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59화 (59/323)

59화 역공 (3)

띵메세나폴리스 지하 3층.

주차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에서 사람 여럿이 내렸다.

우의 따위는 걸치고 있지 않았다.

장갑이나 칼도 없었고.

그저 점잖아 보이는 인상에 양복을 입은, 그러니까 어떻게 봐도 그저 회사원처럼만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

“뭐야……. 여기 아니면 1층이라더니……. 저거 1층에 섰어?”

“아니, 안 섰지. 그 형님 또 구라 치는 거 아냐?”

“아냐……. 욕은 해도 구라는 잘 안 쳐. 게다가 형식이 형도 있잖아. 너 그 형이 구라 치는 거 본 적 있냐?”

“하긴……. 근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봐도…….”

오토바이를 타고 엘리베이터 앞에 대기 중이던 세 명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황 팀장과 요원들을 보며 수군거렸다.

사실 황 팀장은 누군가 달려들면 바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흉기야 피해야 하겠지만 뭐라도 차고는 있었다.

‘일단 달려들지 않으면 조용히 빠져나가지.’

‘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찰칵

누군가 사진을 찍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사진 찍어서 올려 보내라고 해요. 얼굴 모르니까.”

“누가 봐도 살인범들인데!”

“얼굴도 못 봤으면서 뭘……. 그래도 눈은 내가 기억하니까 보면 알 수 있어요. 그 옷에서 우의만 딱 벗으면 뭔 옷을 입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의외로 되게 멀쩡한 인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건……. 음.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 개새끼들.”

유현이 배달 기사에게 부탁한 사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배달 기사가 생각해도 우의 말고는 딱히 옷차림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냥 지금 내려가는 새끼들 나쁜 새끼들이니까 잡으라고만 했지, 어떻게 생긴 놈 잡으라고 하지도 못했을 지경이었다.

‘사진을 본다고…… 알아보려나?’

그 와중에 유현의 말이라고 믿음이 확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서만큼은 믿어야 했다.

하여간 아까 보여 준 모습이 있지 않나.

‘칼 튕기는 거 보면 이 사람 보통 사람 아냐.’

게다가 경찰이 확인해 준 사실인데, 죽어 나자빠져 있던 사람은 무려 여당 국회 의원이었더랬다.

그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보통 사람은 아니지 않겠나.

운 나쁘게 엮인 것을 제외하고 보면 유현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팀장님, 방금.”

하여간 사진이 찍혀 전송되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던 황 팀장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사진 찍고 튀면 답 없어도 쫓아가.

사진을 찍은 배달 기사는 차분하게 황 팀장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조용히 찍으려면 얼마든지 조용히 찍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휴대폰은 무조건 카메라에서 찰칵 소리가 나게끔 되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해제하는 어플 까는 건 일도 아니지 않나.

딱히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배달 기사는 아예 대놓고 황 팀장을 찍은 마당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었지?’

황 팀장은 어지러웠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휴대폰 카메라와 요원의 질문까지 한데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서 그랬다.

우의를 입었다.

모자는?

모자도 썼다.

선글라스?

이건 안 했고…….

마스크는 했던가?

“차로! 차로 바로 이동해!”

잘 모르겠다.

현장에 나와 본 적이 있어야 변수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것 아닌가.

아무리 국장보다는 났다고 해도, 책상물림은 책상물림이었다.

돌연 교감 신경 톤이 확 올라가 버린 황 팀장은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팀장이 뛰는데 다른 요원들은 어떻게 하나.

같이 뛰어야지.

“어, 진짜 튀네.”

“따라가?

“따라가야지. 애들한테 연락 때려. 1층 애들. 그리고 형님들이랑.”

“오케이. 좋아. 시발 달려 볼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그들이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오토바이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도로 상황을 쫙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달 기사들이 타는.

육중한 자동차로는 따돌리기 어려웠다.

배달 기사들은 주춤하는 기색 없이 바로 시동을 걸었다.

부아아앙

황 팀장이 탄 차가 도로 위로 올라가는 순간 8대가 넘는 오토바이가 그 뒤를 따랐다.

“뭐야, 저거! 저런 얘기는 없었잖아!”

황 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유현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니까.

그저 우연히 부른 배달 기사가 인싸였고, 그것이 나비 효과가 되어 일이 이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 일단 지원 요청해!”

“네? 어디로요?”

황 팀장의 말에 요원 하나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방금 사람 담그고 튀는데 누굴 부르란 말인가.

어리바리 타고 있는 사이, 그걸 지켜보고 있던 김선태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 또한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작전이 뒤틀리면 가서 다 죽이라는 명을 받고 대기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토바이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랏일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둘이던가.

이제는 직급이 올라 그런 경우가 적어지긴 했지만 하여간 큰 작전의 일부만 도맡아서 하다 보면 이게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란 생각을 하면서, 대통령이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

“아, 김 중령.”

평소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비록 일회용 전화번호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 중령이 대통령에게 직통 전화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었다.

특히 대통령에게 그랬다.

-네. 방금 황 팀장이 탄 차……. 현장 빠져나갔습니다.

“아, 그래? 그래서?”

-근데 그 뒤로 따라붙는 오토바이가 총 9대입니다. 저거 못 따돌릴 거 같은데요?

“뭐? 오토바이?”

대통령은 순간 007에서나 봤던 오토바이를 떠올렸다.

그 왜 좀 이상한 브랜드에 땅 위를 날아다니는 듯한 애들 있지 않나.

‘설마 다른 정보기관에서……?’

좀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미 여러 보고를 통해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등의 정보기관이 삼청동 인근에 자리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폭탄도 한번 터지지 않았나.

-네. 배달 오토바이로 보입니다.

“배달……?”

그렇게 최악을 상정하고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배달’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치킨?’

황 팀장이 치킨을 시켰나.

아니, 이건 아닐 터였다.

그랬다면 한 대만 따라붙어야지.

“이게 뭔…….”

-작전의 일환은 아니로군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김선태는 그제야 저게 어찌 되었건 간에 대통령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닐세.”

-그렇다면……. 어떻게든 떼어 내는 게 좋겠군요.

“그렇지. 반드시 떼어 내야지.”

황 팀장이 누구에게라도 잡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니, 그 전에 저 광경이 언론에라도 잡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소란이 일 게 뻔했다.

‘도심에서 추격……. 잡힌 사람이 국정원. 명령권자는 대통령…….’

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큰일이었다.

“반드시 떼어 내게. 일단 경찰 동원해서 오토바이들 제거 시도해 보지.”

-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게.”

-아, 그런데 현장은 어찌 된 겁니까?

“현장이라…….”

알 수 없었다.

황 팀장에게 맡겨 놨는데 연락도 없이 이탈하고 있지 않나.

그것도 꼬리를 달고.

모르긴 해도 X 된 것 같았다.

경찰 출동도 직권으로 막았는데.

‘이 시발 놈이…….’

황 팀장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 분노를 풀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사태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거긴 따로 알아보지.”

김선태가 가서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반드시 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군인을 보낸다?

일이 더 커질 가능성이 컸다.

-네. 알겠습니다.

군인은 명확한 지시를 내릴 때 가장 일을 잘 해내는 법.

대통령은 그렇게 김선태에게는 황 팀장에게 따라붙은 날파리를 떼어 낼 것을 지시하고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네, 각하.

대통령 본인 손으로 직접 임명한 경찰청장이 받았다.

이 양반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의 입김에 의해 이런저런 짓을 저지른 상황이었다.

손을 더럽혔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시키는 일을 잘하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하여간 이번에도 이 칼을 써야 할 차례였다.

-아……. 네. 현장으로 제가 믿을 수 있는 애들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래. 알아보기만 하라고. 시키지 않은 짓은 하지 말고. 아, 언론에서 물지 못하게 통제 잘하고.”

-네.

“아, 그리고 이 차량 수배해서 경찰이 맡아 줘. 주변 따라붙은 날파리들은 뭐라도 구실 만들어서 처넣고. 이게 그 차량 안에 있는 사람 번혼데……. 공조하고.”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야말로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었다.

따르릉

하지만 아직 그런 한숨을 쉬기엔 이른 상황이었다.

“아, 김 중령.”

김선태가 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쎄한 느낌이 등줄기를 휘감았다.

-지금 차 타고 따라가고 있는데……. 오토바이만 있는 게 아닙니다.

“뭐?”

-차량 몇 대가 더 쫓고 있습니다. 근데 느낌이…….

오토바이는 그냥 애들이었다.

20대나 기껏해야 30대 초반의 어린 애들.

신나게 액셀 밟고 차량 뒤를 쫓고 있는데 그걸 숨기려는 의지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차량 몇 대를 간격에 두고 따라붙은 이들은 전혀 성격이 달랐다.

김선태조차 모두 파악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교묘했다.

심지어 드론도 떠 있었다.

-이상합니다. 이건……. 프로입니다.

“프로…….”

-드론도 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차량으로 따돌리는 건 무리입니다. 경찰 병력을 빨리 보내야 할 거 같습니다.

대통령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드론이라니.

배달 오토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치킨이 떠올랐지만.

드론은 연상되는 게 너무 많았다.

‘어디지?’

어디 정보기관일까.

어디까지 새어 나간 걸까.

아니면 언론일 수도 있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일단 상황 보면서 변화 있으면 보고하게.”

-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적어도 김선태 앞에서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침착한 어조로 전화를 끊었다.

“웁, 우웁!”

그런 척한다고 그게 다 되면 사람이겠나.

대통령은 화장실로 뛰어가 구역질을 해 댔다.

별 소용은 없었다.

상황은 그대로니까.

아니, 안 좋은 생각만 계속 들었다.

“김 비서…….”

결국, 대통령은 비서를 불러들였다.

“네, 각하.”

미루고 있던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구 병원 시설……. 검체까지 최대한 빨리 남산으로 이동하도록 하지. 언제까지 되는지 알아내서 보고해.”

“네? 언제까지라고 하시면…….”

“오늘 밤에라도 옮겨야 된다고! 빨리 알아봐!”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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