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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58화 (58/323)

58화 역공 (2)

“저저, 시발 놈들 저거!”

당연하게도 배달 기사가 제일 먼저 소란을 피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검정 우의를 걸친 남자 여럿이 손에 칼을 쥐고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아니, 아직은 들어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유현이 아까 밀어 둔 가구들 덕이었다.

“아니, 근데 저건 어떻게 저기까지 밀어 둔 거예요?”

그중에는 냉장고도 있었다.

소형이긴 하지만, 말이 소형이지. 무게가 수십 킬로는 나갈 터였다.

“급해서요.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네.”

유현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둘째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지가 해 놓고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 꼭 무슨 정치인 화법 같았지만.

진짜로 기억이 안 났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손톱에 피가 날 정도로 힘을 주어 옮겼다는 점이었다.

“이제 슬슬 안방으로 가죠.”

그렇게 애를 썼건만.

밀어닥친 사내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있었다.

“죽어, 이 새꺄!”

그중 맨 앞에 있던 놈은 칼을 휙 하고 던지기까지 했다.

깡유현은 이번에도 무아지경으로 삼단봉을 휘둘러 칼을 막아 내고는 다리에 힘이 풀린 배달 기사를 질질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저, 미친…….”

칼을 집어 던진 요원, 그러니까 황 팀장은 황당함에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이게 군용칼이 아니라 사시미라고는 해도 던지는 묘리는 투검술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나.

근데 그걸 쳐 내?

무슨 커다란 물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삼단봉으로?

“일단 들어가시죠.”

그사이 바리케이드를 완전히 치워 낸 부하 요원의 말이 있지 않았다면 아마 한참을 더 그냥 그렇게 서 있었을 터였다.

그만큼 황당한 상황이었다.

“어, 어. 그래. 이 개새끼들.”

하여간 사내들은 또 달렸다.

그러고는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마주했다.

쾅일단 발로 냅다 찼다.

보통은 그러면 열리기에 그랬다.

하지만 문은 그저 덜컹 소리를 냈을 뿐, 미동도 없었다.

주상 복합이다 보니 건물을 잘 지어 놔서 그랬다.

“이런 젠장.”

황 팀장은 애꿎은, 이미 죽은 지 좀 돼서 차갑게 식어 가고 있는 박태식을 돌아보곤 다시 한번 문을 발로 찼다.

미동이 없었을 뿐, 느낌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잘 지어 봐야 장정이 작정하고 부수려고 하면 방법이 없지 않겠나.

-아아, 관리실에서 안내 방송 드립니다. 현재 A동 28층에서 소란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현장으로 출동 중이니 입주자분들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몇 번 더 발로 차고 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A동 28층에서 소란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현장으로 출동 중이니 입주자분들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시발!”

이제 황당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에는 환장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야 문이 덜컹거리는데 방송이라니?

“막아요! 막아!”

안쪽에서는 더더욱 힘을 내서 문을 막고 있었다.

침대를 쭉 밀어다 놓고, 정유현, 오예리 그리고 배달 기사까지 셋이서 있는 힘껏 막고 있었다.

쾅쾅발로 차는 것뿐만 아니라 칼 손잡이로도 문을 두드리고 있어서, 문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황이었다.

희미하게 난 구멍을 통해 칼 든 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시발, 시발!”

배달 기사는 그게 보일 때마다 욕을 내뱉으면서 동시에 침대를 있는 힘껏 밀었다.

겁이 많은 것치고는 힘이 좋아서 도움이 되었다.

벌써 수적 열세에 의해 반 걸음가량 밀리긴 했지만.

“팀장님 올라오고 있는 거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껐잖아!”

“계단으로……. 아무래도 이게 너무 소란스러웠어서요. 이제 슬슬 저희도 몸을 피해야…….”

“이런 젠장.”

시간은 어찌 되었건 간에 유현의 편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황 팀장의 편은 아니었다.

‘이런 망할. 이런 시발.’

경찰에 들어간 신고는 묵살해 버린 지 오래였다.

이쪽에서도 조치를 취했지만, 대통령에게까지 말을 했으니 아마 더한 수준으로 막았을 터였다.

하지만 현장에 다른 목격자들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사방에서 같은 지점을 향한 신고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어디 군사 정권 시대도 아니고, 끝까지 막았다가는 그 사실만으로 대통령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올라오고 있는 게 경비원뿐일지 아니면 경찰도 대동하고 있을지 어떨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철수……. 철수!”

그나마 다행한 일은 철수할 방법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렵게 32층의 2호실을 단기 임대한 덕이었다.

두두두두두

사실 나머지 요원들은 황 팀장의 철수하자는 말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 그 말이 있자마자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갔다.

“와……. 이게 다 뭐야.”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것은 배달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 하나와 경비원 하나였다.

28층을 걸어 올라오느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마 중간에 소란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터였다.

-어, 이거 우리 형님 목소린데! 진짜 뭔 일 터졌나 봐요. 이 양반이 원래 이렇게 입이 험하진 않거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배달 기사가 큰일 했다.

소리를 어찌나 고래고래 질렀던지 10층도 못 올라온 상황에서도 누가 이렇게 소리 지르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와……. 이거 시발. 진짜. 형 살아 있어요?”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엉망이 된 집이었다.

집기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무엇보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는 박태식이 있었다.

눈도 감지 못한 채, 피 웅덩이에 빠져 있었다.

“웁. 우웁.”

경비원은 차마 그 광경을 더 보지 못하고 뒤로 돌아섰다.

다행한 것은 실제로 토는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저 구역질만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배달 기사는 그나마 덤덤하게 형을 찾았다.

“아, 그래. 형식아. 아 뒤지는 줄 알았네, 진짜.”

그때까지 침대를 밀고 있던 욕쟁이 배달 기사는 한달음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는 목소리가 들리니까 확 긴장이 풀렸는지 너스레까지 떨었다.

물론 그렇다고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지만.

“네, 형. 아니…… 이게 대체. 와……. 배달하다가 진짜 별일 다 본다고 했는데 이거에 비하면 나는 댈 것도 아니네.”

“진짜로……. 진짜로 뒤지는 줄 알았어. 칼 든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요? 근데 조용한데?”

“그래? 그 새끼들 잡아야 해. 경비 아저씨. 위로 가 봐요. 잡아야죠!”

그런 주제에 경비원에게는 빨리 위로 가라고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도 고개를 처박고 있던 경비원으로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이었다.

“네? 아니, 방금 칼 든 새끼들이 많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러니까요. 잡아야죠!”

“아니. 저는. 어어. 경찰 오셨다.”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양재원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뭐야. 교수님! 교수님 살아 계세요?”

그래도 의사지 않나.

그것도 대학 병원.

험한 꼴 하나는 진짜 자신 있다 할 정도로 많이 보았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경찰보다도 더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와 유현을 불러 젖힐 수 있었다.

“어, 어. 재원아. 왔구나.”

유현은 그사이에 침대를 옆으로 밀어 두고는 오예리 형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큰일을 겪은 것치고는 얼굴이 지나치게 멀쩡해 보였다.

배달 기사의 핼쑥한 얼굴과 비교하면 이쪽이 혹시 범인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네. 아니, 근데……. 이게.”

“경찰분. 위로 가시죠. 범인 잡아야 됩니다.”

유현은 재원의 손을 한번 잡아 주고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경찰 또한 경비원만큼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네? 아…… 그. 범인이 아직 여기 있다는 거죠?”

“네. 조금 전까지 이 앞에서 저희 죽이겠다고……. 저기 문 보이세요? 박살 났잖아요. 바로 전까지 그러고 있었어요.”

“아……. 그. 제가 혼자 올라와 가지고.”

“아니, 살인 사건으로 신고 들어갔을 텐데 혼자 오셨어요?”

“이상하게 지원 요청이 묵살돼서요.”

지원 요청이 묵살되었다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대충 막았겠지.

“다른 한 명이 지금 1층 통제하고 있기는 합니다. 범인 몇이라고는 못 들어서.”

개새끼들이라는 욕을 이어 나갈 새도 없었다.

단 한 명이 1층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네? 한 명?”

“네. 어차피 엘리베이터 고장……. 어.”

경찰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분명 알 수 없는 이유로 망가졌다던 엘리베이터가 곧장 아래로 향하고 있어서 그랬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대체 이게 어디서 멈췄다가 내려가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무전 쳐요! 내가 아까 그랬죠? 칼 든 놈이 한둘이 아니라고!”

“어어, 네.”

경찰은 유현이 외치고 나서야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 범인이 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엘리베이터 내려가고 있어! 범인은 무장했고, 여럿이래! 총기 있지?”

-공포탄 있죠.

“하, 시발.”

별로 기대가 되는 광경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일선 경찰들의 무장 상태에 대해서 저들이 모를 리가 없지 않나.

형사라도 왔으면 얘기가 좀 다르긴 할 터였다.

경험이 다를 테니.

하지만 순경 혼자서 요원을 막을 수 있을까?

유현은 아직도 삼단봉으로 칼을 쳐 냈던 일이 잊히지 않았다.

아니, 손이 좀 떨려 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야, 형식아. 아래 애들 있냐?”

“네? 애들 왔죠, 그럼. 형 뒤진다는데. 아니, 이거 보니까 안 왔으면 진짜 뒤졌겠네.”

“걔들 다 엘리베이터로 가라고 해.”

“네? 칼 맞으면 어쩌려고.”

“딱 보니까 프로야. 사람 많은 데서는 칼 안 쓸 거 같은데.”

“영화에서 본 거 토대로 말씀하시는 거죠.”

“어.”

“하.”

오히려 수적 우위는 배달 기사들에게 있었다.

형식은 욕쟁이의 말에 한숨을 푹 쉬면서도 어찌 되었건 전화기를 들었다.

-네? 죽었어요?

“아니, 죽을 뻔했다고.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아무튼, 그 새끼들 내려가는 거 같으니까, 잡아!”

-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어중이떠중이들로 이루어진 포위망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 유현은 말을 이었다.

“우리도 내려가죠.”

“어, 네. 아니, 잠깐만.”

경찰은 그의 말에 그저 따르려다가, 이내 박태식의 시신을 돌아보았다.

‘이 인간들이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잖아……?’

안 그래도 밑에 한 명밖에 없는데 작정하고 튀려고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오토바이 부대도 한패인 것 같으니 절대 무리일 터였다.

“아니, 안 됩니다!”

“네? 뭐가 안 돼요.”

“저, 이분 살해 용의…… 아니, 참고자로라도 조사를 받으셔야 해요!”

경찰의 답답한 말에 욕쟁이가 또다시 발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발! 내 바디 캠에 다 찍혔어! 이 양반들 밖에서 나랑 같이 들어갔다고!”

“그래도…….”

“그래도는 니미 시발. 방금 뒤질 뻔한 사람들한테 용의자라고 했어?”

“참고자라고…….”

“그 전에!”

“그…… 아니, 이게.”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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