게만 그런 날이었던 건 아니었다.
간신히, 경찰의 도움까지 받아 추격을 따돌린 황 팀장은 사색이 된 채 대통령 앞에 서 있었다.
위치는 청와대 인근의 안가.
들어오면서 머리를 최대한 굴려 봤지만 여긴 처음이었다.
그간 인근에서 꽤 자주 회의를 했던 것 같은데, 여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아는 얼굴도 없어. 김선태……. 저 인간 말고는.’
황 팀장은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저 아까 보았던 김선태를 떠올릴 뿐이었다.
그는 한참 전부터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인기척은 느껴졌으니,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상세하게 말해 봐요.”
“아, 네. 각하.”
대통령은 계속해서 황 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제야 황 팀장은 살 것 같았다.
물론 이 상황도 여의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숨 막히는 침묵 속에 간간이 욕만 들려오던 때보다는 나았다.
“그래서……. 캠에 찍혔다?”
“네. 그게……. 그렇게 하리라고는.”
“그럼 엮어서 집어넣는 건……. 물 건너간 거네?”
“네.”
거짓말을 할까 말까 고민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미 경찰이 들이닥쳤을 것이고, 어떻게든 귀에 들어가지 않았겠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실을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캠에 대해서는 그랬다.
“그 인간들이 영상 다 가지고 있다면서? 어디 있는지는 알아?”
“그게……. 일단 집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칼 들고 설쳤는데 집으로 갔겠어?”
“그……. 죄송합니다.”
본래 누군가 자기 앞에서 사과를 하면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도리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고만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쩐다…….’
다행한 일은.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나마 다행한 일은 따라붙었던 오토바이들은 진짜 평범한 배달 기사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아는 것도 없어서 죄 풀어 주기까지 했다.
물론 사람은 붙여 놨지만, 거기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드론…….’
하지만 김선태가 봤다는 드론은 얘기가 달랐다.
경찰이 왔을 땐 이미 자취를 감췄더랬다.
언론일까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언론은 주도면밀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까지 조심하지는 않으니까.
군부 독재 시절이었다면야 아예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지금은 그랬다.
언론을 대놓고 탄압할 수 있는 정권이 지금 세상에 말이나 되는가.
아무리 방역을 통해 공권력이 한없이 강해진 시대라지만 언론은 예외였다.
‘정보기관……. 근데 우리는 감조차 못 잡고 있어.’
아마도 타국의 기관일 터였다.
문제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쪽에서는 그 기관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황 팀장.”
분노는 당연하게도 황선우 팀장에게 향했다.
‘죽일까?’
순간 살심도 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꾸 죽이기만 해서야 뭐가 되겠나.
동네 조폭도 아니고 대통령인데.
죽이고 싶다고 죽여서야 되겠나.
“네, 각하.”
“김효상은 어찌 됐지?”
“아……. 자살로 위장했습니다. 경찰 측에서 시신 발견했고, 유서도 문자로 남겨져 있어서……. 바로 사건 덮었습니다.”
“그래, 그건 다행이군.”
잘한 일도 있긴 하지 않나.
다른 일을 거하게 말아먹어서 문제지.
“일단……. 정유현, 오예리 행적 파악에 주력해.”
“네. 발견하면 죽일까요?”
“미쳤어? 뭘 가지고 있는지, 또 다른 사람한테 넘겼는지도 모르면서? 오늘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안 돼. 일단 지켜봐.”
“네, 각하. 죄송합니다.”
축객령에 황 팀장은 쫓겨나듯 안가를 빠져나왔다.
대신 나선 것은 김선태였다.
“중령.”
“네.”
“이동 준비는?”
군에서 국정원으로, 국정원에서 다시 군으로.
지구 병원 연구실에 대한 주도권은 마치 탁구 하듯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지금……. 별로 좋지 않은데.’
김선태로서는 이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본래의 그라면 좋다, 좋지 않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작전은 뭔가 쎄했다.
민간인을 희생시키면서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급기야 오늘은 국회 의원도 죽었다.
의사와 형사를 다시 죽이려고도 하고 있다.
“아직입니다.”
“아직? 아니, 이삿짐도 하루면 될 텐데?”
“그 문제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그쪽 박사에게 들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상황이 꽤 복잡합니다.”
“복잡해?”
김선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통령에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김조은의 번호가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