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완성 (2)
박태식이 변종 얘기를 꺼냈다라.
대통령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속으로 최근 뉴스 중에 변종에 대한 것이 있었나를 확인했다.
팬데믹 사태 이후 방역이 주요 정책으로 떠오른 마당이다 보니, 머릿속에 뉴스에 관해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가 있었다.
“주요 변종 보도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 건을…….”
비서는 곁눈질로 영상을 바라보았다.
이미 멈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한이 찾아왔다.
방금 저 안에 있던 인물이 보여 준 움직임.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뭘 만든 거야…….’
목구멍이 포도청인 데다가, 대통령 비서직을 원활히 수행하고 나면 떨어질 콩고물 때문에라도 잠자코 있기는 했지만.
또 개인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도 있기는 했지만.
이 건에 대해서만큼은 너무 두려웠다.
어차피 무기라는 게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물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방식에 제한이 있어야 하지 않나.
“박태식……. 이 인간이 대체 어떻게…… 아, 아니지. 아냐. 보고받은 기억이 있구만.”
대통령은 비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일의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업적 달성만이 중요했다.
그 달성에 방해가 되는 일이 있다?
해결해야만 했다.
“아, 네. 김효상 국장과 일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1호를 추적했던 최우식 서기관이 바로 김효상 국장 밑이구요.”
비서도 그런 대통령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일종의 소시오패스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일은 잘하지 않던가.
임기 중 맡은 바 일을 이만큼이나 했던 대통령은 드물었다.
심지어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진 마당임에도 그랬다.
해서 비서는 애써 이 일의 옳고 그름 대신 그저 일이 제대로 끝마쳐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건 국정원이 해결했다고 들었는데. 박 국장.”
대통령은 비서의 상세한 보고를 다 듣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국정원 사람을 찾았다.
직함이 국장이기는 한데, 사실 진짜 직함이 뭔지는 대통령에게도 불명이었다.
대통령에게까지 비밀이라니.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국정원 애들이 다 그렇지 않나.
사소한 문제는 뒤로하고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 각하.”
“김효상 건 해결되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본데.”
“네?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박 국장은 머릿속으로 김태평을 떠올렸다.
부하 직원이기는 하지만 눈앞에 마주하는 건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만큼 입지전적인 일을 비인간적으로 해낸 바 있었다.
그런 인간이 실수를 한다?
그럴 리가 없었다.
“뭔 소리야! 그럴 리가 없다니! 그게 정보기관이 할 소리야? 이미 벌어진 일을 부정하는 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박 국장은 더 이상 김태평에 대한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눈앞에서 화를 내고 있어 그랬다.
이 상황에서 태평하게 있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적어도 박 국장은 아니었다.
“그……. 죄,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시정을…….”
“대체 어떻게! 이미 박태식 의원이 알아 버렸는데!”
“그…….”
박 국장은 당황한 나머지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정보기관에 몸담고 있다곤 하지만 현장이 아니라 책상 앞에 있던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지 않던가.
대한민국 관료 사회 특성상 오히려 그 시간이 더 중요하긴 했다.
적어도 승진하는 데에는 중요했다.
하지만 일을 해결하는 데에도 그렇진 않았다.
“이 멍청한.”
대통령은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박 국장의 눈알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서는 그 길로 직감했다.
이제 저 사람을 다시 보는 일을 없을 거라는 사실을.
대통령은 몰인정한 사람은 써도, 무능한 인간은 쓰지 않으니까.
하다못해 이 자리에서 뭐라도 하려는 자세를 보였다면 또 모르겠는데.
저렇게 당황하고만 있는 인간을 재활용할 사람이 아니었다.
“황 팀장. 이리로.”
대통령은 바로 박 국장 직속 부하를 불렀다.
사실 황 팀장의 경력도 박 국장과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마 타고난 재능일 터였다.
이쪽에 있는 게 승진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책상물림으로 있었을 뿐, 황 팀장은 박 국장에 비하면 훨씬 음험한 인간이었다.
“네, 각하.”
“일단 박태식 만나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 해결할지 방안을 짜 봐. 완성되면 언제든지 들어오고. 어차피 갑자기 이루어진 미팅이니, 중간에 누가 방해해도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박 국장과는 달리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황 팀장이 마음에 들었다.
‘뭐……. 그렇다고 이놈만 믿을 수는 없지.’
물론 타고난 정치인인 만큼 구멍 하나 뚫은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일단 박태식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야 하겠지만, 원래 일은 최악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법이었다.
“김선태 연락해.”
“네.”
해서 대통령은 김선태 중령을 부르기로 작심했다.
공작이 먹히지 않을 것 같으면 그냥 다 죽일 생각이었다.
사람 입 막는 것보다는 그냥 묻어 버리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덕이었다.
CCTV도 많고, 인구도 많아 완전 범죄가 어렵다고 알려진 것이 대한민국이었지만.
나라에서 제일 힘센 사람과 집단이 마음먹고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니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그럼 가지.”
김선태는 비서의 전화에 왜 부르냐는 둥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군인답게 ‘네’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네.”
비서도 그랬다.
심기가 불편한 대통령의 말에 다른 말을 섞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여간 대통령은 망연자실한 얼굴의 박 국장과 갑자기 일이 주어진 황 팀장 그리고 조금 불안한 얼굴이 된 김조은 박사 등을 남겨 두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안가 자체가 청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도 하고, 중간에 따라붙은 의전 때문에도 그렇고 해서 대통령은 곧 청와대에 닿을 수 있었다.
“박태식 원내 대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자, 다른 비서가 바로 보고를 해 왔다.
전화 끊고 불과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왔다니.
이미 전화를 걸 때부터 이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말은 곧 자신이 만나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단 얘기였다.
아무니 여당 원내 대표라 해도 대통령을 사전 약속도 없이 만날 수는 없는 법.
‘진짜로 뭔가 알고 있나 본데…….’
절대 피할 수 없을 거란 확신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 살심을 키우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아, 오랜만입니다.”
안에는 박태식이 있었다.
뻔뻔하게 앉아서, 물까지 마시면서.
‘내가 어디 있다 왔는지까지는 모르겠지.’
대통령은 허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공사가 다망하다 보니 박태식 의원도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이해합니다. 헌정 역사상 제일 바쁜 대통령 아니십니까.”
“과찬의 말씀을…… 하하. 자, 나가 봐요. 둘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러고는 덕담을 나누다 이내 비서들을 내보냈다.
그중 단 한 명하고만 눈을 마주치고서였다.
가장 은밀한 곳까지 함께했던 이였다.
그는 황 팀장이 무언가 언질을 주면 바로 돌아올 터였다.
이러한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있는 박태식은 여전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눈은 예의 그 날카로운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계신 겁니까?”
“무슨 짓이라니요?”
대통령은 짐짓 모르쇠를 놓아 보았다.
그러자 박태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 알고 왔습니다. 수락 마을에서 환자 가로채고……. 그들 이용해서 연구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전에 한국대학교 병원에서도 이미 환자를 가로챘죠.”
“무슨 소린지…….”
“김조은 박사. 암으로 위장하고 연구 시설에 들어간 것도 알고 있습니다. 모르쇠 치지 마세요. VIP 지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박태식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죽여야 되나……? 아니면 입 막을 기회가 있나?’
얼굴은 여전히 모르쇠를 치고 있었기에, 박태식은 살벌한 속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박원상 교수도 들어갔고요. 그사이에 한국대학교 병원도 습격했더군요. 증거 영상이 다 남았습니다. 이 바이러스로 무기를 만들고 계시는 거죠? 모르고 계시는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중지시켜야 합니다. 언론에 알리고 관련자들을 중징계해야죠.”
아니, 살벌한 속내뿐만 아니라 그냥 속으로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이 인간……. 이 인간은 진짜…….’
박태식도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지 벌써 한참이었다.
덕분에 포커페이스니 뭐니 하는 인간들을 많이 겪어 봤건만.
이 정도로 속을 모르겠는 사람은 단연코 없었다.
괜히 대통령까지 해 먹고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여간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기에, 좀 세게 나가 보았다.
흔들면 뭐라도 반응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서 그랬다.
‘일단 날 만났잖아. 그럼 뭔가 있는 거잖아.’
물론 확신이 드는 것도 있었다.
원내 대표라 상황을 더 잘 알아서 그랬다.
대통령의 스케줄은 대개 분 단위.
그걸 쪼개서 다른 이를 만난다는 건 큰일이었다.
게다가 밖에 있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9.11 테러에 버금가는 일이 대한민국에 터져야 하지 않을까?
“언론이라…….”
언론이란 단어는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지금껏 철옹성 같던 대통령의 얼굴이 조금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반응은 있었다.
“신중히 생각하고 발언하시는 건 맞지요?”
“물론입니다. 바이러스 무기화……. 이건 큰일 날 일 아닙니까? 언론에서 알게 되면 난리 날 겁니다.”
“그렇겠죠. 그게 사실이라면요.”
“영상이 있습니다. 증거가 있어요.”
“증거라.”
그 말에 대통령은 불안해졌다.
증거가 대체 어느 정도의 증거인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
“그중 하나만 보여 드리죠. 이거 보세요. 복사본과 나머지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쥐고 있으니까 허튼 생각은 마시고.”
박태식은 좀 더 밀어붙이기 위해 영상을 보여 주었다.
김조은 박사 이름으로 진료를 받은, 그러나 김조은이 아닌 사람의 CCTV 영상이었다.
“유전자 박사가 이렇게 위장을 하고…… 연구 시설로 가서 뭘 했을까요?”
“으음.”
솔직히 여기서는 대통령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조사했을지는 몰라서 그랬다.
여기까지는 박태식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다만 하나가 틀렸다.
놀라서 제안을 꺼내면 뭐든 받아들여야 할 텐데.
‘역시 죽여야겠군.’
대통령은 훨씬 쉬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