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진화 (3)
“야, 왜…….”
망설이고 있는 정유현을 보면서 이순규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원래 누워 있다가 서 있는 상대를 보면 같은 높이에 있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그랬다.
“어?”
그러나 그게 되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에 열이 펄펄 나서 실려 왔던, 심지어 그날 심정지가 세 번이나 왔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멀쩡했다.
아니, 힘이 넘쳤다.
평생에 걸쳐 이랬던 적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 왜 나 묶어 놨어.”
그럼에도 일어날 수 없는 건, 팔다리를 묶어 놓은 억제대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억제대도 아니었고, 심지어 여러 겹으로 묶어 두었다.
꼭 그것이 아니라 해도 이순규도 의사다 보니 이거 풀라고 바로 버둥거리지는 않았다.
억제대를 쓰는 건 뭔가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나 엄청 움직였냐? 이제 풀어 줘. 섬망 같은 거 없어, 이제.”
해서 난리를 치는 대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정유현은 풀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단 표정을 지어 가면서였다.
“그럴 수가 없어.”
“뭐? 야, 장난하지 말고. 나 지금……. 그날 컨디션 생각하면 이상하긴 한데, 괜찮은 거 같아. 바이털도 보니까 괜찮은데? 멀쩡하잖아. 단순 감기였던 거 아냐?
감기라.
정신과라 그런가?
별 상관은 없겠지만…….
정신 나간 소리를 참 잘한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기껏해야 38살밖에 안 된 사람이, 그것도 지병도 없는 사람이 단순 감기로 패혈증이 올 리가 있겠나.
물론 어디 뒤져 보면 케이스 리포트 되는 게 있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희소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잘 없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훨씬 냉혹한 법이었다.
“감기가 아냐. 여기 어딘 거 같냐. 잘 봐 봐.”
유현은 멀리서 재원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문을 걸어 잠갔다.
‘여기……. 이 안에는 도청 장치가 없어.’
센터 내는 다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3호실에는 없었다.
유현이 벌써 몇 번이나 확인한 바 있지 않던가.
사실 처음부터 그럴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이 안까지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이 들어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무리 직원 복장을 입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센터와 격리 병실은 또 다른 차원의 벽이 있다고 해도 좋았다.
“여기……. 어? 여기……. 여기 감염 센터잖아. 뭐야, 나 ARS-24 나왔어? 너 근데 왜 그거만 입고 있냐.”
최근 대학 병원에 있는 사람치고 ARS-24의 영향을 하나도 안 받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정신과라 해도 ARS-24 센터는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변종 환자들은 감염성이 없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안에 있어야 하기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아서 그랬다.
이제 감염 환자를 정신과에서 협진을 보는 건 거의 기본이 되고 있었다.
때문에 이순규도 이 센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너 왜 레벨 D가 아냐. 나 변종 아니고 그냥 걸린 건가? 이상하네? 그거 요새 변종보다 더 희귀하지 않아? 거의 박멸이라며 원종은.”
그래서 이순규는 지금 유현이 입고 있는 옷차림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마스크는 끼고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보호 장구를 전혀 차고 있지 않아서 그랬다.
저러다 변종에 감염되면 어쩌려고 그럴까.
한국대학교 병원 감염내과 교수 정유현, ARS-24 변종에 감염되다.
뉴스 헤드라인으로 딱이지 않나.
개인으로도 불행이지만 병원 전체로 봐도 그랬다.
뭐 변종이라고 해 봐야 원종보다 더 약한 개체로 격하된 지 오래라 행정적으로 성가실 뿐, 문제가 될 리는 거의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유현이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말을 해 주진 않았다.
“변종 맞아.”
“변종이야? 아……. 씨 어디서……. 근데 너 그러고 괜찮아?”
“내 걱정할 때가 아냐. 너…….”
유현은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동시에 이순규를 관찰했다.
특히 표정과 손을 주목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박기태 환자에서 가장 뚜렷했던 변화가 바로 이 두 가지였던 것 같아서였다.
또 수락 마을에서 봤던 2차 감염자들 또한 표정과 손의 움직임이 달랐다.
‘아직은…… 표정이 풍부해.’
무뚝뚝한 얼굴.
그러다가 갑자기 화난 얼굴로 돌변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손.
체계화되어 있질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이리저리 움직였더랬다.
‘손도 그렇고……. 하긴 박기태도 그랬지. 바로 이상을 보이진 않았어.’
아직은 괜찮았다.
물론 그게 안심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했다.
때문에 유현은 억제대를 그대로 둔 채, 말을 이었다.
“너 아마 박기태 환자한테 감염된 거 같아.”
“박기태?”
“그때 기억나? 내가 죽었다 살아났다고 했던. 그러고 나서 행태 변화를 보인다고 했잖아. 네가 섬망인지 뭔지 보러 왔었고.”
“아……. 아? 그때 내가? 그거 벌써…….”
“그래, 오래됐지. 근데 너 경과가 그 사람하고 같아.”
“경과가 같다니. 뭐? 경과가……?”
경과?
이순규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더니 얼굴이 새하얘진 채로 자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가슴 부근부터.
“이거…….”
심폐 소생술은 아주 거친 술기이지 않나.
게다가 이순규는 친구인 유현이 직접 흉부 압박을 해 준 바 있었다.
체격도 좋고, 힘도 좋은 유현 덕택에 이순규의 가슴에는 손바닥 자국이 여태껏 남아 있었다.
심지어 피멍도 들어 있었다.
“이거…….”
의사가 아니었다면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을 터였다.
이런 상처를 본 적이 없을 테니.
하지만 이순규는 응급실에서 인턴 돌던 시절 몇 번이나 심폐 소생술에 동원되었던 바 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어떤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는 법이었다.
내 손끝에서 사람이 죽거나 살아났던 기억이 그랬다.
“이거……!”
이순규는 이제 절규하고 있었다.
박기태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 똑똑히 알고 있어서 그랬다.
호르몬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 거대한 몸집 하며 흉포한 성품 하며…….
게다가 죽었다 살았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미안하지만…….’
유현은 그런 이순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제는 병원 팍스 시스템에서 지워진, 이순규의 BRAIN CT와 MRI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뇌사 소견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이거……. 며칠 전의 너야.”
“아…… 안 돼. 내가…….”
“너 변종에 감염되었어.”
“말도 안 돼…….”
“일단 정신 차려. 죽은 건 아니잖아. 다시 살았다고, 너.”
“지랄 마. 그때 네가 그랬잖아. 이거 변종 중에서도 끔찍한 변종이라고.”
“그건 맞지.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치료하지 못했던 변종은 없어.”
“이것도 될 거라고? 그걸 어떻게…….”
이순규는 더없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유현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보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몰아붙였는데……. 아직까지 공격 성향은 없어. 하긴 얘가 이성의 끈을 잘 놓는 편이 아니지.’
술을 진탕 먹어도, 예의를 잃는 법은 없었던 놈 아닌가.
애초에 술이 세서가 아니라 그저 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유독 강해서였다.
취하긴 취하는데 그렇게 취한 와중에도 애써 정신을 차린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잘 들어. 네가 잘 협조해 줘야 해.”
“뭔 소리야. 내가 뭘…….”
“일단 너, 나 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 무슨…… 아. 아…….”
취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환자 파악이라고 해야 할까.
둘 사이 어디엔가 있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 말을 들은 이순규는 멍한 눈이 되었다.
확실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물고 싶었다.
이상한 행동이란 생각에 참고 있을 뿐.
“들어……. 시발……. 머리가 완전 바이러스 판이 된 거 아냐?”
“근데 안 물고 있잖아.”
“묶여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 아냐. 넌 시도도 안 했어. 박기태는 안 그랬어. 날 물려고 그랬다고. 너도 물려고 그랬잖아.”
“하……. 그……. 하…….”
박기태가 물려고 했던 그때.
주먹으로 그 인간의 입을 쳤던 그때.
그때 감염이 일어났다니.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재앙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눈앞이 아득해지는 심정이었다.
“행동 차이가 있다는 건 사람마다 경과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지. 일단 혈액 좀 뽑자.”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보면서 지극히 객관적인 어조로 얘기를 이어 나갔다.
어지간히 인간미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의지는 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정유현은 그가 아는 최고의 감염내과 의사이니까.
게다가 ARS-24에 대해서라면 세계 최고라 할 수 있을 테니까.
“혈액은 왜.”
“우식이 알지? 질본에 있는.”
“아……. 거기에? 거기서 봐줄까?”
“봐줄 거야. 봐줘야지.”
오프 더 레코드로 들어가야 하기는 할 테지만.
하여간 연구는 진행해야 할 터였다.
그래야 친구를 살릴 수 있을 테니.
‘그리고…… 혹시 이게 무기화되었을 때…….’
바이러스를 무기로 쓴다.
이 미친 발상을 대체 누가 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 발상 덕에 대한민국이 비대칭 전력을 갖추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옳은 일이 아니었다.
아니,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바이러스는…… 생물이야. 생물을 어떻게 통제해.’
무기라는 건 이게 적만 공격할 거란 확신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어디 그렇게 행동하겠나?
특히 ARS-24의 특성이 더더욱 문제가 될 터였다.
이 녀석은 변이를 너무 빨리 일으켰다.
연 단위가 아니라 분기 단위로 일으키고 있지 않나.
‘이거 잘못 쓰면…… 망한다. 세상이 망해.’
유현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 중요해. 이거……. 반드시 치료법이 있어야 해.”
치료법이 있을 거라 믿어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연구를 하다 보면 예방법은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이순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의사로서 둘 중 하나는 찾아야만 했다.
“알았어. 근데 내가 뭘 더 도울 수 있지?”
이순규는 잠시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무언가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평상시의 온화한 표정 또한 뒤섞여 있었다.
이럴 때의 이순규는 자기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녀석이라 정신과를 택하지 않았나.
“우선 너……. 성격을 봐야 해. 최대한 지금 상태로 있어 봐. 먹는 양도 체크해야 하고. 매일 피 검사해서 호르몬 수치도 볼 거야. 무엇보다…… 제일 힘들건.”
“묶여 있어야 한다……. 이거지?”
“어. 미안하다.”
“아냐. 나도……. 나도 물려서 당한 거잖아. 내가 또 누굴 문다면, 그건 안 될 일이지. 그건 안 될 일이야…….”
그래서 그런가, 아주 흔쾌히 협조에 나서 주었다.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그때 내가 협진을…….’
어떻게 보면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자기 탓이란 생각도 들어서 그랬다.
하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게다가 지금도 지구 병원에서는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을 터였다.
다행히 이순규는 지켰지만.
그놈들이라면 필시 또 다른 방법을 찾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쉬고 있을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