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완성 (6)
“잘 봐요.”
오예리는 아까 전달받았던 박태식 의원의 집으로 배달 주문을 넣었다.
여러 가지 앱이 있지만, 그중에서 좀 비싼 대신 단독으로만 배달이 되는 곳을 이용했다.
“왜 여기여야 되죠?”
“다른 곳도 사실 요새는 다 그렇긴 할 텐데……. 여기는 100% 바디 캠을 달고 다니거든요.”
“바디 캠이요?”
“네. 요새 배달 기사들에 대한 인식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사고가 나면 일단 가해자로 몰리는 경향이 있대요. 그래서 그런 경우 증빙 자료로 쓰기 위함인데……. 사실 이게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도 있어서. 양측을 다 억지하는 거죠.”
유현은 오예리 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토바이들의 운전이 좀 거친 구석이 있긴 했다.
실제로 유현도 오토바이 때문에 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고.
그렇다면 그 오토바이를 한두 대가 아니라 수천 대 이상 관리해야 하는 업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뭐든 해야 했을 터였다.
특히 그 업체가 소위 말하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군요. 하여간 바디 캠이 있으면…….”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인간들 하던 꼬락서니를 보면……. 아마 증언자를 죽이거나 하겠죠. 하지만 영상은…… 단순한 증언이랑은 파급력이 달라요.”
“그렇네요. 오…… 확실히 이건.”
“네. 일단 들어가죠. 저쪽에서 눈치채기 전에.”
“네.”
오예리는 유현과 함께 박태식 의원이 거주하는 아파트 현관에 섰다.
그러고는 버튼을 눌러 호출했다.
띡그랬더니 문이 열렸다.
‘박태식이 아직 살아 있고…… 이게 그냥 다 헤프닝이면 좋겠는데.’
유현은 멀쩡히 열리는 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헛된 바람이라는 생각 또한 동시에 하고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왜 자신이 이쪽 방면 지하철을 타는지 어쩌는지 굳이 확인을 한단 말인가.
자신이 개찰구를 통과해 들어갈 때, 상대는 분명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더랬다.
무언가를 확인했고 그로 인해 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 있죠. 저기 캠이 있네요.”
유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오예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아파트 현관 1층에 위치한 캠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그 화면은 고스란히 국정원 요원들에게 송출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둘이 여기까지는 잘 와 놓고서는, 올라가지 않고 있는 현장을 보고 있었다.
“눈치챘나?”
“여기까지 와서?”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대체 왜……?”
“누굴 기다리나……?”
황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으로는 멀쩡한 얼굴을 한 채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초조했다.
‘김태평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조금 전까지는 김태평 그거 별거 아니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밖으로 나돌았으면 김태평보다 훨씬 잘해 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계획의 조각 하나가 예상을 빗나가자 확 불안해졌다.
‘어떻게…… 어떻게 하지?’
만약 저 둘이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아니……. 어쩌긴 뭘 어째. 박태식 살인은 미제가 되는 거야. 그리고……. 뭐가 됐건 여기까지 저 둘이 왔잖아. 엮어서 조사받게는 만들 수 있어. 뒤집어씌울 수는 없어도……. 한동안 활동을 완전히 묶을 수 있어.’
김태평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어설픈 작전을 세우지도 않았을 터였다.
같은 계획이었더라도 디테일에서 차이가 났을 터였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런 상황에 있었다.
김태평이었다면 아마 계획이 엇나가는 느낌이 들자마자 즉시 수정 보완했을 터였다.
지금 황 팀장처럼 태평하게 앉아서 희망 회로를 불태우는 게 아니라.
“어……. 엘리베이터 버튼 눌렀습니다.”
“아. 그래? 그냥 생각 정리하고 있었나?”
“동행인이 하나 붙었는데 어떻게 하죠?”
“신경 쓰지 마. 여기 층수가 몇 갠데……. 딴 층 가겠지.”
그렇게 근거 없는 낙관을 불태우고 있는 사이, 오예리가 버튼을 눌렀다.
옆에는 위아래로 새카만 옷을 입은 배달 기사가 붙어 있었다.
벨을 누르지 않았음에도 들어온 참이었다.
마침 1층에 있던 오예리와 유현이 안쪽에서 문을 열어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의심을 품고 본다면 한없이 이상한 상황이겠으나 또 그냥 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원래 아파트 현관에서 종종 벌어지곤 하는 일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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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계속해서 위로 향했다.
그사이 한 번도 서지 않았다.
그렇게 28층.
그러니까 박태식 의원의 집에 닿았다.
“어……. 셋이 같이 내립니다!”
“이런 시발. 뭐야? 반대편 집인…… 아니, 뭐야!”
이미 박태식 집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요원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일단 아파트 1층 현관문은 열어 준 흔적이 있어야 그때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고 들어올 때까지 안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간 이쪽이 다 뒤집어쓸 테니.
해서 문을 살짝 열어 둔 채 빠져나온 참이었다.
예정대로였다면 오예리, 정유현 둘이 저 문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다가 안으로 들어오고 시신을 발견했어야 했다.
“저 새끼 왜 저기 서 있어!”
그러나 지금 그 앞에 선 것은 배달 기사였다.
떡하니 바디 캠까지 달고서.
“아, 기사님. 이 집으로 배달 오셨나 보다.”
오예리는 그런 배달 기사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배달 기사는 그런 것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빨리 이것만 주고 내려가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사람 역할을 맡은 유현이,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러한 행위에 시비를 걸지 못할 체격으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른 참이었다.
그러고는 배달 기사를 왜인지 모르게 쏘아보고 있어서 기사는 감히 오예리에게 거칠게 나가지 못했다.
“아, 네. 이 집 사세요?”
“아뇨. 아뇨. 저희도 초청받았어요. 근데 왜 문을 안 열어…… 어? 문이 열려 있네요? 보세요. 여기.”
“아…… 그렇네. 이러면 요청 사항에 써 주지 좀.”
배달 기사는 오예리 형사가 가리킨 문틈을 보고선 문을 휙 하고 당겼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초대받은 손님과 함께 있는 상황 아닌가.
어차피 열렸을 문이란 생각에 저질러 버렸다.
“어.”
“뭐야, 저거.”
그리고 마주했다.
거실에 고인 피 웅덩이.
그리고 창백한 손바닥을.
“어어, 밀지 마요. 밀지 마, 시발 밀지 마!”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시신이라는 사실을.
해서 배달 기사는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유현이 밀고 들어와서 그랬다.
어찌나 힘이 센지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 죽었을 수도 있는데 야박하게 이러지 맙시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타박하는 말까지 듣다 보니 하릴없이 유현이 미는 대로 어느 정도 집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그럴수록 시신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손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팔뚝이 보이고.
그다음에는 어깨, 얼굴, 그리고 가슴.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배였다.
“으. 으아아아아!”
유현은 그 와중에도 배달 기사의 몸에 달린 바디 캠이 시신을 정확히 잡았음을 확인했다.
물론 착잡하기는 그 또한 매한가지였다.
‘죽었구나.’
비록 직접 얼굴 맞대고 얘기한 것은 한 번이었지만.
그럼에도 알던 사람이 죽은 상황이었다.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죠.”
“네.”
“아니, 나는.”
기사는 당황한 얼굴로 오예리와 유현을 돌아보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가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오예리가 입을 열었다.
“이거 신고의 의무가 있어요. 방조죄로 걸리고 싶어요?”
“방조요?”
개소리였다.
하지만 개소리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법이었다.
심지어 오예리가 들이민 것은 누가 봐도 경찰 배지였다.
“네. 이거 박태식 의원이에요. 살인 사건입니다.”
“아…….”
죽은 사람은 국회 의원.
“아니, 이거 시발.”
치킨 배달 왔다가 국회 의원 살인 사건을 목도해?
배달 기사는 저도 모르게 욕을 계속 주워 넘겼다.
1층에서 벨도 안 눌렀는데 문이 열릴 때까지만 해도 운수 좋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생각보다 그런 데서 놓치는 시간이 꽤 컸으니까.
하지만 웬 미친놈이 엘리베이터를 내려보내고부터는 짜증이 솟구쳤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오늘 제일 짜증 나는 일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왜 내가.”
그리고 그는 지금 시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초청받아 왔다는 형사랑 웬 덩치 큰 사내 하나랑 덜렁.
“네. 여기 합정역 인근 메세나폴리스입니다. 2801호……. 살인 사건입니다. 목격자는 아니고요, 초청받아서 왔는데 집주인이 사망한 채로. 네, 네. 빨리 와 주세요.”
오예리 형사는 아주 능숙하게 신고를 마치고서는 주저앉아 버린 기사를 일으켜 세웠다.
“살인 현장이잖아요. 어지럽히면 안 됩니다.”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였다.
이미 상황에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압도된 지 오래였던 기사는 하릴없이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얼굴을 여전히 지우지 못한 채였다.
하지만 이 시각 그보다 더 당황한 이들이 있었다.
“뭐야, 이거. 이거…….”
황 팀장과 그 부하들이었다.
“어쩌죠?”
“어쩌죠가 아니라 방법을 제시해!”
“네?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더 정확히 말하면 황 팀장이 제일 당황하고 있다고 봐야 할 터였다.
그는 책임자이지 않나.
게다가 이번 일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 놓은 마당이었다.
대통령 앞에서.
사람 죽이는 것쯤은 이제 일로 여기지 않게 된,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 센 사람 앞에서 그랬다.
‘이거……. 이거 나 죽이고 입 닦는 거 아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주변에 흩뿌려 놓은 요원들이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고해 온 마당 아닌가.
좋게 생각하면 작전의 백업을 위해 배치한 거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굳이 책임자인 자신도 모르게 배치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일 틀어지면 싹 죽여……? 근데 저기는 경찰이……. 게다가 기사도 있고.’
사실 이 일은 황 팀장이 거의 단독으로 벌이고 있는 일이지 않나.
증거도 없었다.
그저 입으로 떠들었을 뿐이었으니.
그제야 황 팀장은 대통령이 어떠한 공식 문서도 남겨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불법이니까.
‘어쩐다. 어쩌지.’
황 팀장은 머리를 굴렸다.
이 일을 어떻게 덮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김태평이었다면 현장에 대해 고민했을 터였다.
하지만 황 팀장은 책상물림이었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이 일을 덮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일이 제대로 해결되는 것보다는 면피가 우선이었다.
“전화 연결해.”
“네? 어디로요?”
“대통령.”
“네?”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까, 줘 봐.”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