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60화 (60/323)

60화 역공 (4)

“개판이구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사가 박태식의 집으로 들어섰다.

“넵!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와 있던 순경은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었다.

아직 순경 선에서 신고가 들어갔을 뿐인데 본청에서 사람이 나온 탓이었다.

서를 건너뛰고 바로 본청이라니.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아마……. 국회 의원이 죽어서 그렇겠지?’

순경은 왜 그런지 알겠다는 얼굴로 형사들을 바라보았다.

과연 베테랑들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얼굴빛조차 변하지 않았다.

“칼질이 어설픈 거 보니까……. 처음 찌르는 모양인데.”

형사 중 제일 연륜 있어 보이는, 아까 자신을 김일용 형사라 소개했던 이는 박태식 몸에는 손 하나 대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다가 이내 유현을 돌아보았다.

‘이 인간이 의심스럽다고 했지?’

청장에게 직통으로 걸려 온 전화를 떠올리면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박태식의 신변에 위험이 있다는 첩보가 있다고 했더랬다.

그랬으면 본청에 있는 자신이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청장의 말에 토를 달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사람을 찌를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현장에 와 보지도 않고 의심스럽니 마니 하는 소리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

게다가 김일용 형사쯤 되면, 그러니까 산전수전을 다 겪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가 본 정유현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를 떠나서…….

‘아니, 찔러도 이렇게 어설프게 찌를 인간이 아냐.’

강단이 있어 보였다.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면 더 철저히 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는 게 아니라.

“김 선배님. 이거……. 이걸로 찌른 거 같은데요?”

그때 후배 하나가 고무장갑을 낀 채, 현관 근처에 나뒹굴고 있는 칼을 가리켰다.

피가 적절히 묻어 있는 것이 확실히 흉기가 맞는 것 같았다.

“아까 부엌 보니까 칼이 없더라. 흔적 보면 있던 거 같은데……. 아마 저게 그거 같네.”

“현장에서 칼을 공수했다라……. 우발 범행일까요?”

“우발 범행. 음.”

멀쩡히 얘기 잘 나누다가 갑자기 사람 죽이는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꽤 많았다.

아니, 검거되는 살인 중 절반은 이런 케이스였다.

술자리에서는 더더욱 이런 일이 많았다.

‘글쎄……. 모르겠는데.’

우발 범행 현장은 특징이 있었다.

일단 도주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기 마련이었다.

피가 잔뜩 묻은 발자국이 문가를 향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또 어설픈 범행의 흔적으로써, 범인에게도 상처가 남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경험이 없던 사람이라고 해도 준비를 하고 와서 찌르면 대개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무경험자가 갑자기 사람을 죽이려 들면 그게 어디 쉽겠나?

‘식인종이 드물었던 이유가 있다고 하지?’

인간 입장에서 같은 인간은 사냥의 대상이 되기엔 무리가 있어서라고 들었다.

일단 덩치가 비슷하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싸움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가능성은 열어 봐야지. 그렇다고 하기엔 시신만 지저분하고……. 나머지가 너무 깨끗해. 일단 이거 술잔.”

“술잔이요?”

“하나만 꺼내져 있잖아. 혼자 마시다가 간 거야, 이 양반.”

“아…….”

“게다가 현관에서 간 것도 아니라…… 마시다가 근처에서 당했잖아. 밖에서 누가 들어와서 처리하고 간 게 아니란 얘기야. 그럼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얘긴데……. 앞뒤가 맞다고 생각해? 안에 사람이 있는데…… 술잔을 하나만 꺼낸다?”

“상대가 술을 안 마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보통은 술을 안 마시지. 국회 의원쯤 되는 사람이 그 정도 매너도 없을까. 하여간 아까 참고인분들 어디 계시지?”

“용의자 아닌가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청장님 말씀은 그냥 참고만 하라고.”

김일용은 같은 소리를 듣고서 날뛰는 후배를 자제시켰다.

물론 그라고 해서 청장의 말을 개소리로 치부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에 따라 상황을 끼워 맞출 생각 또한 없었다.

‘아……. 이 선배 또 나쁜 버릇 도지네.’

후배는 그런 김일용을 보며 혀를 찼다.

저 지랄하니까 아직도 일선에서 뛰는 거 아닌가.

능력도 있겠다, 말만 잘 들었으면 벌써 서장 달고도 남을 짬밥인데.

‘청장님도…… 아니, 저 인간을 왜 이렇게 중용하는 거야?’

심지어 청장이 서장일 때 같이 일하던 양반이지 않나.

공무원이 학연 지연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들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여기보다 학연 지연이 끈끈한 곳도 없었다.

특히 청장이 서장이나 반장일 때 같이 일했던 부하 직원이라면 무조건 위로 올라가는 게 정상이었다.

일종의 보은 인사이기도 하지만, 청장 입장에서도 자기 말 잘 듣고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을 여기저기 요직에 꽂아 놓는 것이 편해서 그랬다.

이번 청장이 그런 성향이 유독 더 강한데, 그럼에도 김일용은 일선에서 뛰고 있었다.

‘하여간 나라도 시킨 일 해야지.’

김일용의 후배, 유현진은 벌써 참고인 쪽으로 향하고 있는 김일용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 휴대폰을 들었다.

김일용을 제치고 위로 올라갈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현장에서의 실력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일이 어디 실력으로만 되던가.

저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은 언젠가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끼리끼리 어울려야 하는 법이었다.

-아, 유 형사.

“네. 청장님.”

-현장은 어때.

“네, 일단 사진 첨부해서 메일 보내 드렸습니다. 용의자 셋이 있는데……. 한 명이 자기 바디 캠에 다 있다고,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아……. 박태식 의원은?

“현장에서 거의 뭐……. 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칼에 10방은 넘게 맞았습니다.”

-10방……? 원한인가?

청장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저 대통령이,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 센 사람이 시킨 바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하니 대통령이 원내 대표를 묻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발적인 범행 같습니다. 부엌에 있던 칼이 흉기로 쓰인 거 같습니다. 찌른 것도 딱 보니까 프로는 아닙니다. 집 내부에서 죽었고요. 아마 손님으로 온 누군가가 찌른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음……. 그래? 확실히 그 의사라는 양반이 좀 이상한데.

“네, 근데…….”

유 형사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야! 빨리 와 봐! 와서 이거 봐!”

김일용이 워낙 거세게 그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아, 청장님. 뭐가 나온 모양입니다.”

-어, 가 봐. 가서 보고 바로 보고해.

“네.”

선배를 제치고 청장에게 전화하고 있던 상황 아닌가.

유 형사는 재빨리 전화를 끊고는 밖으로 향했다.

마땅히 있을 데가 없어 계단에 앉아 있던 세 참고인과 김일용 그리고 순경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야, 이거 봐.”

그중 김일용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탭에 연결되어 재생되고 있는 영상을 보여 주었다.

예의 그 바디 캠에 녹화되었던 영상이었다.

“어…….”

“1층이야. 1층에서 이 두 분 만나고……. 위로 올라왔어.”

“네.”

“문 열리고…….”

“아. 이거.”

“이미 죽어 있잖아.”

“근데 이거…….”

유 형사는 청장 말이 맞았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뭐라도 공을 세운 게 되니까.

청장 면을 세워 주면 뭐라도 받을 테니까.

해서 죽이고 1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 거 아니냔 말을 하려는데, 영상이 갑자기 뒤로 돌았다.

탭이 고장 난 건 아니고, 김일용이 조작한 것이었다.

쾅그 순간 영상에서 굉음이 울렸다.

누군가 문에 달린 경첩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장갑 낀 손에 들린 칼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어…….”

“한둘이 아니야. 조직적인 범행이야. 이 두 분한테 왔다는 문자 보니까……. 박태식 이름으로 부른 건 맞아. 근데 사람이 죽었지. 만약 그때 누가 신고라도 했으면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었을 거야. 여기 배달 기사분 바디 캠 아니었으면 말이야.”

“아……. 이거. 이거 그럼.”

“일단 참고인분들……. 오늘은 놀라셨을 테니까 집에 가시고요. 절대, 절대 언론에 흘리시면 안 됩니다. 이거 큰 건이라……. 진짜 개떼같이 몰려들 텐데, 그렇게 되면 제대로 수사가 안 됩니다.”

김일용의 말에 유현은 즉시 답하는 대신 눈을 감았다.

‘오늘…… 일을 보면 이 새끼들 수틀리면 다 죽일 새끼들이야.’

언론에 푸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은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들고 다니던 탭을 들려 준 것이 그 수작 중 하나였다.

‘일단 클라우드에 올라갔어.’

탭은 형사가 들고 갈 공산이 컸다.

하지만 연계된 클라우드에 있는 영상은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논문 자료 저장용으로 쓰는 클라우드다 보니 양재원을 비롯해 몇몇이 이 클라우드에 접근할 수 있지 않나.

물론 논문이라고 하면 질색하는 놈들이다 보니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접속하지 않을 테지만.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죠.”

유현의 말에 오예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해 놓고 올려도 되는 일 아닌가.

이 형사가 목숨 지켜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개인 역량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경찰 자체를 믿기가 어려웠다.

신고도 씹혔던 마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화 드리겠습니다. 꼭 받으세요.”

“네.”

“네, 그럼……. 아유, 고생하셨네.”

그렇게 세 참고인과 배달 기사의 지인 그리고 양재원에 뒤늦게 찾아온 오예리 형사의 후배 형사까지 모두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피투성이 현장이었던지라 자유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심지어 어디로 떠나지도 못했다.

탈력감에 메세나폴리스 상가동에 위치한 아무 의자에나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어.”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욕쟁이 배달 기사였다.

“애들인가 본데요?”

전화가 와서 그랬다.

형식이라고 불리던 배달 기사의 말에 욕쟁이가 전화를 받았다.

“어, 어떻게 됐어. 그 개새끼들.”

생각해 보니까 여기서 조사받고 하는 동안 다른 애들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지 않았나.

오토바이 9대면 서울 도심에서 도망갈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초 단위 배달을 하는 이들이라 더더욱 부심이 있었다.

“놓쳤다고? 어떻게? 아…… 경찰 단속?”

그런데 실패했다.

경찰에 의해.

“역시.”

유현은 그 말에 오예리를 돌아보았다.

오예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 한패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엿같이 엮였네요.”

“집에 가도 될까요?”

“위험할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동안 같이 지내야 할 거 같은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