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45화 (45/323)

45화 진화 (5)

안 들어왔다.

박원상은 며칠째 집을 비워 두고 있었다.

‘사고가 난 걸까? 아냐, 아냐……. 전문의 시험……. 너무 그럴싸한 핑계잖아.’

수능처럼 전문의 시험도 끌려 들어가면 며칠 정도 합숙을 해야만 했다.

물론 보통의 대학교수와는 달리, 의대 교수는 가르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의사로서의 업무가 오히려 주가 되다 보니 자리를 비우면 너무 티가 나기는 했다.

해서 출장이라느니 하는 핑계를 대는 편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와 같은 내부인들은 왜 갔는지 다 알았다.

왜냐면 교수들이 보통 자기가 평소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책자나 자료를 들고 사라지기에 그랬다.

하여간 내부에서는 워낙에 유명한 일이지만 밖으로는 거의 새어 나갈 일이 없는, 업계만의 비밀이었다.

‘나라에서 사고 치고 만들었다기엔……. 너무 유능해. 그럼 이 새끼가 자진해서 안 돌아오고 있다는 건데……. 연구가…… 진행 중인가? 들어갔다고 하는 시점이 딱……. 순규 습격이 있던 날부터인데.’

그러니 다른 사람이 아닌 박원상 본인 입에서 나온 핑계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애처가를 넘어 공처가로 유명한 녀석이다 보니 통화도 직접 한 모양이지 않나.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이 집을 비우고 연구를 하고 있을 정도면……. 눈에 띄게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얘긴데?’

그렇게 아내를 두려워하는 놈이 집에 안 들어가고 있다.

그것도 거짓말로 둘러대고.

이 모든 파장을 뒤로할 만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갑자기 환자가 생겼을 리는 만무하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망할 새끼.”

유현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순규가 쓰러진 날, 유현은 오예리 형사와 함께 이순규를 지켜 내었더랬다.

그 말은 이렇다 할 검체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연구는 진행되고 있다.

집에도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새끼……. 순규가 온 걸 알았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거기서 뭔가 힌트를 얻은 거야.’

검체는 전달되지 않겠지만, 검체에 대한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 정보는 별로 쓰잘데기없었을 터였다.

유현이 일부러 평범한 패혈증으로 인한 CPR 상황인 것처럼 서술해 놓아서 그랬다.

심지어 공식적으로는 아직 ARS-24에 대한 검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해 보고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뭔가 알아차렸다는 건, 이름만으로 무언가 알아보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던 박원상뿐이었다.

‘다쳐서 감염이 되었다는 걸 유추하는 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냐. 하지만 순규는 다른 2차 감염자들과는 달리 박기태와 동일한……. 아.’

녀석은 대체 무엇을 유추했을까.

무엇이 이순규를 남들과는 다른 경과를 밟게 했다고 생각했을까.

정유현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어떤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순규는…… 물린 게 아니라, 아주 경미한 상처를 통해 감염이 되었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그 말은 극미량의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었다는 얘긴데…….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위험했던 상황이지.’

이미 여러 동물 실험이 있었더랬다.

특히 쥐가 그 대상이 되었는데, 결론은 이러했다.

환경이 여유로울 때는 모든 쥐가 번식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환경이 되면 번식하는 것보다는 오로지 생존하는 데 집중했다.

유전자의 명령이 아무리 번식하는 데 있다고 해도, 결국, 객체가 집중하게 되는 건 그 객체의 생존이라는 얘기였다.

‘2차 감염자들에게 일어났던 변이가……. 그래서 순규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거야. 그거 말고는 의미 있는 추론이 없어.’

몇 가지 다른 가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지금 저 연구실이 마구 돌아가고 있다면, 필시 가닥을 잡아 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나.

그렇다면 이 가설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터였다.

그 말은 박기태와 같은 케이스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떤 조작에 의해서.

‘미친놈이……. 정보 빼내라고 했더니 가서 도움을 줘? 이거……. 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나?’

바이러스를 인간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란 말인가.

마음대로 변이하는 생물체, 그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물체를 정말로 무기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단 말인가.

벌써 여러 차례 시도되었고 실패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닐 터였다.

인류는 이미 여러 바이오 무기를 만들었고 모두 통제에 실패했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무기만 만들어졌다는 얘기였다.

결국,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건 모조리 테러 단체들뿐이었다.

‘증거가 남지 않는……. 무기가 아니라 범죄지, 이건.’

막아야 했다.

저 연구 자체를.

하지만 막을 수 있나?

내부에 심어 놓았다고 생각했던 프락치는 이미 변절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협조자가 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정유현은 분명 뛰어난 교수지만, 그게 다였다.

‘기사 뿌려 달라고 하면 다 막히겠지. 역으로 추적당해서 죽을 거야 아마.’

자신에게 정의로운 편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런 편이라고 답하긴 할 터였다.

하지만 자기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 그때. 그 의원.’

뭔가 다른 수를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보니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경찰이 사망했던 현장 아니, 병원에 나타났던 이.

박태식 의원.

김효상 국장과 함께 왔더랬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유현조차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의 거물이었다.

‘중진 중의 중진이지. 아마 차기 경선 후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친 대통령계로 분류되지는 않고 있으니, 경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 경선에는 나갈 수 있을 만큼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그때 보인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일단 이 일과는 무관해 보였다.

그가 의지만 가져 준다면 유현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연락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김효상……. 이 사람 연락이 되려나.’

유현은 이제 박원상의 아파트 단지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원래 같으면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져야 정상일 텐데.

요 몇 주간은 통 잠이 오질 않았다.

매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몸의 피로함을 정신의 부단함이 이겨 내고 있었다.

‘지금 전화하면 안 받겠지.’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친한 사람에게라도 전화하는 건 무례이지 않겠나.

김효상이랑은 저번에 잠시 얘기 나눈 것이 다였다.

심지어 그날 뭔가 있었는지 지금은 칩거 중.

유현은 몇 번인가 휴대폰을 뒤적거리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아, 잠깐. 경찰은…… 알아낼 방도가 있지 않나?’

모르긴 모르지만.

영화 보면 형사들이 꼭 어디 전화해서 누구 번호 따 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럼 상대는 아 그거 불법이네 어쩌네 하고 사족을 달면서도 반드시 번호를 알아내서 알려 주곤 했다.

그렇다고 뭔 용건인지 문자로 말을 하는 건 무리였다.

선불폰을 쓰건 뭘 어쩌고 있건 통화하는 것도 무리였다.

흔적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도청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유현의 결론이었다.

물론 이순규 탈취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는 국가 기관이라는 게 생각보다 무능한 거 아닌가 싶어지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유현은 신중하게 굴고 있었다.

오랜 기간 의사로 살아와서 그런가, 과함이 부족함보다는 낫다는 신념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어 그랬다.

기껏해야 아침이나 돼야 답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바로 답이 왔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유현과는 달리 오예리 이 사람은 가족같이 지내던 이들을 잃었으니까.

그 이후로 수없이 불면의 밤에 시달려 오지 않았을까.

물론 유현은 내색하지 않았다.

해서 실로 담백한 약속을 잡았다.

그러고 나서도 몇 분인지, 또는 몇십 분인지 모를 시간 동안 몸을 뒤척이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유현이 잠이 든 시간에도 지구 병원에서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실마리가 점점 더 잡혀 가고 있었다.

“확실히……. 이 환자들에게서는 더 이상의 변이가 관찰되지 않아.”

김조은 박사는 방금 죄수들에게서 채취한 혈액, 그러니까 그 혈액에 있던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며 말했다.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변이였다.

누군가의 몸에 들어가면, 그 숙주가 생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정하기 위해 슥슥 변했다.

하지만 이 죄수들에게서는 그러한 변이를 보이는 대신 묵묵히 번식만 하고 있었다.

동일한 개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환자들은 1호나 2호하고는 다릅니다. 이미 박기태의 바이러스는 변이했어요.”

“그렇죠. 아마 박기태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 심장으로 모여들고 있지도 않고요. 보다 평화적으로 숙주를 조정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 겁니다, 벌써.”

“그럼……. 이제 방법이 없는 거 아닐까요?”

박원상은 벌게진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언가 보여서 지금까지 달렸는데,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서 그랬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박기태에 감염된 환자들에게 들어간 바이러스는 더 이상 이순규에게 들어갔던 바이러스와는 같지 않았다.

저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이제 없었다.

아마 이순규에게 들어간 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터였다.

‘어쩌면 벌써……. 아, 이게 이렇게 그냥 사멸하다니.’

바이러스의 자연 사멸.

드문 일이었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너무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도리어 그 치명률 때문에 도태되기 마련 아니겠나.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야……. 이 바이러스는 무조건 어떤 실험의 결과로…….’

박원상이 허탈감에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도 김조은의 표정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임상 의사인 박원상이 볼 수 있는 것과 유전자 박사인 그가 볼 수 있는 것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기에 그랬다.

그 또한 같은 결론을 내기는 했더랬다.

‘이제 그 바이러스는 없어.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반드시 실험의 결과로 만들어진 거야.’

다른 점은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생각하는 게 차이였다.

“다시 만들면 됩니다. 어찌 되었건 뿌리는 그 바이러스에서 나온 거니까요. 이미 어떤 유전자를 메틸화하고, 어떤 유전자의 메틸화를 풀어야 할는지는 알 거 같습니다.”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곧 나올 겁니다. 이제 곧…….”

[그러죠. 몇 시, 어디서요?]

[그래요.]

[내일 볼 수 있을까요?]

[점심에 보죠. 병원 앞 먹자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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