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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42화 (42/323)

42화 진화 (2)

“교수님……. 이게…….”

한국대학교 병원 레지던트 양재원은 당황한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니, 죽었던 환자가 살아났으니까.

“쉿. 아직은 함구해. 저번에 얘기 못 들었어? 여기 침입자 있었다고.”

“아니……. 저도 듣기는 했죠. 그게 이…… 이순규 교수님 때문이었다고요?”

“어, 그래. 박기태 환자랑 정확히 같아.”

“그게 뭔 소리이신지.”

유현과는 달리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 더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유현이 의도적으로 별말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고민 중이었다.

‘이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좀 위험해지는 일인데.’

저번 습격이 없었다면 별 고민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이제 병원에서는 시선을 거두었나 싶었을 테니까.

하지만 습격은 있었고, 여전히 저쪽에서 병원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고 양재원에게까지 숨길 수 있을까?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어디 가서 떠들게 되면 그게 더 큰 일이었다.

‘그래……. 쓸데없는 건 숨기고…….’

유현은 선을 정하고는 입을 열었다.

“박기태 환자 여기서 어떻게 나갔냐?”

“그게 오리무중이죠. 딱 그때만 CCTV가 없잖아요. 혼자 막 나갈 수 있는 센터가 아닌데.”

“그래, 그렇지. 습격이랑 연관 지어 봐.”

“아?”

“누군가 데리고 나간 거야. 그 환자 생각해 봐라.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덩치도 커지고. 세상에 이런 바이러스 감염이 있었다고 생각하냐?”

“아…….”

양재원은 잠시 고민했다.

혹시 자기가 무식해서 있었는데 모르는 것일 수도 있어서였다.

하지만 유현의 얼굴을 잘 살펴보니 무슨 함정 질문 같은 건 아닌 듯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여유가 좀 없으신 거 같은데.’

정유현.

이 사람은 좀 특이한 인간이지 않나.

뭐든 잘하고, 특히 진료는 더 잘하는.

그렇다 보니 언제나 여유 있는 게 특징이었다.

한 수 앞이 아니라, 두 수 앞을 보는 능력 또한 한몫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던 재원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인간이 되는 게 교수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없었던 거 같아요.”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적어도 양재원이 보기엔 그랬다.

해서 양재원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

“그래. 그렇다 보니까 누군가 관심이 좀 있는 모양이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불법 별로 신경 안 쓰는 놈들이지. 병원에 쳐들어오는 놈들이 정상은 아닐 거 아냐.”

“아……. 그렇죠.”

듣다 보니 대화를 나누는 공간도 좀 이상했다.

평소와는 달리 환자용으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보고 있지 않나.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한번 이상하단 생각이 드니까 모든 것이 수상쩍게만 보였다.

“근데 순규도 똑같은 경과를 밟고 있어. 너도 알지? 내가 전에 최우식 과장이랑 같이 2차 감염자 보러 갔던 거. 그 사람들도 비슷하기는 했는데……. 좀 달랐거든. 1차 감염원에서 2차로 넘어가면서 바이러스가 변이하는 거 같더라고.”

“네? 그런 바이러스도 있어요?”

“내가 이상한 바이러스라고 했잖아. 그럼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이 정상이냐?”

“아, 하긴. 말이 안 되긴 하죠……. 세상에……. 죽었다 살아나다니…….”

양재원은 저도 모르게 센터 쪽을 힐끔거렸다.

보이진 않았지만, 아까 보았던 이순규의 실루엣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영상으로 확인했던 뇌사 소견이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물론 증상도 사라졌다.

없어졌던 자발 호흡이 회복되었다.

아직 완전히 깨우진 않아서 대화는 해 보지 않았지만.

하여간 이순규는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났다.

무슨 예수님도 아니고…….

“아무튼, 2차 감염자들은 저런 경과를 밟지 않았단 말야. 근데 순규는 그렇게 됐어. 특이한 검체…… 아니, 환자란 거지. 그 점에서 미친놈들이 환장하는 거야.”

“아……. 근데…… 죽었다 살아났다는 게 대체 어디서 샜을까요? 뭘 알아서 온 거지?”

“아마 심정지가 왔다는 것 정도만 알 거야. 그 변종이 사람을 이렇게 급하게 죽이진 않는다는 걸 확인했을 거야.”

“어떻게요?”

유현은 순진한 얼굴의 재원을 바라보았다.

‘아마 실험했겠지.’

경찰도 죽인 놈들 아닌가.

게다가 서울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로 무마되었다.

그런 힘과 의지를 가진 놈들이 무엇인들 못 할까.

“어떻게든. 그거야 알 수 없지. 하여간 심정지가 온 것만으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확신했던 것만은 확실해.”

“음……. 아, 이거 복잡한데.”

“네가 알아야 할 건 간단해. 그냥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근데 뇌사 소견 보였던 영상이 있잖아요?”

“그건 내가 내렸어. 영상 오류 있다고 했더니 바로 내리더라. 오늘 다시 찍은 거……. 그것만 있어.”

“아.”

재원은 멍해졌다.

영상을 지워?

교수님이?

여유로운 것과는 별개로 에프엠 그 자체 아니었던가?

‘이거……. 이건 진짜 보통 일이 아니구나.’

이 양반이 여유 없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태연자약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너랑 나만 입만 다물면 되는 거야. 알아듣겠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쩐지 입을 열면 슥삭 해 버릴 것 같기도 했다.

설마하니 의사가, 그것도 교수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막상 슥삭 하려고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저 평범한 체격인 양재원에 비해 정유현 이 양반은 숫제 괴물이지 않던가.

“아, 알겠어요. 입 다물고 있을게요.”

“아마 너한테까지 뭐가 가진 않을 거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혼자 다니지 말고.”

“그냥 병원 안에만 있을까요?”

“오프 날에도 그러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어차피 저 뭐 만나는 사람도 없고. 안에서 웹툰 보는 게 낙인데요.”

“어……. 그래, 그러면. 그래라.”

정유현은 안쓰럽다는 눈으로 재원을 보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잘된 일이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조금 불행해도 안전한 게 나을 터였다.

“자, 그럼 환자 깨우러 가 보자.”

“깨우러요? 아, 음.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아니, 그. 두 분 친구시잖아요. 박기태처럼…… 되면.”

태연해 보이는 유현과는 달리 오히려 재원이 당황하고 있었다.

뭔가 좀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침착한 모습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친구지 않나.

게다가 꽤 친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원래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고, 의대 동기는 어지간하면 끈끈하기 마련인데 그 안에서도 같이 다니던 무리라 하면 정말 친하다고 봐야 했다.

“어찌 되었건……. 죽은 건 아니잖아.”

“네?”

“뭐, 알 수 없지만. 그러길 바라야지.”

유현은 박기태를 떠올렸다.

확실히 죽었다 살아난 그는 좀 이상하긴 했더랬다.

이성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수락 마을.

그곳에 있던 전원을 감염시킨 게 박기태였다.

‘순규가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막기는 해야 할 텐데.

일반적인 방법이 통할 것 같지는 않고.

일단은 평소 온화했던 성격에 걸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

속으론 딴생각을 하면서도 유현은 재원을 대동한 채 일단 센터로 향했다.

3호실 주변은 완전히 비워져 있었다.

유현이 딱히 할 거 없으니 바이탈만 보라고 해 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담당 교수의 말을 허투루 들을 간호사가 있겠나.

특히 그게 유현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적어도 ARS-24에 한하면, 정유현은 세계적인 대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흐으음…….”

그러나 그런 정유현조차도 막상 누워 있는 이순규를 대하게 되자 망설임이 솟구쳤다.

ARS-24의 변종 중에서도 최악의 변종에 감염된 친구.

세 번의 심정지 끝에 결국, 뇌사 소견을 보였던 친구.

그리고…….

‘되살아났지.’

이 모든 일을 겪고 나서도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과연 예전의 그 이순규일 수 있을까.

박기태의 이전 모습을 알고 있었다면 뭐라도 좀 추정해 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죽은 건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여간 생물학적으로는 죽은 게 아니지 않나.

그렇다는 건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았었는지는 우선 무시하기로 했다.

“약 끊어.”

“네.”

“어차피 최소로 들어가고 있어서……. 아마 10분 이내에 반응 있을 거야.”

“네, 교수님.”

평소에도 개기는 편이 아니었던 재원은, 평소보다도 더 성심성의껏 말을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런 척하고 있기는 한데.

어떻게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마냥 태연할 수 있겠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덜컹

약이 끊기자, 의식이 돌아온 이순규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목에 뭐가 들어가 있으면 누구라도 불편할 테니까.

게다가 이순규는 아예 기억도 없을 터였다.

“순규야! 여기 병원이야! 삽관한 거 빼 줄게!”

하지만 유현은 초조해졌다.

어쩐지 폭력적으로 변한 것 같아서 그랬다.

“어……. 네, 저 양재원입니다! 네네. 지금처럼. 네 깨물지 마시고…….”

다행히 말을 하니 알아듣는 눈치였다.

잠깐 목 안에 들어가 있던 관을 깨물긴 했지만 하여간 무리 없이 빼낼 수 있었다.

“산소 포화도는?”

“정상입니다.”

“혹시 모르니까 ABGA(arterial blood gas analysis, 동맥혈 가스 검사)는 하자.”

“네.”

사실 중환자실 경험이 많은 유현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호흡이 괜찮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만전을 기해야 했다.

의학은 늘 과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나으니까.

게다가 잠시 재원을 나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원은 금세 손목에서 동맥혈을 채취해 밖으로 나섰다.

“순규야.”

그렇게 둘이 남게 된 유현은 이순규에게 다가갔다.

혹 달려들 수도 있을 테니, 주의를 하면서였다.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묶여 있기는 했지만.

‘순규의 감염은…… 진짜 미량으로 이루어진 거야.’

아주 조그만 상처라도 난다면 장담할 수 없었다.

“으…….”

“순규야, 나 정유현이야. 정신 들어?”

“아……. 여긴……. 여긴 어디지.”

다행히 제대로 된 답이 돌아왔다.

우선은 그랬다.

“병원이야. 너 응급실 왔던 거 기억나?”

기억.

인격을 이루는 토대라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온전하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유현은 그런 생각으로 물었고.

“어…… 어. 그 후로는 통……. 내가 열이 났지. 나 뭐였어?”

이순규는 답했다.

하지만 유현은 그 후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아……. 이걸 어찌 말해야 하지.’

답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까.

이건 의과 대학에서도, 수련 과정에서도 배우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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