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박태식 (4)
세종에서 합정까지는 정말 먼 길이었다.
오송까지 가서, 거기서 용산까지 KTX를 타고 다시 또 갈아타고.
“차……. 아, 차는 좀 그렇지.”
어찌나 고생이었는지 김효상이 잠시 왜 차를 안 가지고 왔냐고 불만을 터뜨리려고 했더랬다.
하지만 오예리 그리고 정유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이유를 알아 버렸다.
‘사람이 죽었지.’
백주 대낮에 한둘도 아니고 여럿이 죽어 버렸다.
그리고 수사도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뺑소니로 인한 사망으로 종결.
오예리뿐만 아니라 반장부터가 반발했으나 아무 소용 없었던 모양이었다.
관련 없는 경찰이 보기에도 방법이 없기는 했다.
아무 증거도 없었으니.
그저 원한 관계에 인한 사건일 거란 추정하에 일부 친한 형사들이 나서긴 했으나, 애초에 전제가 틀리지 않았나.
그들은 원한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죽었다.
“다 와 가네요. 여긴 진짜 오랜만이네.”
김효상이 말실수했다는 생각으로 입을 앙다물자 꽤 오래도록 침묵이 이어졌다.
사실 셋이 공통된 주제로 떠들 만한 일이 있지도 않았다.
아니, 있기는 한데 어디서건 간에 자유롭게 떠들 만한 일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때문에 유현이 역 이름을 가리키며 일어서기 전까지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 그렇네요. 합정.”
오예리도 유현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김효상도 엉거주춤 둘을 따랐다.
“근데 여기 식당이 정확히 어디죠?”
셋은 합정역에 드나드는 수많은 무리 중의 하나로 스며들었다.
유현은 캐주얼 정장, 오예리는 청바지에 면티, 김효상은 거지꼴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젊음의 거리 홍대에서 죽 이어진 상권이면서 동시에 오피스 상권이기도 한 합정은 본래부터가 섞인 곳이어서 그랬다.
덕분에 셋은 지하철에서보다는 좀 더 기를 펴고 걸었다.
“아, 몇 번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아요. 따라오시죠.”
“맛이 좋은가 보네요.”
“그보다는…… 다 방이라, 엄청 프라이빗 합니다. 가 보시면 알아요.”
“그럼 예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유현의 물음에 김효상이 웃었다.
확실히 이 사람은 자기 위상에 비해 정치가들과의 접점이 적은 사람이었다.
의도적으로 선을 그었을뿐더러, 몇몇 과감한 언행으로 인해 배척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폴리페서(Politics professor,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직 교수를 이르는 말)는 확실히 아니지…….’
김효상은 그래서 유현의 말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했다.
적어도 정치적인 계산은 없을 것 아닌가.
오직 의학적인 판단만 하는 사람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욕심이 덜한 사람은 그나마 나은 법이었다.
“의원님이 오라고 했으면 자리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에요.”
“아……. 치밀하군요.”
“그 정도 아니면 의원 못하죠. 아마 별 얘기 없었어도 비서진에서 알아서 했을 거고요. 통화를 괜히 듣고 있는 게 아니라…….”
“그렇군.”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효상의 뒤를 따랐다.
가만가만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기는 했으나, 사실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김효상이 직접 나서 준 덕에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더랬다.
하지만 결국, 박태식이 중요한 거 아닌가.
‘욕심이 많다고 했지. 아…… 이걸로 정권 공격을 하겠다는 건가. 그건 좀……. 지금 증거는 하나도 없는데.’
증거가 없었다.
심증이 있을 뿐, 물적 증거는 단 하나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유현이 부주의해서는 아니었다.
이쪽엔 심지어 형사도 있지 않나.
당연히 증거 수집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국가 그 자체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어딜 가도 그 흔한 블랙박스 하나 건질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남은 건 사람들인데, 그중에서 연락이 닿는 인간은 없었다.
죄다 죽거나 포섭되었다.
‘박원상……. 너 인마…….’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그랬다.
“여깁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식당이었다.
그저 프라이빗 하기만 한 식당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좀 있어 보였다.
겉모습부터가 으리으리한 것이 보통 사람은 감히 들어가 볼 엄두조차 못 낼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비싸 보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예약되어 있습니다. 김효상입니다.”
“아! 이쪽으로 오십쇼.”
종업원이 김효상의 추레한 복장을 보고 설렁설렁 다가오다가, 이름을 듣고는 바로 준비된 방으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박태식 쪽에서 예약을 한 것이다 보니 후줄근한 차림도 권력의 일부라고 여기게 된 모양이었다.
지나치게 굽신거려서 오히려 좀 불편해질 지경이었다.
“식사 바로 올릴까요?”
“네. 바로. 어차피 의원님은 왔다 갔다 할 거라.”
“네,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식당 구조는 꽤 복잡했다.
구불구불한 길 중간중간에 방이 하나씩 있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안에 누가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같은 시각 같은 식당에 있었더라고 해도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절대 모를 것 같았다.
유현은 일부러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눈은 김효상을 향한 채였다.
“확실히 왜 여기서 모임 갖는지 알겠네요.”
“네. 박태식 의원쯤 되면…… 보자는 사람이 진짜 많아지거든요. 그중에서는 도저히 물릴 수 없는 사람들도 생기는데 여기서 보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람들을 짬 내서 볼 수 있죠. 아마 상대도 알 겁니다. 그래도 일종의 예의랄까요? 여기서는 박태식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은 불가하니까요.”
“꽤 가까이 지내셨나 봅니다?”
“네. 그랬죠. 제가 원했다기보다는…… 서로 합이 잘 맞았습니다. 뭐가 되었건 최근 몇 년간 팬데믹 사태가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죠.”
국장 자리에 오를 때까지 박태식의 비호가 있었을 터였다.
그 대가로 박태식도 김효상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테고.
그때야 신경 쓰지 않아서 기억에 잘 남아 있지도 않았지만, 지금 와서 더듬어 봐도 둘이 곧잘 공식 석상에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똑똑
식사를 먼저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곤 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비서였다.
“의원님 곧 오십니다.”
“아, 네.”
김효상은 그 알림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평소에도 식탐이 있는 편이 아닌 데다가, 사실 속이 불편해 별로 먹고 있지도 않던 참이라 나머지 둘도 미련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중요한 대화가 오갈 참이지 않나.
긴장 안 하기도 어려웠고, 긴장하는 게 맞기도 했다.
“오랜만이네. 정 교수님, 이쪽은…… 아, 오 형사. 오랜만이에요.”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박태식은 정치인 특유의 미소부터 지어 보였다.
심지어 잠깐 스쳐 지나간 오예리까지 기억해 내는 발군의 기억력도 과시했다.
확실히 중진 의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유현과 오예리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자네는 나가 봐. 문 닫고.”
“네.”
박태식은 문이 완전히 닫힌 다음에야 표정을 달리 했다.
“그래, 왜 보자고 했지?”
웃음이 지워진 자리에는 날카로운 눈매가 자리했다.
유현과 오예리는 본인들이 그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불쑥 긴장감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장본인인 김효상은 그런 눈빛이 익숙한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일이 뭐냐고.”
“그 바이러스 말입니다. ARS-24. 박기태를 김선태 중령이 탈출시켰다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알려 준 정보니까.”
“그 이유도 짐작하셨겠지요?”
“대강은.”
21세기 들어 선진국치고 핵 개발을 한 번이라도 생각지 않은 나라가 있을까?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인 핵은 그걸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라 취급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기존 보유국들이 워낙에 지랄을 하고 있어서, 그중에서도 미국이 지랄을 하고 있어서 사실상 대한민국이 핵을 보유하는 건 불가했다.
그건 몰래 개발할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니까.
하지만 바이러스는 어떤가.
이건 품이 훨씬 적게 들었다.
그 위력에 대한 의문이 문제였는데, 이번 팬데믹 사태는 일종의 해답이었다.
“그거……. 이제 거의 완성 단계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뭐? 증거는?”
무기화된 바이러스.
이건 증거도 뭣도 남지 않는데, 사회를 완전히 박살 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간 시설은 단 하나도 훼손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무기가 아닐까?
“정황상 증거일 뿐입니다만……. 여기 정유현 교수님이 증언해 주셨습니다. 정 교수님.”
“아, 네. 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확실해야 합니다. 저 바쁜 사람이에요.”
박태식도 자기가 대통령일 때 그런 무기가 손에 쥐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 바 있었다.
가장 강력한 교섭 무기가 될 터였다.
어차피 물밑에서 오가는 대화를 언론에 뿌리는 미친놈들은 없을 테니, 어지간한 국가 관계에서 이점을 끌어올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다 자기 공이 될 터였다.
“박원상 교수라고……. 호르몬 박사가 있는데 최근에 그 팀에 합류했습니다. 원래는 제게 매일 정보를 주기로 했는데, 아예 나오질 않고 있죠.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이겁니다.”
“영상이네요? 뭐야. 이거 병원 아닌가.”
“네. 박기태에게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검체를 탈취하려고 했습니다. 실패했죠.”
“전에도 잔뜩 가져가 놓고 또……?”
“아마 그때까지는 연구 진척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날 이후 뭔가 달라졌어요. 오 형사님?”
유현의 말에 이번에는 오예리가 입을 열었다.
지극히 대학생 같은 외모를 지닌 그녀는, 그 외모를 이용해 삼청동을 정말이지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고 있었다.
물론 용모파기가 알려져 있기야 했지만, 그거야 다 극복법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는 아예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요. 군인들 진료도 없어요.”
“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일인데……. 음. 이건 근데 진짜 정황상 증거뿐인데…….”
“그렇죠. 하지만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저희도 여기까지 알아냈는데, 의원님이면 더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음.”
박태식은 사실 좀 실망했던 참이었다.
물적 증거가 있기를 바랐기에 그랬다.
하지만 이 셋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래……. 이 사람들도 이만큼 알아냈어.’
그는 유현의 말을 되새기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럼……. 나라면 더 알아볼 수는 있겠지.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미친놈들이 병원을 왔네.’
또 병원 습격 영상이 좋았다.
연구에 대한 증거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영상이지 않나.
게다가 병원이었다.
이걸 제대로 키우면 스캔들이 될 터였다.
팬데믹 이후로 병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거의 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기반 시설 중에서 제일 중요한 곳이라 여기고 있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중환자가 있는 병실을 국가 기관이 사보타주했다는 건, 이건 미친 짓이었다.
“일단 더 알아보도록 하지. 그럼 소통은 어떻게…… 아니, 내가 알아서 연락하지. 기다려 봐요. 중간에 알게 되는 거 있으면 모아 두고. 실시간으로 할 생각은 마요. 어설프게 하다가 다 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